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당신은 괜찮은 부모입니다 - 이근후 지음
당신은 괜찮은 부모입니까?
흔히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스님은 자식은 부모가 지은 업(業)으로 전생에 빚을 받으러 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빚도 가벼운 빚이 아니라 세세생생 갚아야 할 빚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부모는 자식에게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 빚쟁이이니 자식을 이길 수가 없고, 살살 달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부모의 처지라고 합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며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식 걱정하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자식 걱정만 하다 간다는 뜻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조차도 아들을 낳은 후 그 아들의 이름을 ‘라훌라(Rahula)’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라훌라는 ‘장애물’이라는 뜻입니다. ‘백 살 먹은 부모가 여든 먹은 자식을 걱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승에 괜찮은 부모가 되려면 자식의 말을 잘 경청하고 서로 관계를 잘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당신은 괜찮은 부모입니까?’ 이 물음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워온 부모로서, 또 결혼을 앞둔 예비 부모들이 꼭 한 번쯤 뒤돌아보며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화두입니다. 물론 자식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부모야말로 정말 괜찮은 부모라고 할 수 있겠지요. 존경은 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난을 받지 않는 부모라면 괜찮은 부모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당신은 괜찮은 부모입니다』(이근후 지음, 다산북스)란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 이근후는 네 자녀의 아버지이자 손자들의 할아버지로서 긴 양육의 여정을 경험한 정신분석 전문의입니다. 또한 자녀들이 결혼한 후에도 3대 다섯 가정이 한 채의 빌라에 모여 살고 있는, 요즈음 좀처럼 보기가 드문 대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자 집 현관의 비밀번호조차 비밀에 부치며 사생활에 전혀 간섭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주들은 ‘할아버지가 가장 잘한 일이 온 가족이 모여 살게 한 일’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 답이 이 책에 있습니다. 이 책은 100세 시대에 아흔을 앞둔 노학자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오랫동안 체험하고 실천한 삶의 지혜를 조곤조곤 알기 쉽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자식을 잘 키운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부모들이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엄격한 아버지,
무관심한 아버지,
친구 같은 아버지
당신은 어떤 아버지의 존재인가요?
저자는 아버지의 존재를 ‘엄격한 아버지’, ‘무관심한 아버지’, ‘친구 같은 아버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친구 같은 아버지는 이상적인 아버지로 분류될 수 있으나, 자칫 잘못하면 만만하게 보일 수 있고, 무관심한 아버지는 최악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자녀와 관계된 일에 적당히 눈감아 줌으로써 사춘기의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엄격한 아버지도 필요조건으로 아이의 잘못된 행동과 습관을 단호하게 제어하는 데 좋다고 말합니다. 무관심한 아버지는 최악의 유형의 분류할 수 있지만, 때로는 자녀와 관련된 일에 적당히 눈을 줘야 할 때 적당한 무관심이 아이들의 내면을 성숙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부드럽고 단호한 아버지’는 이 세 가지를 더한 것으로 아이의 말에 충분히 귀를 기울여 주고, 미숙함으로 일어난 일을 눈감아 주며, 잘못된 행동을 단호하게 가르쳐 주는 이상적인 아버지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돌아보면, 나는 아이들에게 민주적인 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모든 것을 아이들과 대화로 결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내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녹음기를 숨겨두고 하루 종일 집안에서 오가는 대화를 녹음해 들어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내 목소리가 가장 많이 들렸고 대부분이 이래라저래라하는 잔소리였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나를 참아주는 격이었습니다. 나는 머릿속으로만 민주적인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P.70, 아버지의 존재 중에서)
저자는 녹음 소리를 듣고 나는 이러이러한 아버지가 되겠다는 다짐은 때로는 판단을 흐리게 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아버지의 실수나 부재 시에도 건강하게 잘 성장하는 아이들이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되, 부모나 아버지로서 너무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는 아버지를 잘 모릅니다. 어머니를 통해서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완벽한 분은 아니었더군요. 다만 아버지를 통해 사람은 살면서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버지의 아들이기에, 아버지의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울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P. 71, 아버지의 존재 중에서)
세상에 상처 없는 영혼은 없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부모라고 해도 크고 작은 상처를 지니고 있게 마련입니다. 이 상처가 잘 치유되지 않으면 부모가 된 이후에 자녀에게 그 상처를 대물림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부모가 되려면 자신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아이에게
어머니는 첫사랑
“모든 아이에게 부모는 첫사랑입니다. 특히 엄마에게 아이는 배 속에 열 달 동안 품은 또 다른 ‘나’입니다. 첫사랑과 또 다른 ‘나’가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가 보통 사람의 인생 이야기입니다.”(-P. 53. 멀어지는 연습으로 더 가까워집니다 중에서)
첫사랑은 대상이 누구든 헤어지기 싫은 존재입니다. 엄마와 아이 역시 항상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모성이 강한 엄마는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엄마 말을 잘 듣지 않은 3~4세 무렵부터는 부모의 태도는 ‘warm & firm’ 즉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방식으로 점점 독립을 시키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동물계에서 어미는 일정 시기가 되면 매정하리만치 새끼를 떼어내듯이, 인간도 성장 과정에 따라 자녀한테서 멀어지는 연습을 하라고 합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애착을 100으로 보았을 때 사춘기에 30%, 성년이 되었을 때 30%, 결혼하였을 때 30%씩 단계적으로 멀어지는 연습을 하라고 권합니다. 나머지 10%로는 완전히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을 쾅 닫고 걸어 잠그는 아이에게
할 말이 산처럼 많아도 참아야 한다?
