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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 당하신 어린 양께 영광을
어린이 설교
여러분, 혹시 천국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천국이 어떤 곳이에요? 맞아요. 천국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에요. 한자로 하늘 천에 나라 국인데요. 하늘 나라 또는 하나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해요.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저 공중과는 다른 개념이에요. 이 세상과 완전히 다른 어떤 곳,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계신 전혀 다른 차원의 어떤 곳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오늘 성경에서는 사도 요한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천국의 환상을 보았어요. 오늘 말씀을 잘 보면 우리도 마치 천국을 본 것 같이 잘 알 수 있어요. 정말 멋지죠?
강도사님이 어렸을 때 봤던 그림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뭉게뭉게 구름 위에 성을 짓고 금빛 의자 위에 앉아 계시고, 그 옆에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요. 그래서 하늘 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높이 쳐다 보면서 저 위에는 하나님이 계실까? 천사들도 함께 있을까? 하고 상상하기도 했어요.
정말 구름 위에 천국이 있을까요? 여러분이 강도사님보다 더 똑똑하고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강도사님이 고등학교 때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갔는데요. 구름 위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알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어요.
천국에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어요. 먼저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아주 화려하고 빛나는 보좌 위에 앉아 계세요. 보좌는 누가 앉는 의자게요? 왕이 앉는 의자에요. 하나님이 온 세상의 왕이세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으로 하늘 보좌에 앉아 계세요.
거기에는 성령님도 계세요. 성령님은 마치 등불처럼 보인대요. 일곱 개의 등불을 합쳐놓은 것처럼 밝게 빛나면서 온 세상을 비추고 계세요.
그리고 거기에는 예수님이 계세요. 예수님의 모습이 좀 특이해요. 예수님은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어린 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대요. 근데 또 어떻게 보면 사자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대요. 사자는 아주 힘세고 용맹하잖아요. 어린 양은 아주 힘이 없고요. 예수님의 모습 가운데 아주 연약해 보이는 모습과 강력한 모습이 함께 있어요.
또 예수님은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아 보여요. 그런데 지금은 살아 계세요. 그리고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어요. 이 두루마리가 뭐냐면요. 왕의 명령을 담은 명령서에요. 조금 어려운 말로 칙령이라고 하거든요. 왕이 명령을 내리면 두루마리에 써서 온 세상에 전달하는 거에요.
죽은 것 같았는데 살아난 사람이고, 사람인데 어린 양이고 또 사자이기도 한 그 예수님이 천국에서 왕으로 다스리고 계세요.
또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주변으로는 여러 짐승들과 장로들과 천군 천사들이 예배하고 찬송하고 있어요.
이 천국에 여러분도 들어갈 수 있을까요? 맞아요. 들어갈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대해 주셨거든요. 예수님이 죽어서 우리를 다 천국 백성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요.
지금도 우리가 이 땅에서 예배드릴 때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이 예배 가운데 우리는 천국에 조금은 들어와 있는 거에요. 또 앞으로 우리가 죽으면 이 천사들처럼 천국에서 하나님 보좌 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거에요.
바로 이 천국에 들어가는 게 우리의 인생의 최종적인 목적이에요. 우리 어린이들도 모두 예수님 믿고 이 땅에서 예배하면서 나중에 완전한 천국으로 들어갑시다!
머리말
혹시 천국이 어떤 곳인지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정말 천국을 사모하고 예수님을 사모하며 살아가는데, 죽어서 천국 가기까지 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어떤 신비한 능력으로 날마다 하나님도 만나고, 예수님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끔 사고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사람들이 천국을 경험했다는 간증도 하고 책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한 번쯤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특별한 체험을 주시진 않습니다. 누가 천국을 보았다고 해서 쉽게 그 말을 믿어서도 안 됩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은 천국의 모습을 담은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천국의 환상이 나옵니다. 불분명한 환상이나 헛소문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인정해 주신 진짜 천국의 모습이 여기 있습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십니까?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이 시간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천국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을 높이 하늘로 들어올려 주시고 천국에서의 예배에 동참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1. 고난 당하는 교회에 임하는 하늘 보좌의 위로
1) 요한이 본 하늘 보좌 환상 (계 4장)
먼저 첫 번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천국의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계시록 4장을 보면 그곳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벽옥, 홍보석, 녹보석과 같은 귀한 보석으로 치장된 위엄있고 영광스러운 장소입니다.
