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야구, 축구 금메달에 취해있는 사이 지구 반대편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불법침공으로 수백명이 죽었다.
그리고 하마스는 잔인하게도 그 장면을 유튜브 등에 공개했다.
초소를 지키던 군인들은 몰살당하고 그 시신은 능욕을 당했으며 수백명의 민간인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남 일이 아니다.
전쟁은 대비를 소홀히 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찾아온다.
북괴가 이미 핵무장을 한 상황에서 재래식 무기만으로 우리 안보는 안심할 수 있을까?
주한미군은 과연 우리를 지켜줄까?
우린 불과 73년전에 전쟁을 겪은 나라다.
북괴와 손잡자는건 아직 너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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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선 지금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분노한 이스라엘 군이 피의 보복을 벌리는 중이다.
한국은 먼 나라의 이야기를 마치 영화관람하듯 보고 있는데, 이는 엄청난 착각이다.
내가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3학년이던 1983년 10월 9일,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꼭 40년전 미얀마에선 전두환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각료들을 노린 북괴의 폭탄테러 사건이 벌어졌다.
1983년은 전두환 집권 3년차로 전세계를 강타한 오일쇼크와 물가상승을 막으려는 미국의 기록적인 금리인상으로 대한민국 역시 엄청난 경제위기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과 경제각료들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온 국민이 함께 고통을 감내할 수 밖에 없다고 결정해 미국처럼 파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고, 공무원들의 임금을 동결하는 한편, 기업들에게도 임금을 올리지 말것을 권고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지만, 후에 이런 고통은 대한민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1982년 까지 2년동안 전국민이 하나돼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 1983년 부터는 경제성장률이 물가상승률을 추월해, 국민들은 돈버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황금기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는 전두환 대통령 집권 초기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달러에 불과했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할 때는 두배가 넘게 폭증해 4000달러 이상을 기록했고, 대한민국 안에 탄탄한 중산층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북괴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원하지 않았다.
전두환과 그 측극들을 한번에 제거함으로써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더 나아가서 적화통일의 기회를 얻고자 했다.
그렇게 진행된 것이 미얀마 아웅산 묘지 폭탄테러 사건이다.
이 때 사망한 대한민국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들이다.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김재익: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 단장
이기욱: 재무부 차관[1]
강인희: 농수산부 차관
김용한: 과학기술처 차관
민병석: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주치의무보좌관
이재관: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공보비서관
이외에도 이분들과 함께 많은 대한민국의 인재들이 희생됐다.
이 분들이 살아계셨다면, 대한민국의 경제는 더욱 든든하게 세워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분들이 살아계셨다면, 대한민국은 좀 더 일찍 세계속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IMF사태 같은 경제위기는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북괴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을 죽였다.
북괴 정권이 그 후에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했던가?
북괴 정권이 교체되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것인가?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왜 한국에선 북괴와 손을 잡자는 자들이 이토록 많고, 심지어 대통령들 까지 북괴와 하나되자고 난리였던 것인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에 벌어진 전쟁상황을 다른 나라 얘기처럼 여기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신차려야 한다.
불과 40년 전에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을 몰살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의 목숨을 노리던 북괴는 지금도 대한민국을 위협하며 핵무기를 개발하고, 서울과 수도권을 향해 1만문의 장사정포를 겨누고 있는 중이다.
세계 최고의 방공망이라 칭송받던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은 불과 5천발의 로켓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1950년 6월 25일 처럼 북괴가 기습적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하면 우리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신 못차리고 북괴를 추종하고, 주체사상에 빠져 대한민국의 무릎을 꺾으려 드는 자들에 대해서 인권을 거론과 표현자유를 운운하며 두둔하는 자들이 이토록 많고, 대한민국의 제1야당이 제일 앞장서고 있다는 건 통탄할 일이다.
현 정권이 맘에 안들수 있다.
국민의힘이나 보수주의자들이 못 미더울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대한민국의 안보 문제에 대해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지지해선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살해당해도 입도 뻥긋 못한체 오히려 이를 감추려 했던 대통령,
자유를 찾아 탈북한 청년들을 강제로 북으로 보내 살해당하게 만든 살인자 대통령,
대한민국을 노리는 북괴를 감시할 정찰자산을 철수하고, 경계초소를 허물어 버린 대통령,
북괴의 눈치를 보느라,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했던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은 정말 대한민국 사람이 맞냐는 말이다.
