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연례 행사인 겨울 여행 - 이번에는 매서운 강원도 추위를 피해 따뜻한 동남아시아로 간다는 지금까지의 패턴에서 조금 벗어났다. 새로운 곳을 가자는 옆지기의 주장에 따라 호주와 페루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세 번째 후보인 터키를 가기로 한 것.
터키를 선택한 이유 중에는 비용이 덜 든다는 점도 한몫했는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터키를 여행지로 결정한 후에 터키의 리라화가 급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터키를 가기로 결정할 때(2018년 봄)에는 1리라가 370원 정도 했었는데 여름에 150원 아래로까지 폭락하면서 유럽과 중국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명품 쇼핑객이 터키로 몰리기도 했다. 우리가 여행을 한 시기에는 1리라에 200원에서 210원 사이를 오갔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우리나라 아이엠에프 시대에도 이랬을 걸 생각하면, 터키 사람들한테는 조금 미안하기도)
터키는 옛날에 돌궐이라고 불리며 중국 서북부에서 세력을 떨친 적도 있는 민족인데 중국에 밀려서 중앙아시아 방면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1세기 무렵부터는 강성해진 셀주크터키가 중앙아시와와 이란 시리아는 물론 아프리카와 유럽의 일부까지 지배하게 되었고 셀주크가 침체한 후에는 오스만터키가 다시 일어나 15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3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이루었던 역사가 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열게 된 것도 터키가 인도나 중국으로 통하는 길목을 완전히 막고 있었기 때문. 오스만터키는 1차대전에서 독일 편에 섰다가 망해서 넓은 영토를 다 잃기 직전(우리가 3.1운동을 배울 때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결주의라는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배웠었는데, 사실은 패전국 터키와 오스트리아 영토 안에 살고 있던 미해방 민족들을 선동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승전국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는 적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지.),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스 등과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간신히 아나톨리아 반도와 발칸반도 끝자락을 확보하고 터키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간신히' 확보한 부분이 남한 땅의 8배 정도이니 여전히 큰 나라다.
인구는 8천만명 정도, 아시아계와 유럽계가 오랫동안 얽혀서 살아온 탓인지 외모는 동아시아 사람보다 유럽 사람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피부는 별로 흰 편이 아닌데 이목구비가 매우 입체적이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길거리마다 김태희가 돌아다니더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이곳에도 미인이 흔하다.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공화국을 세운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개혁(혁명) 정책에 따라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 있다. 최근에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는데 길에서 보이는 터키인들은 그다지 '독실한' 무슬림은 아닌 듯하다. 하루 다섯 번 기도 시간을 알리는 에잔 소리는 어디서나 시끄럽게 들리지만, 길거리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다. 금요일 낮 기도 시간에 자미에 모이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많은 남자들이고 젊은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도 종교의 영향력은 점차 약해지고 있는 듯하다. 언어는 몽고어나 만주어와 함께 알타이어족의 하나인 터키어를 쓰는데, 표기는 오랫동안 아랍 문자를 사용했으며 단어에서나 어법에서나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타튀르크의 문자 개혁 이후에 로마 문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덕분에 약간의 변형 표기와 발음 원칙들만 배우면 한국 사람도 쉽게 글자를 읽을 수 있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여러 언어가 터키어와 많이 비슷하다고 한다.)
현재의 터키 영토 안에는 인류 역사의 최초 시기부터 여러 민족이 드나들며 만들어 놓은 문명과 문화가 쌓이면서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다. 시리아 이라크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동부 지역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으며 (특히 인류 최초로 철기 문명을 만든 히타이트족의 주무대가 이쪽이었나 보다. 앙카라의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에서 만난 히타이트 유물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서부 에게해 연안에는 그리스의 이오니아 식민지 시대부터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를 거치며 번성했던 도시들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신약성서 시대에는 바울과 요한 등이 활동했다는 곳이 많아 성지순례 단골 코스이기도 하다. 동로마 시대에는 비잔티움(지금의 이스탄불)이 정치적 문화적 수도로 크게 번성했고 성소피아성당(아야소피아)을 비롯한 대단한 예술품들이 남아 있다. 그 후로는 터키인들이 만든 이슬람 문화.