무지개가 그 보좌의 주변에 둘려 있습니다. 무지개는 창세기에서 노아 홍수 이후에 다시는 물로는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언약의 표징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늘 가까이에 두고 보시면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을 늘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주변에는 이십사 개의 보좌가 있는데 그곳에는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보통 이십사 장로는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를 모두 합쳐서 상징한다고 이해됩니다. 흰 옷은 제사장을 상징하고 금관은 왕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십사 장로로 대표되는 모든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온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
하늘의 보좌 앞에 밝게 빛나는 일곱 등불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의미합니다.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한 분이시지만 완전수 7을 사용하여서 성령님의 완전하고 전능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리는 이 땅의 바다는 깊고 어두운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베헤못이나 리워야단과 같은 하나님의 대적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통제할 수 없으며, 풍랑이 몰아쳐서 언제든지 깊이 잠길 수 있는 죽음과 맞닿은 곳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있는 유리바다는 더 이상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발판이고, 맑고 투명하여서 모든 것이 환하게 비치는 곳입니다. 온 세상과 사탄의 세력이 장차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 아래 놓이게 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보좌 주위에는 네 생물들이 하나님을 쉬지 않고 경배합니다. 이 생물들의 모습이 조금 특이한데, 실제 모양을 묘사한 게 아니라 상징적인 모습입니다. 앞뒤에 눈이 가득한 것은 지혜와 능력을, 여섯 날개는 사방팔방 모든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 네 생물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상징합니다. 사자는 야생의 짐승, 송아지는 가축,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 독수리는 나는 새를 대표합니다.
이처럼 모든 성도들과 온 세상의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보좌 곁에서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시록 4장 1절에서는 이 하늘 보좌의 환상이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이라고 합니다. 이 하늘에서의 영원한 예배와 통치가 인류 역사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온전히 영광 찬송을 받고 계십니다. 그리고 장차 세상 끝날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합쳐질 때 인류의 역사에서 완성될 일이기도 합니다. 온 세상 만물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고대하며 사모하며 나아갑니다.
2) 교회가 고난 당할 때 하늘 보좌의 영광을 보여 주심 (계 5:4)
그런데 우리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환상을 요한과 당시의 소아시아 교회에 보여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시 교회가 극심한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난 당하는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하늘의 비밀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에 사도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인해 밧모 섬에 갇혀서 유배 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1세기 후반이 되면서 로마 황제들은 스스로를 신으로 높이고 죽은 황제의 신상을 세워서 신전에서 숭배를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부하니까 반역죄로 몰아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탄압과 박해를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들은 각종 이단들과 여러 세속주의적 경향들 가운데 많은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고난을 피하고 세상의 이익을 쫓고자 하는 유혹이 강하게 작용하였고,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두 마음을 품기도 하고 신앙을 버리기도 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어려움들이 계시록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하늘의 보좌를 보여 주십니다. 이 세상과 인류 역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확인시켜 주십니다. 계시록 4장과 5장의 환상을 보면 보좌라는 말이 19번이나 나오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누구인가? 이것이 이 환상의 핵심입니다.
온 세상의 통치자로 보좌에 앉은 분이 누구입니까? 인류 역사의 주관자가 누구입니까? 로마의 황제입니까? 거대한 부를 소유한 귀족들과 상인입니까? 여러 정치가들과 기업가들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보좌에 계신 분은 로마 황제가 아닙니다. 세상 권세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시고 온 땅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성도들이 고난받고 있지만,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상 권세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라도 건드릴 수 없는 자들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다스리고 내 뜻을 이루고 있다. 내가 너희를 여전히 지키고 돌보고 있다.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고난받는 우리들에게 하늘의 신비를 보여 주시면서 이 땅에서의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힘 주시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계시록 5장 4절에서 요한은 크게 웁니다. 보좌의 하나님 손에 두루마리가 들렸습니다. 그 두루마리에는 왕의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공의로운 통치,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주위 백성들을 억울함을 풀어주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담겨있는 두루마리입니다.
요한의 입장에서는 이 하나님의 두루마리가 빨리 열리고 집행되는 것이 참으로 간절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복수해 주셔야만 이 핍박받는 성도들이 완전한 구원과 해방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한은 크게 울면서 부르짖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고 그 뜻을 이루실 분이 과연 누구인가? 누가 저 두루마리의 봉인을 풀겠는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환상은 바로 이 요한의 통곡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납니다. 요한이 자신과 교회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슬퍼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때시리라.” 그리고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여 주십니다.
누가 예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이 세상의 고난과 핍박 가운데 눈물 흘리며 오직 하나님의 도움만을 간절히 구하며 울부짖는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의 그 눈물의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늘 보좌의 환상을 보이시며 위로하여 주실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 5:3,4,8,10)
이 땅의 부당한 현실 가운데 쉽게 좌절하거나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 보좌를 보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통치지가 누구인지,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땅에 속한 사라질 것들에만 마음이 사로잡혀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붙잡고 울며 매달리는 사람이 복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 달라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어 달라고, 나를 살려 주시고 우리 교회를 살려 달라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늘 보좌를 보여 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2. 죽임 당하신 어린 양께서 하늘에서 영광 받으심
1) 하늘의 찬송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계 5:9-10)
두 번째 말씀을 듣겠습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영광 받으십니다.
