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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독일의 농민 문제
부르주아 정당들과 반동 정당들은, 지금 갑자기 도처에서 농민 문제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에 매우 놀라고 있다. 사실은 오래전에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그들은 놀라야 할 것이다. 아일랜드로부터 시칠리아에 이르기까지, 안달루시아로부터 러시아 및 벨기에에 이르기까지 농민은 인구, 생산 및 정치권력의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서유럽의 두 지역만이 예외이다. 대브리튼 본토에서는 대토지 소유와 대농업이 자영농민을 완전히 구축하였다. 엘베강 동부의 프로이센에서도 동일한 과정이 수 세기 전부터 진행되고 있으며, 그리하여 여기에서도 농민은 점점 더 ‘추방당하고’ 있거나 적어도 정치경제적으로 뒤로 밀려 나가고 있다.(선집6,401)
농민이 정치권력의 한 요소로 자신을 드러내었던 것은, 지금까지는 대부분 농촌 생활의 고립성에 근거하고 있는 그들의 무관심을 통해서일 뿐이었다. 주민 대다수의 이러한 무관심은 파리와 로마의 의회의 부패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전제정치의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다. 그러나 무관심은 결코 극복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이 발생한 이후로 서유럽에서는, 특히 농민의 분할지 소유가 지배적인 곳에서는, 환상을 가진 농민에게 사회주의적 노동자란 partageux 즉 ‘나눠 갖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농민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는 나태하고 탐욕스러운 도시인들이라는 것을 주입함으^로써 이들을 의심하고 증오하도록 만드는 것은, 부르주아아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848년 2월혁명의 막연했던 사회주의적 희망은 프랑스 농민의 반동적 투표에 의해서 급속히 소멸되었다. 자신의 평온을 원했던 농민은, 이제 자신의 추억의 보물창고에서 농민 황제 나폴레옹에 관한 전설을 끄집어내어 제2제국을 창조하였다. 농민의 이 행위가 프랑스 인민에게 어떠한 대가를 요구하였는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 결과로 인해 프랑스 인민은 오늘날까지도 고통받고 있다.(선집6,401-402)
그러나 그때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자본주의적 생산 형태의 발전은 농업에서의 소경영의 생명력을 절단하였다. 소경영은 걷잡을 수 없이 몰락하고 쇠퇴해 갔다. 남북 아메리카와 인도의 경쟁으로 유럽 시장은 값싼 곡물들로 범람하였는데, 그것들은 국내 생산자 어느 누구도 경쟁할 수 없을 만큼 값싼 것들이었다. 대토지 소유자와 소농민은 모두 한결같이 몰락에 직면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토지 소유자이고 농촌 주민이기 때문에, 대토지 소유자는 소농민들의 이해흘 대변하는 전위 투사로 자처하였고, 소농민은−대체로−이 전위 투사를 인정하였다.(선집6,402)
그러는 동안에 서유럽에서는 강력한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성장해 갔다. 2월 혁명 당시의 희미했던 예감과 감정은 분명해지고 확장되고 심화되어, 명확하고 구체적인 요구들을 담고 있는, 매우 과학적인 주장을 만족시키는 강령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계속해서 증가해 가고 있는 사회주의자 대의원들은 독일과 프랑스와 벨기에 의회에서 이 요구들을 옹호하고 있다. 사회주의 정당이 정권을 쟁취하는 일은, 가까운 장래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이 당은 우선, 도시에서 농촌으로 가야 하며 농촌에서 하나의 권력을 형성해야 한다. 사회주의 정당은 다른 모든 정당들에 앞서 경제적 원인과 정치적 결과 사이의 관계를 통찰하고 있으며, 농민의 강요된 벗인 대지주의 양가죽 아래 숨어 있는 늑대의 형상을 오래 전에 간파해 냈다−이러한 사회주의당이, 몰락의 운명에 있는 농민이 산업노동자의 수동적 적대자에서 적극적 적대자로 전화할 때까지 그들을 거짓 보호자의 수중에 가만히 놓아 두어서야 되겠는가? 이리하여 우리는 농민 문제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된 것이다.(선집6,402)
I
우리가 호소할 수 있는 농촌 주민은 매우 다양한 구성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각 지역들마다 서로 다른 구성 방식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와 벨기에처럼 독일의 서부에는, 분할지 농민의 소규모 경작이 지배적인데, 이 분할지 농민의 대다수는 자신의 농토를 가지고 있는 소유자이고 소수가 차지농이다. 북서부−저지 작센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는, 대농과 중농이 우세하게 많은데, 이들은 하인과 하녀, 심지어는 날품팔이 노동자조차 없으면 일을 해나가지 못한다. 바이에른의 일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엘베강 동부 프로이센과 멕클렌부르크에는, 농장 고용인과 머슴과 날품팔이 노동자를 사용하는 대토지 소유와 대규모 경작 지역이 있다. 그 가운데에는 상대적으로 소수이며 계속해서 그 비율이 감소하고 있는 소농과 중농이 있다. 중부 독일에는, 이 모든 경영 형태들과 소유 형태들이 지역에 따라 상이한 비율로, 어느 하나의 형태가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특별히 우세를 차지하는 일이 없이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선집6,403)
