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 좋은 생각
2012.8월호
독:2012.7.24
․ 숲 전체가 지역구고 다람쥐, 고라니, 산개구리, 굴참나무, 매화, 노랑붓꽃은 지역 구민입니다. 아침부터 샛노란 꾀꼬리가 현란한 소리로 숲을 깨우고, 산비불기도 오전 내내 볼멘소리를 하다갔습니다. 오후에는 뻐꾸기 소리가 한가한 시간의 빈자리를 채욱, 밤에는 소쩍새가 처연하게 울었습니다. 이들의 민원을 나는 시로 답해야 합니다. 밤꽃 향기가 산기슭을 밀고 내려올 때, 향기를 실어 나르던 바람이 내 살을 가만히 만지고 싶어할 때, 자주감자꽃 핀 언덕을 오를 때, 우박 때문에 다친 사과나무들이 낙담할 때, 동네의 별이란 별이 모두 몰려나와 나를 찾을 때, 나리곷이 혼자 피어 할머니와 뒷마당을 지킬 때, 장맛비 쏟아져도 채송화는 피고, 태풍이 산을 휩쓸고 가도 상사화가 꽃 피는 일을 멈추지 않을 때 나는 그들의 존재를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시로 전하려 합니다. -도종환
․ -아기 다람주의 첫 나들이
,다람쥐는 눈 뜨면 가장 먼저하는 일이 세수다. 돌 위나 한적한 나뭇가지를 세숫터로 정한다, 먼저 앞발을 양손 삼아 얼굴을 위아래로 쓸어내린 다음 목과 귀 주변을 훔쳐 낸다. 붉은 혀를 날름날름 내밀어 얼굴에 골고루 침을 바른다. 깔끔한 세수에 이어 등과 발, 고리털까지 가지런히 쓸어내리며 단장한다. 앞발이나 뒷발이 닿지 않는 곳의 털을 고를 때는 관도 요가 자세를 취한다. 몸단장을 마친 뒤 바짐없이 하는 행동이 있다. 뒷발을 고정한 채 허리를 쭉 펴고 앞발을 들어 올리는 스트레칭이다. 그렇게 뭄을 푼 뒤 하루를 시작한다.
․ 동물들은 허투루 소비하는 시간이 없다.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새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조차 주저 없이 내던진다.
4월 초순 딱따구리가 머물다 더난 빈 둥지에 다람쥐 하나가 뽀송뽀송 마른 낙엽을 물어 옮기기 시작했다. 아마 새끼를 낳아 키울 폭신한 바닥 재료로 삼을 모양이다. 6월 70일만에 어린 다람쥐 하나가 보금자리 밖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어미는 번발치에 서서 아기 다람쥐들이 보금자리를 나서는 모습을 까치발하고 바라보았다. 토실토실한 아기 다람쥐와 달리 어미는 많이 여위었다.
․ 야구공을 탐낸 소년
홈이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아 앉자마자 파울 볼 하나가 위태롭게 튕겨 올라 내 다리 사이에 정확하게 꽂혔다. 다음 주말 이 공을 가지고 아들에도 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1학년 짜리 사내아이가 허둥지둥 내 앞으로 왔다. 200워늘 불숙 내밀었다. 안판다고 돌아섰다. 내게 평새 이런 행운이 또 올 것 같지 않았다. “안 되지, 안 되고말고!” 그런데 그 녀석이 도 찾아왔다. 100원을 더 올려 내밀었다. 주머니의 돈을 다 긁어모은 듯했다. 기어이 공을 차지하고 말겠다는 눈빛이었다.
“공이 그렇게 갖고 싶니?”
“저 야구 선수 될 끼라예.”
“차비는 있니?”
“걸어갈 끼라예.”
“집이 어딘데?”
“복현동”
열 정거장도 넘는 길을 걸어가겠다고?
