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의 우수작품상|
이달의 우수작품상 선정 발표
1월의 우수작품상 선정 결과를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수상 작품 동시 부문: 거미 (이창건 작, 시와동화 가을호) 동화 부문: 가락지빵 (문영숙 작, 어린이와 문학 10월호)
*심사위원
예심위원: 신현배, 송재진, 윤삼현, 함영연, 길지연, 박민호 본심위원: 김원석, 권영세, 박상재, 임신행
*시상 내용: 상패와 기념품 *시상식: 2013년 정기총회 시
*심사 경위 1월 우수작품상 역시 운영 규정을 준수하였다. 이 달에는 <월간문학 10월호>,
<월간문학 11월호>, <월간문학 12월호>, <시와동화 가을호>, <새싹문학 가을호>,
<아동문예 9, 10월호>, <어린이와 문학 10월호>, <협회보 70호>에 실린 회원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하였다. 지난 2011년 11월, 12월에는 해당 작품 수의 부족과 연말 모임 등
일정상 어려움으로 이월 되어 작품 수가 평소보다 많았다.
예심을 통해 본심 추천 작품은 동시 4편, 동화 5편으로 예심 심사위원들의 추천이 집중되었다. 1월 역시 협회 총회와 설연휴로 심사 일정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이 있다.
원활한 심사 진행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문예지에 발표되고 있는
회원들의 작품을 최대한 살펴 심사 대상 작품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겠다.
*1월의 우수작품상 심사평-동시 부문
건강한 주제로 시 읽는 맛을 느끼게 하는 동시
근래 들어 지나치게 감각적인 언어 위주로 시를 형상화한 동시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음을 본다. 시는 언어를 가장 빛나고 돋보이게 하는 문학 장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시인을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하는가 보다. 그러나 시를 읽고 난 뒤에 별다른 여운이 없다면 자칫 하나의 말놀음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해 본다. 본심에 올라온 네 편의 동시는 앞에서 거론한 것과는 달리 모두 주제가 건강하여 시를
읽는 맛을 느끼게 하는 것과 아울러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한다. 이는 시를 읽은
뒤의 여운이 계속 마음을 울려주기 때문이다. 네 편 모두 나름대로 시적 형상화에 있어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시적 표현이 서로 다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개별 작품이 가진 차별성을
분별할 수 있어 큰 다행이었다. 한편을 선정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꼼꼼히 읽어 보니, 네 편의 동시 중에도 다소 진부한 소재를 다룬 것도 있고, 다소 관념적인 것도 있었다. 그리고 간결성을 유지하려다 보니
마무리 처리가 불안정한 것도 있었다. 네 편 모두 이달의 우수작품으로 뽑아도 별 손색이
없겠으나, 굳이 한 편을 선택한다면, 이창건 시인의 <거미>를 뽑는 데 심사위원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동시 <거미>에는 시인의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시적 목소리가 시를 읽고 난 다음에도 여운이 쉬 끊어지지 않는다. 이는 시 속에 인간 삶의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한 메시지의 중심이 되는 시적 배경 설정도 이 시를 뽑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 심사위원 : 김원석, 권영세
*1월의 우수작품상 심사평-동화 부문
동화를 동화답게 생산하려는 치열한 작가 정신
한국아동문학인협회가 매월 발표되는 동화, 동시, 동극 중 우수 작품을 뽑아 시상을 하는 제도에 우선 칭찬의 뜻을 표한다. 그 까닭은 훌륭한 동화를 생산하려는 의욕이 발표되는
작품을 만날 때마다 도드라져 있었다. 이번 달에 집행부에서 예심을 거쳐 넘겨 받은 작품은 <은하수>(박미경 / 시와동화 가을 호), <가락지 빵>(문영숙 / 어린이와문학 10월호), <비밀귀신>(장수민 / 열린아동문학) , <들소 사냥을 가고 싶어>(이희곤 / 열린아동문학), <죽다가 살아난 어느 대나무 이야기>
(송재찬 / 어린이책이야기 가을호) 등이었다, 다섯 편의 동화 모두가 우수해 시상해도 좋을 작품들이었다. 지면 관계도 있지만 같은
작가로 이러쿵저러쿵 언급하는 것은 결례다 싶어 생략하고, 이달의 우수작품으로 뽑은
문영숙 작가의 <가락지 빵>을 선정한 이유를 밝힌다. <가락지 빵>은 식량난으로 허덕이는 북한의 실상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작금에 돌려
