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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서울과 미국 뉴욕의 시차는 13시00분...
뉴욕이 서울보다 13시간 느리다.
그러니까 우리도 지금 서울의 현시에서 13시간 뒤로 왔으니
우리 모두는 13시간 더 젊어진거다,,뉴욕에 자주와야 겠다.^^
2 일째
[뉴욕워싱턴]
개선문 스퀘어파크)
인천 공항에서 오전 10시 30분에 비행기가 이륙했는데
뉴욕에 캐네디공항 대합실 시계는 오전11:35분이다
여기가 미국임을 인식할수있다
뉴욕 캐네디공항 대합실
투어버를 타고 이동중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뉴욕 캐네디 공항의 관제탑이 눈에들어온다
개 선 문
맨하탄에 세워진 개선문은 조지 워싱턴의 취임 100주년
기념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큰 아치형의 기념문이다.
우리가 이곳에 갔을때는 대형 분수가 멈춰있었다
공원의 북쪽 끝에 있다.
개선문에서 나와 하루일정을 마치고 식사하러 갈 무렵
차창 밖으로 맨하탄시내 빌딩과 허드강이 보인다
한인식당 청솔밭에서 3일째 저녁식사
미국에 들어올때 하늘에서 하룻밤을 보냇고
뉴욕 변두리 쪽에서 이틀밤을 지낼 호텔에 도착...
삼 일
[뉴욕 맨하탄 시내]
황소동상, 자유의여신상, 브르클린브리지다리, 유엔본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센츄럴파크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아침식사후 우리일행은
투어버스에 승차한다
뉴욕~보스톤까지 우리들을 태운 투어버는 한번 출발하면
보통 기본이 150~200km를 이동한다
뉴욕 고속도로 톨게이트
케네디공항에서 부터 뉴욕과 워싱턴 2일간의
투어 담당자인 "정진현" 가이드님~!
아들같은 느낌이 들어서 친근감이 많이 갔다
고속도로 옆에 불기둥이 서 있는데
정지현 가이드님이 석유공장이라고 한다
멀리 차창밖으로 뉴욕 맨하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 홀란드 허드슨강 해저 터널입구를 통과해서
↓ 뉴욕시 맨해튼 남부에 위치한 맨하튼에 들어왔다
뉴욕시내 도로는 전체가 일방통행이다
뉴욕 월가의 거리..정면에 보이는 빌딩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황소 동상
이곳 월가는 미국 뉴욕 금융시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곳이랍니다.
우리 일행들은 황소 뒤에서 불알을 만지고 부자 되려고 대기중,,
황소는 월가의 상징 이기도 하지만
황소 뿔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
그래서 우리도 뿔을 만지며 행운을 기대하고,,,
황소 불알을 만지면 돈이 들어온다고 한다
형님네는 돈이 많으시면서도 저렇듯 황소부랄을
만지신다, 많아도 더 가지고 싶으게 돈인가 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황소뿔과 불알을 만지려고 줄을 서지만,
실지는 뉴욕 월가 거리의 상징에서 인증샷 한컷 남기려고...
우리가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한산한 편이었다고 한다
뉴욕의 교통 수단으로는 지하철이 아주 잘 되어있지만
빨강색의 2층 버스도 많이 다니는 편이다
자유의 여신상 유람선
하늘에는 헬기 여러대가 계속해서 선회를 한다
아마도 순찰 중인듯~~
사진 뒷쪽에는 과거 세계에서 제일 높았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에 벌어진 항공기 자살 테러 현장이 보인다
이로 인해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붕괴되고
버지니아주 알링턴 군의 미국 국방부 펜타곤이 공격받아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약 2,996명의 사람이 사망하고,, 최소 6천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전 세계가 테러의 공포에 떨었다.
멀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하늘높이 우뚝 서있다
뒤에 보이는 불은색 건물은 "엘리스 아일랜드" Ellis Island
미국은 이민자들이 만들어낸 나라이다.
진짜 토종 미국인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디안 원주민’들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이나 네덜란드같이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가 대다수이다.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미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져있는 여신상.
공식 이름은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세계를 밝히는 자유).
미국 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미국의 독립전쟁 때 영국을 미국 땅에서 몰아내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프랑스가 이를 축하하기 위해 민간차원에서 기증한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 설립을 위한 기금은 복권과 디너파티를 통해 모금됐고
제작은 조각가 바르톨디(Frederic Auguste Bartholdi)가 맡았다.
얇게 두드려 편 구리판을 철골 구조 위에 씌우는 방법을 채택했기 때문에
철골구조 설계는 에펠탑을 세운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이 맡았다.
제작 10년 만인 1885년에 철골과 구리판을 분리해 뉴욕으로 옮겼으나
미국은 그때까지 받침대 공사를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받침대를
세우기 위해 벌인 모금운동이 제대로 성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받침대는 미국의 모리스 헌트가 설계했고 에마 나자루스의 14행시 '새로운 거상'이 새겨졌다.
