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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루의 도봉산 산행기
북한산과 함께 서울의 북쪽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도봉산은 볼 적마다 "청산은 먹이 없어도 천년의 병풍(그림)을 그려(靑
山不墨千年屛)낸다." 는 종경(宗鏡) 선시(禪詩)를 생각케 하는 산이다. 서울 사람은 누구나 자고 나면 보는 산이지만 언듯 눈길
스쳐만 봐도 머리 속에 그 빼어난 이미지가 남는 산, 살펴 보면 산 위에 또다른 바위산 솟은 산상암산(山上岩山)이다. 거대한
화강암 암봉이라 오를 수 없을 듯해도, 가까이 다가가면 그 속살에 감추어 놓은 오솔길 열어 주고, 올라가 바라보면 암봉 위에
또 더 높은 암봉들이 겹치듯 솟아 있는 봉상봉(峰上峰)인 산이다. 2015년 2월 14일 유산풍류 회원들이 모여, 2월 정기 산행지
로 이 산을 찾는다.
휴일 아침 다락원 터엔 도봉산을 찾는 사람들로 인산 인해를 이룬다. 건너편 도봉산역에 열차가 들어 올 때마다 수 많은 인파
가 밀물처럼 건너오고, 끼리끼리의 무리들이 만나 한바탕 소란스런 아침 인사를 나누고는 또 썰물처럼 흩어진다. 옛날 이곳은
건어물 시전(市廛)으로 성시(成市)를 이루던 곳, 세기를 달리한 오늘날은 등산객을 상대로 한 음식점들이 다시 성시를 이루고
있다. 다락원이란 조선시대 나랏일로 여행하던 관원을 위한 원(院)이 이 곳 안골마을에 있었는데, 그 원이 누대(樓)로 되어 있
었던 데서 유래하여 누원(樓院-다락원)이다. 다락원 터는 조선 후기에 들어 누원이 있던 안골의 동구 밖인 이곳에서 양주 철
원 함흥으로 이어지는 북방상로를 개척한 상단들이 모여들어 대규모 도매상을 하던 누원점(樓院店)들이 있던 터(址)를 일컷는
다.
다락원 터에서 일행과 함께 모여 은석암 능선을 오르는데, 오랫만에 은석암능선 암릉을 타는 기분이 제법 쏠쏠하다. 그리 위험
하지도, 힘이 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남향 길섶의 나목가지에는 벌써 봄기운이 깃들었다. 진달래의 꽃눈이 부풀고 참나무류의
잎눈들이 제법 토실하다. 은석암의 풍경(風磬)과 목탁소리를 뒤로하고 다락원능선을 오르니, 미륵봉과 솔봉의 등 굽은 소나무
들이 줄지어 반기고, 능선 길 막아선 석문은 누구나 읍(揖)을 해야만 지나가게 한다. 회원들이 모여 함께하는 산행이라 포대능
선으로의 등정을 포기하고 만월암을 찾는다.
도봉산은 정상에 신선대를 비롯 자운 만장 선인봉이 주봉군(主峰群)을 이루지만 이 산의 얼굴은 선인봉과 만장봉의 거대한 기
반암 석벽이다. 500m 폭에 높이 200m로 솟은 선인봉과 천길 석벽 한 없이 높다하여 이름한 만장봉(萬丈峰)의 석벽은 장대해
백리 밖에서도 도봉산임을 알게 한다. 만장봉 턱밑을 찾아서 쳐다보니 천 길 그 거대한 화강암벽에 압도되어 현기증이 인다.
만장봉 아래의 물멍진 바위 틈에 만월암(滿月庵)이 있다. 만월암(滿月庵)의 산신각(山神閣)을 지나는데, 눈에 익은 주련(柱聯)
이 눈길을 끌어간다. "千江流水千江月(천강유수천강월) 萬里無雲萬里天(만리무운만리천)" , 당나라 종경(宗鏡) 선사(禪師)의
선시다. "하늘의 달은 하나지만 천개의 강물에 그 달이 뜨고(비추고), 만리 하늘에 구름 없으니 푸른 하늘 만리에 이른다" 는
즉, " 모든 중생의 마음에 부처가 있고, 마음 속 세속의 집착을 걷어내면 맑은 마음의 본성이 돋아난다" 는 시다. 또다른 주련
"일락서산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 은 욕식불조회광처(欲識佛祖回光處)의 대구다. " 인생 무상을 깨우치고 우리들 마음이 왔
던 회광처에 가신 부처님의 진리를 알고 샆다면, 빛나던 해가 서쪽으로 지고난 후 다시 동쪽으로부터 달이 떠오르는 이치를
살피라" 는 게송(揭頌)이다. 필부의 마음을 적시는 경구에 합장으로 읍하고 반 마장 계곡을 내려와 선인봉 석벽을 담으려니,
하늘 오른 석벽은 연무 속 애써 그모습 감추려 한다. 흰구름은 무정하여 바위를 감싼다 - 백운무심포유석(白雲無心抱幽石) -
하더니, 모처럼의 도봉유산에 구름이 훼방질이다. 어쩌면, 만월암 불전에 시주를 안 한 것을 보았다는 듯이-.
