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로포]
'무풍에어컨' 돌풍 일으킨 '디자인'의 힘...
1500명 머리 맞댄 삼성 서울R&D캠퍼스
무풍에어컨 탄생시킨 디자인과 개발의 시너지
“시각, 음향 등 모든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한다”
19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울 R&D 캠퍼스'. 반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커피를 들고 활보하고 있다. 다른 지역 삼성전자 사업장과 달리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울타리나 무전기를 손에 든 보안요원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얼핏 보면 흔한 대학교 캠퍼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 삼성전자 서울 R&D캠퍼스에 위치한 디자인 라운지에서 디자이너들이 관심 분야 서적을 읽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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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경에 입주를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삼성전자 서울 R&D 캠퍼스는 삼성전자의 미래 제품 개발 및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개발(R&D)하는 특화 사업장이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센터, DMC연구소 등 회사의 미래 사업역량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기능이 모여있는 곳이다.
특히 이 곳은 각 사업부에 소속된 1500여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는 디자인 경영센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01년 CEO 직속조직으로 출범한 디자인경영센터는 삼성의 가전, 모바일 등 모든 제품의 외형, 사용자 경험, 그래픽, 사운드 등 모든 디자인 요소를 연구하는 요람 역할을 하고 있다.
◆무풍에어컨의 탄생지…삼성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 혁신
"삼성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히 예쁜 제품이 아니라 소비자의 삶을 돕는 제품, 배려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미학을 담고 있습니다. 무풍에어컨 역시 찬 바람이 직접 몸에 닿는 걸 싫어하는 소비자를 고려해 2011년부터 연구했고 5년 만에 상식을 깬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송현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의 설명이다. 송 상무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선언' 이후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디자인 혁신에 나선 1993년에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삼성 디자인 혁신의 첫걸음부터 함께 해온 셈이다. 그는 삼성이 그동안 내놓은 제품 중 디자인과 연구개발의 협업으로 탄생한 가장 큰 성과로 무풍에어컨을 꼽았다.
▲ 송현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가 19일 삼성전자 서울 R&D 센터에서 무풍에어컨의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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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상무는 "무풍에어컨은 소재의 혁신에서부터 시작했다”며 “바람이 쉬폰 소재를 통과할 때 잔잔한 기류감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디자인, 개발, 상품기획 부서가 서로 협업하고 싸우고 고민도 하면서 결국 시장에 없는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송 상무는 "차가운 공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앉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착안해 에어컨에서 냉기가 나가는 각도를 3도 정도 높였다"고 밝혔다. 또 세계 최초로 에어컨에 리얼 메탈을 적용해 냉기를 오래 머금는 메탈 소재의 특성을 극대화했다. 디자인에 과학적 원리를 반영해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삼성전자의 무풍에어컨 제품은 지난해 1월 출시된 이후 삼성의 간판 에어컨으로 자리잡았다. 채민영 삼성전자 상무는 "무풍에어컨의 경우 다른 제품보다 30만원 정도 더 비싼 프리미엄급 제품이지만 공장을 풀가동해도 물량이 모자라는 수준"이라며 "올해 7월까지 판매된 전체 스탠드형 에어컨 중 70%, 전체 에어컨 판매량 중 50%가 모두 무풍에어컨"이라고 설명했다.
◆"사운드도 디자인한다"…빅스비에 '소리'를 입힌 사운드랩
디자인에는 눈으로 보이는 시각 디자인만 있는 게 아니다. 삼성전자는 사운드랩(Sound Lab)을 통해 스마트폰, 냉장고, TV 등 전자제품에 탑재되는 사운드에도 디자인을 고려한다. 사운드로 제품의 기능을 강조하는 한편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했다. 사운드랩이 삼성식 '소닉 브랜딩(Sonic Branding·소리가 어떤 사물이나 행동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에 착안한 마케팅)'의 핵심 기지인 셈이다.
디자인경영센터의 사운드랩은 음향전문가, 뮤지션 출신의 삼성전자 연구원 10여명이 음악과 소리를 연구하는 곳이다. 냉장고, 세탁기, TV 등의 가전제품을 비롯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가 이 곳에서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근에는 갤럭시S8에 탑재된 인공지능 비서 '빅스비'의 음성을 개발하기도 했다.
▲ 삼성전자 서울 R&D캠퍼스 디자인 경영센터 내에 위치한 사운드랩에서 연구원들이 악기를 연주해보며 제품에 적용할 음향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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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우 삼성전자 선임디자이너는 "소리를 한땀한땀 고안해 사운드의 제작, 녹음, 튜닝 등 모든 작업이 이 사운드랩에서 진행된다"며 "각 기계에 가장 알맞는 소리 디자인을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미러리스 카메라인 삼성 NX20의 셔터 소리가 호평을 받아 이를 다시 작업해 갤럭시 스마트폰에 탑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와 함께 서울 R&D 캠퍼스 내에 새로 개발한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사업부가 개발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결함 또는 소비자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홈 익스피리언스 랩'도 운용하고 있다. 50평대 아파트에 30여개의 삼성 제품을 채워넣은 이 곳은 삼성 직원들이 매일 상주하며 '제품과 함께 직접 살아보는' 공간이다.
임경애 삼성전자 UX디자인 그룹장(부장)은 "고객의 삶에 직접 들어가 미리 경험해보기 위한 공간이며 실제로 일부 고객들을 이 곳으로 초청해 제품을 사용하게 해본 뒤에 고객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며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1년에 500여명의 고객들을 직접 초대해 얘기를 나눠보고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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