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지리산 피아골 그리고
직전마을-삼홍소-구계포교-피아골대피소-직전마을
(왕복 8km, 식사시간포함 4시간40분)
그리고 순천만 갈대와 망덕포구
2010년 10월 30일 토요일
직전마을을 벗어나자 마자 피아골로 들어서는 길은 부드럽고 평탄한 오솔길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던 길을 벗어나 다리를 건너면서 강렬한 단풍의 현란함이 다가온다.
그동안 게을렀던 모습을 꾸짖기라도 하듯
새빨간 단풍잎은 우리 가슴 속 깊이에 까지 들어와 자리잡는다.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것은 우리만이 아닌가보다
피아골 계곡을 따라 산책로같은 등산로가 대피소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구색을 갖추지 않은 편안한 옷차림의 산책객들도 더러 눈에 뜨인다.
여름내 시원해 보이던 초록빛이 노오랗게 변해가는 평범한 잎들 사이에서
유난히 빠알간 애기단풍잎이 많은 곳이 피아골이다.
서로 다른 색깔의 잎들이 어울린 모습이 더 아름답다.
우리들도 서로 다른 모습을 인정해주고 다양한 모습으로 어울릴 수 있는건데
왜 그리 서로 닮아가기를 원했었는지...
삼홍소 위에 걸쳐있는 다리를 지나니 계곡의 단풍잎들은 절정을 이룬다.
최근들어 산행길에는 과일과 음료수를 서로 권하는 다정한 부부들의 모습
서로 격려해주며 바위길을 오르는 가족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과 어울려 더욱 흐믓해보인다.
요샌 바뀐 말이 있다는데...
손잡고 다정하게 다니면 부부이고 멀리 떨어져서 다니면 불륜이란다.
삼홍소 상류에는 넓적한 바위들과 작은 폭포와 소가 이어진다.
부부가 함께 걸으면서 가끔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또 가끔은 각자 상념에 젖는다. 그래도 상대방이 이해해줄거라는 편안함이 있다.
우리들은 얼마만큼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았을까!
어느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남편인 자기가 포도를 달라고 하니까 없다고 하더니
아이가 공부하다가 나와서 포도를 달라고 하니 주더라고... 남은 포도가 한 송이 뿐이어서...
그래서 며칠동안 서운했었단다. 소외감도 느끼고,
아내는 남편과 자기를 동일하다고 생각해서
자식을 사랑하는 맘이 우선이었던 자기의 맘과 남편의 맘이 같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그런 작은 서운함이 벽을 쌓다가 결국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까지 가는 사람도 있다.
구계포교는 출렁다리이다.
그 위로 이어지는 구계포계곡은 지금까지 아기자기하던 계곡과 사뭇다르다.
낙엽을 가득 품고 있는 소를 곁에 두고 아침 일찍 급히 준비해온 점심을 펼쳐놓는다.
돼지고기를 듬북 썰어넣은 김치찌개와 버섯전이 다이지만 꿀맛이다.
그래, 부부가 사는 것도 이런 맛일게다.
부족한 듯 해도 그 부족함 속에서 편안함과 풍성함을 맛볼 수 있는...
지난 30여년간 왜 그리 상대방에게 원하는 게 많았던지...
정갈해보이는 뱀사골과 달리
여기저기 넘어지고 부러진 가지들이 그대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피아골은
내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고 외쳐댄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벌써 4km를 걸어 피아골 대피소이다.
대피소 주변은 얼마 전에 내린 서리로 잎들이 많이 말라서
그다지 고운 단풍잎이 보이지 않는다.
점심을 먹느라고 곳곳에 빼곡히 앉아있는 산행객들의 모습이 더 울긋불긋하다.
이젠 어디를 정복하기 위해 산을 다니지 않는다.
이 정도면 자연 속에서 뿜어내는 신선함을 듬북 받은 것 같다.
다시 천천히 걸어내려오니 마침 축제기간이라고 갖가지 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피아골 입구에서 주차를 못해 고민할 때 주차하게 해 주어
고마움을 되갚는 의미에서 도토리묵과 막걸리를 주문한다.
짧은 산행 덕에 멀지 않은 곳의 순천만 갈대밭을 찾아나선다.
갈대 넘어로 보이는 다리 위에는 관광객들로 꽉 차 있다.
자연을 즐기러 온 우리에게는 걸맞지 않는 곳이다.
반대방향으로 걸으니 한적한 시골길이다.
길 옆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더 정겹다.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이 더 좋게 느껴지는 사이가
부부사이 아닌가...
가을 걷이가 한창인 들길을 걸어본다.
서산으로 해도 늬엿늬엿 넘어간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금까지 받기만 원하면서 살았는데
이제 받은 것을 되갚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의 부족함을 덮어주려하고,
외로울 때 곁에 있어주고,
직장일로 속상할 때 같이 맞장구쳐주며 위로해주고,
아플 때 추운 골목길을 달려서 약을 사다주던 그 사랑을 기억하자.
전어가 한창인 구월을 그냥 보냈지만 이제라도 찾아본다. 망덕포구....
역시 제철이 벌써 지난 망덕포구는 한산했다.
무침회에 맥주 한 잔으로 하루의 여행을 마무리한다.
그동안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면서
내 가슴 속 깊이 품은 사랑을 나누면서 그렇게 살아가렵니다.
2010년 10월에
대구에서 신선과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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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는 해와 억새풀이 참 잘 어울리네요. 여전히 함께 산행을 즐기시는 멋진 부부셔요. 가을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틀이 제거랑 안 맞아서 그동안 안 올렸는데... 다녀간 흔적을 남기려고 올렸어요. 늘 전화기만 만지작거려요.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제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 신세도 지면서 살자구... 너무 상대방을 배려하고 생각해주면 그 맘이 제대로 전달 못될 수도 있다구... 근데도 여전히... 가을이 가지 전에 함 봅시다.
제가 그 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봅니다. 매화님의 정다운 댓글을 이제서야 보네요. 한동안 카페를 거의 방임하고 있었군요.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어제 만나뵈서 너무 반가웠어요. 늘 제겐 푸근하고 언니 같아서 마음을 터놓게 되는 선배님~~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