놓을 수 없는 소재와 현장감이 작품의 특이성을 잘 살렸다 하겠다.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뛰어나고 인물의 성격이 잘 부각되었으며 사투리를 살려 내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이 었다. 척박한 산밭에 강냉이 농사를 짓지만 거름 부족으로 흉작이 들자 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 자기네 경작지에 가서 용변을 보게 하려는 오빠 기태와 여동생 기옥이가 그려내는
삽화가 우리의 농경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삽화가 설득력 있게 그려져 있다. 어렵사리 탈북한 어머니가 남한에 정착하여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옷가지와 돈을 보내주는 기태
엄마의 모성! 그 돈으로 장에 가서 가락지 빵을 사서 손자들에게 몰래 먹이는 할머니, 아내를 찾아 탈북하려는 남편, 강변에서 동생 기옥을 보호하기 위한 기태의 에필로그 연극은 사뭇 감동을 준다. 북한의 실정이 접근하기 어려운 여건을 물리고 과감하게 동화(소년소설)를 동화답게
다루려는 작가의 패기와 작가적인 기량을 높이 사 <가락지 빵>을 이달의 우수작품으로 뽑는 데 뜻을 모았다. 이는 어린이를 지극히 사랑하는 순연한 작가의 품성이요, 우리 모두 손 잡아 주고 돌보아야 할 혹한 속의 어린이들의 곤곤한 삶이 아니겠는가! -심사위원 : 임신행, 박상재.
* 1월의 우수작품상
동시|이창건
거미
이창건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들 내 가느다란 줄에 매달아 놓을까 봐 피었다 지는 꽃잎도 붙잡아 놓을까 봐 가볍게 부딪혀도 부서지는 것들 흩어지는 것들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수상 소감
죽비를 사랑으로 받겠습니다 제가 늘 보아 오고 들어오고 겪어 오는 것들 그리고 쓰는 시詩들, 그 일상적인 시들에
권태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루할 때가 있습니다. 그 권태와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가끔 새로움을 찾곤 합니다. 그 새로움을 저는 시에서 사물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서 찾고 있습니다. 제가 시에 사용하는 사물에게 새로운 색깔을 칠해 보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면서 이미지를 바꾸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시의 화장花粧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물의 민얼굴을 되살려 거기에 지금까지 입혀졌던 화장을 지우고 새로운 화장을 시키는 것입니다. 「거미」 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거미는 포식자라는 강한 이미지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포식자는 음모를 꾸미고 횡포를 부리고 권력을 부려서라도, 그래서 약자들이 꼼짝없이 잡아먹히고
마는 상황을 연출합니다. 포식자에게 사랑은 없는 걸까! 검은 거미의 얼굴에 분홍빛 사랑의 분을 두드려 보았습니다. 신에게 사랑이 없으면 설자리를 잃듯이 시도 사랑을 잃으면
설자리를 잃습니다. 고맙습니다. 죽비를 사랑으로 받겠습니다.
*약력 1951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으며, 1981년 ≪한국아동문학≫에「어머니」추천과 1982년 ≪아동문예신인상≫에「첫 나비」외 4 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어효선 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동시집으로 『풀씨를 위해』, 『소년과 연』,『소망』,『씨앗』등이 있다. 현재 서울 예일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1월의 우수작품상
동화/문영숙
가락지빵
기태가 땔나무를 주워 지게에 지고 막 일어나려는데 기옥이가 급하게 말했다. "오빠, 쪼매만 기다려. 나 오줌 좀 누고." "어데? 이 산에다 오줌을 눈다고? 아이된다이. 우리 뙈기밭에 가서 눠야지." "급한데? 거기까지 참고 가려면 쌀지도 몰라." "날래날래 말하지 않고 와 이제 말하네? 그래도 참으라우. 그 귀한 거름을 아무데나 버릴 수 없어야. 날래 가자우." 기태는 저 앞에 뙈기밭을 바라보며 기옥이를 재촉했다. 오줌을 싸지 않으려고 다리를 옴쭉 거리며 뛰어가는 동생의 걸음걸이를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간신히 뛰어가던 기옥이가 두 다리를 가운데로 모으고 입을 오므린 채 돌아보며 말했다. "오빠, 아무래도 안 되갔어. 벌건 대낮에 나무하나 없는 뙈기밭에 어드렇게 엉덩이를 내놓고 오줌을 싸란 말이야?" "기옥아, 일순 창피한 게 뭐이 대단하네? 오줌 한 방울이라도 아껴서리 강냉이 한 알갱이라 도 실하게 키워야 하지 않간? 그래야 너나 나나 배를 덜 곯지. 잔말 말고 날래 우리 밭에 가서리 엉뚱한 데로 흐르지 않게 잘 누라우." 센 바람이라도 불어닥치면 휘익 날아갈 것 같은 기옥이가 살도 없는 엉덩이를 샐룩거리며 뙈기밭으로 가더니 밭고랑에 앉자마자 진저리를 쳤다.