그 밖에도, 범위가 상이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경지나 임차한 경지가^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서 가내공업 경영의 지반으로만 사용되고 있는 지역들이 있다. 그리하여 가내공업은 이렇지 않다면 이해할 수 없는 낮은 임금을 확고히 한다. 그리고 이 낮은 임금으로 그 생산물은 외국의 모든 경쟁에 대항할 수 있는 확고한 판로를 확보하게 된다.(선집6,403-404)
이와 같은 농촌 주민 가운데 사회민주주의당은 어떤 부류를 손에 넣을 수 있는가? 물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대략적으로만 고찰한다. 우리는 아주 뚜렷한 형태들만을 끄집어낸다. 지면이 부족하여 중간단계들과 농촌 주민의 혼합에 대한 고찰은 어려울 것이다.(선집6,404)
소농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소농은 모든 농민들 가운데 서유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할 뿐만 아니라 문제 전체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장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우리가 소농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한다면, 우리는 농촌주민의 다른 구성 부분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정할 수 있는 거점을 갖게 될 것이다.(선집6,404)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소농이란, 대체적으로 자신의 가족으로 경작할 수 있을 만큼 크지는 않지만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작지는 않은 약간의 땅의 소유자이거나 차지인을−특히 전자를−일컫는다. 이 소농은, 소(小)수공업자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이지만, 자신의 노동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프롤레타리아와 구별된다. 요컨대 소농은 과거의 생산방식의 잔재이다. 소농은, 자신의 선조들인 농노, 예농 혹은 매우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공물과 부역의 의무를 지니고 있는 자유농과는 세 가지 점에서 구별된다. 첫째, 프랑스혁명을 통하여 소농은 장원 영주에게 바쳤던 봉건적 부담과 노역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또 대부분의 경우 적어도 라인강 좌안에서는 자신의 농지를 자유로운 재산으로서 갖게 되었다. −둘째, 소농은 자치적인 마르크 공동체의 보호와 여기에 참가할 권리를 상실하였으며, 그와 함께 이전의 공동의 마르크를 이용할 수 있는 자신의 몫을 상실하였다. 공동의 마르크는, 일부는 이전의 봉건 영주들에 의해, 일부는 로마법에 입각해 있는 개화된 관료적 입법에 의해 탈취되었으며, 그 결과 현대의 소농은 사료를 구입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역축을 기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마르크 이용의 상실에서 오는 손실이 봉건적^ 부담의 폐지로 인한 이익을 훨씬 초과한다. 자신의 역축을 기를 수 없게 된 농민의 수는 부단히 증가하고 있다.−셋째로, 오늘날의 농민은 이전의 자신의 생산활동의 절반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전에는 자신이 만든 원료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공업 생산물의 대부분을 자신의 가족과 함께 만들어 내었다. 그 밖에 필요한 것은 부락의 이웃들이 조달해 주었는데, 그들은 농사와 수공업에 종사하였고 대개 교환 물품이나 품앗이 노동으로 지불받았다. 가족은, 더욱이 촌락은 자족적이었으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생산하였다. 그것은 거의 순수한 자연경제였으며, 화폐는 거의 필요치 않았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화폐경제와 대공업을 매개로 하여 이러한 상태를 종결지었다. 그런데 마르크 이용이 농민이 생존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었다면, 부업으로서의 공업은 또 다른 조건이었다. 따라서 농민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몰락해 갔다. 조세, 흉작, 상속과 재산 분할, 소송 등은 잇달아서 농민들을 고리대금업자에게로 내몰았다. 부채는, 더욱더 일반적인 것이 되어가고, 각자에게 더욱더 무거워져 갔다.−요컨대, 우리의 소농은 과거의 생산방식의 모든 유물과 마찬가지로 걷잡을 수 없이 몰락해 가고 있다. 그들은 미래의 프롤레타리아이다.(선집6,404-405)
