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박세미 시인의 첫 시집 『내가 나일 확률』 및 관련 시·해설·출판사 서평
1. 작가 정보
이름: 박세미
출생: 1987년 서울
학력: 강남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건축역사이론비평석사
등단: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내가 나일 확률』(2019), 『오늘 사회 발코니』(2023)
2. 시집 『내가 나일 확률』 개요
출판사: 문학동네 (시인선 121권)
수록 시편 수: 51편
시적 특징:
간결한 언어로 시간·공간의 밀도를 높임
비극적 인식을 경쾌한 어조로 표현
진부하지 않게 슬픔과 고통을 응시
“내가 나일 확률”을 끊임없이 되묻는 윤리적 자문
3. 시 세계의 주요 특징
정서:
부서지고 작아진 마음의 시학
조심스럽고 섬세한 감정의 기록
실패하고 좌절한 자의 고백과 회복
형식·기법:
반복과 음률적 리듬 (“뜀틀 하나를 넘으면 다시 뜀틀”)
관찰자이자 발화자의 이중성
“굼벵이의 속도” 같은 느린 리듬과 무기력한 상상
주요 이미지:
발바닥과 돌: 자신만의 슬픔, 삶과 죽음의 경계
굼벵이, 먼지: 작고 실패한 존재의 상징
뜀틀: 반복되는 자아 도약의 실패와 의지
발밑을 지키는 돌: 비가시적이나 핵심적인 자기 존재의 상징
4. 시 해설(박상수 평론)
시적 자아의 정체성 탐구
“나”가 “나일 확률”을 탐색하는 내적 여정
“작아져서 선명해진” 존재로서의 자아 인식
부서진 마음의 연대
“굼벵이의 자세, 마음, 속도”를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들과의 공감
사라지지 않되, 눈에 띄지 않게 존재하려는 윤리적 발화
슬픔의 예감과 회복의 움직임
“슬픔이 오기 전에 아플 거예요” – 예감된 상처를 먼저 끌어안음
아픔 이후, 웃음과 선명해진 감각을 통한 회복의 가능성
5. 대표시 ① 「몇 퍼센트입니까」
주제:
정체성의 불확실성
자아 탐색과 타자 이해 사이의 긴장
반복되는 실패와 도전(뜀틀 이미지)
핵심 구절:
“내가 나일 확률”, “당신이 당신일 확률”
“뜀틀 하나를 넘으면 다시 뜀틀”
“내가 흔들린다 / 당신이 흔들린다”
6. 대표시 ② 「빛나는 나의 돌」
주제:
자아를 지탱하는 은밀하고 사적인 기억 또는 신념
사명과 배반, 존재의 윤리와 감정 사이에서의 동요
상징:
발바닥 아래 돌:
자아를 지탱하는 중심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진실
사명을 배반함:
손으로 돌을 던짐 → 내면적 죄책, 상실, 슬픔
그러나 사명은 ‘내게 부여된 것이 아님’이라는 자각으로 전환
마무리 이미지:
“서로의 발바닥을 맞댐으로 사랑에 빠지자”
돌을 감추던 발을 펼쳐 보이는 행위 → 자기 개방과 타인과의 만남
7. 시인 산문 해설 요약
발밑의 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상태를 버티게 해주는 중심
타인에겐 무가치하지만 나에겐 전부인 것
사명을 배반한 순간:
스스로 돌을 깨뜨리며 자책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있어도 꼭 해야 할 일은 없다”는 자각
사랑의 가능성:
사명을 넘어서 사랑이 오면 “졸도”할 만큼 감정적으로 무장해제
두 발바닥을 포갠다는 은유로 관계의 본질을 상상
8. 시집의 전체적 정조
윤리와 슬픔의 시학
말하지 않음, 비약 없음, 과장 없음
내면의 서늘한 진실을 숨김없이 고백함
작고 사소한 존재들에 대한 애도와 연대
자신과 비슷한 타인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
“우리, 그렇게라도 살고 만나자”는 작고 우아한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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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미 : 1987년 서울 출생. 강남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건축역사이론비평석사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내가 나일 확률』(2019, 문학동네), 오늘 사회 발코니(2023, 문학과 지성)이 있다.
산문집 <식물 스케일(2025)이 있다.
시와 건축에 매달려 산다. 건축전문출판사인 도미노프레스를 운영중이다.