요한이 눈물 흘리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 그는 보게 됩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죽임당하신 어린 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두루마리를 여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임당하신 어린 양이시기 때문입니다. 9절에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죽으셨다 하는 사실이 아주 강조가 됩니다. 6절에 죽임을 당한 것 같다, 9절에 죽임을 당하셨다, 12절에 죽임당하셨다고 반복해서 계속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유가 9절에 나옵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핵심이 이 찬송 가운데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께서 우리 대신 죽으셔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 용서 받았습니다. 비록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심판과 죽음의 저주가 더 이상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우리 대신 죽으시고 우리 대신 저주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의롭게 죽임당하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곁에서 천지를 다스리시며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해서 더욱 깨끗하고 거룩한 존재로 변화시켜 가십니다. 우리는 점점 하나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아 갑니다. 10절에 나라와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왕으로 하나님 뜻에 따라 나라을 다스리고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는 신적인 존재로 존귀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장차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할 것입니다. 10절에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장차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되고, 온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땅이면서 동시에 하늘인 이 세상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왕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음 말씀이 바로 천국의 비밀이고, 지금도 하늘 예배에서 부르고 있는 찬송의 내용입니다. 우리 함께 이 복음 안에서 기뻐합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 어떤 고난과 유혹도 우리를 이 예수님의 구원 계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2)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바라보고 찬송
오늘 본문에서 그려지는 예수님의 환상 아주 상반된 이미지의 조합입니다. 이분은 유대 지파의 사자로 오신 분입니다. 아주 강하고 용맹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한 마리의 어린 양입니다. 아주 연약하고 순결하고 제물로 바쳐지는 존재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의 승리자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패배를 당한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은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다고 합니다. 죽음의 흔적이 남아있는 모습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살아서 우뚝 서 계십니다. 6절을 보면 일곱 뿔과 일곱 눈을 지니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뿔은 권세를 상징하고, 눈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일곱의 완전수로 나타내서 권세와 지혜가 완전하십니다.
특히 여기서 일곱 눈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합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구절인데요. 예수님께서 성령님과 하나됨을 이루시면서 동시에 성령님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분께서 하나님의 두루마리를 받으시고 그 봉인을 여십니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주권자로서의 통치를 행하고 계신 모습입니다. 아주 연약한 이미지와 그와 상반되는 강력한 이미지가 한 분 예수님 안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신비입니다.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고, 우리의 이해와 상식을 넘어서는 비밀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서도 예수님을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하고 찬양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동시에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힘없이 죽임을 당합니까?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온전한 육체와 영혼을 함께 가지고 하늘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비밀이고 신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찬양은 끝이 없고 영원할 것입니다. 9절에 하늘의 예배자들이 “새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이 새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찬송하는 노래입니다. 예수님의 신비, 구원의 신비를 날마다 새롭게 깨닫게 되니까 감탄과 감격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새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연약함을 통해 이 세상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연약함과 죽음은 세상의 관점에서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 하늘을 바라볼 때에만 부끄러움의 이면에 감추어진 예수님의 권능과 영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 땅에 죄악이 왕성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질지라도 예수님의 통치 아래 놓여 있습니다. 불안해하지 말고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3.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
1) 우리의 예배가 하늘 예배와 연결됨
사도 요한과 함께 우리도 말씀으로 하늘의 신비를 보여 주십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 미치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지금도 하늘에서 하나님을 향한 영원한 예배와 찬송이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드리는 예배는 하늘의 예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배 드리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예배자로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주변에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혼자서 고립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예배하러 나아오는 길에 여러 현실적인 장애물이 있기도 합니다. 예배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들이 많습니다. 한 주 예배에 빠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 하늘에서 우리와 함께 예배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와 신자는 어떤 경우에도 소수가 아닙니다. 우리의 뒤에 있는 영적 세계에서 수많은 천사들과 피조물들, 먼저 주님 곁으로 간 성도들이 보편의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의 보편성, 주류의식을 가지고 당당하게 예배자로 살아갑시다.
우리는 지금 이 상가 건물에서 매주 모여 예배드립니다. 1층에 식당이 있고 2층의 피씨방이 있는 이 작은 상가 건물에서 함께 모여서 드리는 이 예배가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그리 대단한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여러 면에서 현실적인 불편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이 예배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이 선포될 때에, 우리는 천상의 예배와 연합하게 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이 바로 지금 천국에서 울려퍼지는 그 찬송과 동일한 찬송입니다.
