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QqNI4AZDc?si=tvFMfZIJGA8KE9_P
열암곡 마애불 스토리텔링
(등장인물)
1.미로수
2.쌍심지
3.사비지
장면1.석굴암 공사장
뿌연 먼지 속에서 바위덩어리 옮기는 모습과 돌 깨는 소리 그리고 돌 다듬는 소리가 어우러진 작업현장이었다. 위쪽에는 굴 속에 잘생긴 근엄한 불상이 그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고 둘레 주변에는 십대제자상과 보살상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석굴암 조성 현장이었다. 금강역사 만드는 일은 쌍심지의 몫이였다. 우람한 체구와 팔 근육의 심줄 위이 불끈거릴 때마다 굵은 땀이 방울방울 맺혔다.
장면2.현장 갈등
현장의 총 책임자는 사비지였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동아시아 최고의 돌 장인이었다. 현장을 누비며 손짓에 발짓까지 더해가며 큰 목소리로 작업지시를 하고 있었다. 현장은 철저한 분업체제였다. 석굴암 불상작업은 당대 최고 장인들의 협업시스템이었다. 석공들은 분야마다 전문가로 채워졌다. 얼굴부분 손 발 그리고 다리 상체와 하체부분도 만드는 사람이 달랐다. 그 중에서 얼굴부분은 가장 중요했고 훌륭한 솜씨를 지닌 경우에만 발탁되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다행이도 미로수(迷路手)는 뛰어난 솜씨 덕분에 얼굴부분 제작자 일원으로 참석할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실력발휘를 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었다. 사비지의 지시를 받아 도면대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의견개진은 번번히 묵살되기 마련이다. ‘뭘 안다고. 시키는대로 하라니까?’라는 짜증석인 목소리만 반복되었다. 시키는대로 하는 것은 석수장이지 돌조각가라고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내심 못마땅했다. 조직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없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찮았다. 그래도 나라 안에서 인정받는 장인으로서 명예가 주어지고 보수 또한 넉넉했다. 배부른 소리라고 할까봐 내심 안으로만 삭혔다. 신라 뿐만 아니라 가야 백제 고구려 중국 심지어 서역에서 온 장인들이 함께 하는 다국적 작업장이기도 했다. 작업 중에는 사비지 목소리 외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쉬는 시간이면 지역사투리와 외국어가 어우러져 서라벌이 실크로드 마지막 도시임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장면3.남산산책
초하루와 보름은 정기적으로 쉬는 날이었다. 그 날은 토함산 작업장을 벗어나 남산을 향해 걸었다. 공간이동은 또다른 해방감을 주기 때문이다. 남산에도 골짜기마다 크고 작은 석탑과 불상이 자기 몫을 다하고 있다. 솜씨는 천차만별이다. 만든 시기도 제각각이다. 동네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를 닮은 모양부터 유니버셜한 꽃미남 꽃미녀 불상까지 다양하다. 게다가 바위마다 마애불을 새겼다. 얼굴은 고부조(高浮彫)로 새기고 몸은 저(低)부조로 처리한 것이 대부분이다. 몸매보다는 얼굴에 치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예 바위에 선각으로 습작하듯 줄만 그어놓은 불상들도 더러더러 보인다. 어쨋거나 대세는 얼굴은 입체감으로 도드라지게 만들고 몸은 아예 선으로 처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반(半)부조로 구름 위에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새긴 노련한 솜씨를 신선암 바위와 용장곡에서 자랑했다.
장면4.열암곡 큰바위
어느 날 발길이 남산 끝자락에 이르렀다. 열암곡이다. 잘 생긴 큰 바위가 수직으로 솟아 남쪽을 향해 있었다. 바위를 보자마자 온몸에 전율이 일어난다. 그래! 저기에 마애불을 새기자. 내가 가진 모든 기량을 발휘해보자. 그날 석굴암 작업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또 팀 작업으로 일심동체가 되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비지의 지시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잠시 틈만 생기면 열암곡 바위가 눈 앞에 아른 거렸다. 한 달에 두 번 쉬는 날만 기다렸다. 그 날이면 어김없이 그 바위 앞으로 갔다. 몇 번을 찾아가다보니 그림이 그려졌다. 머리 안으로 도상의 구체화를 반복하다가 그만 돌아가야할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어쩔 수 없지. 이것도 인연인데 바로 시작하자.
