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열차를 바꿔 타고 2시간여 걸리는 만남의 장소에 가기 위한 긴 여정에 오른다. 달갑지 않은 노령이라는 탓에 타자마자 비어놓은 좌석 중 한자리에 몸을 맡긴다. 스쳐가는 차창에 지난 두 주일의 아픔과 그리움이 비쳐진다. 안타깝게 떠난 친구 김광찬이 사무치도록 그립다.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도 한 순간 아프지만 대체적으로 곧 잊어버리는 게 우리들 연륜의 업보다. 하지만 고인이 된 친구는 소인이 숨을 쉬고 있는 그날까지 잊을 수 없는 크나 큰 인물이다. 뒤늦게 70을 넘어 나름대로 나라를 위한 시민운동에 참여하며 만난 그는 확고한 의식과 불굴의 행동을 보여준 투사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필두로 좌파세력의 극렬한 행위로 위기에 처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2017년에 결성된 “나라지킴이 고교연합”의 초대 사무총장이었다. 소인은 2년 뒤 들어가 매주 토요일에 갖는 집회와 수시로 열리는 회의에서 마산고 68학번의 고인과 밀접한 관계를 다져가며 많은 것을 배웠다. 60을 훌쩍 넘은 백발의 고교졸업생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헌신적인 투쟁이 윤석렬 정권탄생에 큰 보탬이 되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윤대통령이 당선 되자마자 고교연합 창시자이자 초대회장이었던 경기고 60학번 김일두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아버지처럼 모셨던 회장님이 상가를 떠나던 날 서럽게 울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2주 전 금요일 밤 집에서 자다 혼수상태로 병원에 실려 간 채 5일 만에 자랑스러운 친구는 눈도 한 번 못 뜨고 폐렴으로 아끼고 사랑하던 회장님 곁으로 갔다. 사고가 나기 바로 전 주의 목요일 트레킹 때문에 소인은 더욱 고인을 잊을 수 없고 아울러 깊은 회환에 빠져있다. 회장님을 기리기 위해 소인이 주동이 되어 그분의 호를 따 만든 “우양회”는 매달 셋째 목요일 트레킹 행사를 갖고 있다. 그날 의정부 시청에서 송추입구까지 걸었는데 친구한테는 대단히 무리했나보다. 부인이 상가에 온 지인들한테 그렇게 얘기했다는 걸 듣고서 무척 마음이 아팠다. 그를 떠나보낸 후 큰 아들내외가 저녁을 마치고 난 뒤 가자고 한 카페에 들어가니 친구의 모습이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타고 다가온다. 힘든 산행을 마치고 들어가 닥쳐올 비극도 모른 채 정겹게 노닥노닥 거렸던 바로 그 장소다. 지난 이틀 동안 많이 내린 비도 친구의 넋을 달래려고 하늘도 서럽게 울었던가보다. 고교연합이 분열되어 회장님과 친구가 제대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현실이 뼈저리게 원망스럽다. 머지않아 구국의 영웅으로 모셔지리라는 걸 의심치 않는다. 더 나아가 늘 반짝이는 샛별로 남아 자라나는 후손들의 길잡이가 되리라고 믿는다.
서글프지만 희망에 찬 회상의 뱃길을 저어 나가다보니 어느덧 종착점에 닿았다. 역 출구에 닿으니 선업이가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려대학교 동문인 친구의 장례식장 첫날 오후에 나타나 추모의 정을 함께 나누었었다. 비가 온 뒤 상큼하고 해맑아 게다가 선업이를 보니 친구가 더욱 그립다.
모두 14명이 모였다. 9차례 항암치료를 마친 박재진의 부인이 남편과 같이 나타나 자리를 한층 빛내준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힘든 치료를 잘 견디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다. 선업이의 안내로 지난 달에 입주한 실버타운을 둘러본다. 아기자기한 풍광을 담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공원에 자리 잡고 있는 매력이 넘치는 보금자리다. 타운을 살핀 후 곧 바로 청명산으로 오른다. 길이 풍성하고 짙은 숲으로 덮여있어 사색하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한 여름에 오고픈 산이다. 만개했던 아카시아가 사라져가면서 내뿜는 마지막 남은 향기가 상긋한 심신에 파고든다. 산행을 마치고 허기에 찬 배를 움켜잡고 예약해놓은 음식점에 2시경 들어선다. 터지도록 들고 마실 만큼 기분은 좋았으나 계산서가 생각보다 엄청나 화가 날 정도다.
4시경 집으로 가려고 나선다. 여느 때와 같이 즐겁게 헤어지려고 웃어보지만 웃는 게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 모두가 애처롭게 떠난 친구처럼 보인다. 한스럽고 처량한 마음에서 벗어날 그때는 언제일까?
함께한 친구들: 김순화, 김승열, 김영후, 김종하, 박재진 부부, 방건영, 서규석, 조시행, 이승권, 이원식,이재묵, 최선업, 최원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