새 노래를 부릅시다. 날마다 에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새롭게 깨닫고 우리의 예배와 찬송을 새롭게 해 달라고 간구하며 나아갑시다. 하늘 보좌를 바라보는 신자에게는 매너리즘이란 없습니다. 영원히 불러도 끝이 없는 찬송,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날마다 새롭게 노래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2)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도구가 됨
다음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 드리는 기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의 통치에 동역합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여러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바쳐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상달됩니다.
그리고 이 기도의 응답으로 6장부터 예수님께서 두루마리의 봉인을 하나씩 때어 나가십니다. 요한계시록의 여러 심판들이 사실은 이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달라는 기도드릴 때, 그 기도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어떤 문제를 두고 기도하는데 그것이 좀처럼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계속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다 받으시며 영광받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 응답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십니다. 고난받는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늘에서 귀하게 쓰임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계속해서 기도에 힘씁시다.
우리의 기도생활이 현세 기복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국한되기가 쉽습니다. 이 문제 풀어 주세요, 이 소원 들어 주세요, 이런 기도도 소중합니다. 나와 내 주변 성도들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의 어려움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공간 문제, 직분자가 세워지는 문제, 성도 간에 교제와 섬김이 더욱 풍성해지는 문제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길 구하는 기도, 세계를 품는 기도도 함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나 남북 통일이나 중국의 개혁 개방과 같은 국제 문제, 기후 위기, 세계 선교와 예수님의 재림와 같은 중요한 인류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3) 우리의 고난을 통해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모습을 닮아감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의 고난을 통해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은 이 땅의 관점에서 보면 부끄럽고 거리끼는 일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바라볼 때 그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며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이 관점은 오늘날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의 현실을 바라볼 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 1:11-12)
바울은 사도로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안정된 삶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많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건강 상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세상의 무시와 치욕을 당하고, 자기가 섬기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자기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감수하는 선택을 하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요? 내가 믿고 나에게 이 임무를 맡겨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나를 끝까지 지키고 함께 해 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은 죽임 당한 것 같은 모습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 영광스러운 위엄과 광채 가운데 죽음의 흔적을 여전히 지니고 계십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사랑의 흔적입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주의 백성으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에 많은 고통과 고난이 있습니다. 고단한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 죽음의 흔적이 우리의 몸과 영혼에 깊이 스며들 것입니다. 이 인내와 수고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그 흔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볼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육체의 한켠에 남아 있는 이 죽음의 흔적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흔적은 천국에서 함께 만날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그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발견될 것입니다.
맺음말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하늘 보좌 환상은 우리들의 인생의 본질을 다시 한 번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보좌에 앉아 계시며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임 당하신 어린 양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모든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이 하늘 보좌의 모습을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예배하고, 기도하며, 고난 가운데 순종합시다. 예수님께서 이제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눈물과 슬픔 닦아 주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실현하실 것입니다.
그 날 바라보며 이 땅에서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복된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 관악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개요
결론: 믿음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
1. 고난 당하는 교회에 임하는 하늘 보좌의 위로 (4-5절)
1) 요한이 본 하늘 보좌 환상
요한계시록 4장
2) 교회가 고난 당할 때 하늘 보좌의 영광을 보여 주심
마태복음 5:3-10 (신약 5쪽)
2. 죽임 당하신 어린 양께서 하늘에서 영광 받으심 (9-10절)
1) 하늘의 찬송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요한계시록 5:6,9,12
2)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바라보고 찬송
디모데전서 3:16 (신약 338쪽)
로마서 1:16 (신약 239쪽)
3.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
1) 예배
2) 기도 (8절)
3) 고난 가운데 순종
디모데후서 1:11-12 (신약 343쪽)
생각해볼 문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질문>
1. 천국은 어떤 곳인가요? 천국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나요?
2. 천국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두 동물은 무엇인가요? (5,6절) 예수님께서는 왜 죽임을 당하셨나요? (9-10절)
3. 우리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천국의 삶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한 가지만 얘기해 봅시다.
<개인 묵상과 소그룹 토론을 위한 질문>
1. 요즘 가장 힘들고 간절히 기도하는 인생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이 그 문제에 어떠한 답을 줄 수 있을까요?
2. 여러분은 예수님을 생각할 때 어떤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 서로의 생각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 내가 잘 몰랐던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봅시다. 예수님을 더욱 잘 알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3.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떠한 고난을 견뎌야 합니까? 나의 고난이 예수님의 고난과 어떤 면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