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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7 각주 추기 白雲扃(백운경) : 白雲鄕(백운향)과 같은 뜻으로 천재(天帝) 혹은 신선이 사는 곳. 正祖임금이 친히 지으신 <莊陵祭文 장릉제문>에 “去朝雲鄕。거조운향。백운향으로 떠나셨네.”가 있으며, 『莊子 장자』「天地 천지」에 “저 흰 구름 타고 천제(天帝)가 사는 곳에 이른다네” 가 있다.
본문은 사진파일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보내면서 해역요청을 드렸더니 2019.09.21일 답변을 받은 내용입니다.
또한 파란색 원문은 오기를 바로잡아주었고, 해역도 해 주셨기에 모든분들과의 공유를 위하여 공개합니다.
또한 영월문화원으로부터 문화학교 향토사연구반의 수업자료사진 도움받은 것을 같이 올립니다.
수정 : 2020.01.15.15:27 - 1833년을 1893년으로 바로잡았습니다.
091602_김원식(拜鵑亭改建記)-한국학중앙연구원 및 향토사연구반해역본 -원문 해역 병기분.hwp
拜鵑亭改建記-원문 해역 병기분.2020.1.15.수정본.hwp
<拜鵑亭改建記> <배견정개건기>
關東之寧越府(관동지영월부) 관동 영월부는
則我莊陵遜位之地也(칙아장릉손위지지야) 우리 단종이 물러나 있던 곳으로,
人之遊是邦者(인지유시방자) 이 지방을 유람하는 사람들은
皆有俯仰怵惕之感(개유부앙출척지감) 모두 우러러보고 굽어보면 슬픈 감정이 생긴다.
況爲丙子樹節(황위병자수절) 하물며 병자년에 절의를 세우고
其後自靖(기후자정) 그 후에 자정(自靖)한
之諸公後者乎(지제공후자호) 여러 공들의 후손은 어떠하겠는가?
又況以諸公之後爲官於此者乎(우황이제공지후위관어차자호)
또 하물며 여러 공들의 후손으로서 이곳에서 벼슬하는 자는 어떠하겠는가?
是以子規樓之重刱(시이자규루지중창) 이 때문에 자규루(子規樓)를 중창하고
禁夢菴之還構(금몽암지환구) 금몽암(禁夢菴)을 다시 세웠으니,
皆後人寓百世於戱之思也(개후인우백세어희지사야) 모두 후인들의 백세토록 선왕을 잊지 못하는 마음을 되새기는 것이다.
今上癸巳(금상계사) 금상(今上) 계사년(고종30년, 1893년)에
性岳猥以齋郞來(성악외이재랑내) 내가(趙性岳) 외람되이 재랑(齋郞)으로 이곳에 왔는데,
性岳卽漁溪先生貞節公後孫也(성악즉어계선생정절공후손야) 나는 어계(漁溪)선생 정절공(貞節公)의 후손이다.
陵寢院壝(능침원유) 능침(陵寢)과 원유(院壝)를
次第奉審(차제봉심) 차례로 봉심하고
徊徨凄愴(회황처창) 배회하노라니 처창한 마음이 들어
不覺自然下淚(불각자연하루)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줄도 몰랐다.
是豈但爲先祖當日秉執而然哉(시개단위선조당일병집이연재)
이것이 어찌 그저 선조 어계선생이 당시 절의를 지킨 것 때문에 그렇겠는가.
實由乎彛性之所固有也(실유호이성지소고유야) 실로 인간 본성이 본래 가지고 있는 바이기 때문이다.
齋室之南(재실지남) 재실의 남쪽에
有一間弊屋(유일간폐옥) 한 간 무너진 집이 있어서
問之守僕(문지수복) 수복(守僕)에게 물어보니,
其老者言(기노자언) 늙은이는
昔在正廟癸丑(석재정묘계축) ‘옛날 정조임금 계축년에
朴公基正以醉琴軒血孫(박공기정이취금헌혈손) 취금헌(醉琴軒)의 혈손인 박기정(朴基正) 공이
莅是府(리시부) 이 고을에 부임하여
重建拜鵑亭於此云(중건배견정어차운) 배견정을 여기에 중건하였다’고 하였다.