기태가 사는 동네 뒷산은 조각보를 이어붙인 것처럼 산꼭대기까지 밭을 만들어 강냉이를
심었다. 아직 강냉이 싹이 나지 않아 산 전체가 벌거벗은 알몸뚱이 같았다. 심은 지 한참이 지난 뙈기밭은 겉흙이 말라 희끄무레 했고, 바로 어제 그제 심은 뙈기밭은 벌건 황토색깔이 어서 자연스레 조각조각 무늬가 생겨났다.
기태가 갓 걸음마를 할 무렵 뙈기밭 언저리에는 나무들이 웬만큼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군인들이 산에 나무들을 베어 강 건너 중국으로 실어 날랐다. 그리고 그 나무 값으로
받아온 강냉이 가루는 군인들 양식으로 먹는다고 했다. 그때부터 기태네도 배급이 끊기고 굶는 일이 잦았다. 아이들은 얼굴에 허연 버짐이 폈고
죽도 제대로 못 먹는 집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다리가 휘거나 등이 굽기도 했다. 어느 날 리당비서가 동네를 돌며 말했다. "장군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우리 인민들에게 토지를 가질 기회를 주셨습네다. 집단농장 이 있는 4부 능선 위로는 누구나 밭을 일구어 각자 량식을 심어 먹을 수 있게 해 주셨습네 다. 그러니까디 부지런히 밭을 일구어 강냉이를 심어 먹으라요. 장군님의 은혜에 모두
감사하면서리 량식을 자급자족하기 바랍네다." 리당비서가 다녀간 뒤로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그러니까디 뭐인가 하면 내가 심은 강냉이는 내 맘대로 먹어도 된다 그말 아이오? 참말로 장군님의 은덕이 하늘보다 높소. 날래 날래 우리 밭을 만들기요. 기태야, 너도 얼른 산에
가자우. 가서 나무뿌리 돌멩이 다 골라내서리 우리 밭을 만들어야 하지비" 그날부터 어른들은 협동농장에서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미며 곡괭이, 낫과 삽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돌멩이를 골라내고 어른들은 나무 뿌리를 파 냈다. 큰나무가 베어 진 후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이 알록달록 꽃을 피우던 산자락은 그렇게 모조리 뙈기밭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 후부터 땔나무도 먼 산에서 해 와야 했다.
눈이 녹기 무섭게 배곯는 인민들의 희망을 가득 안고 심어진 강냉이는 메마른 산밭에서
버짐 핀 아이들처럼 빼빼 마르거나 난장이처럼 키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첫 해는 풀인지 강냉이인지 구분하기도 애매할 정도였다. 정수리까지 땡중머리로 만들어 버린 뙈기밭은
여름 장마에 보기좋게 휩쓸려 버릴 때도 많았다. 그나마 몇 개만이라도 강냉이가 살아남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게다가 살아남은 강냉이들은 강냉이자루를 만들지 못하거나,
자루가 겨우 맺혔어도 이가 다 빠지고 몇 개 남은 노인처럼 띄엄띄엄 알갱이가 붙어 있었다. "비료가 있어야 거름을 주지. 거저 오줌 한 방울이라도 아껴야 한다이. 그거이 가장 귀한
비료니까디 기태 기옥이 새겨 들으라우. 알간?" 사람들은 강 건너 중국의 무성한 옥수수밭을 보며 누가 들을까 봐 쉬쉬하며 투덜댔다.
