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_ 제자의 길(소설 ‘신·인간혁명’에서 배운다)
역경은 비약하는 힘으로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의 집필 투쟁을 돌아보는 기획특집 ‘제자의 길-소설 <신ㆍ인간혁명>에서 배운다’이다. 이번에는 제13권 특집으로 전체 줄거리를 비롯해 연찬해야 할 불법(佛法) 철리(哲理)의 관점과 소설에 그려진 빛나는 격려를 소개한다. 또 인터뷰에서 시게타 가요 아마미 고죠현 副부인부장이 지역광포의 모범으로 빛나는 ‘아마미’ 광포사를 말한 내용을 담았다.
출처: 소카신보
제13권
연재기간 2002년 4월 1일~2002년 12월 13일(세이쿄신문)
2002년 4월 12일~2003년 1월 1일(화광신문)
이야기 배경 1968년 9월~1969년 2월 26일
목차 <금의 다리> <북두> <광성> <낙토>
전체 줄거리
중일국교정상화를 제언하고 일본 전역을 종횡무진 격려행
1968년 대학부 육성에 힘쓰는 신이치가 9월 8일에 개최한 제11회 대학부총회에서 ‘중일 문제’에 대해 중대한 발언을 하려고 원고를 준비하는 장면에서 <금의 다리>가 시작된다.
당시 중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대국이면서도 고립되어 유엔에 대표권을 갖지 못하고 군사력 강화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일본정부는 미국에 동조해 중국 적대정책을 추진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중일우호를 언급한다는 것은 목숨의 위험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신이치는 세계평화를 위해서 양국의 우호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시아 민중을 구제해야 한다고 계속 외친 은사 도다(戶田) 선생님의 비원을 가슴에 품고 ‘중일국교정상화’를 제언했다.
‘중일국교정상화’ 제언을 발표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정치가 마쓰무라 겐조가 중일우호를 선도하는 제언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저우언라이 총리 등 중국 지도층이 주목했다.
나중에 신이치가 창당한 공명당이 양국정부의 가교역할을 하여 1972년 국교정상화가 결실을 맺는다.
신이치는 1974년 5월에 처음 중국을 방문하고 그 해 12월 제2차 중국 방문 때 베이징에서 저우 총리와 회견해 우호라는 ‘금의 다리’의 초석을 다졌다.
<북두>에는 신이치가 홋카이도 아사히카와로 가서 일본 북쪽 끝에 위치한 왓카나이를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선사 마키구치(牧口) 선생님, 은사 도다 선생님과 연고가 깊은 홋카이도에서 분투하는 벗에게 북두칠성처럼 희망의 지표로 빛나기 바란다고 거듭 격려했다.
또 9월 본부간부회에서는 학회전통인 ‘좌담회’를 충실히 열자고 말하고 각지에서 여는 좌담회에 참석했다. 솔선수범의 행동이 파동을 넓혀 전국에 민중을 소생시키는 광장인 ‘좌담회혁명’이 진척되었다.
<광성>에는 아마미 광고사가 씌어 있다.
1963년 신이치는 아마미오시마를 처음 방문해 아마미총지부결성대회 등에 참석한다. 그 뒤 공명당의 지방의회에 진출하려고 하자 섬 내에 있는 마을에서 지원단체인 학회를 적대하고 마을 전체가 학회원을 따돌리는 등 탄압사건이 발발했다.
신이치는 탄압의 본질적인 원인은 ‘학회의 진실을 몰라 발생한 오해’라고 통찰했다. ‘서로 증오하는 것은 결코 신앙자의 본의가 아닙니다’ ‘모두 사이 좋게 지내세요’라는 전언을 보내 동지를 격려했다.
1968년 11월, 5년 만에 방문한 아마미에서는 기념촬영회를 여는 등 고투하는 벗을 격려하고 아마미를 일본 광선유포의 이상향으로 만들자고 말했다.