이러한 처지 때문에, 소농은 사회주의 선전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몸에 배어 있는 소유욕 때문에 그는 얼마간은 여전히 그것에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위험에 처해 있는 자신의 땅뙈기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그에게 힘에 겨우면 겨울수록, 그는 더욱더 필사적으로 그 땅뙈기에 매달리며, 또한 그럴수록 그는 토지소유를 사회 전체에 양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고리대금업자와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적으로 보게 된다. 사회민주주의는 이러한 편견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사회민주주의는 몰락해 가고 있는 소농에게, 자기 자신에 불성실하지 않고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선집6,405)
맑스주의 경향의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농업 강령에서 우리는 하나의 실천적 거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강령은 소농 경제의 전형적인 나라에서 나왔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선집6,405)
1892년 마르세유 대회에서 당의 최초의 농업 강령이 채택되었다.(주210)^ 그것은 토지를 갖고 있지 않은 노동자(즉 날품팔이와 머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지방의회에 의해 확정된 최저임금, 반수는 노동자들로 구성되는 농촌 노동재판소, 공유지의 매각을 금지할 것과 국유지를 지방자치체에 임대할 것. 지방자치체는 자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와 임차한 토지 전부를 임금노동자의 사용 금지와 지방자치체의 감독하에 공동경작을 위해 무산 농업노동자 가족들의 연합체에 임대할 것. 대토지 소유에 대한 특별세를 재원으로 하는 연로연금과 폐질(廢疾)연금.(선집6,405-406)
주10) 프랑스 노동자당의 제10회 대회는 1892년 9월 24일부터 28일까지 마르세유에서 열렸다. 대회는 농촌에서의 당의 활동 등에 관해 다루었으며, 농촌 프롤레타리아트와 소농들의 이해에 상응하는 일련의 구체적인 요구들을 포괄하는 농업강령을 채택하였다.(선집6,614)
소농−여기에서는 차지인도 특별히 이 속에서 고려되고 있다−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요구되고 있다. 지방자치체는 농기계를 조달하여 실비로 농민에게 임대할 것. 비료, 배수관, 종자 등의 구입과 생산물의 판매를 위한 농민 협동조합을 설립할 것. 그 가치가 5,000프랑 미만인 소유지의 양도소득세를 폐지할 것. 과도한 차지료를 인하하기 위하여 그리고 토지를 내놓는 차지농과 차지료를 일정률로 분배하는 소작농(métayers)들에게 그들이 이룬 토지의 가치 상승분을 보상하기 위하여 아일랜드의 범례에 따라 중재위원회를 설치할 것. 토지 소유자에게 작물에 대한 차압권을 주고 있는 민법 2,102조를 폐지하여 자라고 있는 작물을 차압할 수 있는 채권자의 권리를 폐지할 것. 농기구, 작물, 종자, 비료, 역축, 한마디로 생업을 위해 농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모든 것에 대해서는 차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할 것. 오래 전에 낡아 버린 일반 토지대장을 개정할 것과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각 지방자치체에 의해 지방에 따라 개정할 것. 마지막으로 무료의 농업 실무교육과 농업 실험장.(선집6,406)
보는 바와 같이 농민의 이해를 위한 요구−노동자를 위한 요구는 여기에서는 당분간 관련시키지 않겠다−는 그리 광범위하지 못하다. 그중 일부는 이미 다른 곳에서 실행되고 있다. 차지농 중재재판소는 명백히 아일랜드의 모범을 따르고 있다. 농민 협동조합은 라인주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토지대장의 개정은 서유럽 전역에서 모든 자유주의자들과 심지어 관료들조차도 항상 품고 있는 선의의 염원이다. 그 밖의 사항들도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질서의 어떤 본질적인 훼손도 가하지 않은 채 실현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단지 강령을 특징짓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 비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반대이다.(선집6,406-407)
이 강령으로 당은 프랑스의 아주 여러 지역에서 좋은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에−식욕은 먹을 때가 되어서야 생긴다는 격언대로−그들은 그것을 가일층 농민의 기호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장래의 프롤레타리아로서가 아니라 소유자로서의 농민을, 사회주의의 일반적 강령의 기본 원칙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이러한 반대에 답하기 위하여, 새로운 실천적 제안에 앞서 이론적 이유 설명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을 통해 몰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몰락에서 소농적 소유를 보호하는 것은 사회주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이제 금년 9월의 낭트 대회에서 채택된 요구들 자체와 그 이유 설명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선집6,407)
