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38:1
사람의 됨됨이는 위기 속에서 비로소 알 수 있다고들 합디다. 사람들의 오랜 관찰 결과지만, 신앙의 영역에서도 적용됩니다. 바벨론의 3차 침공으로 위기 상항에 놓인 세 그룹은 예레미야를 중심으로 왕과 고간과 내시가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찌든 자기 방종과 욕망에 길을 잃었을 때 우연히 집에 들어 읽은 성서 첫 줄에서 자기 자신과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It is believed that the personality of man can only be understood in a crisis. It is the result of people's long observations, but it also applies in the realm of faith. The three groups that were in crisis due to the third invasion of Babylon are the king, Gogan, and eunuch, centered on Jeremiah. What can be learned from their appearance? It is said that St. Augustine accidentally found himself and the God in him in the first line of the Bible, which he read when he was lost to stung self-indulgence and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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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성도는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말씀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는가? 바벨론 군대에게 항복하면 살겠지만,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이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네 사람의 고관들이 시드기야 왕을 찾아가 그를 죽이라고 요청합니다. 그가 남은 군사들과 모든 백성을 격려하는 샬롬의 말이 아니라 사기를 떨어뜨리는 재앙의 말을 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The saints must live off the word. Do I have a burning thirst for words? When Jeremiah's prediction that he will survive if he surrenders to the Babelon army, but if he resists without surrendering, he will die of swords, famine, and infectious diseases, four dignitaries visit King Sidgiah and ask him to kill him. It is said that he delivers words of disaster that discredits morale, not those of Shalom, who encourages the rest of the army and all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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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당장 듣기에 좋은 거짓 샬롬이 치명적인 독과 같고, 듣기에 거북한 진실이 약이 된다는 것을 알 턱이 없습니다. 내 욕심을 북돋아주고 내 수치를 가려주고 내 생각을 정당화해주는 말이 늘 하나님의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샬롬을 위해 오늘은 혹독한 부끄러움을 감내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친 애급 파 방백들의 요구에 따라 예레미야를 사지로 떨어뜨리더니, 예레미야를 살려달라는 에벳멜렉의 간청도 즉시 수용합니다.
They have no way of knowing that false Shalom, which sounds good right now, is like a deadly poison, and that truth, which sounds difficult to hear, is medicine. Words that encourage my greed, screen my shame, and justify my thoughts will not always be God's words. For true Shalom, there are times when we have to obey the words to endure severe shame today. King Sidgiah dropped Jeremiah into his limbs at the request of his pro-childish patrons, and immediately accepted Evetmelek's plea to save Jerem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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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을 죽인 헤롯안티파스처럼,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준 빌라도처럼, 시드기야도 예레미야의 무죄를 알았으나 권력의 자리를 지키려고 진실을 외면했습니다. 모질게 악하지도 않았지만 운명만은 하나님의 손에 맡길 만큼 믿음과 도덕적 용기를 갖춘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대 방백들은 선지자를 죽음에 몰아넣는데, 이방 환관 에벳멜렉은 왕과 반대파 방백들 앞에서 자신의 안전을 돌아보지 않는 채 왕에게 예레미야의 구원을 요청합니다.