그런데 셀주크 터키와 오스만 터키 모두 터키 민족을 내세우지 않고 마치 헬레니즘 시대처럼 여러 민족과 문화에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으므로 (종교만 이슬람으로 통일), 터키 제국 시대에도 에게해 연안은 여전히 그리스인들의 무대였고 아나톨리아 동부에는 조지아인 아르메니아인 쿠르트인 들이 터키인들과 섞여서 살았다고 한다. 1920년대에 아타튀르크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조지아 아르메니아를 물리치고 독립을 이룬 후에는 그리스와 인구 교환을 하는 등 '터키인의 나라'를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강력해진 터키 민족주의가 아르메니아나 쿠르트족과의 마찰을 빚어냈다. 지금도 동부 지역은 SI(이슬람 국가)와 쿠르트족, 시리아 내전 등이 얽혀서 상시적으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터키는 위도상으로 우리나라보다 북쪽이지만 3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어서 기온은 우리나라보다 조금 높은 편이다. 동부 산악의 고지대는 우리나라보다 더 춥다고 하지만, 남쪽의 지중해 연안이나 남서쪽 에게해 연안은 물론 북쪽의 흑해 연안에도 야자나무가 많이 자랄 정도로 기후가 온화하다. 그래도 겨울은 터키 여행의 비수기란다. 지중해식 기후의 특성대로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오기 때문. 우리는 비교적 날씨 운이 좋아서 비 때문에 여행에 지장을 받은 날이 5-6일 정도밖에 안 되었다.
2주일의 여행 동안 터키만 돌기는 아깝다며 그리스를 끼워서 돌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7주일의 이번 여행을 터키에 올인하기로 했다. 일단 터키만 돌되,가봐서 재미가 없거나 하면 그리스도 잠깐 가볼까? 하고 생각했었지만, 그러나 터키는 정말 큰 나라였다. 50일 동안 돌아다녔지만, 동부 지역은 아예 통째로 빼놨고 (에르주름, 카르스, 도우베야즛, 반 호수, 넴룻 산, 가지안텝, 산르우르파, 하산케이프 ...) 지중해 연안도 안탈리아 이동 지역은 모두 포기했으며 (메르신, 아다나, 타르수스, 크즈칼레쉬), 에게해 연안에서도 카쉬 마르마리스 보드룸 쿠샤다스 등 이름난 휴양지를 모두 지나쳤다. 중부의 호수 도시인 에이르디르도 생략했고, 히타이트 유적지인 하투샤 순구룰루도 건너뛰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소금 호수도 못 들렀고, 패키지 여행객들도 많이 간다는 올림포스 산도 안 갔다. 물론, 우리가 욕심 없이 천천히 다닌 탓도 있기는 하지만......
도시간 이동은 비행기와 슬리핑버스를 배제하고 버스로 3-5시간 이동한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다 지키지는 못하고 7 시간 이상 최대 10 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 (아마스라에서 시높 갈 때. 지도에서 보면 가까운 곳이라 느즈막히 아침을 먹고 출발했는데, 직접 가는 대중교통편이 없어서 바르튼과 카라뷔크 두 도시를 경유해서 가느라 하루 종일이 걸림) 슬리핑버스를 안 타겠다는 것은 그만큼 체력에 자신이 없어졌다는 자백?
20개 도시에서 49박을 했다.
이스탄불(2) - 부르사(4) - 에스키셰히르(2) - 앙카라(2) - 사프란볼루(2) - 아마스라(1) - 시높(2) - 오르두(2) - 트라브존(3) - 삼순(2) - 아마시아(2) - 시바스(1) - 괴레메(4) - 콘야(2) - 안탈리아(4) - 파묵칼레(1) - 페티예(2) - 셀축(3) - 이즈미르(3) - 차낙칼레(2) - 이스탄불(3)
(부르사에서 오래 묵은 것은 볼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계속 비가 왔고 감기도 걸렸기 때문.)
비수기인 덕분인지 숙박비는 비교적 저렴했다. 최저 23,000원에서 최고 44,000원, 평균 3만원 정도. 대부분 3성급 미니호텔이고 게스트하우스가 두어 곳, 100실 이상을 갖춘 4성급 호텔도 두 곳. 중국이나 태국보다는 좀 비쌌지만 가격대비 만족도는 뒤지지 않는다. 그만큼 기본이 되어 있더라는.
인천-이스탄불 대한항공 직항 85만원. 2인분 170만원.
숙박비 150만원
식비 105만원 (간식, 음료 포함. 식비는 중국이나 태국보다도 싸다. 게다가 맛있고 푸짐하고. 50일 동안 먹은 소고기를 한국에서 먹으려면?)
버스비(도시간 이동) 45만원 (4시간 정도 버스를 타는데 1인당 만원 정도니 우리나라보다 많이 저렴하다.)
입장료 및 택시비 65만원 (도시 내에서 관광을 위한 이동 비용을 포함함)
통신비 13만원 (유심은 저렴했는데, 아이폰 유리 깨진 거 고치느라 9만원이 들어감)
기타 비용 20만원 (유료 화장실, 잡다한 생필품, 팁, 한국에서의 버스비, 택시비)
여기까지 568만원
그리고 운동화와 옷가지, 기념품 등 쇼핑한 것이 70만원. 물가가 저렴하고 품질은 괜찮아 보여서 예년보다 물건을 많이 샀다. 소소한 기념품들을 제외하면 쇼핑은 굳이 여행 경비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는 지출이므로
50일 간의 터키 여행 순수 경비는 대략 570만원 정도 되겠다. 비행기표 제외하면 둘이서 하루 8만원 썼으니 정말 저렴한 여행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