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생(餘生)에 대한 작은 소망
오 명 성
해마다 가을이 오면 왜 많은 사람이 정서적 연민에 빠져 계절 앓이를 하게 될까? 라는 물음을 하게 된다. 그 정서적 연민의 소재는 다양한 색깔로 물드는 단풍, 떨어지는 낙엽, 그 낙엽을 나뒹굴게 하는 서늘한 가을바람, 산비탈에 몰래 피어나는 자줏빛 쑥부쟁이 꽃과 구절초의 하얀 꽃무리 등이다. 그리고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낼 만큼 새파란 가을하늘과 너무나도 명징하게 대비되는 빨간색 열매를 맺는 덜꿩나무, 마가목, 낙상홍, 가막살나무들 사이에서 지난여름의 뜨거웠던 열정을 생각하게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소재에 추억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 낙엽 대부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수리, 도토리나무라고 하는 참나무 과의 잎과 느티나무와 소사나무 그리고 밤나무 잎 같은 활엽수들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갈색 계통이 대부분이다. 가끔 화살나무, 벚나무들의 빨간 낙엽, 은행나무, 낙우송 등의 노란색이 첨가되기도 하지만 주종은 갈색 톤이다. 이들 낙엽이 처음에는 갈색이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회색으로 변하고 썩어서 검은 빛깔을 띠면서 부엽토로 돌아간다. 그런 연유로 정서적 연민에 빠지는 계절의 색깔이 갈색, 회색 그리고 검정색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는 갈색, 회색 그리고 검정색을 보면 깊은 사색에 들어 삶의 끝에 다다른 것들에 대한 우울함에 빠지는 것이다. 어느 의류회사의 기본 디자인이 갈색을 주종으로 하면서 회색과 검정색을 약간 첨가한 것은 사람들의 정서적 연민을 잘 이용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봄이 시작이라면 가을은 마무리로 향하는 계절이다. 사람의 삶으로 치면 황혼의 시간이다.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갈 뿐 뒤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지나온 시간의 기억을 품고 살아갈 수는 있다. 그 기억은 참으로 주관적이다. 가족들이 모여 같은 이야기를 나누어도 각자가 기억하는 장면과 감정이 다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사실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 정리한 과거를 안고 살아간다. 세월이 길어질수록 그 기억의 성은 높아지고, 때로는 그것이 고집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게 되고, 그 결과 젊은 세대와의 거리가 멀어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로 들어서고 있다. 이제 노년은 단순히 오래 사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른으로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의 균형이 필요하다. 마음이 건강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홀로 설 수 없고, 몸이 건강해도 마음이 닫혀 있으면 세상과 멀어진다.
“나이를 먹으면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말을 새겨본다. 많이 듣는다는 것은 결국 많이 읽고 배우는 일일 것이다. 독서와 경청은 우리를 주관의 세계에서 객관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그것이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루하루 성실히 걷고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밝게 지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다음 세대에게 짐이 되지 않는 삶일 것이다.
조용히 계절을 따라가듯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낙엽처럼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바라는 여생에 대한 작은 소망이다.
첫댓글
삶의 언저리에서 올리신
진진한 수필이
가슴에 요동쳐 옵니다
회장님..늘 강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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