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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윌키 -- 임파암으로 망가지는 자기의 몸으로 일기처럼 ㅈ찍어서 아름다웠던 자기의 몸이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기록으로 발표했다.
*수필이 나를 쓰는 글이라면 나는 누구인가?
(마음도, 몸도 모두 나이다.)
학교에 다닐 때 수학 시간에 좌표라는 것을 배웠다. 좌표에 의하면 우리 마을, 우리 집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금방 드러난다. 우리 마을과, 우리 집과,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을 말해주면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대학을 다닐 때 내가 경주의 시골 마을이 고향이라고 가까운 친구가 ‘야 이 촌놈아’라고 불렀다. 나는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살았다고 ‘촌놈’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의 정체성도 나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때, 촌넘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말에는 몸과 마음이 모두 포하뫼어 있다.
1980년에서 1990년 초반에 이르는 사이에 미술에서는 전시회를 통해서 자기가 속한 인종, 민족, 젠더, 섹수얼리티를 통하여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유행했다. 당시에는 오윤을 비롯하여 여러 화가들이,굿이라든지, 한복을 입은 시골 할머니라든지, 농부 등을 표현함으로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강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표현은 개인의 정체성이라기 보다는 집단 정체성, 공유 정체성이다. 나는 집단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80-90년 대의 우리 수필은 무엇을 했을까? 생각나는 것이 없다. 얼핏 떠오는 것은 ‘붓가는 대로’의 글쓰기에서 ‘구성을 하는 글쓰기’ 이론이 나온 것이 전부가 아닌가 싶다. 자아를 표출하는 방법론에서(나를 표현하는 방법ㅇ) 감성적인 표출에서 이성적인 표출로 변화를 시도하였다고 할까. 80-90년 대는 신군부가 정권을 뻬앗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엄청난 혼란을 경험했다. 그리고 민주화라는 투쟁 목표를 내걸고 변화를 한 격동기를 살았다. 그 시대를 산 나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무엇을 시도하였을까? 떠오르는 대답이 없다. 여전히 옛날의 글쓰기를 하였던 것 같다.
이 시기에 발표된 수필을 보면 미술계(비록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 적이라고 하더라도)와 같은 변화의 기미가 감지되지 않는다. 좀 더 살펴보면 2000년 대 이후에도 내가 소속된 공동체에는 수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소용돌이치고 있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정체성도 반드시 짚어보아야 한다. 오늘의 우리나라에서는 정체성을 너무 쉽게 단정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내가 노년이니까 으레 보수주의자로 분류해버렸다. 나는 오늘의 현실에 좀 더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보수주의자’라는 하나의 묶음 속에 밀려 들어갔다. 스스로도 정체성에 혼란을 가진다. 내가 보수주의자일까? 내 생각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니까 맞는 것 같다. 그런다고 내가 정말 보수주의자일까? 라고 되물어 보니까 단호하게 맞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시간과 공간과 사람과 관계망 속에서 내가 살고 있다. 따라서 개개인은 모두가 자신만의 특성을, 즉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내가 소속된 사회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이미 노년 사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도 다른 노인과는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와 시간과, 나와 공간과, 나와 사람들과, 나와 소속된 단체들과 관계 속에서 나의 위치를 좌표에 표시해야 할 것이다.
수필쓰기는 나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를 말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할까? 적어도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바라보고, 사실대로(행동과 생각, 느낌을) 써야 할 것이다.
80년 대를 지나오면서 내가 한 일은 내 생활을 열심히 꾸려서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고, 내가 사는 집을 마련했고, 자동차도 구입하여 타고 다녔다. 강성 노동자들의 파업이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그들은 사회의 부조리를 말하면서 세상이 잘못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때도 나의 삶을 두고 한 번도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었다. 노동자들이 화염병을 던질 때 나는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자들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2000년 대가 되면서 그들의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한 짓을 아름답게 꾸며서 우리 앞에 펼쳤다. 이때 나는 어떠하였을까? 여전히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 삶은 어떤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뻔하다. 내 생각도 내 삶도 나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수필을 썼을까?
