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369]최해(崔瀣)-雨荷(우하)
雨荷 비 오는 날 연잎
(우하)
최해(崔瀣)
貯椒八百斛 후추를 팔백 섬이나 쌓아 두고,
(저초팔백곡)
千載笑其愚 천 년 동안 그 어리석음이 비웃음거리가 되었다네.
(천재소기우)
何如綠玉斗 어찌하여 푸른 옥으로 된 말(됫박)로,
(하여벽옥두)
竟日量明珠 하루 종일 빗방울 같은 구슬을 담았다 쏟고 있느냐?
(경일량명주)
瀣=이슬 기운 해
貯= 쌓을저. 椒 =산초초. 산초나무 ② 후추나무 ③ 고추
斛 =휘곡, 섬.
千載=千年.碧玉= 푸른빛을 띤 옥.
竟日=終日. 明珠= 아름다운 구슬.
貯(쌓을 저) 椒(후추 초) 八(여덟 팔) 百(일백 백) 斛(곡/섬 곡)
千(일천 천) 載(해 재) 笑(웃을 소) 其(그 기) 愚(어리석을 우)
如(같을 여) 何(어찌 하) 綠 (푸를 록) 玉(옥 옥) 斗(말 두)
竟(마칠 경/온종일 경) 日(날 일) 量(셀 량/담을 량) 明(밝을 명) 珠(구슬 주)
雨荷(崔瀣최해, 1287~1340)
貯椒八百斛 千載笑其愚 (저초팔백곡 천재소기우)
산초 팔백 섬을 쌓아두었더니 그 어리석음을 천년 비웃었는데
何如綠玉斗 竟日量明珠 (하여록옥두 경일량명주)
어찌하여 벽옥 한 말을 종일 명주처럼 헤아리는가
원문=동문선 제19권 東文選卷之十九 / 五言絶句
雨荷
貯椒八百斛。千載笑其愚。
何如綠玉斗。竟日量明珠。
牧隱云此誚不廉饒富者
우하(雨荷)-최해(崔瀣)
후추 8백 섬 쌓아 놓았다고 / 貯椒八百斛
천재에 그 어리석음을 웃었네 / 千載笑其愚
녹옥두 푸른 말로 / 何如綠玉斗
진종일 구슬을 되는 건 어떤가 / 竟日量明珠
목은(牧隱)이 말하기를,
“이것은 탐하여 요부(饒富)한 사람을 풍자함이다.” 하였다
[주-D001] 후추 8백 섬 : 당나라 재상(宰相) 원재(元載)가 죽음을 당한 뒤,
가산(家産)을 몰수하니 후추(胡椒)가 8백 섬[斛]이요,
다른 재물도 그렇게 많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68
[작자]=최해(崔瀣, 1287~1340)는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문장가로, 호는 졸옹이다.
그는 충선왕·충숙왕 대에 활동하며 관직에 올라 정치와 문학 양면에서 이름을 떨쳤다.
특히 고전적 수사와 현실 비판을 결합한 시문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사물의 외형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끌어내는 데 뛰어났다.
그의 문학은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현실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욕망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특징을 지닌다.
『동문선』 등에 작품이 전하며,
「우하」와 같은 시에서는 자연을 소재로 삼아 인간의 탐욕을 풍자하고
청렴과 절제의 삶을 강조하는 등 교훈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감상]
이 시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매우 깊은 풍자와 철학을 담고 있다.
기구와 승구에서는 당나라 재상 원재가 후추를 800섬이나 쌓아두었다는
고사를 통해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비판한다.
이러한 탐욕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웃음거리가 될 뿐임을 강조한다.
반면, 전 결구에서는 연잎의 모습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연잎은 빗방울을 구슬처럼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다시 흘려보낸다.
이는 무소유와 자연스러운 순환의 미학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 대비를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은 축적이 아니라 내려놓음이며,
진정한 가치는 소유가 아닌 태도에 있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짧은 네 구절이지만 자연, 역사, 인간 본성을 함께 담은 매우 수준 높은 풍자시이다.
[원재와 후추 이야기]
당나라 중기의 재상 원재(元載, 8세기)는 대종(代宗) 때 권력을 장악하며
재정·인사 전반을 좌우한 실력자였다. 그러나 그는 권세를 이용해 뇌물을 받고
사치를 일삼았고, 특히 귀하고 값비싼 향신료였던
후추(椒)를 무려 팔백 섬(斛)이나 쌓아 두었다는 기록으로 악명이 높다.
당시 후추는 외래 무역품으로 금·비단에 견줄 만큼 값이 비쌌기 때문에,
이 일화는 그의 탐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원재는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환관·외척 세력과 결탁하고 반대파를 억누르며
권력을 공고히 했지만, 점차 전횡과 부정부패가 누적되면서 비판이 커졌다.
결국 대종 말년에 탄핵을 받아 실각했고, 죄가 드러나 처형되었다.
이때 그의 집에서 쌓여 있던 막대한 재물—후추를 비롯한
진귀한 물품과 금은보화는 모두 몰수되었으며,
사치와 탐욕의 전형적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은 이후 문학과 역사서에서 자주 인용되며,
“재물을 끝없이 모아도 결국 화를 부르고 허망하게 사라진다"라는 교훈을 전한다.
최해의 「우하」에서 “貯椒八百斛 千載笑其愚”라고 한 것도
바로 이 일화를 빌려, 탐욕스러운 인간을 풍자하고 무욕(無欲)의 삶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