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꿰뚫는 눈' - 야간투시경
작성일: 2019-11-26 14:08:25
빛을 증폭하는 광증폭에서 물체의 적외선을 감지하는 열영상까지
현대전에서 전투는 사람의 맨눈으로 멀리 볼 수 없는 야간에도 벌어지며, 어두운 동굴이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건물 내부에서도 벌어지는 등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런 어려운 조건에서 사용하는 것이 야간투시경(Night Vision Device), 줄여서 야시경으로 부르는 광학장비다.
워리어플랫폼의 "어둠을 꿰뚫는 눈" 야시경
6월 20일 국제 평화단에서 남수단으로 파병되는 한빛부대에서 경비를 담당할 특전사 요원들이 착용할 워리어플랫폼 장비 시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워리어플랫폼용 장비를 착용한 대원 3명이 각종 장애물을 이용한 사격술을 선보였고, 그들이 착용한 장비도 전시되었다.
이날 전시된 장비 중 시연에서 제외된 장비가 있었다. 바로 야시경이다. 그러나, 야시경은 워리어플랫폼의 중요한 장비 중 하나이며, 그 중요성도 매우 높다. 야시경이 없다면, 야간을 이용한 작전은 거의 불가능하며, 적의 습격에 제대로 대처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야시경은 어떤 목적에서 어떻게 사용될까? 그리고,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남수단 파병부대 경비요원들이 사용할 헬멧 장착형 야시경 [사진 : 최현호]
나를 드러내지 않고 적을 찾는다.
야시경은 많은 영화나 게임 속에 등장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낯선 장비는 아니다. 주로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장면이 많기에 그런 부대들의 전용 장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종류만 다를 뿐이지 전투를 치르는 모든 군인에게 필요한 장비다.
미군은 일반적인 병력은 현재 AN/PVS-14와 같은 단안식(Monocular) 야시경을 사용하며, 특수부대원들은 AN/PVS-15이나 AN/PVS-31 같은 양안식(Binocular) 야시경을 사용한다. 이런 양안식은 야시경 렌즈가 2개를 사용하기 때문에 시야가 더 넓어진다. 이보다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것으로는 GPNVG-18이 있는데, 야시경 튜브가 4개로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야시경은 헬멧에 장착하는 것도 있지만, 헬멧과 소총 모두에 장착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따로 분리해서 별도의 관측 장비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만큼 활용도가 높다.
영화나 게임 등에 등장하는 특수부대원들이 사용하는 야시경. 사진은 GPNVG-18 [출처 : special-ops.org]
야시경은 야간에만 사용하는 장비가 아니다. 햇빛이나 인공적인 조명이 없는 환경에서도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동굴이나 터널 안을 들 수 있다. 즉, 인간의 맨눈으로는 주변 환경을 인식하기 어려울 때 사용하는 장비다.
주변 환경을 확인하고, 적을 먼저 보는 것은 전투에서 승리를 위한 필수요건이다.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상황인식(situational awareness)이라고 부른다. 앞선 상황인식은 야간이나 폐쇄된 공간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인간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 그걸 위해서 과거에는 횃불이나 조명을 사용했다. 하지만, 조명은 적을 찾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한다. 적이 가진 무기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면 적을 찾기도 전에 먼저 죽을 수도 있다.
적외선 조명을 사용한 초기 야시장비
이런 위험한 수단을 대신할 것이 1930년대에 개발되었다. 조명을 비추되,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빛, 적외선을 사용하는 것이다. 적외선을 비추고 이를 볼 수 있는 광학장비는 1930년 미국 RCA사의 블라디미르 K. 즈보리킨이 발명했다. 적외선 조명을 비춰 반사광을 보기 때문에 능동식(active) 야시경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덩치가 크고 비싸 실용적이지 못했다.
미 육군 병사들의 개인장비인 AN/PAS-14 야시경 [출처 : Military.com]
독일은 1935년부터 군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독일 AEG사는 StG.44 소총에 장착할 수 있는 Zielgerät 1229 밤피어(Vampire)를 개발했다. 독일군은 일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인원에게만 이 장비를 지급했다. 장비는 조준경과 적외선 조명, 조명과 조준경용 배터리로 구성되었다.
독일의 밤피어 시스템을 들고 있는 영국군 [출처 : warhistoryonline.com]
조명은 텅스텐 조명을 사용했지만, 근적외선만 통과시키는 필터를 사용하여 밖에서는 빛이 보이지 않는다. 적외선 필터가 달린 조준경은 조명에서 나온 근적외선의 반사광을 사수가 볼 수 있도록 변환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구성된 장비들은 상당히 크고 무거웠지만, 야간에 저격수를 찾아 제거하는 데 효과를 거뒀다.
미국도 밤피어와 유사한 장비를 개발하여 M1 카빈에 장착하여 운용했다. 이런 장비가 달린 M1 카빈은 M2/M3 스나이퍼 카빈(Sniper Carbine)으로 불렸고,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밤피어와 M3 스나이퍼 카빈에 달린 장비는 0세대(Gen 0)로 분류한다. 밤피어 같은 능동식 장비는 조명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볼 수 있는 간단한 장비만 있다면 위치가 노출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미약한 빛을 증폭시키는 광증폭식(image intensified) 야시경이 1960년대에 개발되었다.
미약한 빛을 증폭시키는 광증폭식
광증폭식 야시경은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영상 증폭관(image intensifier tube)를 통해 전자로 변환하고 이를 증폭시켜 화면으로 보여준다. 광증폭식 야시경은 여러 세대로 발전했다. 처음 등장한 장비는 1세대(Gen I) 장비로 분류하는데, 전자 증폭률은 1,000배, 운용 가능한 조도는 0.1 lux 이상이었다. 기술의 미비로 증폭이 3단으로 이루어져 장비 크기가 컸다. 대표적인 장비로 AN/PVS-2가 있다.
