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7일
제목 더디 믿는 도마
본문 요한복음 20:24-29
믿음이 적은 것이 자랑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도 아닙니다. 의심 많은 제자라는 불명예가 붙어 다니는 도마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실패자처럼 보이지만 주님께서 기어이 일으키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십니다. 오늘까지도 인도 땅에 도마의 흔적들이 남아 있음을 봅니다. 말씀을 통하여 약점이 많은 우리들도 일어설 힘을 얻었으면 합니다.
모임을 소홀한 도마
도마의 불신앙 단초는 제자들의 모임에 불참함입니다. 24절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라고 했습니다. 회의할 때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은 늦게 오거나, 이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또 참석했다 해도 회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마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요20:19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모임 중에 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모임은 정말 어설픈 모임입니다. 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했고 부활을 확신하지 못하는 못난이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믿음이 부족한 자들의 모임이라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믿음을 더해주시고 도우시기 위해 그 모임에 찾아오셨습니다. 19절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비록 부족한 자들의 모임이지만 이 모임에 참여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아무리 우리가 철저하게 준비를 다 한다 해도 온전한 모임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완벽한 모임에만 오시는 것이면 아무도 주를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부족할지라도 신자들의 모임에 함께 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모이기를 힘쓰지 않으면 믿음은 흩어지고 맙니다. 교회가 내 마음에 꼭 들지 않더라도 모이기를 즐거워해야 신앙이 자랍니다. 예수님은 개인으로 만나주심도 있지만 공식 통로는 교회 공동체를 상대하십니다. 나홀로 예배를 TV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도마는 제자들의 모임에 불참했습니다. 제자들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음의 결과는 매우 나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 믿고 평화를 누리고 있는데, 도마는 믿을 수 없었고 마음에 평화도 기쁨도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엔 의심의 안개가 걷히지 않아서 마음이 어두웠습니다.
모임에 함께 하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교통이 회복이 되었지만, 모임에 불성실한 도마는 제자들과 교통도 끊어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이는 일을 게을리하면 성도의 교제가 끊어지고 하나님과의 교통도 막힙니다. 예배의 모임에 참여해야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개인과도 교통하시지만 교회 공동체를 상대로 교통하시기를 기뻐합니다. 모임을 소중하게 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디 믿는 도마
25절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가 우리가 부활하신 주를 보았다고 했지만, 말로는 믿을 수 없고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으로 그 옆구리에 넣어 보고 믿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고난받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살아나셨다고 하니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구나.”라고 믿어야 했습니다. 도마는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보아야만 믿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도마는 의심이 많았고 더디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미 믿는 도마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26절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드레 만에 다시금 제자들이 있는 곳에 찾아오셨습니다.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안에 떠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도마의 마음엔 평강이 없었습니다. 아직 의심의 구름이 걷히지 않았습니다. 그런 도마를 향해 예수님께서 화를 내실 만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도마에게 여전히 자비하셨습니다. 그의 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은 그의 연약함을 그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용기를 얻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보고 거절하신다면 누가 그분 앞에서 설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고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지 않았다면 아무도 주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은 그분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을 해오는 동안 얼마나 더디 믿고 게으름을 피웠는지 모릅니다. 다른 것은 다 부지런하면서 믿음만 게으릅니다. 주님은 더디 믿고 순종치 않은 우리를 향해서 인내하시고 오늘까지 참아주시며 기다려 주셨습니다.
이제 더디 믿는 우리를 향해 길이 참고 기다려 주신 주님께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길이 참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남은 날들을 더욱 분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참으심을 게으름의 기회로 악용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도마처럼 더디 믿고, 모임을 소홀히 하는 습관은 없습니까? 교회 일에는 소극적이고, 예배 시간 늦는 습관, 결석하는 습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늘 아쉽게 생각하고 있는 잘못된 습관, 고쳐야 할 습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도마도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이제 달라진 도마의 모습을 볼 차례입니다.
믿음의 교정을 받은 도마
도마는 믿음이 약했습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야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믿음은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신비한 체험을 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잘 들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집중해서 잘 듣고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마음 밭이 좋아야 합니다. 말씀 잘 듣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 잘 듣는 일은 신앙의 첫걸음이자 완성의 길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회개도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하며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회개도 나단 선지자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 삶을 얻었습니다.
도마는 보고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도마를 내치지 않으시고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그의 약함을 받아주셨습니다.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한 도마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의심 많은 도마는 칭찬받을 수 없지만 그의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과 더불어 최고의 멋진 고백이 되었습니다. 의심이 많은 도마의 고백이라서 힘이 느껴집니다. 귀가 엷은 사람은 몇 마디 말에 속고 말지만, 신중한 사람은 웬만하면 믿거나 수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도마의 고백은 가치가 있습니다. 이 땅에 의심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제와도 같은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도마를 향해 타이르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복이 있도다.” 주님은 도마의 약점을 받아 주시면서도 잘못된 것을 책망하시고 교정해 주심을 잊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감싸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더 나은 믿음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보고 믿고, 확인하고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님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얼마 후면 승천하게 될 것이고 눈으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보고 믿게 될 자는 없을 것입니다. 보고 믿겠다고 하면 믿을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벧전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러니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