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란 꿈을 안고
"아빠! 빨리좀 나와보세요. 의사 선생님이 보재요."
둘째딸이 병원을 지키다가 한 전화다.
일을 끝내고 나가야 하는데 손님이 끝내 주지를 않는다.
식당안에 마지막 손님인데도 술이 거나 해서 횡설수설만 하고...
마음은 급하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니 "왜 이제 오세요!" 하고 딸년이 핀잔이다.
의사에게 가니 " 우선 급한 상황은 처리를 했는데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후송보내는게 좋을것 같네요."
"아니요. 탓은 하지 않을테니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주세요."
6년전의 일이 생각나서다.
사내아이를 낳았다.
출산기미가 있어 병원에 갔더니 아직 아니라면서 돌아가기를 3번, 네번째도 아직 아니라더니 출산실에 들어간지 몇분후에 아이를 낳았는데 의사가 나와서 하는말이" 아이가 좀 늦게 나와서 태변을 마셨네요. 인큐베이터가 없으니 큰 병원에 가서 산소공급좀 받았으면 합니다."
"그래요?" 하고 흔쾌히 수락을 했었다.
방지거 병원,
잊지 않는다.
과장인가 하는 의사, 원장의 아들아라던가?
오만불손한 태도에 치가 떨린다.
결국 아이는 그곳에서 밖의 세상을 구경도 못해 보고 냉동실로 들어가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 도착하여 의사면담을 하니...
"실릴 가망이 없어요."
" 잘 살아봐야 20여일을 견디지 못할것 같네요."
"데려가 봐야 마음만 상하실텐데 저희에게 주고 가시면 안될까요?"
"...."
"알코올에 넣어 실험용으로..."
"............"
정신이 없었다.
머리속에는 지난번 잃은 아이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네 명이 이것 뿐이라면 가라,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자! 다음엔 꼭 너를 지켜줄께."
25시간의 세상을 보고 차가운 냉동실로 들어가는 아이를 보고 한 말이다.
산모에게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이상을 알게 하면 울기부터 하니 다음 처리가 골치아픈 문제가 된다.
정상분만으로 아픈 허리를 낫게 하겠다고 임신을 계획했던 애엄마가 소파수술로 아이를 낳았기에 3일인가 후에 퇴원을 하는데 내 마음은 어떤 구속에서 풀려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울지 못하는 아이,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
젖을 먹여 뉘여 놓으면 다음 젖을 먹일때까지 그 상태 그대로 누워있는 아이다.
젖먹이러 들어간 애엄마가 급하게 불러 달려가 보니 아이가 축 늘어지고 하얗게 얼굴이 변해 있다.
꺼꾸로 들고 등을 몇번 두드리고 고개를 젖혀 뉘어놓고 손에서 사혈을 하는 응급조치를 하니 혈색이 돌아온다.
젖이 기도로 들어갔던 모양이다.
이후 애엄마는 혼자 젖을 주러 겁이나서 들어가지를 못한다.
늘 혼자 있으면 우는게 일이고, 그나마 식당이라고 하는 바람에 일 때문에 가게에 나가 있을때는 울지를 않는다.
감기는 왜 그렇게 잘 걸리는지...
감기에 고열이면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축 늘어진다.
죽음의 순간을 여섯번인가 견디어 내었다.
그때마다 허리가 아파 배워두었던 고려 수지침의 위력이 발휘 되었다.
때문에 병원엔 그다지 많이 가지를 않게 되는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성장 하면서 이번엔 폐렴이 잘 걸린다.
한번은 열이 없기에 폐렴이 아닌 줄 알고 방심 했다가 고생을 한 일도 있고, 심장의 난원공 수술을 하겠다는 애엄마와 다투다가 서울집을 팔고 따로 살기로 하여 영월 주천으로 아이와 단둘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추천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여 다니는데 도움반 선생님과 간호선생님, 그리고 애엄마와 단합이 되어 아이를 수술대에 올리려고 공모를 했었다.
한번도 살고 있는 집에는 와 보지도 않고, 선생님들과 공모를 한 것도 괘씸하지만, 아이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에 너무 서글퍼진다.
나도 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당시의 상황은 수술을 시킬만한 상황이 아님을 내가 안다.
지금은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되었지만, 당시의 상황이라면 생목숨을 끊는거나 진배없는 조건이었다.
거기에 애엄마의 마음은 아이를 살리고자하는 진솔한 마음이 없었다.
눈에서 나오는 광기, 어떤 이유에서인지 눈을 보면 소름이 끼쳤다.
아이를 수술대에 올리는 것은 오래 살게 하려는 부모의 마음이다.
허나,
나는 자연 수명을 주장한다.
늙은 부모의 늦둥이 자식이 정상이라면 얼마던지 더 살아도 나무랄것이 없다.