그런 낌새라도 챘는지 당 간부들은 아예 사람들의 입을 막아 버렸다. "로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요. 강 건너 마을에 옥수수자루는 어른 팔뚝만 하게 큰데 뭣들
한거요? 아이들 손보다도 작지 않습메? 장군님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더욱 분투노력하기요." 그러나 해를 더할수록 강냉이는 더 낮아지고 더 가늘어졌다. 할머니는 땅심이 다해서
그렇다고 했다. 아버지가 다니는 공장에서도 점점 배급량이 줄어들었다. 이밥은커녕 강냉이
죽도 거를 때가 많아 엄마는 뭐든 손에 잡히는 것마다 이고 지고 장마당을 들락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와 아버지 엄마가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더니 그 다음 날부터 엄마가 집안 곳곳을 살피며 대청소를 했다. "어마이? 누구 손님이 오나? 와 갑자기 소제를 하기요?" 기태의 물음에 엄마가 바짝 긴장하는 것 같았다. 그날 밤 기옥이가 잠들기를 기다려 엄마가 기태의 두 손을 잡고 두 눈을 똑바로 맞추더니 크게 숨을 들이쉬고도 한참 뜸을 들인 후에 입을 열었다. "기태 잘 들으라. 어마이가 장사를 나가야 하갔어. 이대로 있다가는 다 굶어 죽게 생겼다이. 네 아바이 배급도 점점 줄어들지, 기옥이는 먹지 못해 비실비실하지. 기태야, 네가 동생 잘 보살피고 할마이하고 아바이 말 잘 들어야 한다이. 어마이가 없어도 잘 해나갈 수 있지?
내 말 알갔네?" 기태는 엄마의 말에 이렇다저렇다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엄마의 결심은 바위덩이보다
더 굳어 보였다. "언제 돌아오기요?" "장사가 잘 되며는 한달쯤 걸릴 거 같다. 그동안 네가 잘 해야 한다이. 알갔지?" 기태는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이튿날 엄마는 아버지가 나가자마자 할머니 두 손을 잡고 눈인사를 하고 기옥이를 끌어안고 한참 있다가 몸을 푼 다음 기태의 두 손을 꼭 잡고 한참동안 놓지 않았다. 그리고는 쫒기는 사람처럼 아랫동네로 쏜살같이 내달았다.
한달 만에 돈을 벌어 돌아온다던 엄마는 어느 덧 삼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아홉 살이었던 기태는 열두 살이 되었고 기옥이가 아홉 살이 되었다. 기태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우는 기옥이를 달래는 일이 가장 버거웠다. 아버지는 점점 술이 늘어갔다. 할머니의 허리는 더 꼬부라지고 밤이면 삭신이 쑤신다며 앓는 소리가 어느 덧 자장가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인 어느 날이었다. 장마당에 나갔던 할머니의 보퉁이에서 가운데가 동그랗게 뚫린 가락지 빵이 나왔다. 기옥이 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기태도 입안에 금세 침이 고였다. "할마이, 먹어도 돼?" 할머니의 고개가 끄덕이기도 전에 기옥이의 입엔 가락지 빵 절반이 벌써 들어간 뒤였다.
기태도 단숨에 침을 꿀꺽 삼키며 설탕가루가 묻은 가락지 빵을 한껏 베어 물었다. 제대로
씹을 겨를도 없이 꿀꺽 삼키고 나서야 이렇게 맛있는 가락지 빵을 어떻게 사왔는지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보퉁이엔 더 신기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언제 먹어 봤는지조차 까마득한 유과에 옷가지들도 보였다. "할마이, 어드렇게 된 일이가? 이거이 무슨 돈을 주고 샀는가?" "기태야, 니 어마이가 돈을 보냈다." "엄마는 왜 안 오고? 언제 오는데?" 기옥이가 가락지 빵을 입에 넣은 채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물었다. "우리 기옥이 맛있는 거 더 사 줄라며는 돈을 더 벌어야 한다 말이다. 그래서 못 온다.