2020년 제11회 김만중문학상 신인상
출판사 서평
#한국시 #여성시인 #첫시집 #부서진마음 #막막한마음 #그럼에도두손을건네는
내가 나일 확률
우리의 호흡이 일치하게 되었을 때
너와 내가 만날 가장 달콤한 각도
문학동네 시인선 121번째 시집으로 박세미 시인의 『내가 나일 확률』을 펴낸다.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간결한 언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증폭시켜내는 특유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음을, “비극적 인식을 경쾌한 어조로 노래하며 시적 대상의 슬픔과 고통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끌어안는다”는 평가를 받으며 등단한 시인 박세미. 자신만의 보폭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로 쌓아올린 51편의 시를 데뷔 5년 만에 묶어 첫 시집으로 내어놓는다.
건축과 건축이론을 공부한 시인의 독특한 이력에 비추어보았을 때, 우리는 그의 첫 시집이 귀하고도 드문 지성과 감성이 어우러지는 장이 되리라는 예감을 하게 되고, 정교하고도 정직한 시편들을 읽어나가다보면 어느새 기대와 예감을 초월하는 ‘시의 집’에 당도해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모든 곳에 있겠다”(「먼지 운동」)는 나직하고도 믿음직한 문장처럼 이번 시집에는 부서지고 작아진 나-부서지고 작아진 마음을 담담하게 응시하고 정직하게 말하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박세미의 시는 우리 주변에 꼭 한 명은 있을 법한 ‘친구’를 떠오르게 한다. 나의 장점과 단점을 기분 나쁘지 않게 가장 정확한 말로 조율하여 조곤조곤 직언을 해주는 친구. “모든 게 엉망진창”(「잠옷」)인 것 같은 날 잠시 쉬어가고도 싶은 집이 되어주는 친구. 혹여 우리가 싸우게 되더라도 “남겨진 온기만 기억”(「인간 세 명」)해줄 따듯한 친구. 그래서일까? 나 이하도 나 이상도 보여주지 않겠다는 염결함으로 쓰인 시는 ‘내가 나일 확률’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되돌아보고 기도하고는 당신에게까지 나아간다.
몇 퍼센트입니까 / 박세미
숨어 있는 문이 있다는데
항상 열쇠를 쥐고 다녀야 한다는데
배우가 되려면 목구멍 깊숙이
눈물을 잘 흘려야 한다는데
당신 옆을 지나칠 때 우연히
내 걸음이 놓친 것들 나를 통과한 말들
진심이 진심에 덮여 사소해질 가능성
내가 나일 확률
뜀틀 하나를 넘으면 다시 뜀틀
낮과 밤의 경계에서
누군가는 동물이 된다는데
몸속을 뒤집어 가장 순결한 보호색을 띤다는데
당신이 당신일 확률
뜀틀 하나를 넘으면 다시 뜀틀
그릇이 깨지는 날엔 손이 가벼워졌다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다는데
스스로 밧줄을 쥐고 있을 가능성
당신 얼굴을 그리고
손가락으로 외곽을 문지르면
당신이 흔들린다
내가 흔들린다
뜀틀 하나를 넘으면 다시 뜀틀
나는 뜀틀과 넘어진다
작아져서 선명한, 사소해서 단단한
‘부서지고 작아진 마음 전문가’의 혼자서의 낭독회
박세미의 시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이는 부서지고 작아진 마음들과 사람들을 가만가만 지켜보아온 자의 염려에서 비롯한 윤리일 터.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귀한 존재는 되지 않아야겠다.”(「피규어」)는 마음가짐과 “가벼운 것을 가장 무서워”(「화이트아웃」)할 줄 아는 마음, “다시는 결심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아무것도 하기 싫어」)는 화자들은 모두 한 번쯤은 “굼벵이의 자세, 굼벵이의 속도, 굼벵이의 마음, 굼벵이의 식욕, 굼벵이의 일상”(「물성」)이 되어본 사람들일 것이다. “기어서 기어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오늘도/ 실패라서”(「물성」) 쓸쓸하기까지 한 나날을 보내고, 무생물-사물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시간들을 통과한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가끔 박세미의 시가, 목소리가 거침-없이 파고드는 이유는 “왈칵 쏟아진 오늘 같은”(「아무것도 하기 싫어」) 것에 미리감치 “곧 아플 겁니다.// 슬픔이 오기 전에 아플 거예요. (…) 아프고 나면, 정말 아플 겁니다./ 스스로를 믿는 힘으로”(「꾀병」) 우리의 아픔까지 끌어안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눈물을 모두 소진하면 웃음이 나”(「전구의 형식」)듯, 진정으로 아프고, 앓고 나면 비 온 뒤의 날씨처럼 선명해지는 감각이 찾아오듯, 그 마음은 ‘이제 내가 모르는 것들’(「블랭크」)을 향해 혼자서의 낭독회를 준비한다.