性岳見其將顚(성악견기장전) 성악(性岳)은 건물이 무너지려고 하는 것을 보고는
不忍其自我毁之(불인기자아훼지) 자신이 이 고을에 있을 동안 무너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就謀于大宗伯綏堂閔公(취모우대종백수당민공) 대종백 수당(綏堂) 민공(閔公)에게 가서 상의를 하였더니
閔公曰(민공왈) 민공이 말하기를,
子之欲改建(자지욕개건) “그대가 개건(改建)을 하려는 것이
卽朴公重建之義也(즉박공중건지의야) 바로 박기정 공이 중건한 뜻이다.
余當爲子成美(여당위자성미) 내가 당연히 그대를 위해 성미(成美)하도록 하겠다.”
因劃役費以助之(인획역비이조지) 고 하고는 용역비에 대한 계획을 세워 도와주시고
性岳亦辦若干物以營之(성악역판야간물이영지) 성악 역시 약간의 재물을 마련하여 집을 지었는데,
材則取風落木(재칙취풍락목) 재목은 풍락목(風落木)으로 하고
瓦則新備(와칙신비) 기와는 새로 준비하였다.
始於十月十八日(시어십월십팔일) 10월 16일 시작하여
訖於十一月二十三日(흘어십일월이십삼일) 11월 23일 공사를 마쳤는데
翬飛鳥革奐焉改觀(휘비조혁환언개관) 새가 날개를 편 듯 훌륭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於是乎 前人之跡(어시호 전인지적) 그리하여 전인(前人)의 자취는 정자와 함께 새로워졌다.
亭與俱新落成之日(정여구신낙성지일) 낙성하는 날
客曰(객왈) 객이 말하기를, 子之此擧(자지차거) “그대의 이 거사는
不愧爲貞節公後(불괴위정절공후) 정절공의 후손이라는 점에 부끄럽지 않으며,
而朴公若有知則必喜其有隔世同志之人也(이박공야유지칙필희기유격세동지지인야)
박공이 만약 이것을 안다면 반드시 시대를 뛰어넘은 동지라는 점에 기뻐할 것이다.”하였다.
性岳曰(성악왈) 이에 성악이 말하기를
然乎 余雖有志(연호 여수유지) “그런 것일까요! 내가 비록 뜻은 있었다 해도
若不遇綬堂公(야불우수당공) 만약 수당공을 만나지 않았다면
則何以遂其志(칙하이수기지) 어찌 그 뜻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各陵之凋弊久矣(각능지조폐구의) 여러 능이 조폐된지 오래되어,
或數百年或百餘年未遑者(혹삭백년혹백여년미황자) 혹은 수백 년, 혹은 백 여 년 동안 손볼 겨를이 없었는데,
綏堂公一日筵稟而矯捄之(수당공일일연품이교구지) 수당공께서 어느 하루 경연에서 임금께 품주함으로서 바르게 고쳐진
寢殿齊舍(침전제사) 침전`재사`
豆篹幃簾燦然一新者(두찬위렴찬연일신자) 두찬`위렴 등이 찬연히 모습을 일신하였으니,
在在相望(재재상망) 그 모습 여러 곳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至於此陵(지어차능) 이 능에 이르러서는
尤致誠力(우치성력) 특별히 힘과 정성을 다해서
位土焉增置(위토언증치) 위토를 마련하고,
是亭焉改建(시정언개건) 이 정을 개건하도록
其志若功(기지야공) 도움을 베풀었으니
可以閱世而不沫矣(가이열세이불말의) 개건에 대한 그 뜻과 공은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如性岳之才疎者(여성악지재소자) 성악처럼 재능이 모자란 자가
得附驥而與有榮焉(득부기이여유영언) 천리마에 붙어서 더불어 영광을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因謂座上諸人曰(인위좌상제인왈) 인하여 자리를 함께한 이르기를
亭之刱於(정지창어) “정(亭)을 창건한 것은
未知在於何時(미지재어하시) 어느 때인지 알 수 없지만,
而其名始著於朴公伊後(이기명시저어박공이후) 정(亭)의 이름은 박공에서부터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將頹者復成於今日(장퇴자복성어금일) 그 후 바야흐로 허물어지려는 것을 오늘 다시 세우게 되었으니
其亦顯晦之有時者歟(기역현회지유시자여) 어쩌면 정(亭)의 성쇠에도(顯晦) 그 또한 때가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後來者若復隨而葺之(후래자야복수이즙지) 후세 사람이 만약 다시금 때맞추어 정을 보수해 간다면,
庶亭之長在(서정지장재) 정(亭)은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니,
而草綠花明之辰風凄月冷之夜(이초록화명지진풍처월냉지야)
그러면 초록의 산하에 환하게 꽃이 핀 아침이나, 바람 쓸쓸히 불고 달빛 차갑게 느껴지는 밤에
聞杜鵑聲於此亭(문두견성어차정) 이곳에서 두견새 울음소리 듣게 된다면,
亦必有拜之者(역필유배지자) 또한 반드시 두 손 모아 절 올리는 사람 있을 것입니다.”