장면5. 결별
석굴암 작업장에는 얼굴전문가인 미로수가 없어졌다고 난리가 났다. 사비지가 사람을 풀었다. 몇일 후 소문을 듣고 열암곡으로 스승인 사비지가 찾아왔다. 바위절벽을 쳐다보고 꼼짝도 하지않고 삼매에 빠져있는 그를 발견했다. 사비지도 곁에서 꼼짝않고 함께 같이 서 있었다. 이심전심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새 새벽이었다. 주변엔 아무도 없이 혼자였다. 몇일 후 사비지는 마애불을 새기는데 필요한 필요한 도구와 그동안의 일한 댓가인 임금 모아둔 것 그리고 게다가 현장 책임자로서 조금 더 보탠 금일봉을 보내왔다. 비단주머니를 열었다. 편지도 있었다.
“너의 역량을 맘껏 발휘하여 마애불을 조성하거라.”
석굴암 방향을 향해 스승님께 큰절을 세 번 올렸다.
장면6.마애불 작업
이튿날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마친 후 마애불 새기기 작업에 들어갔다. 열암곡 골짜기에는 정 망치질 소리가 온 골짜기를 타고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석굴암 불상보다 귀를 더 키우고 코의 각도를 더 높였다. 하지만 함께 여기까지 산책했던 동료석공들은 아무도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열암곡 방향으로 금족령이 내려진 모양이다. 우리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서역출신 쌍심지만 눈치없이 와서 이런저런 의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석굴암 입구의 금강역사를 맡아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미로수는 얼굴전문가로써 솜씨를 마음껏 발휘했다.
“코를 좀 더 높이는 건 어때?”
1인 작업장에 가끔 들러주는 이국인의 넓은 국제적 안목은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도 서역 중국 그리고 고구려 백제 가야인 등 누구나 좋아하는 모습으로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장면7. 완성 후 탈진
드디어 얼굴을 완성했다. 몸에 옷주름을 굵게 잡았다. 다리부분으로 내려갈 때는 선으로 처리했다. 하사금으로 받은 돈은 아껴서 사용했지만 점점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한 채 작업을 하다보니 기운이 모자랐고 건강마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힘을 다해 연꽃대좌를 선으로 처리하여 겨우겨우 마쳤다. 3년의 작업을 마치고 그 자리에서 탈진하면서 마애불 곁에 누웠다.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새들이 날아와서 날개로 그의 몸을 덮어주고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되던 날 큰 새들이 날아오더니 힘을 합해 미로수를 들고서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날아서 서쪽으로 사라졌다.
장면8.마애불 공양
마애불 앞에는 청살모는 잣을 따와서 바치고 새는 꽃을 물고 와서 올렸으며 고라니는 과일을 다람쥐는 밤을 올렸다. 석굴암 불상을 작업하던 일류석공이 마애불을 조성한 후 열반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아낙네들이 공양물을 내려놓고 기도를 하고 돌아가곤 했다. 특히 서라벌에 와 있던 외지인과 타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 다문화인을 위한 사찰을 겸하면서 삼국통일 후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는 화쟁사찰로서 위상은 날로 높아졌다.
장면9.쌍심지 활약
마애불을 지키는 호법신장 역할을 자청한 것은 서역에서 온 쌍심지다. 괘릉 입구에 있는 무인상도 직접 조각했노라고 늘 자랑했다. 처용도 같은 고향사람이라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미로수가 마애불을 완성하고 승천했다는 소문을 듣고서 석굴암 준공식을 마치자마자 열암곡으로 달려 왔던 것이다.