광증폭식 야시경의 주요 부품인 영상 증폭관 구조 [출처 : photonis.com/]
1970년대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크기가 작아진 2세대(Gen II) 장비가 등장했다. 2세대 장비는 미세전자 증배기(Micro Channel Plate)가 개발되면서 영상 증폭 단계를 1단으로 줄였기 때문에 크기는 작아지면서도 영상의 질이 향상되었다. 2세대 장비는 전자 증폭률이 20,000배, 수명은 2,500시간, 운용 조도는 0.001 lux 이상이었다. 대표적인 장비로는 AN/PVS-5가 있다.
1세대 광증폭식 야시경에 속하는 AN/PVS-2를 장착한 M16 소총을 들고 있는 미 육군 [출처 : public domain]
1980년대에는 이보다 발전한 3세대(Gen III) 장비가 개발되었다. 3세대 장비는 전자 증폭률이 30,000~50,000배, 수명은 7,500시간 이상, 운용 조도는 0.0001 lux 이상으로 이전 세대보다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대표적인 장비로는 미군의 AN/PVS-7, AN/PVS-14, 그리고 우리 군의 단안형 야간투시경 PVS-04K 등이 있다.
일부 회사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4세대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지만, 미 육군이 정의한 4세대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은 아직 없다. 현재 사용되는 야시경 세대 구분은 미 육군의 야간 장비 및 전자센서 담당 부서인 NVESD가 정의한 것이다.
광증폭식 야시경의 세대별 선명도 비교 [출처 : binocularsguru.com]
NVESD는 1990년대 말에 미세전자 증배기에서 이온 차단막을 제거한 이른바 ‘필름 없는 튜브’를 4세대 장비의 특징으로 정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온 차단막을 제거하자 성능이 저하되는 문제가 생겼고, 업체들은 차단막의 두께를 줄이는 것으로 성능을 개선하고 있다. 이런 장비들을 Gen III+로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광증폭식 야시경은 빛을 증폭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를 증폭한 뒤 인이 들어간 형광 스크린을 통해 보이기 때문에 원래 색깔 대신 녹색으로 보인다. 녹색은 인간의 눈에 가장 편한 색깔이기도 하다.
광증폭식 야시경은 세대가 발전했더라도 아주 미약한 빛이라도 없다면 쓸 수 없다는 근본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 병사들은 AN/PVS-2와 같은 Gen I 야시경을 별빛을 증폭시킨다는 뜻에서 스타라이트(Starlight)로 부르기도 했다.
사물이 방출하는 적외선을 감지하는 열상장비
인공적인 조명도 없는 동굴이나 건물 내부에서 광증폭식 야시경은 무용지물이다. 그렇다고 Gen 0처럼 적외선 조명을 비출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기술은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절대영도(-273.16℃) 이상의 모든 물체가 내뿜는 적외선을 감지하여 이를 시각화 시킨 것이다. 적외선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보다 낮은 파장의 전자파다.
이런 장비를 열영상장비(Thermal Observation Device) 또는 열상장비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열상장비가 낮에도 은폐한 적을 찾는 등의 목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야시경이 아니라 별도의 전자광학 장비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야간에 그 쓰임새가 더 많기 때문에 야시경의 일종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
대표적인 열상장비로는 미군이 사용하는 AN/PAS-13 열상조준경(TWS)이 있다. 이 열상조준경은 다시 세대별로 AN/PAS-13B/C/D/E로 발전했고, 각 세대별로 다시 M16/M4 소총용 AN/PAS-13(V)1 LWTS, M249와 M240B 기관총용 AN/PAS-13(V)2 MWTS, 그리고 M24 저격소총이나 M2HB 중기관총용 AN/PAS-13(V)3 HWTS으로 구분한다.
레이티언이 개발한 AN/PAS-13 TWS의 세 가지 제품군. [출처 : nitevis.com]
광증폭식과 열상식의 결합
기술의 발전은 야시경의 두 가지 갈래인 광증폭식 야시경과 열상장비를 섞은 제품을 만들어냈다. 미 육군이 2019년 말부터 초기 배치를 시작할 ENVG-B(Enhanced Night Vision Goggle-Binocular)는 양안식 광증폭식 야시경과 열상장비를 합친 형태다.
이 퓨전 장비는 안개, 연막, 먼지 등의 상황에서 시야가 제약되는 광증폭식 야시경의 단점을 보완하여 열상 능력이 더해져 야간 및 주간에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범용 장비로 만들어졌다. ENVG-B는 자체적인 영상 획득 외에도 다른 장비가 획득한 영상을 무선으로 수신 받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미 육군에서 2019년부터 배치 예정인 광증폭 야시경과 열상장비가 결합된 형태인 ENVG-B [출처 : 미 육군]
이상으로 초기 능동식 야시경, 광증폭식, 열영상 그리고 광증폭과 열영상의 결합까지 다양한 종류의 야시경 기술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야시경은 인간의 맨눈을 보완할 필수적인 장비이기 때문에 우리 육군이 추진하고 있는 워리어 플랫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워리어 플랫폼이 전천후 전투 장비가 되기 위해서는 신뢰성 높은 야시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야시경은 특수부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육군이 밤을 지배하는 전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추세에 뒤지지 않는 야시경을 확보하기 위한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글 :최현호 군사전문가 <육군 블로그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