40년 전의 이맘때 미얀마(그 때는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을 기억하며 적어본다.
(최대현ㆍ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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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POSCO창립 55주년을 맞아 함께 생각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 아래 글을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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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3일이다. 이날 朴회장은 검은 상복을 입고 가족과 수행원 약간 명만을 대동하고 국립묘지 朴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향을 사루면서 포스코 2100만 톤의 완공보고를 드렸다. 이 보고는 대단히 뜻이 깊고 역사성 있는 문건이기에 여기에 그 전문을 싣는다.
<각하! 이제 마쳤습니다.>
각하!
불초(不肖)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 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를 드립니다.
포항제철은 ‘빈곤타파(貧困打破)와 경제부흥(經濟復興)’을 위해서는 일관 제철소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각하의 의지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포항, 광양의 양대 제철소에 조강생산 2100만 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大長征)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아무 소리 말고 맡아!'
1967년 9월 어느 날, 영국출장 도중 각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제게 특명(特命)을 내리시던 그 카랑카랑한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그 말씀 한마디에, 25년이란 긴 세월을 철(鐵)에 미쳐, 참으로 용케도 견뎌왔구나 생각하니 솟구치는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형극과도 같은 길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서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일이 없는 34명의 창업요원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선진철강국의 냉대 속에서 국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숨짓기도 했습니다. 터무니없는 모략과 질시와 수모를 받으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각하의 불같은 집념, 그리고 열 세 차례에 걸쳐 건설현장을 찾아주신 지극한 관심과 격려였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포항제철소 4기 완공을 1년여 앞두고 각하께서 졸지에 유명(幽明)을 달리하셨을 때는 '2100만톤 철강생산국'의 꿈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철강입국(鐵鋼立國)'의 유지를 받들어 흔들림 없이 오늘까지 일해 왔습니다. 그 결과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거대 철강기업으로 성장하였으며, 우리나라는 6대 철강대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각하를 모시고 첫 삽을 뜬 이래 지난 4반세기 동안 연 인원 4천만 명이 땀 흘려 이룩한 포항 제철은 이제 세계의 철강업계와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철강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제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필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 순간, 각하에 대한 추모의 정만이 더욱 새로울 뿐입니다.
"임자 뒤에는 내가 있어. 소신껏 밀어 붙여봐"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저를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신 각하의 절대적인 신뢰와 격려를 생각하면서 다만 머리 숙여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각하!
염원하시던 '철강 2000만 톤 생산국'의 완수를 보고 드리는 이 자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던 근영·지만 군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녀분들도 이 자리를 통해 오직 조국근대화만을 생각하시던 각하의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각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더욱 성실하게 살아갈 것이라 믿습니다. 저 또한 옆에서 보살핌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 번 약속드립니다.
각하!
일찍이 각하께서 분부하셨고, 또 다짐드린 대로 저는 이제 대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진정한 경제의 선진화를 이룩하기에는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하면 된다'는 각하께서 불어넣어주신 국민정신의 결집이 절실히 요청되는 어려운 시기입니다. 혼령이라도 계신다면, 불초 박태준이 결코 나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25년 전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잘 사는 나라' 건설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불민한 탓으로, 각하 계신 곳을 자주 찾지 못한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엎드려 바라오며, 삼가 각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안면(安眠)하소서!
1992년 10월 3일
불초(不肖) 태준(泰俊)올림
이 보고서는 지도자의 인격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한번 약속된 수명사항은 몇 십 년이 걸려도 반드시 관철하고야 마는 대장부의 기개, 지도자의 결단에 흔쾌히 따르는 수만 장졸들의 열의와 헌신, 이 모든 것이 응어리진 한 편의의 대서사시이다.
일찍이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선비가 될 수 없노라고 우리의 선조들은 강조했다.
감히 제안한다. 출사표도 의미가 있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청암 박태준의 준공보고를 읽고도 눈물이 없고, 감동이 없으면 그것은 혼이 없는 사람이라고….
함께 노력하여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뜻을 키우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
POSCO 55주년 만세! 대한민국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