알았네?" 기태는 그만 할머니 말에 꿀맛 같던 가락지 빵이 목에 턱 걸렸다. 그동안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는지 몰랐다. 신경질만 느는 아버지는 점점 무섭기만 했다. 하루하루 아픈 곳만
늘어가는 할머니를 보면 자꾸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기태도 기옥이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엄마가 돌아오면 싶었다. 할머니가 보퉁이를 마저 풀자 기태와 기옥이 그리고 할머니의 옷이 나왔다. 기옥이가 좋아라하고 얼른 옷을 집어 들었다. "아니된다. 날래 이리 내라! 이대로 입으면 큰일난다."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기옥이 손에서 옷을 빼앗았다. "이대로 입으면 안 된다 말이다. 단물을 빼서리 새것 같지 않게 해서리 입어야 한다이. 그리 고 아무한테도 이런 말 하면 안 돼. 알갔네?" "왜? 난 자랑하고 싶은데?" "쉿! 큰일 날 소리. 이 옷도 단물 빠진 다음에 새옷티가 안 나게 해서리 입어야 하고 절대로 남들이 알아서는 아니 된다 말이다. 내말 명심하라." 할머니는 아픈 것도 다 나은 것 같았다. 그날부터 동네에서 아무도 모르게 도둑처럼 할머니 는 며칠 만에 한번씩 이밥을 해서 식구들을 멕였다. 하지만 뙈기밭도 전처럼 가꾸고 남들 앞에선 늘 변함없는 가난뱅이처럼 보이도록 노력했다. 그무렵 아버지가 다니는 일터에도 원료가 없어 공장을 돌리지 못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산 이든 강가든 돌아다니며 돈이 될만한 것들을 주워 모았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장마당엔 줄창 들락거렸다. 이상한 게 또 있었다. 할머니는 항상 보퉁이를 들고 장마당에 나갔다. 그때마다 가락지 빵 도 사오고 유과도 사 왔지만 남들에겐 절대 눈에 띄지 않게 먹였다. 기태는 엄마가 돈을 얼 마나 많이 버는지도 궁금했지만 도대체 어디 있길래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지도 무척 궁금 했다. 기태는 어느 날 기옥이가 잠이 든 다음 할머니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네 어마이는 이 땅에 없어. 강을 건넜단 말이다." "그럼 중국에 갔슴메?" "그래. 조선족 농장에서 일한다 했다. 다행히 후한 주인을 만나서리 밀리지 않고 품삯을 받 는다 한다. 모든 걸 비밀로 해야 하니까디 너이들은 거저 네 어마이가 여기저기 돌아댕기면 서리 장사를 하는 걸로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기옥이 입단속 잘 시키라우. 내 말 알갔디?" 기태는 할머니 말을 듣고 나서부터 가슴이 콩닥거릴 때가 많았다. 강을 건너다가 붙잡혀 교 화소에 잡혀갔다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강을 건너다 총에 맞아 강물 에 빠져 죽었다는 말도 쉬쉬하면서 퍼져 나갔다. 엄마도 언제 붙잡힐지 모르는 탈북자인 셈 이었다. 그런 엄마가 보내주는 돈으로 굶지 않고 살긴 하지만 웬지 사실을 안 뒤부터는 이 밥도 목에 걸릴 때가 많았다. 할머니는 열심히 장마당을 들락거렸다. 남들 눈에 장마당에 가서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쓰 는 줄 알게 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그건 똑같은 물건을 가지고 장마당에 갔다가 도로 가져 오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기태는 점점 초조해서 그런지 잠이 안 올 때가 많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믐밤이었다. 가 락지 빵을 너무 먹은 탓인지 목이 달쳐서 물을 먹으러 정지문을 열었는데 할머니 방에서 소 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정도 넘었는데 왜 여직 안 잘까 싶어 살금살금 다가가 방문에 귀를 댔다. 아버지의 말소리가 똑똑하게 들렸다. "기태 어마이래 사람을 보낸다 했슴메. 더 이상 이 땅에서 속아 살 수 없소. 어마이가 지금 처럼 애들 건사하고 조금만 참아내라요. 기태 어마이 만나서리 애들까지 다 데려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보갔시오. 무엇보다 기태하고 기옥이래 이 지옥에서 더 살게 해서는 아니된다 말이오. 인민을 위한다면서리 굶어 죽이는 세상이 아님메. 내래 기태 어마이가 남쪽에 가지 않았다면 끝까지 속고 살 뻔했슴메. 어마이도 그렇고 애들도 제대로 된 세상에서 살아 봐야 하디 않갔슴메.