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ː2023년 06월 19일(월)
▶산행지ː 운길산(606.5m) 절상봉(513.2m) 적갑산(566.3m) 철문봉(635.9m) 예봉산(678.8m)
▶코스ː 운길산역-진중리-수종사-절상봉-운길산-새재고개-적갑산-억새밭-철문봉-팔당리-팔당역(11.97km)
▶난이도ː A+
▶누구랑ː번개 팀 5명(깃대봉.일광.철인.태양의눈)
▶시 간ː12:05∼18:12(휴식포함 06ː06분)
▶거 리ː약 11.97㎞ (오르내림포함 약 13km)
▶날 씨ː맑음 (무더위/ 미세먼지 조금)
☞운길역(3번출구)ː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 230-1
☞팔당역(1번출구)ː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 358
◈교통편◈
▶갈때ː부산역(07:40)→수서역(10:17)→수서역(왕십리행)→왕십리역(용문행)→운길산역(하차)
▶올때ː팔당역(문산행)→왕십리역(죽전행)→수서역(하차)→수서역(SRT부산행)→부산역(도착)
수종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이 절은 일찍이 서거정(徐居正)이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격찬한 명당으로도 이름이 높다.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439년(세종 21) 세워진 정의옹주(貞懿翁主)의 부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459년(세조 5)에는 왕명으로 크게 중창되었다.
금강산에 다녀오던 길에 왕은 이수두(현재의 양수리)에서 1박을 하였는데, 한밤중에 종소리가 들려오므로 날이 밝자 산으로 올라갔다. 한 암혈(巖穴) 속에서 16나한(羅漢)을 발견한 왕은 굴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을 울려 마치 종소리처럼 들려온 것임을 알고, 여기에 절을 짓게 하고 수종사라 하였다. 이 때 5층의 돌계단을 쌓아 터를 닦고 절을 지어 16나한을 봉안하는 한편, 5층 석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그 뒤 퇴락한 절을 1890년(고종 27)에 혜일(慧一)이 고종에게 8,000냥을 하사받아 중창하였다. 다음해 다시 4,000냥과 금백홍사(金帛紅絲: 황금과 비단 및 홍실 등의 재물)를 시주받아 사존불(四尊佛)을 개금(改金)하였는데, 이 때 방광(放光)이 있었다고 한다.
1939년에 태욱(泰旭)이 중수하고, 6·25전쟁 때 불타버린 뒤 1974년 주지 장혜광(張慧光)이 대웅보전(大雄寶殿) 등을 복원하였다. 1981년에 대응이 산신각·종각 등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응진전(應眞殿)·약사전(藥師殿)·산신각·종각·경학원(經學院)·요사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59호로 지정된 수종사부도내유물(水鍾寺浮屠內遺物)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 팔각오층석탑이 있다.
청자항아리[靑磁壺]·금동구층탑(金銅九層塔)·은제도금육각감(銀製鍍金六角龕)이 한 조가 된 부도내유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팔각오층석탑은 1957년에 해체하였는데, 세 곳의 원공(圓孔)에서 금동불(金銅佛) 18구가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1493년(성종 24)에 쓴 발원문이 있어 건탑(建塔)의 연대추정에도 참고가 된다.
운길산, 운길산(610m)은 서울에서 동쪽으로 40km,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양수리에서 서북쪽으로 4km 거리에 솟아 있는 산이다. 1890년(고종 27)에 지은 《수종사중수기》에는 운길로 나오고, 그보다 오래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곡산이라고 적혀 있다. 산 중턱에 있는 수종사에는 지방문화재인 팔각 5층석탑과 500년이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가 있다. 무엇보다도 남한강과 북한강을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뛰어나 해동 제일의 사찰이라 옛사람들은 전했다. 서거정, 초의선사, 정약용, 송인, 이이 등이 머물던 곳으로 시 몇 수가 전해진다. 물 맛이 좋아 차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적갑산 예봉산과 적갑산은 능선에서 마주보고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산이며 능선길로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적갑산 산행은 예봉산 정상에서 북서쪽 안부에 내려서면 팔당과 세광사로 가는 큰 길이 있으며, 630봉에 올라 잡목림 길을 따라 적갑산에 닿게 된다.
예봉산(禮峯山 678.8m) 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팔당리와 조안면 진중리, 조안리에 걸쳐있는 산이다. 북쪽으로는 적갑산과 갑산이, 동북쪽으로는 운길산이, 동남쪽으로는 예빈산이, 한강을 건너 남쪽에는 검단산을 마주보고 있다. 조선시대 때부터 수림이 울창하여 인근지역과 한양에 땔감을 대주던 연료 공급지였다. 예로부터 인근주민들에게는 운길산과 함께 사랑산 혹은 예빈산(옛 명칭으로는 철마산이라 불렸음)을 작은사랑산으로 칭하고 큰사랑산[1]으로 칭했다. '산을 위해 제사 지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로 영산이라는 별칭도 존재한다. 조선시대의 지도에서의 예봉산의 명칭을 보면 해동지도, 동여도, 대동여지도에는 예빈산(禮賓山), 청구도, 대동지지에는 예봉산(禮奉山), 조선지지자료, 조선지형도에는 예봉산(禮峰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한제국 시대까지는 경기도 광주에 속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편찬된 조선지형도에는 경기도 양주군에 소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봉산은 남양주시에서 중앙선이 복선 전철화 된 이후 접근성이 높아져 등산객들의 출입이 잦아졌으며, 다산길 4번 코스가 이곳을 지나고 다산길 1-1번코스가 예봉산 테두리를 지난다.
팔당역명 유래 고대전설에 의하면 원시시대에 수목이 울창하고 인가는 전무하였다가 할 시대에 웃마을에는 인가 여덟호(八戶)가 있고, 아래 마을에 인가 여덟호(八戶)가 있어 이를 지칭하여 팔당(八堂)이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
♣.단단한 믿음.♣
인간관계는 상호활동이며 어느 한쪽의 열정만으로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
상대방이 당신을 믿으면, 당신도 그에게 충분한 믿음을 주어야 한다.
마치 감정이라는 계좌에 저축하듯
두 사람이 쌓은 믿음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좋아지고
단단해져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