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바이블칼리지 실천신학
과제발표자: 야간반 신성식
제목: 정말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바라십니까?
본문: 마6:9-10 /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하나 하나 내 삶과 연결하여 기도하곤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라이 임하옵시며”를 가지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물어보셨습니다. “넌 진짜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길 원하는 거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천국에 가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당연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께서는 다시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은 누가 다스리는거니?” 저는 “당연히 하나님이시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는 “내가 볼 때 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구나. 지금 너의 삶을 주관하는 자는 대부분의 경우에 내가 아닌 너이지 않니? 네가 주인인 너의 마음에 내 나라가 임할 수는 없구나.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롬10:10)을 굳게 붙잡고 살았던 저는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엇인가 와장창 깨지고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난 아직 멀었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구나…
우리는 우리의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있어 우리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결정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미 다 정해 놓고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도움만 주시고 내 삶의 의사 결정에 끼어 드는 것은 삼가해 주시길 바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고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고 밝히 말씀하십니다.
마7:21-23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실로 두렵고 살 떨리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령 내가 복음을 주제로 수 천, 수 만명에게 심금을 울리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여 산 사람이 넘어지고 죽은 자가 일어난다 할 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였다는 말을 듣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 그리고 불법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나라와 관련하여 분명한 사실은 통치권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하셨습니다. ‘그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의 시작은 내 마음 가운데, 내 삶의 통치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 모두를 안내함으로써 그 큰 비밀을 열어 밝히 보여 줍니다.
갈 2: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은 감미로운 은혜에 잠겨 읽기 보다는 통곡하며 두려움으로 떨며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신앙의 ‘대적’과 ‘견고한 진’은 이슬람과 독재정권을 포함하여 저 믿지 않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 중에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 각자의 마음 한 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의 자아와 우리의 생각이 가장 무너뜨리기 어렵고, 사로잡아 복종케 하기 가장 어려운 견고한 진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믿음이 있다 하지만 삶과 행동으로는 하나님의 통치를 전혀 원치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 안에는 나와 성령님의 두 주인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과 생명의 성령의 법이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켜 안식할 수 없게 됩니다. 두 주인 중에 하나는 나가야 만이 나라가 안정됩니다.
둘째로, 그러면 통치권을 드리는 것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다름이 아닌 순종이요 복종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죄의 근본에는 바로 이 불순종과, 판단과 심판의 자리, 즉 통치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모세가 므리바 물가에서 범죄하여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 순종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순종치 아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히3:17-18 /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아,,, 우리 중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위대한 사도 바울도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고전9:27 /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신 것이 정말이지 천만 다행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를 향한 순종과 복종이 온전히 될 때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고후10:5-6 /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나의 삶의 통치권을 내가 움켜쥐고 놓지 않고 있으면 자아가 주인된 나로부터 육체의 일들이 현저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의 삶의 통치권을 하나님께 드리고, 성령을 좇아 순종하면 성령의 열매로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풍성하게 드러나게 되고,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는 것을 바울은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듭난다는 것은 죽음을 한 번 거쳐야 함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서 통치권자가 누구인지 분명히하여 내 자아는 죽고, 성령으로는 거듭나서 그 성령님을 좇아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이미 들어가 안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2010. 5. 25.
광주바이블칼리지 야간반 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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