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모르갔소. 기태 어마이가 번 돈으로 브로커를 샀 다합네다. 브로커와 선이 닿으면 바삐 이곳을 떠야 합네다." "애비야, 나는 가슴이 떨려서리 숨도 제대로 못 쉬갔다." "어마이. 상게처럼 그대로 살면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애들 단속 잘 하고서리 이대로 살고 계시란 말입네다." 기태는 가슴에서 홍두깨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감히 이 나라를 지옥이라 하다니. 그럼 엄마가 조선족 농장에 있는 게 아니라 남조선에 있다는 말이 아닐까. 거지가 우글거리고 미 제 앞잡이 밑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남조선에 엄마가 갔단 말인가. 거기서 돈을 벌 어 보내고 옷도 보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처음 보낸 옷에 글씨 자욱이 지워진 게 이상하 긴 했다. 새 옷을 단물 빠지게 빨아서 입히는 것도 지금 생각하니 수상했다. 중국옷이면 그 대로 입혀도 상관없었다. 기태는 손발이 덜덜 떨렸다. 기태는 도둑처럼 자기 방으로 돌아왔 다. 아버진 언제 떠날까. 아버지도 엄마에게 간다. 그리고 식구들 모두 데려 갈 거란 말도 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기태는 강가에 살아서 알건 대충 알았다. 장군님이 말하는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란 것도. 그리고 강 건너 중국에 하루가 다르게 건물들이 일어서는 것도. 그에 비해 장군님의 나라는 점점 가난한 나라가 되어 간다는 것도. 기태는 엄마의 안전을 빌어야 했다. 그래야 굶어죽 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사흘 후에 아버지도 떠났다. 엄마가 떠날 때처럼 아버지는 기태에게 장사를 다니기 때문에 한 달 후쯤 돌아온다고 했다. 하지만 기태는 그게 핑계라는 걸 알고 모르는 척 했다. 아니 기옥이가 알까봐 더 감춰야 했다. "기태야, 산에 가서리 나뭇짐 해다 놓고 다른 애들처럼 강변에 가서 빈병이라도 주워야 한 다이. 그리고 기옥이한테 다른 사람 앞에선 배고픈 척 하라고 꼭 꼭 챙겨야 쓴다이. 꼭 그 렇게 해야 한다." 기태는 할머니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가 떠나고 닷새 후였다. 장마당에 다녀온 할 머니의 얼굴이 흑빛이었다. 걸음걸이도 비틀거렸다. "할마이, 왜 그래? 무스그 일인데?" "기태야, 장사 떠난 니 아바이가 교화소로 붙잡혀 갔단다. 기태야, 맘 단단히 먹고 내 말 알 갔디? 네 아바이 때가 되면 돌아온다. 암 돌아오고말고. 그러니까네 기태 니가 이자부터 이 집안의 기둥이라 말이다. 밥은 굶지 않을 거이니까네 내 말 알겠지비?" 할머니는 한동안 그릇들을 들었나 놨다 하고 집 안팎을 들락날락 했다. 이제 기태가 할머니 를 안심시켜야 했다. "할마이, 동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갔어? 안심하라요. 제가 있잖습네까?" 할머니가 기태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기태는 기옥이가 뭔가 알게 될까 신경이 쓰 였다. "기옥아, 강가에 가자. 오늘은 뭘 주울까? 어제 꿈을 잘 꿨으니까디 금덩이를 주울지도 몰 라." 기태는 기옥이와 함께 망태기를 들고 강변으로 나갔다. 감시하는 군인들이 강가에서 강 건 너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였다. 커다란 유람버스가 강을 따라 혜산시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 다. "오빠, 저 유람버스는 새 거다. 크기도 숱해 크지? 나도 저런 유람버스 타보고 싶다." 기옥이가 유람버스를 보며 말했다. 바로 그때였다. 언제 다가왔는지 군인 한명이 기옥이를 쏘아보며 물었다. "이 간나이 옷에서 구린내가 나는 것 같은데? 낙자 없는 남조선 냄새가 난다 말이야." 기태는 가슴이 철렁했다. 얼른 발을 헛딛는 척하고 자갈돌 위에 미끄러지며 옷에 흙물을 묻 혔다. 그리고 일어서자마자 기옥이의 뺨때기를 올려부쳤다. 그리고 목에 힘줄이 툭 불거져 나오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이 등신 촌바우 에미나이야! 저건 남조선에서 온 거짓유람차야! 속아넘어가면 안돼!" 갑자기 기태에게 뺨을 맞은 기옥이가 엉엉 울었다. "오빠, 와 때려! 와 때리느냔 말야!" "장군님의 은혜를 잠시라도 잊는 에미나이는 맞아야 해. 너처럼." 기태는 군인들이 모두 듣도록 더 악을 악을 썼다. "남조선 새끼들아? 