세월이 지나서 2000년 대가 되었다. 내 생각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쩌면 영감이 되어서 보수꼴통이라는 말에 움츠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시대 속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좌표 위에 나의 위치를 점으로 표현하면 된다. 설령 내가 보수꼴통이라고 욕을 먹더라도, 아니면 진보좌파라고 분류되더라도 나의 좌표를 표시하는 것이 수필쓰기이다. 그렇다고 하여 나의 생각을, 나의 주장을 생경한 언어로 토로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념을 섞어서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수필을 쓰는 사람이니까 이야기를 만들어서 내가 어떻게 관계 속에서 나를 만들었는지를 재미있게 서술하는 것이 수필쓰기이다. 감성까지도 녹여서 넣는다.
수필에서 나를 쓰기 위해서는 나를 만나고, 나와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과 만나기를 피한다. 자기자신과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 나를 피하고, 대화하기를 두려워 할까?
나는 지난 날을 회고하는 글을 시리즈로 쓰는 중이다. 체육을 못해서 선생님께 꾸중 들었던 이야기도 썼다. 심지어는 어머니의 돈을 몰래 훔쳐 만화책을 산 이야기도 썼다. 그러다가 아버지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한 달, 두 달을 미루었다. 펜이 들리지 않았다. 억지로 펜을 들었을 때도 두어 줄을 써고 더 이상 써내려가지 않아서 펜을 놓았다.
지금까지 발표한 수필이 200편이 넘는다. 나의 수필집을 뒤적여보니까 아버지를 소재로 한 수필은 거의 없었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버지를 미워한다는 것은 사회 정체성으로(우리 사회의 가차관) 인해 나에게 죄의식을 불러왔다. 그래서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려면 죄의식을 건드리기 때문에 내가 나를 피한다. 나와의 대화를 기피한다. 나와 대화를 하지 않고 쓴 글은 절대로 나의 아야기가 아니다.
내가 읽은 대부분의 글은 자기와 대화가 아니고 나의 바깥에 있는 사람과 대화였다. 그것도 나의 인격이 깎이지 않는 언어를 구사했다. 익명의 사람을 비난하면서 나는 정의로운 사람처럼 말했다. 따지고 보면 나는 나를 인격을 갖춘 훌륭한 사람으로 포장을 한 것이다. 포장 뒤에 있는 진짜의 나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 포장을 걷고 들여다보면 수치심과 죄의식과 열등감으로 주눅이 들어서 숨어 있는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피한다. 용기를 내서 ‘나와 대화 좀 하자’라는 수필을 썼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썼다. 그 수필에서 나는 얼마나 진솔하게 대화를 했는지 모른다. 또 거짓의 나를 만났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죄의식이 있을 경우네는 솔직하게 표현하기란 어렵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젊은 목사님의 사례를 들어보자. 목사님은 설교를 할 때 옳고 그름에 대해서 너무 단호했다. 자신의 생활태도도 도덕적이고, 신에 봉사하는 삶에서 하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목사님은 신도도, 자기의 부인도 자기처럼 악에는 터럭 하나 만큼도 가까이 해서 안 된다. 그러니 목사님은 신도들 사이에 너무 딱딱하다는 소문이 났고, 목사님이 두렵다면서 목사님을 멀리했다. 남편의 엄격함으로 멀어져 가는 신도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부인은 신도들에게 더더욱 친절하고 싹싹하게 대했다. 목사님은 그런 부인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고 나무랐다. 아내는 남편의 그런 모습에 점점 염증을 느끼고 남편을 떠나려 했다.
보다 못한 원로 목사님이 젊은 목사를 불렀다. 젊은 목사님은 자기의 삶이 얼마나 깨끗한가를 주장하면서, 하느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았음으로 항변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목사님은 자기의 과거사를 이야기 했다. 군 생활 때 군목으로 동경에서 근무했다. 휴가를 얻어서 서울에 갔다. 사창가에서 여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하룻밤을 보냈다. 동경에 돌아가니 약혼녀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죄책감과 수치심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의 죄의식이 지금도 자기를 지배함으로, 자기의 삶은 하느님에게 지은 죄를 보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원로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죄를 왜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느냐? 하느님께 기도하듯이 너 자신을 만나서 너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아라. 그리고 너를 용서하는 자는 너 자신이지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 뒤로는 신자와 아내가 조금 흐트러지게 사는 것도 꾸중하지 않았다.
