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63,16ㄹ-17.19ㄷㄹ; 64,2ㄴ-7; 1코린 1,3-9; 마르 13,33-37
+ 찬미 예수님
지난 한 주간동안 안녕하셨어요? 오늘은 대림 제1주일입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가 지나고 어느덧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성탄 대축일까지 22일 동안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를 지내게 됩니다.
대림시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두 가지 오심을 기다리는데요, 이 두 가지 오심은 사도신경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 오심에 해당하는 구절은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입니다. 2천 년 전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 첫 번째 오심입니다. 그럼 두 번째 오심은 어떤 구절일까요?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입니다.
우리가 성탄 트리를 만들고 성탄 노래를 들으며 첫 번째 오심을 기다린다면, 두 번째 오심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오심에 대한 준비로 “깨어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잠들어 있는 것’은 영적 무기력과 방종을 의미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를 ‘사람을 마비시키는 영, 보지 못하는 눈, 듣지 못하는 귀’(로마 11,8)로 살아가는 것이라 표현합니다. 이에 비해 ‘깨어 있는 것’은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쓰고’(1테살 5,8)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두 번째 오심을 아마도 눈으로 직접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더 이상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므로, 우리는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주님의 두 번째 오심 즉 재림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떠나신 분께서 이미 ‘하느님 나라에 계시다’고 말하는데요, 우리 눈에는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 세상의 질서를 초월한 영역에서 구원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 셋을 두었는데, 어머니 팔순 때 세 아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가장 값진 선물을 해 드리려 마음먹었습니다. 첫째 아들은 큰 집을 사드렸습니다. 둘째 아들은 고급 승용차를 사 드렸습니다. 셋째 아들은 어머니께서 성경을 읽고 싶어 하시는데, 눈이 침침해서 못 읽으신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앵무새를 사서 10년간 훈련을 시켜서 성경을 외우게 했습니다. 마침내 이 앵무새가 성경 전체를 외우게 되자, 이 새를 어머니께 선물했습니다.
어머니는 누구의 선물을 가장 좋아하셨을까요? 우선 첫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생각이 부족하구나. 내가 이 큰 집이 무슨 필요가 있니? 청소하느라고 애만 먹는다.” 이어서 둘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비싼 차가 왜 필요하니?” 두 아들을 나무라고 나서 어머니는 셋째 아들을 칭찬했습니다. “막내야, 네가 에미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구나. 네가 보내준 닭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께서 눈이 너무 침침하셔서, 그 귀한 새를, 닭인 줄 알고 요리해서 맛있게 드셨습니다.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앵무새를, 10년이나 훈련을 시킨 앵무새를, 복날 마트에 가면 세 마리에 만 9천9백 원하는 닭인 줄 알고 잡아먹으셨으니 말입니다.
막내아들이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우리도 선물을 하고 나서 속상할 때가 있는데요, 두 가지 경우에 가장 속상할 것 같습니다. 하나는, 막내아들의 경우처럼 내가 정성을 다해 한 선물의 가치를 상대방이 몰라주고 함부로 대할 때이고요, 다른 하나는, 내가 정성과 희생으로 한 선물을 상대방이 당연하게 생각할 때 섭섭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가족, 이웃, 피조물, 세상, 그리고 나 자신 역시 주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나에게 주신 ‘나’라는 선물과 내 삶의 역사, 내가 맺은 인연이 정말 귀한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선물들의 귀한 가치를 알아보고 있는지, 그것을 함부로, 혹은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라는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모두를 주신 것도 모자라 당신 자신을 선물로 내어 주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 오시는 예수님이시고, 우리가 영성체 때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주님이라는 선물의 가치를 얼마나 알아보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성찰해 봅니다.
지난 주일에, 제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해에 이주민들을 위한 영어 미사를 준비하던 때의 일을 말씀드렸는데요, 그 일이 있은 뒤 신학교로 발령받기 전까지 동창인 이상욱 신부가 주임으로 있던 본당에서 대림과 성탄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때 이상욱 신부가 저더러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하기에 제가 이탈리아에서 보고 온 걸 교우들께 말씀드렸는데요, 성탄 구유를 본당에서 만들지 않고, 교우들 가정에서 하나씩 가정 구유를 만들어 봉헌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구유들을 성탄에 제대 앞에 전시하고 그 한 가운데에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 성 요셉을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안심하세요. 올해는 안 합니다. 그때 너무들 부담스러워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과자로 구유를 만들기도 하셨고, 레고로 만든 집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유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혼자 만들어 온 것이었는데요, 아빠 와이셔츠 곽을 연두색 포장지로 싸고 밖에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예수님, 작지만 예수님의 구유가 되고 싶어요. 제 마음에 오세요! 김 엘리사벳 올림.”
저는 이 글을 읽고 깜짝 놀랐고 망치로 가슴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내가 구유가 되기에 합당치 않다고,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드리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학생은 너무도 당당하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님, 작지만 예수님의 구유가 되고 싶어요. 제 마음에 오세요!”
우리 모두 예수님의 구유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알고 있지만, 나의 부족함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에 의지하면서, 이 대림시기에 나를 주님의 구유로 내어드리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서 쉬시도록, 나를 통해 당신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시도록, 나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시도록 주님의 구유가 되어드려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선물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는 예수님께 우리도 스스로 귀한 선물이 되어드리도록 준비하는 대림시기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첫댓글 어린이 성가 "예수님 어서오세요" 라는 성가가 생각 납니다.
1절은 "예수님 어서오세요~~" 라고 시작하며, 이어지는 2절은 " 친구여 어세오세요~~" 라는
가사로 바뀝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예수님에서 친구로 친근해짐을 느끼게 합니다.
이번 성탄에는 신부님 특강을 들으며, 제 맘에도 구유를 만들어 볼 수 있겠지요?
맞아요 그런 성가가 있지요~ 딱 어울리네요
그렇게 되면 좋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