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6일(토)
산보삼아 화포천생태공원을 찾았다.
늘 다니는 길에 보는 곳이지만 걷고 싶었다.
탐방지원센타로 들어가기 전, 여기서 지원센타까지 1.5km로 안내되어 있다.
탐방지원센타주차장에 주차하고, 엄지손가락 굵기의 오디가 유혹을 한다.
한움큼 딱 먹었다. 달다.
화포천생태공원은 다양한 걷기코스를 가지고 있다.
나는 봉하마을로 갈 것이다. 2.2km
경전선철로가 없었으면 조금 둘러가지 않아도 된다.
사자바위가 보인다. 걷기 편하게 데크시설이 잘 되어 있다.
젊은부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많이 와서 놀고 있다.
화포천이다. 화포천은 낙동강의 지류이다. 또한 이지역은 넓게 습지가 조성되어 있다. 자연적으로.
가까운 곳에 낙동강 본류가 흐르고 있다.
경전선철로
화포천생태지원센타
경전선을 2~3량짜리 무궁화호 같은 열차가 달리고 있다.
철길을 넘어선 곳에서 본 경전선, 화물열차도 다닌다. 오른쪽 방향이 새론 진영역이 있다.
봉하마을 앞엔 아담한 산능선이 있다.
어지간히 걸어왔다. 초여름날씨다.
돌아서서 사진을 찍었다. 보이는 건물은 본산배수처리장이다.
봉하마을 앞뜰,
이곳을 홍가 성을 가진 경남도지사가 도지사시절 개발하여 공장이나 주택가로 만들려고 했단다.
물론 고노무현대통령묘역을 관광지화 하는 것에 반대했으니까.
사저를 아방궁에 비교하며 게거품을 물었는데 지금 사저가 개방, 너무 검소한 집이다.
사자바위, 이곳은 봉화대이다.
묘역과 봉하마을을 둘러보았다. 서거하기 전보단 많이 달라졌다.
봉하장터에서 유명 배우 명계남씨가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
노무현대통령기념관의 벽.
주말이라 그런지 관광객들로 붐빈다.
요즘 상대적으로 박정희생가나 이명박생가엔 관광객이 없다고 한다.
이명박생가는 퇴임 후부터 그리 관광객이 많이 다니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이 든 분부터 젊은부부들까지 다양한 층이 이곳에 오신다.
고노무현대통령생가.
노무현의 꿈,,,,문재인의 꿈, 우리 민족의 꿈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유토피아는 아닐찌라도 그래도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 받고 존중하는 그런 사회, 좋지 아니한가?
며칠 전 어느 친구를 만나니 노무현이야기를 한다.
그가 옳았다고.....그가 옳았다고~!
부엉이바위, 아직까지 접근금지인 모양이다.
서거 당시에는 접근이 가능하였는데,,,부엉이가 저곳에서 울지 않는다.
부엉이바위 밑에는 잔디광장도 조성되어 있고 연못도 조성되어 있다.
작은 연못에 부엉이바위가 반영된다.
이곳에 앉아서 그분의 꿈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그 심정도 헤아려 보는 것도 좋겠다.
사자바위, 봉화산을 7여년만에 올라와 본다.
그때 못보았던 봉화대가 만들어져 있다. 자암봉화대(子巖烽火臺)
난 이곳이 봉화대인 것을 처음 알았다.
사자바위 정상에 이런 안내판이.....정상 주위에 파진 곳은 2곳이 있다. 물이 차 있다.
사자바위에서 본 전경, 한림뜰과 그 가운데를 흐르는 화포천.
새론 진영역이 있는 진영읍 설창리 방향이다.
봉하마을과 봉하뜰이다. 묘역도 보인다.
사자바위에서 <호미를든관음상>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벤치에 누워 잠시 잤다. 더위를 먹었나? 속이 안좋고 몹시 피곤하다.
토끼가 부리나케 뛰어간다. 고양이는 조심조심 지나다가 나를 힐끔 처다 본다.
새들의 노래소리는 즐겁다.
관음상이 있는 곳이 높이 140m의 봉화산 정상이다.
그곳에서 본 전경이다. 사진 가운데가 낙동강 본류이다. 그 넘어는 밀양땅이다.
희미한 다리, 그걸 건너면 밀양시 하남읍, 수산제(堤)가 있는 곳이다.
생림면에 있는 무척산이 코앞이다.
이곳 봉화산의 암석이나 무척산의 암석은 겉보기엔 같다.
진영역이 있는 진영읍 설창리 방향이다.
이곳으로 향하여 올라갈 때 비구니스님과 여신도가 앞서 가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음상을 처음 세울 때는 시멘트구조물이었고 나중에 FRP로 세웠으나 근래 대리석으로 바꾸었다고.
아마 1959년 선진규법사께서 처음 이곳에 정토원을 짓고 불상을 세우신 것 같다.
선진규법사의 고향이 이곳이고 어린 노무현을 알고 계신 분이다.
정상에서 비구니스님과 이야기를 할 인연을 가졌다.
그 스님은 이 불상을 가지고 논문을 쓰셨다고 한다.
논문에 필요한 사진자료를 얻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경주에서 오셨단다.
스님의 설명은
우측손엔 정병(淨甁)을 들고 거기엔 버드나무가지가 꼽혀있다.
이 버들가지로 정병에 든 물을 묻혀서 병든 자에게 뿌리면 병이 낫는다는 것이 경전에 있다.
좌측손엔 호미를 들고 계신데 이것이 특이한 점이다. 경전에 나오지 않는다.
호미로 스스로 깨우침을 파자는 뜻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건립비에 대충 그런 내용이 적혀 있어서)
비구니스님과 여신도는 이곳이 처음이라고 한다.
절에 대한 것과 봉하마을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고 꼭 참배하고 가시라고 권해드렸다.
생활한복 즉 개량한복을 입고 있는 나에게 법복을 입고 계시는데 불자냐고 물었던 스님과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고 곧장 정토원으로 내려왔다.
故김대중대통령과 故노무현대통령의 영전을 모신 수광전, 본당이다.
정토원은 사(寺)자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마 법사께서 개산하셨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선진규법사의 아들, 선기가 있는가 공양간을 두리번거렸지만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선기는 내일 아들결혼잔치 하려면 오늘 바쁘겠다.
하산길은 약사암을 택했다.
차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서 화포천을 또 촬영하였다.
뽕나무 열매 오디 한병 수확했다.
처음 촬영한 곳에서 본 저녁놀. 3시에 시작한 걷기는 7시에 끝났다. 왕복 5.5km쯤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