그 이유 설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다: “당의 일반적 강령의 문구대로 생산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한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공업분야에서 생산수단은 이미,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형태로서만 생산자들에게 반환될 수 있을 정도로 자본주의적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것, 그러나−적어도 오늘날의 프랑스에서는−농업 분야에서는 사정은 이와 매우 달라서 생산수단 즉 토지는, 아주 많은 지역들에서 아직도 개별적 소유로서 개별 생산자들의 수중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분할지소유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 이 상태가 걷잡을 수 없는 몰락의 운명에 처해 있다(est fatalement appelé a disparaître)고 하더라도 사회주의는 이러한 몰락을 사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왜냐하면 사회주의의 임무는 소유와 노동을 분리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서로 분리된 결과 프롤레타리아화된 노동자의 예속과 빈곤을 낳고 있는 모든 생산의 두 요소들을 동일한 한 사람의 수중에 결합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을 고려하여,
한편으로 대영지를 지금의 무위도식하는 소유자로부터 몰수하여 다시−집단적이거나 사회적인 형태로−농업 프롤레타리아의 소유로 만드는 것이 사회주의의 임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땅뙈기를 소유하고^ 있고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농민을 국고와 고리대금업자, 신흥 대지주의 침해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사회주의의 강제적인 임무라는 점을 고려하여,
차지농과 소작료를 일정률로 분배하는 소작농(métayers)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땅을 경작하는 생산자들 즉 비록 날품팔이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하더라도 그들 자신이 착취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생산자들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보호의 손길을 뻗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을 고려하여−
노동자당−무정부주의자들과는 반대로, 사회 질서를 개조하기 위해 빈곤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 농촌 및 도시 노동자의 조직화와 그들의 공동 노력에 의해서만, 그들의 정부와 입법권의 장악에 의해서만, 노동과 사회 일반의 해방을 기대하는 노동자당−은 다음과 같은 농업 강령을 채택하였는바, 이는 농업 생산의 모든 요소들, 다양한 법적 권원 하에서 국토를 이용하는 모든 활동들을 다음의 공통의 적에 대항한 투쟁에 결합시키기 위해서이다: 토지 소유의 봉건성.”(선집6,407-408)
이제 이러한 ‘고려 사항’들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먼저 생산자들의 자유는 생산수단의 소유를 전제로 한다는 프랑스 강령의 명제는 그것에 곧바로 뒤이어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보충되어야 한다: 생산수단의 소유는 두 가지 형태만이 가능하다는 것, 생산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존재한 적이 결코 없었으며, 공업의 진보에 의해 날이 갈수록 더욱 불가능해지고 있는 형태인 개별적 소유, 혹은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그 자체를 통해 그 형태의 물질적, 지적 전제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공동소유. 따라서 생산수단의 공동체적 소유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뜻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선집6,408)