․ 군대 훈련 중에 전투 준비 태세 훈련이 있다. 새벽에 사이렌이 울리면 전쟁시처럼 출동 준빟는 훈련이다. 어둠 속에서 장비와 물자를 챙겨 정해진 장소로 가야 한다. 장병들이 방독면을 쓰고 다니는데 이병만 안 썻다
“방독면이 어디 있나?”
“방독면이라는 분이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병 주대는 완전 군장 한 채 연병장에 집합했고 해 질 녘까지 방독면은 무기다라고 외치며 구보했다.
․ 일하는 사람들은 월급날이 빨리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었겠지만 나는 우러급날이 한 달에 두 번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전문-나태주
․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장석주의 <대추 한 알>
․ 들
올라갈 길이 없고
내려갈 길도 없는 들
그래서 넓이를 가지는 들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어
더 넓은 들- 천양희-
․ 캐비넷에 숨긴 딸 아이
일요일에 면사무소에 이하러 가면 아이를 데려갔다. 면장님이 보여 캐비닛에 밀어 넣었다. 캐비닛 문이 열리더니 딸아이가 샐쭉거리며 “엄나, 나만 여기 계속 있으라고?”
면장님과 눈이 마주치자 손을 곱게 모으고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인사하더니
“엄나, 나 여기 더 있을게.” 하는 게 아닌가. 면장님이 허허 웃으며.
“이리 나와 보렴. 할아버지랑 과자 사러 가자.며 데리고 갔다.
“엄마, 이제 나가도 돼?” 하더니 면장님 손을 잡고 쪼르르 나갔다.
․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 때, 방법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 지역별 편의점 인시 상품
서울 시내 1500여점 편의점에서 한 달간 판 상품 분석 결과 사무실과 술집이 많은 강남구에선 숙취 해소 음료와 남자양말, 학원이 많은 노원구는 삼각 김밥, 고시생이 많은 관악구는 도시락이 가장 많이 팔렸다.
․ 광대 의사(글감)
알록달록한 가운을 입고, 청진기 대신 허리에 작은 지구본을 단다. 가운 한쪽 주머니에는 안마기를, 또 다른 주머니에는 오리처럼 꽥꽥 소리가 나는 호루라기를 넣는다. 양쪽 주머니에 기다란 풍선을 붙이고 마지막으로 빨간 코를 끼우면 회진 준비 끝.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병실로 가는 이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아동 병원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광대 의사들이다. 광대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행복을 배달단하. 그들은 고요한 병실에 찾아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동물 소리를 흉내 내거나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웃음을 준다. 이른바 ‘마음 개방 수술’이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수술로, 고통과 상처로 꽉 닫힌 마음을 열고 그 안에 미소가 흐르게 한다. 그들은 환자들이 요청하면 중환자실, 응급시르 수술실에도 찾아간다. 환자들이 통증을 잊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손잡아 주고, 짧은 공연이나 노래도 해준다. 또 오랫동안 환자를 간호하느라 지친 보호자들이 쏟아 내는 넋두리도 들어주며 따듯한 위로를 건넨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이 가득한 병원이라도 광대 의가가 가는 곳마아 웃음이 넘친다. 광대 의사들은 몇 날 며칠 한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가 “반짝반짝 작은 별”노래를 따라 부를 때, 우울증에 빠진 아이가 손뼉 치며 웃을 때, 아파서 울던 아이들이 잠시나나 고통을 잊고 치료받을 때 자신이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지 깨닫는다. 한번은 백혈병에 걸려 투병하는 여섯 살 베일 리가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 부모의 요청으로 찾아간 광대 의사는 베일 리가 집에서 돌보던 동물 이름을 넣어 즉석에서 노래를만들었다. 마라카스와 우쿨렐레로 화음을 넣어 재미있게 노래를 불러 주었지만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런데 몇 주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난 베일리는 가장 먼저 광대 의사를 불러 그동안 꾸준히 들려준 노래를 모두 기억한다며 고마워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누군가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위로와 치유를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