도봉서원 앞뜰에서 뒷 일행을 기다리며 개울가 암벽의 마애각석, 고산앙지(高山仰止)를 담는다. 고산앙지란 본시 높은산을 경
경모한다는 뜻인데, 조광조를 기리며 새겼다 전한다. 도봉서원 또한 1573년(선조 6년) 양주목사 김수증이 조광조(趙光祖,1482
~1520)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건립하어 300여 년간 서울과 경기지역 선비들의 교유처가 되었다 한다. 인걸은 가고
없어도 산천은 의구(依舊)하니, 아직도 도봉계곡엔 옛 선비들의 풍류가 메아리치는 듯 하다. 오늘날 도봉산을 찾는 사람 거의
가 옛 도봉마을 동구 밖의 道峰洞門(도봉동문)이 각석된 큰 바위를 지나면서 산행을 시작하고, 한 비퀴 휘 산자락을 돌아 계곡
의 도봉서원을 내려서며 산행을 마친다. 400여 년 전 옛 선비들 또한 그렇게 도봉산을 오르며 각자의 호연지기를 키웠으리라,
한께한 유산풍류 회원들에게 감사하며, 이 산행기를 드린다.
도봉산(道峰山)
▼ 다락원 목마 (樓院店 木馬) - 도봉산 입구 다락원 터에 있는 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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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국립공원 직원들 / 도봉산 입구
▼ 옛 도봉마을 동구 밖, "도봉동문" 각석 바위 / 우암 송시열의 글씨
▼ 은석암 능선 풍경 -1
▼ 다락원 능선 미륵봉과 아래 은석암
▼ 은석암 능선 풍경 - 2
▼ 은석암 능선 풍경 - 3
▼ 은석암 능선 풍경 - 4
▼ 은석암 능선 풍경 - 5
▼ 은석암 능선 풍경 - 6
▼ 다락원능선 풍경 - 1
▼ 다락원능선에서 바라본 도봉산 포대능선과 신선대와 자운.만장. 선인봉
▼ 다락원능선의 곰바위
▼ 다락원능선의 솔바위
▼ 다락원능선에서 본 포대능선과 자운봉 선인봉
▼ 다락원능선 석문(石門)
▼ 다락원능선의 기암 청송
▼ 다락원 암릉 우회 오솔길의 잔설
▼ 도봉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좌로부터)
▼ 만월암 산신각 위의 절송(折松)
▼ 만월암 산신각
▼ 만월암- 1
▼ 만월암 - 2
▼ 만월암 - 3
▼ 기반암 거대하게 솟은 선인봉의과 만장봉
▼ 동쪽을 향해 읍하고 선 만월암의 달맞이 소나무
◀ 도봉서원(道峰書院) ▶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1573년 (선조6년) 양주목사(楊州牧使)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趙光祖:1482~1520)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건립하였다. 이 후, 300여 년간 서울과 경기지역
선비들의 교유처가 되었다.
◀ 도봉계곡 마애각석(磨崖刻石), 고산앙지 ▶
고산앙지(高山仰止)란 "높은 산을 경모하듯 우르러 사모한다" 는 뜻으로 김수증(1624~1701)이
중종 때의 조광조의 학덕을 기리며 새겼다고 전한다. 도봉서원 앞에 있다.
▼ 함께한 유산풍류 회원들
▼ 하산 후 이곳 "자바플랜"에서 일도(一道) 선생이 함께한 유산풍류 회원들께 턱주를 돌렸는데,
주점 주인이 그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도봉산을 찾을 때마다 이곳을 찾아 달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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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도.태중선배님 반갑습니다.
을미년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몽중루의 유산풍류가 국내 제일의 산행지기로서의 모범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