”청소년기의 반항은 ‘나도 할 말이 있다’는 뜻입니다. 보란 듯이 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거나, 입을 꾹 닫아버리는 것, 날이 선 말로 쏘아붙이거나 문을 걸어 잠그는 것, 가끔은 격한 말을 쏟기도 합니다. 이 모든 반항의 표현은 ‘나도 할 말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P.133, 아이의 반항은 부모에게 온몸으로 건네는 신호 중에서)
아이의 마음을 닫게 하는 부모의 말은 바로 ‘시끄럽다’입니다. 보통 말문이 막히면 ‘시끄러워’라고 하는데, 이 한마디로 정적이 흐르고 대화는 끝이 납니다. 아이는 그 말을 “엄마는 너의 말을 듣지 않겠다”라는 선언으로 받아들입니다. ‘시끄럽다’가 뾰족한 칼이라면, 지나치게 교훈적인 말은 무거운 바위와 같아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스트레스와 절망감을 줌으로써 아이가 '엄마, 아빠하고는 대화가 안 되겠다'고 체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항하는 아이와 대화를 할 때 부모는 ‘참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할 말이 산처럼 많아도 참아야 한다고 저자는 충고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아이의 말을 듣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우울과 불안증으로 힘들어하는 아이와 상담하면서 “집에서 너와 말이 통하는 사람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저으면서 “그래도 모모와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습니다. 모모는 집에서 키우는 개였습니다."(-P.153, 화도 건강한 아이가 냅니다 중에서)
가출하는 청소년들의 사연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집에서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짐 안에서 찾을 수 없으니 밖으로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화도 건강한 아이가 낸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화를 낼 때 가장 중한 것은 ‘화’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고 합니다. 흔히 화를 내면 나쁜 사람이고, 화를 참는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화는 몸의 자동적인 반응일 뿐으로 그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지 않게 잘 다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화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심리학자 마샤 리네한의 ‘주의 돌리기’와 ‘이완하기’를 들고 있습니다. 주의 돌리기는 화가 날 때 그 자리를 떠나기, 친구에게 전화 걸기, 일기 쓰기 등을 통해 즉각 화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이완하기는 숨을 크게 내쉬기,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걷기, 강아지와 놀기, 그림 그리기, 라디오 듣기 등 오감을 이용하여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으로 화를 누그러뜨리는 자기만의 방법을 개발하여 사용하라고 권합니다.
내 생각을 빼고
온전히 몰입해서 들어라
”의대 교수 시절, 나는 업무에 불성실한 후배에게 나만의 방식으로 화를 표현했습니다. 일단 침묵합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평소 쓰지 않는 존댓말로 업무 지시를 내립니다, 그러면 후배들은 ‘이근후가 화났다’로 알아듣고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살펴봅니다. “(-P.163, 부모가 화를 낼 때 중에서)
이 정도로 절제된 화를 내려면 고도의 수행이 필요하겠지요.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는 전생부터 화를 내지 않는 수행을 부단히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말을 미루어 보면 저자는 화가 났더라도 자식들에게도 완곡하게 화를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흔히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라고 하지요. 아이들은 부모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우게 되니까요.
부모의 말 한마디는 아이의 인생을 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 달라고 저자는 충고합니다. 대화의 기본은 말하기보다는 많이 들어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말을 들어준다고 하면서도 속으로 대꾸하는 말을 생각하느라 제대로 듣지 않는 것이 부모의 속성입니다. ‘내 생각을 빼고 온전히 몰입해서 듣기’라야만 대화의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괜찮은 부모가 되기 이해서는
부모가 함께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당신은 괜찮은 부모인가?” 하고 자문자답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곧 저 안으로부터 “아니오!”라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못했으며,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고 내 생각대로 결정하기가 일쑤였고,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때로는 큰소리로 벌컥 화를 내곤 했습니다.
효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노력하여 효자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괜찮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수행하고 연습을 해야겠지요. 이 책이 세상에 좀 더 빨리 나와서 젊은 시절에 읽었더라면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괜찮은 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아버지들이 꼭 한 번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