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장도습지 버드나무숲
심규한
학교의 학생들과 흑산도를 찾은 것은 마침 흑산도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새로 오신 것이 계기가 되어서였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인 흑산도에 공항이 들어선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시절 토건자본의 이익을 위해 4대강 사업을 무리하게 강행하여 강 생태를 죽인 정부처럼, 윤석열 정부는 국립공원 안에 무리하게 공항 부지 국립공원지역 해제를 하며 공항건설을 강행해 생태파괴에 앞장서고 있다.
그런 흑산도를 찾는 마음이 가벼울 리 없었다. 현지에서 들어보면 막상 흑산도 주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다.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잣밤나무 꽃향기 자욱한 흑산도에 도착해 눈에 띄게 신기했던 것이 울울한 후박나무 잣밤나무 숲과 가마우지와 황로를 비롯해 숲과 물가에 사는 여름철새들이었다. 는 내가 사는 강진에서도 보지 못하던 새였다. 실제로 흑산도에 있는 철새박물관에서는 흑산도가 철새들의 이동정거장으로 중요한 중간기착지이며 봄가을철 다양한 철새들에게 오아시스와 휴게소 기능을 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항이라니.
최근 개봉한 황윤감독의 <수라>도 새만금이 도요새 등 철새들의 중간기착지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되살아나고 있는 수라갯벌을 밀고 들어서려는 군산 신공항이 수많은 생명들을 희생시키며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같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편 이번 흑산도여행의 목적지 중 한 곳은 흑산도 옆의 작은 섬 장도의 산지습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장도습지는 우리나라 도서지역 최초로 2005년 람사르 지정습지로 등록되어 영산강유역환경청의 관리를 받고 있다. 마침 학교 선생님이 예전에 습지조사팀에 참여했던 인맥으로 어렵게 허락을 받아 관리자의 안내를 받으며 습지보호지역 내부를 탐방할 수 있었다.
사람 키보다 큰 시누대와 억새밭을 지나니 넓게 펼쳐진 버드나무 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예전 논이었던 지역이라고 한다. 이곳은 처음엔 숲이었겠지만 논밭으로 개간되어 농사를 짓다가 소방목지로 이용되기도 했다가 방치되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던 장소다. 그런데 습지보호지역이 되고 사람의 접근을 막으니 습지가 자연천이 과정을 밟으면서 점차 육화되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 지나면 이곳도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 과연 생물다양성에 기여하는 습지보호지역 보존을 위해 계속 인위적으로 관리해야 할지, 자연 천이에 맡겨야할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산지습지도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다. 화전이라는 인위적이고 역사적인 맥락 뒤에 진행되는 천이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산지정원을 가꾸듯 천이과정을 막으며 인위적으로 산지습지를 보존해 가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중요한 것은 과정을 지켜보며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버드나무숲에 눈이 가 아래와 같은 시를 섰다.
장도습지 버드나무숲
한때는 절해고도 무릉이어서
태풍에 벼랑만 가팔랐다
세상 누구도 모르는 외길 지게 지고 들어와
돌 쌓고 논밭 일구어 살아낸 사람 있었다
아무것 없어 제비와 살았다
세금도 군역도 전쟁도 문자도 몰랐다
세상을 버린 듯 세상이 버린 듯
무릉인 줄도 모른 채 살았다
반백년 전 노인이 마지막 논물 뺀 뒤
닷 마지기 하늘 논엔 소들이 풀을 뜯었다
어린 버들 물빛 차오르더니
수백 그루가 버들천국 이뤘다 구름 같았다
나무를 심은 사람 없어도 나무는 자라
하늘빛 별빛 바람빛 맞아 살았다
칼새 찾아와 춤추는
잣밤꽃향 그윽한 여전히 무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