百年重建 拜鵑亭(백년중건 배견정) 배견정을 중건한지 백년 세월 흘렀는데
錦水刀山 繞檻靑(금수도산 요함청) 금수도산은 함청을 맴돌아 흐르누나.
臣是吾東 貞節後丹衷欲訴白雲扃(신시오동 정절후단충욕소백운경)
신은 우리 조선국의 정절공 후손으로 마음 속 단충(丹衷)을 백운경에 호소하고 싶다네.
癸巳 仲冬 寢令 趙性岳(계사 중동 침령 조성악) 계사(1893)년 동짓달에 침령 조성악
[용어`각주 설명]
병자년 : 세조(世祖) 2년(1456) 6월에 성삼문(成三問)ㆍ박팽년(朴彭年)ㆍ이개(李塏)ㆍ하위지(河緯之)ㆍ유성원(柳誠源) 등이 세조를 제거하려다 성균 사예(成均司藝) 김질(金礩)의 밀고로 사전에 발각되었고, 단종이 그 일에 참여해 알았다 하여 그를 영월(寧越)로 옮겼다.
자정(自靖) : 의리(義理)에 맞게 처신하여 편안하게 자신의 분수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후세에는 은둔하여 지조를 지킴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사용하였다.
재랑(齋郞) : 묘(廟)ㆍ사(社)ㆍ전(殿)ㆍ궁(宮)ㆍ능(陵)의 참봉을 두루 이르는 말이다.
수당(綏堂) 민공(閔公) : 민영달(閔泳達.). 한말의 문신. 1892년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형조판서·예조판서·좌참찬 등을 역임했다.
風落木 (풍락목) : 바람에 의(依)해 꺽어지거나 저절로 죽은 나무
寢殿 (침전) : 정자각(丁字閣). 임금의 침방(寢房)이 있는 집
성미(成美) : 《논어》 안연(顔淵)편에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남의 아름다운 일을 도와서 완성한다.〔君子成人之美〕”고 하였다.
顯晦 (현회) : 세상(世上)에 알려지는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현달함과 은둔함
是吾東(시오동) : 우리 조선국의, 우리나라의.
삼한이 어드멘가 여기가 우리나라네 / 三韓何處是吾東-용담집 제2권 / 시(詩) 양오의 시에 차운하다 8수〔次養吾 八首〕.
우리나라 백성이 가장 슬퍼하는구나 / 最是吾東赤子哀-용주유고 제4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북쪽의 소식을 듣고〔聞北報〕
丹衷(단충) 丹誠(단성) : 속에서 우러나는 뜨거운 정성(精誠). 거짓이 없는 참된 정성(精誠)
白雲扃(백운경) : 白雲鄕(백운향)과 같은 뜻으로 천재(天帝) 혹은 신선이 사는 곳. 正祖임금이 친히 지으신 <莊陵祭文 장릉제문>에 “去朝雲鄕。거조운향。백운향으로 떠나셨네.”가 있으며, 『莊子 장자』「天地 천지」에 “저 흰 구름 타고 천제(天帝)가 사는 곳에 이른다네”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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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문화원 문화학교 향토사연구반 수업자료<영월문화원 자료 제공>
*사진파일 속에 해역 문장을 옮긴 것
배견정개건기/조성악
관동의 영월부는 우리 단종께서 손위하여 계셨던 곳이다.
이 고을을 다녀가는 사람이면 모두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르며 두렵고 떨리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하물며 병자(세조2년 1456)에 대절을 수립한 사육신의 후손이거나 살아서 스스로 절의를 다한 생육신 제공의 후손된 자라면 그 느낌이 어떠할 것이며, 게다가 황자 제공의 후손된 자로서 이곳 영월고을에서 벼슬을 하는 자라면 그 감회 또한 어떠하겠는가!