Sidgiah knew Jeremiah's innocence but turned a blind eye to the truth in order to preserve his position of power, just like Herod Antipas, who killed John the Baptist, and Bilado, who handed over Jesus to death. He wasn't terribly evil, but he wasn't equipped with faith and moral courage enough to leave fate in God's hands. The Jews put the prophet to death, and Evetmelek, a stranger, asks the king to save Jeremiah without looking back on his safety in front of the king and his oppon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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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군대의 포위 기간이 길어지면서 성중에 떡이 떨어진 상황에서 죄인인 예레미야를 진흙구덩이에 방치하여 죽이려는 때에 그는 예루살렘에 심판을 선포한 예레미야가 악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입을 막고 그를 죽이려는 시도들이 악하다고 대담하게 지적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을 소신껏 전하기 위해, 차별과 부당한 폭력에 희생되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곳이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애쓰는 분들을 지지하고 변호하는 길벗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When the Babelon army's siege is prolonged and they want to kill Jeremiah, a sinner, by leaving him in a mud pit when the rice cake falls in the castle, he boldly points out that Jeremiah, who declared judgment in Jerusalem, is not evil, but that attempts to cover his mouth and kill him are evil. In this way, in order to convey the word of God, I want to be a path forward to support and defend those who do not take care of themselves to become a place where they can live together without falling victim to discrimination and unjust violence. How should those who follow God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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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에 갇힌 예레미야(1-6)
a.고발의 근거;1-3
b.고관들의 고발;4
c.왕의 수용:5
d.구덩이에 던져진 예레미야:6
구스인 에벳멜렉을 통한 구출(7-13)
a.왕을 찾아간 에벳멜렉:7-8
b.에벳멜렉과 왕의 대화:9-10
c.예레미야를 구하는 에벳멜렉: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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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댜, 그다랴, 유갈, 바스훌이(1a)
예레미야의 말을 들은즉(1b)
이르기를(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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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2a)
이 성에 머무는 자는(2b)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리라(2c)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2d)
그의 생명이 노략 물을 얻음 같이 살리라(2e)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3a)
이 성이 (3b)
반드시 바벨론 왕의(3c)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3d)
그가 취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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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그 방백들이 왕께 고하되(4a)
이 사람이(4b)
백성의 평안을 구치 아니하고(4c)
해를 구하오니(4d)
이 사람을 죽이소서(4e)
그가(4f)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4g)
모든 백성의 손을(4h)
약하게 하나이다(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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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기야 왕이 가로되(5a)
보라 그가 너희 손에 있느니라(5b)
왕은 조금도 너희를(5c)
거슬리게 할 수 없느니라(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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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예레미야를 취하여(6a)
시위대 뜰에 있는(6b)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6c)
던져 넣을 때에(6d)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 내리웠는데(6e)
그 구덩이에는(6f)
물이 없고 진흙뿐이므로(6g)
예레미야가 진흙 중에 빠졌더라(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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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구스인 에벳멜렉이(7a)
그들의 예레미야를(7b)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7c)
듣게 되니라(7d)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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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벳멜렉이(8a)
왕궁에서 나와 (8b)
왕께 고하여 가로되(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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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 왕이여(9a)
저 사람들이(9b)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9c)
모든 일은 악하나이다(9d)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9e)
그들이(9f)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9g)
그가(9d)
거기서 주려 죽을 것입니다(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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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구명하여 가로되(10a)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10b)
선지자 예레미야의 죽기 전에(10c)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1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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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벳멜렉이(11a)
사람들을 데리고(11b)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11c)
거기서 헝겊과 낡은 옷을 취하고(11d)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줄로 내리우며(1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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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에게(12a)
너는 이 헝겊과 낡은 옷을(12b)
네 겨드랑이에 대고(12c)
줄을 그 아래대라(12d)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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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13a)
줄로(13b)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13c)
예레미야가(13d)
시위대 뜰에 머물게 되니라(1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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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를 죽이도록 요청하는 사람_ a person who asks to kill a prophet_
선지자를 죽이지도, 석방하지도 못하는 왕_ a king who can't kill or release a prophet_
선지자를 석방하도록 요구한 에벳멜렉_ Evette Melek, who demanded the release of the prophet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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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구렁텅이 속에서 만나주시는 주님, 내 맘대로 살고 싶어서 내 맘대로 하다가 사면초가가 되었고 징벌을 받게 되었으니 지금은 바벨론을 받아들이고 항복하게 하옵소서. 자존심을 보다는 상대를 배려하고 하나님의 뜻을 살펴나가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때로 불편해도 주의 말씀이고 힘으로 누를 수 없는 주의 말씀이오니 말씀이 나의 삶에 실현됨으로 형통한 삶을 이루게 하옵소서.
Lord, who meets me in the depths of life, I wanted to live my life as I wanted, but I was beleaguered and punished, so now accept Babelon and let him surrender. Let us be a saint who considers the other person and examines the will of God rather than pride. Sometimes it is the word of the Lord, even if it is uncomfortable, and it is the word of the Lord that cannot be pressed with power, so let us live a prosperous life by realizing it in my life.
2024.7.26.fri.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