부모가 없는 장애로 세상을 오래 살기만 한다면 결국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누가 그 희생을 감당하는데 선뜻 동의 하겟는가?
한번은 서울대 병원에서의 일이다.
내과 선생님이 " 수술을 시켜야 하는데요."
" 수술 하면 뭐가 좋아지지요?"
"오래 건강하게 살수 있어요"
"내가 죽고 나면 누가 돌봅니까? 선생님이 돌봐 주시겠어요?"
" ....그것도 그렇네요."
아무도 선뜻 나설수 없는 기막힌 상황, 무조건 건강하게 오래 살기만 하면 되는 일일까?
장애 아버지들의 모임에서 우리들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하자고 했었다.
학교를 만들고, 일터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공부 시키고 일 하면서 살다가 정히 안 되면 사회의 도움을 요청하자고 했었다.
아무도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사회 보장제도가 있는데 왜 그걸 우리가 하느냔다.
하긴 지난 겨울 행복한 노년을 위한 교육을 받았었다.
여기에서도 노후엔 공동생활만이 살아가는 행복이라고 했다가 바보가 된 일도 있지.
부모는 낳은 죄(?)가 있어 고생을 감내 하지만 남들에게 구걸시킨다면 이건 할짓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통감한다.
다만 아이가 할수 있는 단순 노동인 농사일을 수시로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먹을것이 없으면 본대로 일을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가 혼자 할 일은 없다.
나도 안다.
여럿이 함께 지도자가 있어 시키면 마지못해 하기는 한다.
아이의 미래를 보는 마음은 아직도 는개속을 헤메이는것 같다.
삶과 죽음에 대하여 어렴푸시 짐작이 가는지 초등 4학년 봄에 급성 후두염이 걸렸었다.
나도 듣도 보도 못한 급한 상황이라 "아! 이게 마지막인가 보다!" 하고 긴장하는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 아이를 치료한다고 데리고 가더니 결국 죽였지?"하는 애엄마의 원망이다.
학교갈 준비로 아침을 먹고 화장실에 다녀온 아이가 갑자기 "아빠!" 하더니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못한다.
그리곤 잠시후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서 축 늘어진다.
119를 부를 시간이 없다.
사혈침을 꺼내 잡은 손이 떨린다.
우선 고개를 젖혀 뉘고, 손을 보니 붉었던 손이 하얗게 변한다.
붉은 기가 남아 있는 손가락 끝을 따니 피가 나오고, 다른 손가락에서 색이 왔다갔다 움직인다.
이곳저곳 색이 변하는 곳을 마구 찔러 댔다.
하얗게 변한지 오래되면 피가 나오지 않는다.
병을 알아야 하는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 복진 조차도 할 시간이 없다.
방 바닥에 피가 벌겋게 떨어져 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그러 계산할 시간 조차도 없다.
주므르고 따고 뽑고...
얼굴에 혈색이 돈다.
" 아! 이제 되었구나!"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전화기를 꺼내 119를 불렀다.
" 용석리인데 급한 환자요."
" 예 알았습니다. 30분정도 후에 도착합니다."
이걸 믿고 기다렸다면????
제천 현대병원에 차를 댔다.
급히 들어가 X-ray를 찍고 나더니 도로 나온다.
" 소아과가 없어 졌대요" .
"염병! 없으면 왜 환자는 받아?" 욕이 저절로 나온다.
서울 병원으로 차가 들어간다.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팔에 링거액을 꼿고 입에는 마스크로 훈증을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병이요?" 하고 물었다.
" 급성 후두염입니다." 담당 여의사선생님이 가르쳐 주었다.
"8~90%가 죽어요. 워낙 급해서..."
바쁜 선생님에게 방해가 될까봐 뒤로 물러나 있는데 정신이 좀 든 모양이다.
나를 보며" 아빠! 나 이제 죽는거야?"
아마도 선생님과 얘기 하는 소리를 들었나 보다.
웃음이 나왔다.
또 하나의 새로운 질병과의 싸움에서 이간 승리의 웃음이다.
옆에서 선생님도 웃고, 간호사 누나들도 깔깔대고 웃는다.
" 죽긴 왜 죽어! 임마! 아빠가 있는데..."
첫댓글 감동 드라마네요. 의학에 관심이 없었다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요. 지나고 나니 웃을수 있지만 당시의 상황은 참담 그 자체였엇답니다. 알고나니 후로는 사는 재미가 별로 없더라고요
수지 침이 없을때는 바늘이라도 이용하여 급소생은 필수적인 응급처리 중에 참고사항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어머니들이 머리에 항상 바늘을 비녀꼽는옆에 꼽아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의학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기술이 있던 나라인데 어쩌다 깡통들이 되 가고 있군요. 비단실로 진료를 한 나라는 우리 빼고는 전무 후무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