1886년 10월 28일, 1년간의 조립 끝에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항 리버티 섬에 제막됐다.
받침대를 포함해 전체 높이가 92m이고, 여신상의 높이는 46m이며
여신상은 오른손에는 횃불을 치켜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의 날짜가 적힌
독립선언서 석판을 들고있다.
이후 뉴욕항 초입의 리버티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려는 이민자들에게는 미국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미국인들에게는 미국정신을 일깨우는 존재가 되어왔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어있다.
그러나 2001년 미국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펜타곤), 의사당을 비롯한
주요 관청 건물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빌딩 등이 항공기와
폭탄을 동원한 테러공격을 받은 '9.11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 정부는
자유의 여신상이 또 다른 테러 목표물이 될 것을 우려하여
이 여신상이 설치된 리버티섬을 완전 폐쇄했다.
그해 12월 리버티섬은 다시 재개방 되었으나
자유의 여신상 내부 출입은 지금까지도 계속 금지시키고 있다.
지금 까지도 자유를 파괴하는 수많은 영화들의
주제가 우선적으로 자유의 여신상 부터 폭파한다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져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전 세계의 자유를 밝히는 대표적인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브루클린 브리지 다리
브루클린 브리지는 뉴욕 이스트 강의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잇는 다리로,
1883년에 완공되었다.
현대 공학과 더불어 두 개의 고딕 양식 타워는 개통식 때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결정체라는 찬사를 받았다.
당시는 산업혁명의 낙관론이 대세를 이루던 시대였다.
브루클린 브리지의 설계자는 독일 출신의 미국인 공학자
존 로블링(John Augustus Roebling, 1806~1869)인데 그가 죽자
아들 워싱턴 로블링(1837~1926)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브루클린 다리는 길이 486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로
기록되었으며, 높이 83미터의 타워에 연결된 40센티미터 두께의
강철이 다리를 지탱할 정도로 웅장한 규모였다.
또 이스트 강 위에 세워진 각 타워에는 특별 설계된
방수실이 있어 안정성을 더해주었다.
그러나 완공되기까지는 쉽지만은 않았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공사하는 데 있어 위험 부담이 많았다.
특히 수중 작업공들은 수압 차이에서 오는 잠수병으로 고생해야 했다.
그러나 1883년 5월 24일, 브루클린 브리지는 14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출범식을 가졌다. 그로부터 5년 뒤, 브루클린은 뉴욕의 자치구가 되었으며,
브루클린 브리지는 1964년에 국가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유람선에서 어안 렌즈로 촬영한 여러가지 풍경들~
도시, 다리,강물,유람선...
우리집 고여사! 완전 신났다~ㅋㅋ
형수님도 기분이 날라 가신다~ㅎㅎ
유엔 본부(뉴욕맨하탄)
(United Nations Headquarter)
위치: 1 United Nations Plaza, 44th St.
전화: 212-963-1234
요약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와 안전의 유지, 국제우호관계의 증진,경제적·
사회적·문화적·인도적 문제에 관한 국제협력을 목적으로 창설된 국제기구의 본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대의를 둔 세계적인 단체의 중심부. 이다
유엔 본부 자체가 미국땅이 아닌 ‘국제적 영토’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여권은 필요 없지만 유엔 본부로 들어가는 순간 미국을 떠나게 된다.
즉, 뉴욕 시 그리고 더 나아가 미국의 법망에서 벗어나는 셈이다.
현재 192개 나라가 멤버로 가입되어 있다.
UN본부 마당에서 생쑈 아닌 생쑈~ 신났다
반 기 문 潘基文
요약 : 제33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냈으며 제8대 국제연합(UN) 사무총장이다.
2006년 10월 13일 192개 유엔 회원국으로부터
만장일치로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 선출되었다.
그가 국제정치의 본산지인 유엔의 수장 자리에 오른 것은
한국 외교사를 빛내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뉴욕 맨해튼 시내
뉴욕엔 또 노랑 택시가 인상적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
뉴욕 주 뉴욕 시 맨해튼 섬 5번가와 34블록의 모퉁이에 있는,
1931년에 지어진 울워스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높이 443m, 102층 건물로 1931년 공사를 시작한 이래 2년 만에
지어진 뉴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다.
화강암, 대리석 그리고 스테인레스 자재로 지어져 완공 당시
스펙터클한 면모를 가진 스카이 스크래퍼였다.
1950년 67.6m의 텔레비전 안테나 기둥이 정상부에 세워져 전체 높이가 448.6m로 높아졌다.