내가 자신과 대화를 나누자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보지 않고, 자신의 수치심과 죄의식을 벌주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자신을 정의롭게 보임으로서 자신의 깨끗함을 인정 받으려고 한다. 수치심, 죄의식, 열등감에 사로잡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 자신을 보지 않으려고, 차한 짓을 한다. 그렇더라도 자신을 바로 바라보고, 자신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야 치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타인과 대화를 글로 쓰지 말고, 타인의 잘못을 나무라지 말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자. 자기 자신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자. 참회하고 용서를 남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자기에게 보여주고, 자기가 용서하자. 수필이 나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쓸 때 이다.
그렇다면 나란 나의 내면만을 말하는 것일까? 나의 몸도 나이다. 그렇다면 나의 몸과도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정신은 고귀하고, 몸은 저열하다고 생각한다
한나 윌키라는 페미니즘 미술가는 원래의 직업이 모델이었다. 모델은 몸의 아름다움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여성 모델인 한나 윌키는 임파암에 걸렸다. 아름다운 몸이 망가져가는 것을 자기가 인정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안 않았다. 그러다가 이 몸도 나의 몸이다. 나의 몸을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가져가는 몸을 예술로 승화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하루 자신의 몸이 망가져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미술작품으로 발표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몸은 무엇인가?’
수필의 정의에서 ‘자아의 표출’이라고 한 말의 해석에 ‘자아’란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 내면을 말한다. 그렇다면 나의 몸은 누구인가,
우리는 타인을 마주칠 때 제일 먼저 그 사람의 몸에서 첫 인상을 받는다. 심지어는 그 사람의 몸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수필을 쓰면서 몸은 거의 무시한다. 몸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체이므로 시각 미술에서 많이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하여 시각미술이 물체를, 또는 몸을 사진을 찍듯이 사실적으로만 표현하면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개념미술의 작가 바바라 크루거는 인간의 몸은 문화의 모든 기호를 담고 있을 뿐더러 그 문화들이 다투는 전장터라고 했다. 또 당신의 몸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 라고 했다.
(몸은 우리의 추한 일면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는 그런 몸을 사회에 보여주기 위해서, 또 나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의 몸은 전쟁터나 같다고 한 미술작가가 있다. 바바라 크루즈 이다. 오늘은 미술작품을 사진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수필쓰기에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수필쓰기에서 자기를 담기 위해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하자고 했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할 때 ‘자기 자신’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인간의 내면, 인간의 심층적인 심리 현상으로 말한다. 우리의 몸은 ‘자기 자신’에도 제외되어 있다. 이제 수필쓰기에서 ‘자기 자신’이라고 할 때는 몸도 포함시카자고 말하겠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몸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서 육체를 묘사하는 방법으로 선택했다. 도덕적이고, 자비심이 많고, 인내심이 강하고, 점잔하고, 남자답고------, 등등의 육체적인 내용들은 그 사람의 아름다운 정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이제 다시 몸을 생각해보자. 단순히 생물학적인 기관일 뿐인가? 아니면 문화적으로 만들어 낸 인공물인가. 둘 다 맞다. 문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몸은 개인의 정체성을 특징짓는 시각적 기호를 가지고 있다.
바바라 크루거 말처럼 몸은 전쟁터이고, 수많는 문화 기호를 가지고 있는 광고판이다. 성적으로 억압 장치가 작동하는 곳이고, 인간의 행동을 실연하는 도구이다. 타인의 응시를 의식하여 아름답게, 또는 힘의 상징으로, 또는 ~~다움으로, 가꾸는 대상물이다. 그뿐 아니고 폭력이 행사되면서 상처를 남기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몸을 두고 수필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얼마나 진실하게 표현했을까?
(내 몸이 어떻개 변신하고, 적응하면서 살고 있는지를 수필로 써보아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나는 노년이 된 후에 모자를 쓰고 다닌다. 나는 모자를 쓰니 ‘젊어 보인다’라는 말로 나의 모자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다른 사람도 ‘그러네요’라면서 내 말에 동의해주었다. 그러나 나와 대면하여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면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어릴 때 머리에 크다란 흉터가 있어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 청장년이 되면서 머러카락이 길어지니 머리의 흉터는 가리워졌다. 흉터 콤플렉스를 잊고 살았는데, 노년이 되면서 머리숱이 옅어지니 흉터가 보이려 하였다. 머리의 흉터는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모자를 씀으로 머리의 흉터를 가린 것이 아니고, 어릴 적의 아픔 기억을 가리웠다는 것이 진짜 이유였다.
나는 몸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어 봄으로 나의 정체성을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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