빛나는 나의 돌 / 박세미
발밑을 지키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돌이 빛나는 유일한 자리죠
언어가 끝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것은
인간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발바닥으로 돌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배반합니다
내 손으로 내 돌을 깨뜨려 옆 사람을 겨냥했다가
수면제를 삼키듯 증거를 인멸하면
새까맣게 타버린 돌은 잠 속으로 들어와
주로 악몽을 짓는 데 쓰입니다
기도의 형식은
맞댄 두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꿇어앉아 하늘을 향해 포갠 발바닥에 있습니다
거기엔 빛나는 돌이 놓여 있죠
하지만
누군가 내게 와서
서로의 발바닥을 맞댐으로 사랑에 빠지자,
말한다면 나는 기꺼이
졸도할 것입니다
두 발바닥을 활짝 펴고서
작아져서 더욱 선명해지고, 사소해서 더욱 단단한 나와 마음과 시. 박세미는 그 어떤 포즈나 허언 없이, 때로는 관찰자의 마음으로 때로는 취재의 시선으로 시를 지어 건넨다. 갈라지고 때묻은 마음의 벽에 새하얀 젯소를 덧칠해 시를 건네는 마음. 굼벵이의 속도이지만 한없이 부드럽고 연한 몸짓으로 다가드는 시.
박세미의 시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우리가 원래 되어야 하는 것이 되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단다. 부서지고 작아진 우리. 실패하는 굼벵이 같고 먼지 같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슬픔에 빠져 있는 우리. 그럴지라도 나는 끝까지 나로 남아 나를 지키면서 살아갈게.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할게. 너도 너로 남아, 너를 잘 지키면서 살 수 있기를.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스스로에게 속는 힘으로” 또 “우아한 몸짓”(「꾀병」)으로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러다가 우리 다시 만나. 열렬하게 꼭 만나.
박상수 시인ㆍ문학평론가 / 시집 해설 ‘부서지고 작아진 마음 전문가’ 부분
발밑을 지키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강가에서 햇볕에 달궈진 자갈 하나를 발밑에 두고 그 위에 오래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까맣고 매끄러운 돌이었다. 공교롭게 발바닥 중앙에는 약간 패인 공간이 있어 자갈 하나를 숨기기에 딱 알맞았다. 아무도 찾지 않고, 찾는다 해도 빼앗을 만한 것도 아니며, 빼앗긴다고 해도 절대 무방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을 내가 잘 지키고 있다는 어떤 안도가 들었던 것이다. 돌의 온기가 온몸을 타고 도는 것 같았다. 마치 새카맣게 타버린 누군가의 심장 같기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태어난 나의 두 번째 심장 같기도 한 작고 단단한 슬픔이었다. 울지는 않았지만, 내 생에 이런 돌이 하나 있다면, 세계에 내보이지 않고 내 발밑에 고이 숨겨둘 수 있는 돌 하나가 있다면, 나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대부분 견딜 수 없어하는 것은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상태다. 그러니 나를 살거나 죽게 하는 돌 하나를 잘 지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 여겼다. 손은 사회적이고 지능적이어서 돌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발밑에 두는 것이 맞다.
사명을 배반합니다
신을 예배하는 자세, 유칼립투스의 어린잎, 애인이 끼워준 반지, 사랑하는 개와의 산책, 부모의 치부, 서서히 뭉뚝해지는 재능, 오래된 연필의 냄새, 미래에 보게 될 아이의 눈동자 같은 것들이 나의 돌이었다. 돌은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그 어떤 것도 돌이 될 수 있다. 하루를 품든 수년을 품든, 종류와 크기에 상관없이 나를 살게 하거나 죽게 하는 것이면 됐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 하나가 정말 돌 하나에 불과해질 때가 있다. 발은 요령이 없고 포기도 쉽기 때문에, 나는 나의 사명이라고 일컫던 것들 위에서 자주 내려왔다. 때로는 손으로 집어던지고 깨뜨려 사명을 배반한 스스로를 겨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어떤 사명을 내게 강요한 적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있어도 꼭 해야 하는 일은 없다.
서로의 발바닥을 맞댐으로 사랑에 빠지자
그러니 사명은 스스로 몰래 가두어 둔 사랑일지도 모른다. 하여 이 시의 마지막에서 나는 사명이라는 명목에서 벗어난 사랑을 하기 위하여 졸도를 선택했다. 졸도는 견디기 힘든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육체의 최후 방책일지도 모르지만,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상태를 견디는 것, 돌을 숨겨두었던 두 발을 활짝 펴고 쓰러지는 행위에는 결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꺼이 서로의 발바닥을 맞대고 나면, 아마 또다시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박세미 시인 / 서울지방변호사회보 2019.02.07
드디어 커튼이 걷히고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시인이 첫 낭독회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박세미의 첫 시집을 마치 ‘처음 보게 될 아이의 눈동자를/ 그리워해’온 것처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이 아이는 나일 것이다.’(「w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