보문사(普門寺)
2024. 8. 2.
범종(梵鐘)
범종이란, 사찰에서 시간을 알릴 때나 대중을 집합시키고,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종이다. 그 소리가 장엄하고도 청명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청정히 참회토록 하며 불교의 무한한 이상과 신앙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그리고 범종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까지 구제 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 사찰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의식 법구 중에 하나이다. 범종의 기원에는 몇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중국의 용종(甬鐘)이라고 불리우는 동기(銅器)에서 변화, 발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이후의 작품들이다. 우리나라의 범종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독특한 의장과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그 세부장식이 정교하고 울림소리가 웅장하여 동양 삼국의 종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한 마리의 용으로 구성된 용뉴 뒤에는 음통(音筒)이란 대롱이 부착되었으며 종신의 위아래에는 문양띠가 둘러지고 윗문양띠 아래에 방형의 유곽(乳廓)을 만들고 유곽 안에는 36개의 종유(鐘乳)를 장식하였다. 아울러 종의 몸체 아래로는 활짝 핀 연꽃잎 모양의 원형 당좌를 앞, 뒷면에 배치하고 여백면에 비천상, 주악천인상, 공양상을 장식하였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통일신라시대 범종으로서는 상원사 종(725)이 가장 오래된 예이며 성덕여왕 신종(771)은 크기나 아름다움이 단연 뛰어난 작품이다. 고려시대에는 초기까지 통일신라시애 양식을 계승한 것이 만들어지나, 말기에 이르면 원(元)나라를 통해 샤로이 중국의 양식을 도입됨으로써, 우리나라 종 양식의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점차 중국화된 양식과 우리나라 전통 범종 양식, 그리고 혼합형 등의 다양한 양상을 지닌 조선시대 범종으로 정착하게 된다.
윤장대(輪藏臺)
윤장대(輪藏臺)란 책장의 일종으로 경전을 넣고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에 의지하여 원형 또는 다각형의 나무장을 올린 위 여기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다. 경전은 경장뿐 아니라 율(律)과 논(論), 여러 고승들의 장소(章疏)도 함께 넣어 둔다. 또한 불도를 믿으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불경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같다고 한다. 더불어 경전을 넣고 돌리면서 소원을 빌거나 소원을 써서 윤장대 안에 넣고 돌리는 등 소원을 빌 때 사용한다.
오백나한
나한이란 아라한(阿羅漢)의 약칭이며 아라한은 범어 아르한(arhan)의 음역이다. 오백비구(五百比丘) 오백상수(五百上首)라고도 한다. 아라한은 공양 받아 마땅한 자(應供), 공양으로 복을 심은 밭(福田), 진리에 상응하는 자(應眞), 나고 죽는 윤회에선 벗어난 자(不生), 더 이상 배울것이 없는 자(無學)등으로 불린다. 나한은 불제자들이 도달하는 최고의 계위(階位)로 이들은 더 이상 생사윤회의 흐름에 태어나자 않으므로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며 매우 덕이 높은 성자로 추앙받았다. 나한이 보살과 다른 범은 대개 실종 인물이었다는 범이다. 처음에 아라한은 부처님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그 뒤 부처님과 아라한이 구별되고, 부처님의 제자가 도달하는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하게 되었다.
보문사 와불
와불전의 와불(臥佛)은 열반하는 부처님의 누워있는 형상으로 보문사의 와불 부처님은 너비13.5m, 높이 2m이다. 아난에게 사라(Sara)나무 밑에 침상을 준비하라고 이르시고 부처님께서는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얼굴은 서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고요히 누우셨다. 그리고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오늘밤 자정 무렵 여래는 열반에 들리리고, 나는 이제 팔십세가 되었구나, 비유컨대 낡은 수레가 움직일 수 없음과 같을지니라, 육신이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만큼, 늙고 병들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라, 내가 이미 가르치지 않았던가, 모든 형상 있는 것들은 다 사라져 없어지리라고, 그러나 여래는 육신이 아닌 깨달음의 지혜이니라. 내가 가르킨 진리는 언제나 너희들과 함께 하리라.” 제자 돌아보시면서 마지막 가르침을 펴시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을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위와 같이 부처님께서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하시기전 아난에게 마지막 남긴 유훈(遺訓)을 간락히 자등명 법등면(自燈明 法燈明)이라고 한다. 더 풀어쓰면 , “자귀의법귀의 자등명 법등명 제행무상 불방일정진(自歸依, 法歸依 自燈明 法燈明 諸行無常 不放逸精進: 자기 자신을 등불을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모든 것을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라는 열반송(涅槃誦을 남기셨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부처님은 평안히 열반에 드셨다. 이날이 부처님께서 80세가 되던 해 2월 15일 야반(夜半)이었다.
보문사 석실(普門寺 石室)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懷正大師)가 처음 건립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다시 고쳐 지은 석굴사원이다. 천연 동굴을 이용하였으며 입구에는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문을 만들었다. 동굴 안에 불상들을 모셔 놓은 감실(龕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보살과 나한상을 모셨다, 이들 석불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어떤 어부가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 대로 모셨더니 큰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보문사 마애석불좌상(普門寺 磨崖石佛坐像)
이 석불좌상은 금강산 표훈사 주기 이화응(李華應)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裵善周)가 1928년 낙가산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것이다. 불상은 뒤의 둥근 빛을 배경으로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보관(寶冠)을 쓰고, 손에는 정병(淨甁: 세속의 모든 번뇌와 마귀를 씻어주는 깨끗한 물을 담은 병)을 들고 있으며, 연꽃 받침 위에 앉아 있다. 얼굴에 비해 넓고 각이 진 양 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만(卍)” 자가 새겨져 있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관음 신앙의 3대 성지로서 중요한 곳이다.
강화 보문사 황금잉어 조성 연기문
강화 석모도 보문사에서는 국내 유일의 오방 용왕을 모신 용왕전 건립에 이어 청동주물 황금잉어를 조성하였습니다. 잉어는 늘 깨어있는 물고기처럼 수행이나 학문을 정진하라는 의미가 있고, 한번에 많은 알을 낳아 다산, 자손의 번영 그리고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어룡변성도의 잉어 그림에서처럼 일반인에게는 장원급제, 스님들에게는 성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에 많은 불자님들의 염원을 담아 불기2568년 갑진년에 황금잉어를 조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