그 뒤 동지들의 착실한 대화와 지역공헌 활동으로 상황이 좋아졌다. 이윽고 아마미는 일본 광포의 선구로서 희망에 빛나는 ‘승리섬’이 되었다.
<광성> 후반부에는 예술부 초창기 멤버들이 ‘예술제’를 개최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낙토>에는 1969년 ‘건설의 해’ 개막부터 씌어 있다. 새해 신이치가 ‘건설의 보(譜)’ 시를 발표하고 1972년 정본당 완공을 향해 모든 회원과 함께 새로운 결의로 출발했다.
2월, 신이치는 오키나와로 향했다. 당시 본토 복귀와 미군기지 문제로 계속 흔들리는 땅에서 ‘자신의 인간혁명에 도전해 국토의 숙명전환을 이루자’고 말했다.
신이치가 내건 지침대로 미군에 소속된 멤버를 챙긴 벗이나 자식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이겨내고 광포를 위해 꿋꿋이 살아가는 벗 등 오키나와 벗의 숙명전환의 드라마가 씌어 있다.
그리고 2월 본부간부회에서는 학회가 회원 ‘700만 세대’를 달성했다고 발표하고 더욱 약진을 기약했다.
‘투쟁하는 좌담회’로
리더의 솔선수범으로 환희에 찬 전진을
<북두>를 보면 신이치가 ‘좌담회 혁명’을 외치고 자신부터 솔선수범하여 좌담회에 뛰어들었다.
신이치는 당시 중일국교정상화를 제언하는 등 세계평화를 위해 커다란 전망을 내걸고 투쟁하지만 나날의 실천은 어디까지나 학회활동이라는 기본을 철저히 했다.
‘좌담회가 충실하여 활력과 환희가 넘치는 한 광선유포의 전진은 멈추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듯 마키구치 초대회장 시절부터 좌담회는 홍교를 위해 불법대화를 나누는 자리로 학회발전의 최대 원동력이 되었다.
여기서 신이치는 좌담회의 쇄신을 위해 여러 지침을 이야기했다.
그 근본은 어디까지나 리더가 일념을 전환하는 다시 말해 회우도 회원도 환희에 차고 발심시키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투쟁하는 좌담회’로 만든다는 점이다.
불법철리의 관점
‘신심(信心)의 눈’을 뜬다
불법사상에서는 신심을 방해하는 여러 작용을 ‘마(魔)’라고 한다.
날마다 펼치는 학회활동에서도 ‘마의 작용’임을 알려주고 서로 격려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마’는 무언가 고정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마미 동지가 탄압에 맞서는 투쟁이 나오는 <광성>에서 신이치는 “‘마을 사람들이 마(魔)’라는 고정적인 관념을 갖는 것은 잘못입니다. 마란 중생의 마음을 혼란시켜 좋은 일을 방해하고 불도수행을 막는 ‘작용’을 말합니다.” 하고 강조했다.
그리고 알기 쉬운 예를 들어 설명했다.
“어머니가 어린 딸을 할머니께 맡기고 학회 활동을 나가려는데 딸이 가지 말라고 울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활동을 가지 않으면 딸이라는 존재 자체가 마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마로 ‘작용’했을 뿐 딸 자체는 마도, 적도 아닙니다.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신이치는 이어서 말했다.
“하나의 현상이 마가 될지, 인간혁명을 위한 도약대가 될지는 자신의 일념 문제입니다. (중략) 결국 바깥 세계의 모든 현상은 마가 생기는 계기에 불과하며 마는 기심(己心)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정반대가 바로 ‘이 사람이 나쁘다’ ‘저런 환경이 나쁘다’고 책임을 전가하거나 포기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낙토>에는 어린 시절 앞이 안 보이게 되고 1년 전쯤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읜 오키나와 여자부원을 신이치가 온 힘을 다해 격려하는 장면이 있다.