이런 때문에 *연유로 자규루가 새롭게 세워진 것이고, 금몽암이 다시 지어지게 되었으니, 여기에는 모두 후세 사람이 백년세월 동안 ‘슬퍼하며 아파했던 사념’들이 기탁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 임금님 계사(고종 30년 1893)에 성악은 외람되게 재량으로 이곳에 왔으며, 성악은 곧 선생 정절공의 후손이다.
능침`서원`제단을 차례로 봉심하고, 서성이면서 처량하고 슬픈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눈물을 흘리게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다만 선조 당일에 절의를 다했던 그 일 때문 만이라 하겠는가!
이는 실로 하늘에서 타고난 떳떳한 성품의 고유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재실 남쪽으로 한 칸의 낡은 집이 있기로, 수복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 중 나이든 사람의 말에 “예전 정조임금 계축(정조17년 1793)에 박기정 공이 취금헌의 혈손으로 이곳 영월부에 부임해 와서 여기에 배견정을 중건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성악은 그 폐옥이 바야흐로 쓰러질 것 같았기로 본인이 있는 동안에 그것이 허물어지는 것을 차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이에 예조판서 수당 민공에게 의논드렸더니, 민공께서 이르시기를 “그대가 개건하고자 하는 뜻은 곧 박공이 중건했던 때의 의리라 할 것이다.
내 마땅히 그대를 도와 일이 성사되도록 하겠노라“라고 하셨다.
이리하여 공여비를 쪼개어 주시어 개건을 도우셨으며, 성악 또한 약간의 물자를 마련해서 공역을 추진해갔다.
재목은 풍락목에서 취했고, 기와는 새롭게 갖추었으며, 공역은 10월 16일 시작해서 11월 23일에 마쳤으니, 새가 나래를 펴고 훨훨 나는 듯 환연하게 모습을 바꾸었다.
이리하여 앞 사람의 발자취와 정자는 모두 더불어 새롭게 되었다.
낙성일에 손님이 이르기를 “그대가 행한 이번 일은 정절공의 후손으로 부끄러움이 없으니, 박공이 만약 이 일을 안다면 반드시 그가 뜻을 함께하는 격세의 동지를 만났노라고 기뻐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성악이 말하기를 “그런 것일까요! 내가 비록 뜻은 있었다 해도 만약 수당공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찌 그 듯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 능이 조폐된지 오래되어, 혹은 수백 년, 혹은 백 여 년 동안 손볼 겨를이 없었는데, 수당공께서 어느 하루 경연에서 임금께 품주함으로서 바르게 고쳐진 침전`재사`두찬`위렴 등이 찬연히 모습을 일신하였으니, 그 모습 여러 곳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이 능에 이르러서는 특별히 힘과 정성을 다해서 위토를 마련하고, 이 정을 개건하도록 도움을 베풀었으니 개건에 대한 그 듯과 공은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악처럼 재능이 모자란 자가 천리마에 붙어서 더불어 영광을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하여 자리를 함께한 이르기를 “정을 창건한 것은 어느 때인지 알 수 없지만, 정의 이름은 박공에서부터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후 바야흐로 허물어지려는 것을 오늘 다시 세우게 되었으니 어쩌면 정의 성쇠에도 그 또한 때가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후세 사람이 만약 다시금 때맞추어 정을 보수해 간다면, 정은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니, 그러면 초록의 산하에 환하게 꽃이 핀 아침이나, 바람 쓸쓸히 불고 달빛 차갑게 느껴지는 밤에 이곳에서 두견새 울음소리 듣게 된다면, 또한 반드시 두 손 모아 절 올리는 사람 있을 것입니다.
배견정을 중건한지 백년 세월 흘렀는데 금수도산은 함청을 맴돌아 흐르누나. 신은 우리 조선국의 정절공 후손으로 마음 속 단충(丹衷)을 백운경에 호소하고 싶다네.“
계사(1893) 중동(仲冬) 침령 조성악
*배견정 개건공사 기간은 1893년 10월 16일 시작해서 11월 23일에 마쳤다(약 37일)
*동짓달 = 음력 11월
*중동(仲冬)= 겨울의 한창 추울 때. 곧 음력 십일월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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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생많으 셨어요
자료 공유 해 주어서 도움 많이 받고 갑니다
대단하십니다,,열공~~!!!
김원식 선생님,
저도 잘 배우고 복사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