이와 같이 여기에서는 생산수단의 공동소유가 달성되어야 할 유일한 주요 목표로서 제시되고 있다. 지반이 이미 준비되어 있는 공업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따라서 농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강령에 따르면, 개별 소유는 모든 생산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된 적이 결코 없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그리고 공업의 진보는 그렇지 않아도 개별 소유를 제거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그것을 유지하는 데 조금도 이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의 제거에 이해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그리고 존재하는 한에서는, 그것은 공동소유를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가 그 강령을 인증하는 이상, 강령 전체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이 강령 전체는 낭트에서 인용된 명제를 아주 현저하게 수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강령 전체는, 거기에서 표명된 일반적-역사적 진리를 오늘날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진리일 수 있는 조건들 하에서 비로소 파악하기 때문이다.(선집6.408-409)
오늘날 개별 생산자들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는, 이 생산자들에게 현실적인 자유를 더 이상 주지 못하고 있다. 도시의 수공업은 이미 몰락하였으며 심지어 런던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미 완전히 소멸하였고, 대공업과 고한제도(苦汗制度)(주211) 그리고 파산을 생존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야비한 사기꾼들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자영 소농은 자신의 땅뙈기를 확실히 소유하고 있지도 못하며 또한 자유롭지도 못하다. 그의 집, 그의 농장, 그의 얼마 안 되는 전답과 마찬가지로 그는 고리대금업자에 속해 있다. 그의 생존은 프롤레타리아의 생존보다 더 불안하다. 프롤레타리아는 적어도 때로는 편안한 날을 경험할 수 있으나, 시달리고 있는 채무노예에게는 그러한 날은 오지 않는다. 민법 2,102조를 삭제하라, 노동기구와 가축 등등을 차압할 수 없다는 것을 농민에게 법률로 보장하라, 그러나 이것은, 그가 자신의 가축을 ‘자발적으로’ 팔고,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고리대금업자에게 바칠 수밖에 없으며, 사형 집행의 유예를 얻은 것에 기뻐해야 하는 억압 상태로부터 그를 보호할 수 없다. 소농에게 그의 소유를 보호해 주려는 당신들의 시도는 그의 자유가 아니라 그 예속의 특수한 형태만을 보호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가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상태를 연장시키는 것이다. 당신들의 강령 제1절을 인증하는 것은 여기에서는 전혀 적당하지 않다.(선집6,409)
주211) 고한제도(영어로는 sweating system) 혹은 도급 장인제도는 자본주의에서 독특하게 궁리한 도급제 임금 지불 형태이다. 자본가들은 장인이나 다른 중개인과 임금 상한선에 대해 계약을 맺는데, 여기에서 장인이나 중개인은 자신이 판단하여 개별 노동자와 자기 자신의 임금 할당분을 확정한다. 맑스는 자본 제1권에서 이 직공 감독 제도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MEW 23, 575-577)(선집6,614)
그 이유 설명에 따르면, 오늘날의 프랑스에서는 생산수단 즉 토지는 아주 많은 지역들에서 아직도 개별적 소유로서 개별 생산자들의 수중에 놓여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임무는 소유와 노동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생산의 두 요소를 동일한 한 사람의 수중에 결합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후자는 일반적으로는 결코 사회주^의의 임무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주의의 임무는 생산수단을 공동소유로서 생산자들에게 양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간과하자마자, 상술한 명제는 당장에 우리를 오류로 즉 사회주의는 전답에 대한 소농의 현재의 가상적 소유를 현실적 소유로 전환시켜야만 하며 또한 소(小)차지농을 소유자로, 채무를 지고 있는 소유자를 채무에서 벗어난 소유자로 전환시켜야만 한다는 오류로 이끈다. 물론 사회주의는 농민의 소유의 이러한 가상을 소멸시키는 데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방식은 아니다.(선집6,409-410)
어쨌든 우리는 이제, 이유 설명에 다음과 같은 것을 사회주의의 임무라고 심지어는 강제적인 임무라고 단언할 수 있다는 데까지 와 있다. “자신의 땅뙈기를 소유하고 있고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농민을 국고와 고리대금업자, 그리고 신흥 대지주의 침해로부터 보호할 것.”(선집6,410)
그리하여 이유 설명은 앞 구절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설명했던 것을 사회주의가 수행해야 할 강제적인 의무로 만들고 있다. 이유 설명은 농민의 분할지 소유가 “걷잡을 수 없는 몰락의 운명에 처해 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할지 소유를 ‘보호하는’ 것을 사회주의에 위임한다. 국고, 고리대금업자, 신흥 대토지소유자, 이것들이야말로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러한 불가피한 몰락을 집행할 때 의지하게 되는 도구들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어떠한 수단들로 ‘사회주의’가 이 삼위일체로부터 농민을 보호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나중에 보게 될 것이다.(선집6,410)