이 건물은 뉴욕 중부 맨해튼 34번가 51번 도로변에 약 0.8㏊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있는곳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서 있다
표준 렌즈로 촬영한 쌍둥이 빙딩방향
어안 렌즈로 촬영한 쌍둥이 빙딩방향
어안 렌즈로 촬영한 쌍둥이 빙딩 반대방향
동쪽방향
서쪽방향
북쪽방향
남쪽방향
엠파이어 빌딩 밑에서 어안 렌즈로 빌딩 정상까지 촬영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미국의 자존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전면 외부모습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쪽 풍경
‘Met’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은
영국 대영 박물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선사 시대에서 부터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200만 점의 컬렉션은 곧 5천 년 인류의 역사이다.
미술관의 연평균 관람객은 약 500만 명.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뉴욕 현대미술관 관람객이 70만 명인 것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우뚝 서기까지에는 ‘큰손’들의 기부가 큰 힘이 되었다.
1866년 미국 외교관인 존 제이(John Jay)는 파리에서 열린 미국 독립기념일
파티에서 문화 교육기관으로서 미술관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날 그가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키워드는 ‘자존심’이었다.
그는 “미국이 유럽, 특히 프랑스에 밀리는 게 뭐가 있는가.
문화’만 아니면 어느 것 하나 뒤질 게 없지 않은가.
프랑스가 루브르를 나라의 상징으로 가꾸듯이 우리도 이에 버금가는
멋진 미술관을 설립해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하자”고 연설하였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한 사업가와 예술인들은
뉴욕 중심가에 미술관을 건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경제력에서는 기죽을 이유가 없지만 문화에 관한
한 한없이 작아지는 미국의 자존심을 되찾자는
존 제이의 한 마디가 미국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파리에서 가진 ‘메트로 거사’는
급물살을 탔다.
1870년 4월 13일, 뉴욕 5번가 681번지 도드워스 빌딩
1층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장소가 협소해 이후 맨해튼 5번가 14스트리트
128번지 더글러스 맨션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마침내 1880년 5월 30일, 지금의 센트럴파크 5번가 82스트리트로
장소를 옮긴 미술관은 1954년 대규모 개축을 통해 현대식 전시장을 갖췄다.
개관 당시 메트로폴리탄의 소장품은
유럽 회화 170여 점이 전부였다.
하지만 미술관이 제 모습을 갖추면서 컬렉션을 기증한
미술 애호가들 덕분에 수장고에 작품이 쌓이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 피어폰트 모건, 로버트 리먼(리먼 브라더스 투자은행 창시자),
록펠러 가문 등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힘입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박에 세계 굴지의 미술관으로 떠올랐다.
특히 로버트 리먼의 컬렉션에는 마티스, 렘브란트, 르누아르, 고흐, 세잔, 고갱 등
인상파의 진수를 보여주는 걸작들이 대거 포함돼 미술관의 품격을 높였다.
록펠러 가문은 네덜란드의 거장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젊은 여인의 초상〉등
다수의 회화 작품과 아프리카 미술품을 내놓았다.
현재 전 세계에 불과 36점만이 남아 있는 페르메이르의 작품 중
5점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대 로마 신전을 연상케 하는 5만 7천여 평의 웅장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외관에서부터 범상치 않는 포스가 느껴진다.
다소 위압적인 미술관 외관과 달리 1층에 들어서면
자원봉사자들과 직원들이 관람객들을 따뜻하게 맞는다.
특히 한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외국 관람객들을 위해
나라별로 안내문도 비치되어 있다.
미술관은 컬렉션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17개 부문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먼저 1층에는 미국 작가들의 회화 · 조각 · 공예품을 볼 수 있는 미국 전시관(American Wing)
무기와 무구류 전시관(피어폰트 모건 윙), 아프리카 · 오세아니아 전시관(록펠러 윙),
이집트 미술, 유럽 조각 및 장식미술품, 로마 · 그리스 미술, 중세미술,
근대미술 등을 진열한 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2층에는 유럽 미술의 진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유럽 회화 컬렉션을 비롯해 한국 ·
중국 · 인도의 미술품을 모아놓은 동양과 아시아 미술 전시관, 미국 식민지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각 시대별 대표적인 방을 재현한 아메리칸 전시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1998년 삼성문화재단과 국제교류재단의 후원기금 500만 달러로
개관한 한국 미술실(Arts of Korea Gallery)에는 4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 가운데 유럽 회화 컬렉션은
미술관의 정수이다.
12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3천여 점의 회화를 소장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조반니 벨리니와 티치아노, 네덜란드의 한스 멤링과 로지에,,
반 델 바이덴 및 프란스 할스, 프랑스의 장 앙투안 와토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스페인의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프란시스코 고야,,,
영국의 토머스 게인즈브러와 조지 스터브스 등
수많은 거장의 빼어난 작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네덜란드 갤러리에는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 등의 작품이 있으며,
스페인 갤러리에는 벨라스케스,,,
이탈리아 갤러리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지오토와 라파엘로 등의 작품이 있다.