이후 쌍심지는 금강역사가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시사찰 마애불과 마애불을 찾아 남산 열암곡을 오가는 사람들을 지키는 소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가 올 때면 비를 막았고 바람이 세게 불 때면 바람막이가 되었다. 눈이 올 때면 천막이 되었고 햇볕이 쨍쨍일 때는 그늘막이로 변신했다. 천둥과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찰 때는 밤을 세워 ‘호신진언 옴치림’을 반복하며 외호했다. 제일 감당하기 힘든 것은 지진이었다. 가끔 일어나긴 했지만 쌍심지의 지지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몇 백년동안 수십번 그런 일을 치루었다. 지진이 올 때마다 신통력으로 온몸을 마애불만큼 키워 마애불을 붙잡고 지킨 덕분에 무사히 지나갔다. 그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의 탈진 역시 속도를 더해갔다.
장면10.지진해일
그날 새벽 날씨는 심상치 않았다. 동해바다의 해일이 감포를 거쳐 남산으로 밀려왔다. 바닷물이 밀려 오면서 지반이 약해졌는데 뒤이어 지진이 밀려왔다. 엄청난 강도였다. 미로수의 한 생애와 쌍심지의 몇 생을 바쳐서 새기고 지킨 마애불도 미끄러지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몇번 앞뒤로 흔들리더니 앞으로 서서히 넘어가기 시작했다. 미로수가 얼굴전문 석공인 시절 특히 심혈을 기울인 작품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안돼!”
소리를 치며 거의 반사적으로 얼굴부분에 모든 힘을 다했다. 천천히 천천히 넘어지더니 땅바닥과 5cm의 간격을 두고서 겨우 멈추었다. 해일도 물러가고 지진도 멈추었지만 주변은 엉망진창이었다. 절 건물은 흔적도 없이 떠내려가고 계곡은 절벽이 되면서 산길도 끊어지고 마을도 없어지고 논밭도 진흙에 묻혔다. 사람들의 왕래발길도 그대로 끊어졌다. 그 사이에 몽고란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대동아전쟁 육이오가 지나갔다.
장면12.호법신장
쌍심지는 그 세월동안 남산 열암곡 자락 마애불 곁에서 미로수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훌쩍거리며 천년을 지켰다. 하지만 마애불 얼굴지킴이 노릇 외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애불을 세운다는 것은 내 힘으로는 언감생심이다. 아침마다 마애불의 안부를 묻고 제일 먼저 얼굴을 살피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다. 마애불은 낙엽에 덮히고 흙에 묻히면서 자연석처럼 되어갔다. 아무도 마애불인 것 조차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바위 무더기의 일원으로 바뀌어갔다. 쌍심지의 머리카락도 희어지고 근육질도 빠지면서 어느듯 시골노인네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되었다.
장면11. 3인의 재회
쌍심지는 한숨을 푹푹 쉬며 열암곡을 천천히 거닐며 산책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예사롭지 않는 눈빛을 가진 이들이 계곡을 샅샅이 훑으면서 올라오고 있는게 아닌가. 마애불이 넘어질 무렵 함께 지진과 해일에 떠내려 갔던 인근 사찰의 불상의 머리부분을 발견했다고 좋아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쌍심지는 저 위에 넘어진 마애불이 있다고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작은 목소리를 계속 날렸다. 그리하여 넘어진 마애불 존재가 2007년 가을 온 세상에 알려졌다. 이제사 쌍심지도 할 일을 모두 마친 것이다. 15년 준비작업을 통해 드디어 2023년 열암곡 마애불 제자리 모시기 범국민운동이 일어났다. 이 모습을 보던 미로수와 쌍심지는 손을 맞잡고서 좋아하면서 다시 구름을 타고 날아가 사비지 앞에 이르렀다.
“스승님! 저희들이 왔습니다.” -END-
2023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