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5회에 걸쳐 우리의 모교-원래 경북고등학교-가 탄생하던 때의 비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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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등학교가 태어나던 시절의 이야기(1)
당시엔 동란이라고 일컫던 그 전쟁이 난 바로 그 무렵 우리나라는 학제가 변경되었다.
학년이 시작되는 때가 가을에서 다시 봄철인 사월로 되돌아오고, 6년제 중학교가 각각 3년제가 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그러한 학제 변경에 관한 법령은 1949년 연말에 마련이 되어 1950년도 신년 초에 법령이 공포되었다. 그래서 그해 봄부터 시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그렇게 법부터 발표했다고 바로 시행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지 못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일제히 실제 시행되기는 전쟁으로 세상이 들끓는 와중이었던 1951년 4월부터였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학교가 대구와 부산으로 피란 와 있는 상황에서 시행되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정책의 시행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때의 전황은 그 전해 연말,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1년 새해 벽두에는 다시 서울의 시민과 수도 수호병력은 서울을 버리고 후퇴를 해야 했다.
이른바 일사후퇴!
그러한 때의 봄에 학제 변경이 시행된 것이다.
그런데 대구에서는 전쟁 나기 직전인 1950년 6월까지 이미 신 학제를 단행했다.
중고 분리와 동시에 전쟁이 터진 것이다.
말하자면 신 학제를 다른 지역보다 1년 앞서서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울도 공립학교부터 막 개교와 입학시험 준비를 하다가 전쟁을 만났으므로 모든 것이 무산되고 피란길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지방이야 이루 말할 필요조차도 없다.
그런데 이 글에서 ‘중고 분리’라는 말을 썼지만 원래 법대로라면 6년제 중학교를 단순히 학교별로 3-3년제 중고로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법대로라면 당시의 현재 6년제 중학교는 3년제로 끊고, 3년제 고등학교를 별도로 개교하는 것이어야 했다.
비록 학교 명칭은 중학교와 동일한 고등학교 명칭을 쓰든가 다른 것을 새로 작명해 쓰든가 상관이 없었다.
무슨 뜻이냐 하면 6년제 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 학교 그 교실에 그대로 재적해 있는 상태에서 구제 사학년을 이름만 고등학교 일학년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중 고등학교의 이름이 같고 같은 캠퍼스에 존재하고, 운영하는 기관이 같더라도 실제 학교는 별개여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