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1] 윤준식(尹俊植) - 만세 반석 열린 곳에 5. 울산 거쳐 제주도로 - 1
1 어떻게 해야 교회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던 중 때 마침 공기총을 팔아 교회 발전을 기하라는 통일 산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는 즉시 고향 형에게 편지를 띄웠다. 10만 원만 보내 달라는 간곡한 내용이었다. 며칠 후 승낙하는 회신이 날아왔다. 그 돈으로 총을 구입하여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허나 생각과는 달리 한 달이 지나도록 한 자루도 팔리지 않았다.
2 아내와 같이 온종일 팔러 다니다 공치고 돌아오면 온몸에 맥이 확 풀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돈을 주지 않았는데도 아내는 끼니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밥을 지어온다. 그리고 아기과자까지 사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보 어디서 쌀을 구해 밥을 지어오오?” “당신은 알 필요가 없어요!”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3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총을 팔기 위해 모 학교를 방문하여 교무실 문을 열고 막 들어서려는데 교무실 안에 아내가 서있지 않는가! 깜짝 놀라 창 너머로 자세히 보니 아내는 손에 볼펜과 세숫비누를 들고 이 선생 저 선생 앞에 가서 사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4 나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사람처럼 한동안 멍하니 서있다가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 모르고 있었구나! 아내의 피 땀을 먹고 있었다니!” 금세 쓰러질 듯 현기증이 일어났고 가슴속에서는 자신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5 저녁때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태연히 방안에 들어섰다. 나는 아내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낮에 있었던 일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또 한 번 고생하는 아내에게서 의외의 격려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동안 말을 잃은 채 아내를 더 고생시켜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
6 아내에게서 용기를 얻은 나는 다시 고향으로 찾아가 형님께 사정 말씀을 드리고 10만 원을 얻어 왔다. 그 돈으로 우선 점포를 얻고 대대적인 판매 선전에 들어갔는데 의외로 성과가 좋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실감 났다.
7 아무튼 방 하나를 얻어 쓰던 울산에서 장사를 하여 30만 원짜리 전셋집을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소문은 경남 각 지역에 알려졌고 식구들은 울산지역을 찾아와 교회의 활동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8 더욱이 선생님께서 친히 순회 오셔서 격려해 주시고 가셨을 때는 그 기쁨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지역본부를 구하고 1개월이 못되어 협회에서 인사 공문이 날아왔다. 그날이 1968년 6월 10일, 새 임지는 제주도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9 이제 겨우 숨을 쉬고 일하게 되었는데 또 어디로 가란 말인가! 혈전을 치른 적지에서 포연이 사라지기도 전, 또 작전 명령을 받고 출정해야 하는 병사나 다름이 없었다. “무슨 이유로 울산을 떠나란 말인가?” “하필이면 왜 제주도로 가서 일하란 말인가?”
10 나는 전의(專意)를 상실한 병사처럼 보따리를 챙겨 들고 울산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제주도에는 갈 용기가 생기지 않아 안양 형님 댁에 가서 며칠을 쉬고 있었다. 허탈감이 가슴속에 엄습해왔다. “여보, 협회장님의 명령대로 제주도에 가세요. 그곳에 가서 또 일하면 하늘이 역사해 주실 거예요” “당신 혼자 가시오. 나는 가지 않겠소” 나는 뜻 앞에 세움 받은 이후 처음으로 명령을 거스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