“슬픈 일이 이어지면 ‘난 불행해’ ‘난 약해’라고 단정해 스스로 희망의 빛을 끄고 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야말로 자신을 더욱 불행하게 만듭니다. 결코 눈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신심의 눈’을, ‘마음의 눈’을 떠서 강하게 끝까지 살아가는 겁니다.
그리하면 모든 이가 희망을 느낍니다. 용기를 끌어냅니다. 당신은 반드시 많은 사람에게 인생의 등대가 될 수 있습니다.”
마를 만들어내는 것도 마를 타파하는 것도 모두 우리 ‘마음’과 ‘일념’에 달려 있다. 날마다 ‘자신의 인간혁명’에 끝까지 도전하자.
빛나는 격려
절복의 요체란
어느 지구좌담회에서 절복하고 싶은데 일이 바빠 시간이 없어 고민하는 멤버에게 신이치는 이렇게 말했다.
“절복을 성취하는 요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결의입니다. 일념이 결정되면 반드시 상황을 열 수 있습니다.
절복은 어디서든지 할 수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감옥에서도 법화경의 극리를 깨달아 간수를 절복했습니다. 먼저 ‘절복을 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어본존께 될 때까지 열심히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나타납니다. 또 어쨌든 모든 사람과 불법(佛法)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심 이야기를 해도 곧바로 입회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끈기 있게 교류의 깊이를 더하면서 상대방의 행복을 매일 기원하고 대화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씨앗을 뿌리고 그것을 소중하게 키우면 언젠가 반드시 꽃이 피고 과일이 열립니다. 초조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입회하지 않아도 함께 회합에 참석해서 교학을 공부하거나 함께 근행하는 것도 좋습니다. 자연스러운 확대가 중요합니다. 어쨌든 고생해서 홍교에 면려한 만큼 전부 자신의 복운이 됩니다. 상대방이 신심을 하든 안 하든 성불의 인(因)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북두>
인터뷰 <시게타 가요 아아미 교죠현 副부인부장>
모두 사이 좋게 지내자! 지역광포(廣布)의 열쇠는 여기에
-. <광성>에는 아마미에서 일어난 학회탄압의 역사와 그 뒤 발전 모습이 씌어 있다.
1960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아마미 다쓰고로 이사했다. 이사하기 4년 전에 입회한 어머니는 고향에서 홍교의 물결을 일으켰다. 마을 집집마다 절복하러 다녀 학교에서는 ‘남묘하는 집 아이’라고 놀림을 당했다.
신심(信心)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을에 토속신앙의 뿌리가 깊어 주위의 반발은 날이 갈수록 심했다.
마을 축제 때는 신위를 모신 가마로 집 벽을 쳐서 무너진 적도 있다. 그래도 어머니는 ‘어서에 씌어 있는 대로’라며 다부지게 넘겼다.
어머니는 언제든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농사 일을 멈추고 동지 곁으로 달려갔다. 어느 날 서운한 마음이 들어 어머니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활동하기보다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지요!’ 하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어머니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단다. 가장 어리석은 짓이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케다 선생님의 마음은 알 수 없다’고 진지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나중에 당시 박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면 알수록 다른 사람을 위해 힘쓴 어머니가 전하고자 한 말씀의 무게를 실감했다.
-. 그 뒤로도 이른바 ‘집단 따돌림’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1967년 가고시마현 선거에서 공명당 후보가 처음으로 당선되었을 때 박해는 극에 달했다.
참으로 심각했다. 자신의 위치가 위태롭다고 느낀 의원이 유력후보와 결탁해 ‘학회를 배척하는 데모’를 열었다. 각지에서는 박해를 견디지 못해 퇴전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그때 우리 마음에 희망의 불을 밝혀주신 분이 바로 이케다 선생님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본부에서 간부를 파견하거나 전언을 보내주셨다.