뭘 쳐다보간? 날래 꺼지라우. 거지들이 득시글거리는데 너네 유세하느라 고 거짓 유람하는 거 다 안다, 다 알아!" 기태는 강바닥에서 자갈돌을 집어 미친듯이 유람버스를 향해 던졌다. 돌들은 강을 건너가지 못하고 유람버스 바로 앞에서 강물에 퐁 퐁 빠졌다. 기태는 강물에 허망하게 빠지는 돌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잡혀간 아버지처럼 느껴졌다. 군인들이 박수를 치며 기태를 응원했다. 기태는 더 기세좋게 돌을 던졌다. 유람버스에 탄 사람들이 창문에 카메라를 대고 기태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그래요. 맘대로 찍으란 말이오. 남조선에 가서 제발 내 엄마에게 그 사진을 보여 주라요.' 기태는 속울음을 삼켰다. 이제 의심받지 않으려면 더 목청을 높여야 했다. "기옥아! 너도 돌을 던져! 저 남조선 새끼들을 박살내잔 말야. 야, 이 썅 남조선 새끼들아! 이리 건너 오라우. 보기좋게 꼴통을 날려 줄 테니까니. 날래 꺼지라고! 날래 꺼지란 말이 야!" 기태는 소리치면 칠수록 점점 억이 막혀 울음소리가 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강을 건너 저 유람버스에 올라타고 싶었다. 그래서 곧장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수상 소감
북한의 어린이들을 이해하는 데 한발 다가서는 계기가 되기를
2011년 5월 12일부터 5박6일의 일정으로 한국소설가협회 산하 통일 포럼의 한 멤버로 압 록강 탐사를 다녀왔습니다. 신의주에서 압록강 발원지를 향해 백두산까지 압록강을 따라 이 어지는 대장정에 가장 가슴 아픈 눈길이 북한의 민둥산에 일군 뙈기밭이었습니다.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4부 능선 이하는 집단농장이지만 4부 능선 위로는 개인 경작지 를 허용했다고 합니다. 이에 북한 주민들은 옥수수 한 알갱이라도 더 심어 식량난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급경사의 산 정상까지 모두 밭을 일궈 온 산이 마치 껍질을 갓 벗겨낸 것처럼 처참했습니다. 뙈기밭이 홍수에 휩쓸려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 흔적도 보았습니다. 5월 중순인데도 북쪽이라서 아직 새싹이 돋아나지 않은 밭들은 씨앗을 심은 날짜에 따라 흙의 건조가 각기 달라 진한, 혹은 옅은 조각보를 이어붙인 형상이었습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강 건너 북한 쪽엔 어디를 가나 전부 민둥산에 조각보 뙈기밭이었고, 우리가 달리는 탐사 길의 중국 쪽엔 나무가 무성한 걸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 다. 북한주민들은 실제로 비료가 없어 출근길에 분뇨 봉지를 들고 출근했다가 퇴근할 때 자 기 밭에 거름을 하기 위해 집으로 가져온다고 합니다. <가락지 빵>은 연변에 사는 조선족 가이드를 통해 북한에서 상당수의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 있고 그들이 돈을 벌어 비공식 루트를 통해서 북의 가족에게로 보낸다는 말을 듣고, 또 압록강 탐사를 하면서 보고 느낀 정황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이 글이 북한의 어린이들을 이해하는 데 한발 다가서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며 부족한 글 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약력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으며 제2회 푸른문학상, 제6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했다. 지 은 책으로는 <무덤속의 그림>, <아기가 된 할아버지>, <궁녀 학이>, <에네껜 아이들>, <검 은 바다>, <색동저고리> 등이 있다.
|
첫댓글 유익한 내용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북한을 배경으로 한 작품, 새로운 감동을 줍니다.
좋은 작품 미리 읽을 수 있는 기회여서 유익했습니다.오하룡
새소식, 유익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경남펜문학 총회자리에서 뵙고 반가왔습니다. 많이 건강해지신 것 같아서 뵙기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수고하셨네요. 또 큰일을 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