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음 딸 마음 / 장민정
올해는 7년 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던가? 소읍인 이곳의 거리는 부산하거나 소란스럽지 않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조용하다.
딸에게선 며칠째 소식이 없다.
고3 담임에 입시 철이어서 그러겠지 하고 짐작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지 않던가?
눈길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번 연휴는 너희끼리 보내렴,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카톡 카톡거린다.
맛집에서 식사와 영화관람 표 예매
딸 내외는 점심시간에 맞춰 내려오겠단다.
이곳엔 영화관이 없다.
영화 한 편 보려면 충주까지 나가야 한다.
한데 크리스마스이브여서일까.
우리에게 맞는 관람 시간의 표는 모두 예매가 끝났다고 해서 멀리 진천의 메가박스 표를 예매했다고 한다.
마음부터 바빠진다.
딸이 오는데 뭘 좀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식탁 옆의 늙은 호박을 집어 들었다.!
호박이 사람에게 그리 좋다던가? 며칠 전 티브이에서 얻어들은 생각이 떠올랐다. 항산화 물질이 많아서 항암도, 노화 방지도 눈 건강도, 성인병 예방까지 온갖 데에 다 좋다고 해서 눈여겨보았던 호박, 대상동 이 여사한테서 받아온 호박이다.
이밖에도 젊은 애들이 혹하는 다이어트 식품이라니 우리 딸도 좋아할 것이다. 날마다 한 줌씩 빠지는 머리 때문에 골치를 앓는 내게는 호박씨가 좋다던가?
벼르며 점찍어 둔 호박죽을 오늘 실행하는 것이다.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이 가장 힘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먹을 것을 생각하면 도리어 즐거운 작업이 된다. 껍질 벗긴 호박을 푸욱 끓이다가 불린 찹쌀을 넣고 저어가며 끓인 뒤 도깨비방망이로 곱게 갈아서 다시 나무 주걱으로 한동안 저어가며 끓이면 색깔 고운 호박죽이 완성된다. 수프 같기도 하고 미음처럼 훌훌 마실 수도 있는 부드러운 호박죽.
내가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이런 것이다.
딸아이는 고명딸이다.
제 생활도 바쁜데 어미를 너무 잘 챙긴다.
자동 청소기며 빨래건조기며 생활에 편리한 것이라면 뭐든지 먼저 챙기는가 하면, 내가 걸치고 다니는 옷이며 모자 신발 같은 것은 물론이고 국내 맛집이나 이름난 여행지와 방학을 이용한 해외여행 등등,
생각해보니 내가 경험하고 알게 된 것들 대부분이 딸과 함께였음이 새삼스럽다.
입에 혀 같다거나 근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정도를 넘어 내가 생각하기 전 벌써 내가 필요한 것이 내 옆에 있는 상황,
젊은이의 감각이나 사고방식이나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창구가 딸에게로 향해 있음을 실감할 때마다 나의 마음 한 자락은 아쉬움으로 가득해진다.
내가 딸이었을 적, 나는 받기만 했을 뿐 엄마에게 잘해드린 기억이 하나도 없다.
그런 내가 내 딸에게서 많은 걸 받으며 호사를 누리다니, 죄송하고 송구스런 마음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살아계신다면 원도 한도 없이 잘해드릴 수 있는데 우리 어머닌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어머니,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