‘서로 증오하는 것은 결코 신앙자의 본의가 아닙니다. 모두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계속 대화하자는 것이 아마미 동지의 구호가 되었다.
-. ‘불굴의 마음’으로 전진하는 가운데 1968년 11월, 이케다 선생님의 두 번째 아마미 방문이 실현됐다.
아마미 동지가 그 순간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선생님은 도착하자마자 기념촬영을 하고 벗을 거듭 격려하셨다. 그리고 당초 예정에 없던 고등부원도 부르셨다.
당시 나는 통신교육을 받는 고등학생이었다.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집에서 명주를 짰다. 교복이 없어 잠시 망설였는데 오빠가 부추겨 선생님과 사진촬영한 일이 청춘 시절 가장 큰 원점이다.
“여러분이 있기에 걱정없습니다. 아마미 광선유포는 여러분에게 맡겼으니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나는 뒤에서 여러분을 지킬 테니” 하며 맨 뒤에 선 선생님의 자애에 감싸여 마음속 깊은 곳까지 따뜻함을 느낀 일을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한다.
-. 그 뒤로 동지들이 ‘지역우호’에 힘쓰면서 신뢰를 넓혀 아마미광포는 크게 발전했다.
선생님의 지도대로 불법자로서 지역의 발전에 공헌하고자 많은 선배가 오로지 성실하게 거듭 분투했다. 그러자 조금씩 오해와 편견이 풀렸다.
세월이 지난 지금, 모든 거주세대가 세이쿄신문을 직접 구매해서 읽는 동네도 탄생했다. 평소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겨 신뢰의 연대가 넓혀져 학회에 대한 이해가 크게 발전했다.
2010년 10월, 집중호우 재해 때는 빠르게 손을 써 계속 구호물품을 전달해 ‘학회는 굉장하다. 정말 고맙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선생님의 진심에 감싸여 사랑하는 섬의 광선유포는 지금 크게 약진하고 있다.
나도 지역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학회활동으로 배운 것들을 마음껏 발휘해 사이 좋게 즐겁게 우정을 넓히고 있다.
-. 6월 22일은 ‘아마미의 날’이다. 2018년 5월 27일에 선생님이 아마미를 처음 방문한 지 55주년을 맞아 ‘창가청년대회’를 개최했다.
대회 당일 식순인 합창에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멤버를 참여시키고자 대화했다.
후계의 청년부는 정말 믿음직하다! 2018년, 아마미 고죠현 남자부장과 여자부장이 앞장서서 홍교를 달성하면서 절복에 힘을 냈다. 한 20대 남자부원은 3월 11일에 개최한 ‘세계청년부총회’에서 처음으로 어본존유포를 달성했다. 그 환희에 찬 모습에 함께 도전한 지구의 동지들이 얼마나 용기를 얻었는지 모른다. 각부가 단결하여 기원하고 서로 감동을 나누면 유대는 더한층 깊어진다고 확신한다.
아마미에서는 지금 각부가 하나가 되어 인재육성과 광포확대에 힘쓰고 있다.
지금 청년이 정말 소중하다.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기원하면 좋은 면이 많이 보인다. 이 아마미에 새긴 ‘불굴의 마음’ ‘용기의 마음’ ‘사제의 마음’을 전하고 함께 ‘선생님’ ‘선생님’ 하고 외치면서 아마미광포 신시대를 열겠다.
키워드 색인
ㆍ 제2차 세계대전 후 중일관계 역사(12~22쪽, 28~30쪽, 40~44쪽)
ㆍ 인간외교의 기본(35~40쪽)
ㆍ 대학별 강의ㆍ대학회(45~53쪽)
ㆍ 중일국교정상화 제언(56~74쪽)
ㆍ 충실한 좌담회(165~174쪽)
ㆍ 아마미 탄압의 본질(240~247쪽)
ㆍ 이체동심의 의의(275~277쪽)
ㆍ 광선유포 인재의 요건(353~3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