19세기 유럽의 회화와 조각을 전시하는 안드레 메이어
갤러리에는 르누아르, 고흐, 고갱, 세잔 등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및 인상파와 후기인상파로 이어지는
대가들의 걸작이 전시되어 있다.
유럽 회화 컬렉션의 모태는 1901년 제이콥 로저스가 700만 달러를
미술관에 기증한 것이 계기가 됐다. 미술관은 이 기금으로,,
프랑스 화가 조지 라투르의〈점술가〉와 반 고흐의〈사이프러스>를
포함해 수년 동안 수백여 점의 회화를 사들였다.
또한 1917년 벤자민 알트만의 기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르네상스
시대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의 〈성모 마리아와 가족〉,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한스 멤링의 〈토마소 포티나르의 초상〉,
렘브란트의 〈렘브란트의 아들 티터스〉 등을 구입했다. 이외에도
미술관은 찰스 라이트맨 부부, 헤브메이어 부부 등 독지가들의 기부를 바탕으로
유럽 거장들의 명작들을 품에 안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또 다른 볼거리는
1, 2층의 근현대미술 전시관이다.
1900년부터 1940년 사이의 유럽 회화 거장 피에르 보나르, 모딜리아니, 피카소, 마티스,
조지 브라크, 앙리 루소, 발튀스, 오토 딕스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사진, 판화, 소묘, 조각작품들과 1905년부터 1980년 사이의 회화 거장 잭슨 폴록,
모리스 루이스, 앤디 워홀, 제임스 로젠퀴스트, 조지아 오키프, 에드워드 호퍼, 아실 고르키,
윌렘 드 쿠닝, 로이 리히텐슈타인, 마크 로스코 등의 작품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앞의 광장엔 오늘도 전세계의
수많은 인파가 모여 태양을 즐기고 있다
센츄럴 파크
Central Prak
뉴요커들에게 사랑 받는 최고의 공원
맨해튼의 심장부에 위치한 센트럴 파크는 미국 최초의
인공 공원이며 코스모폴리탄 속에 만들어진 최고의 숲이다.
사진 정면으로 보이는 빌딩(반은흰색 반은검정색)이 트럼프대통령집인데
현재는 딸 이방카가 살고 있으며,,우측 고여사 왼쪽 어깨위 빌딩은
트럼프가 첫번째 부인에게 위자료로 준 빌딩이다
뉴욕 사람들이 여가 생활을 하고, 휴식을 취하고,
운동을 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일상 즉, 삶 그 자체인 곳이다.
공원으로 개발되기 전에는 이곳은
돌로 가득 차 있던 쓸모없는 습지였다.
뉴요커들은 도시가 계속 팽창됨에 따라 도시의 소음과 대혼란 속에서
쉴 만한 공간이 점점 부족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1850년대에 버림받은 이곳을
거대한 공원으로 바꿀 계획을 세웠다.
개발을 착수할 당시, 이곳에 살고 있던 1,600명의 가난한 사람과 이민자들을
이주시키는 것이 큰 문제였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1960년대에 스타일리시한 공원으로 만들어 냈다.
우측 검은색 빌딩앞에 하얀색 빌딩이
트럼프와 이혼한 첫째부인 집이다
고여사!
올라갈땐 신났는데...
내려올땐 못내려와서 형님이 업어준다~ㅋㅋ
저렇게 웃는 모습을 나도 처음본다~ㅎㅎㅎ
넓은 센트럴 파크를 다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자전거나 자전거 인력거를
이용하여 필요한 곳만 골라서 돌아보는게 좋다.
센트럴 파크를 단시간에 완전 정복하기 좋은 최고의 방법이다.
단, 너무 늦은 밤 시간대는 위험할 수 있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도심 속에 사는 뉴요커들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으로,
뉴욕의 영원한 정원으로 뉴요커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센트럴 파크 안에는 수많은 동상들이 있다는데,,
누구 동상인지 인터넷을 뒤져도 검색이 되지않는다
1903년에 제작된 Sherman Monument.
금칠을 한 William Tecumseh Sherman 장군의 동상.
저녁 식사는 뉴저지에서..
식사후 호텔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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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가이드 장호웅님을 만나러...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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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행복한 시간이셨길 바래요. 눈으로 담고 카메라로담고 행복한추억은 가슴으로 담으셨길요~ 아버지. 엄마 감사해요~ 눈호강 지대로 했어요.ㅎㅎ 모녀가 둘이서 여행하니 좋아보이던데 부럽네요~ㅎㅎ
아이들이 좀더크면,, 조금 무리해서 너희도 모녀 여행은 가능 하겠는데...
엄마가 더 늙기전에 추억여행으로 함 다녀 오려므나~!!
아마 해외여행 다니는 사람들 누구네 라도 무리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