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정식국명은 시리아 아랍 공화국(Syrian Arab Republic)으로 인구는 약 1,700만명이다. 시리아는 제1차세계대전으로 오스만투르크 왕조가 무너진 이후 프랑스 치하에 있다가 1946년 독립했다. 1967년에 있었던 아랍-이스라엘 전쟁간에 시리아는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에 뺐겼다. 1976년이래 시리아군은 평화준비군으로 레바논에 계속 주둔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시리아와 이스라엘간에 골란 고원 반환에 대한 몇몇 평화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 수도 : 다마스커스(Dmascus, 184만명) ◈ 인구 : 약 천 550만명 ◈ 면적 : 186,480㎢(한반도의 4/5) ◈ 주요도시 : 알레포(Aleppo), 홈스(Homs), 하마(Hama), 라타키아(Latakia) ◈ 주요민족 : 아랍인(88.8%), 쿠르드인(6.3%), 기타(4.9%) ◈ 주요언어 : 아랍어(공용어), 영어, 불어 통용 ◈ 종교 : 회교(수니파 72.6%, 시아파 10.4%), 기독교(13%), 드루즈교(3%)
산위에서 내려다본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
종교와 정치
시리아는 사회주의 국가다. 사회주의 국가의 본래 특징은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신을 거부하는 체제이나, 시리아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회교국가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나라이다.
시리아는 우선 종교적인 조형물들이 주변국인 요르단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고 웅장하다. 특히 모스크는 대개가 고대의 것이 그대로 보존되어 오고 있고 새로 지어진 모스크들도 모두가 크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시리아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우리 나라와는 정식 국교 관계가 성립되어 있지 않는 나라다. 하지만 경제 교류는 이루어지고 있어서 몇 개의 우리 나라 대기업들(현대, LG, 삼성 등)이 이곳에 진출해 있어서 우리나라의 차량들을 어디에서나 아주 흔하게 볼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도로를 달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많다.
다마스커스
시리아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는 중동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산에서 내려다본 다마스커스 시내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인지 건물들이 온통 회색빛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하기 전까지 이곳은 3000년 경 아람왕국의 수도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다마스쿠스는 로마 제국에서 중요한 교두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로마시대 이후 이슬람이, 그리고 몽고가 이곳을 지배했고, 중세때는 오스만 제국의 발아래 놓이게 되었다.
다마스쿠스 구시가는 로마시대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2000년의 시간동안 성벽의 부분부분이 다른 시대에 재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마야드 모스크(Umayyad Mosque)
우마야드 모스크는 비잔틴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다마스커스 최고의 명소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슬람 사원이다. 다마스커스 시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 4대 이슬람 사원 중의 하나로 수백년동안 이슬람 교도들의 성전으로 추앙받고 있다. 다마스커스가 전성기의 이슬람 제국의 수도였던 당시의 찬란한 영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마다스커스에 있는 우마야드 모스크
우야마드 모스크 안 뜰의 전경-이곳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며 대리석 바닥으로 되어있다.
모스크 내부 모습 - 마치 한국의 대형 기도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이곳에 세례요한 머리 무덤도 있다.
모스크로 들어가는 입구는 다마스커스의 재래시장이 있다.(사진 ) 공교롭게도 우리가 도착한 날은 금요일 오후라 안식일의 시작이라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세례요한 머리무덤교회
성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성들은 수도복을 빌려입고 들어가야만 한다.(3달러) 그리고 회교 사원광장부터는 모든 사람들이 신을 벗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웅장한 건축물과 정교한 벽화, 사원 안의 넓은 광장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이슬람 사원으로 알라신에게 기도를 올리려는 이들과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곳을 순례단이 찾은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이곳에 세례 요한의 머리무덤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성전 홀 중앙에 돔형의 작은 건물이 있고 그 안에 모슬렘 통치자들의 무덤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헤롯 안디바의 부인 헤로디아의 미움을 사서 마케루스 하궁에서 참수당한 후 처형에 대한 증거로 다메섹에 주재하던 시리아 총독에게 보내졌다가 이곳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아랍 모슬렘 시대 세례요한 교회는 이슬람교 대사원으로 바뀌었다. 그후 화재로 전소되어 재건되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마야드 모스크가 세워진 것은 이슬람교로 무장한 아랍인들이 이곳에 들어온 7세기에 들어서이다. 이때 이슬람교도들과 기독교인들은 같은 건물에서 일정 부분을 서로 나눠 가지며 각자의 종교의식과 회합을 가졌다. 그러다 이슬람교도들의 수가 증가해 건물 전체를 그들이 가지고 되었고, 기독교 인들에게는 새로운 교회를 지어주게 되었다. 이슬람교 국가를 지배하는 국왕은 다시 사원을 짓기 시작했고 이렇게 완성된 것이 이곳 우마야드 모스크이다. 여러 나라에서 불려온 많은 인원의 기술자들이 수년동안 이슬람 최초의 호화로운 사원을 건설하는데 동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