그러나 소유에 관한 한 농민만이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차지농과 소작료를 일정률로 분배하는 소작농(métayers)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땅을 경작하는 생산자들 즉 비록 날품팔이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하더라도 그들 자신이 착취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생산자들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보호의 손길을 뻗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적절한’ 일이다.(선집6,410)
여기에서 우리는 이미 아주 기묘한 영역에 들어서 있다. 사회주의는^ 아주 특별히 임금노동의 착취에 반대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프랑스 소작농이 비록 “날품팔이 노동자를 착취한다”−문자 그대로 이렇게 씌어져 있다!−하더라도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강제적인 의무로서 설명되고 있다. 게다가, “그들 자신이 착취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유로 삼고 있다!(선집6,410-411)
일단 경사면에에 들어서게 되면, 얼마나 쉽사리 그리고 유쾌하게 미끄러져 내리는 법인가! 이제 독일의 대농과 중농이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을 찾아와서, 자신들이 하인과 하녀를 착취하는 것을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이 보호해 주도록 당 수뇌부에게 주선해 줄 것을 요청하고, 고리대금업자, 세무관리, 곡물 투기업자, 가축상 등으로부터 “그들 자신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호소할 때−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우리의 농업에 종사하는 대토지 소유자가 그들에게 카니츠 백작을 파견하여(사실 이 사람도 곡물수입의 국영화와 관련하여 그들과 유사한 제의를 제기한 바 있다) 증권거래소, 고리대금업자, 곡물 투기업자로부터 “그들 자신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호소하면서 마찬가지로 농업노동자에 대한 자신들의 착취를 사회주의자들이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누가 보장하겠는가?(선집6,411)
그러나 우리의 프랑스 벗들은 보기와는 달리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 또한 말해야겠다. 요컨대, 상술한 문구는 오직 다음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프랑스 북부에서는 우리 나라의 사탕무우 재배 지역과 마찬가지로 농민들은 아주 부담이 큰 조건에서 순무를 재배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닌 채 땅을 임대한다. 그들은 순무를 특정한 공장에 그 공장이 정한 가격에 팔아야 하고, 특정한 종자를 구매해야 하며, 지정된 비료를 정한 양만큼 사용해야 하고, 더욱이 인도할 때 사기를 당한다. 이 모든 것은 독일에서도 알려져 있다.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이 이러한 부류의 농민들을 보호하려 했다면, 그것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말해야 했다. 문구에 있는 것처럼, 아무런 제한이 없는 일반성으로는 상술한 문구는 프랑스의 강령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일반의 기본 원칙까지 직접적으로 훼손한다. 그리고 이 태만한 편집이 자신들의 견해와는 아주 다른 방^면으로 이용되더라도 그 작성자들은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을 것이다.(선집6,411-412)
동일한 오해가 이유 설명의 결론 부분에도 있을 수 있다. 그것에 따르면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갖는다. “농업 생산의 모든 요소들, 다양한 법적 권원 하에서 국토를 이용하는 모든 활동들을, 다음의 공통의 적에 대항한 투쟁에 결합시키는 것: 토지 소유의 봉건성.”(선집6,412)
나는, 어떠한 나라의 사회주의 노동자당도 농촌 프롤레타리아와 소농 이외에 중농과 대농 혹은 심지어 대토지 차지농, 자본주의적 목축업자, 기타 국토의 자본주의적 이용자까지도 자신의 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고 하는 것에 해해서는 단호히 거부한다. 토지 소유의 봉권성은 그들 모두에게 공통의 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고,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일정한 기간 동안 그들의 편에서 싸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당에 온갖 사회 계급 출신의 개인들이 들어오게 할 수는 있으나, 어던 자본주의적 이해집단과 중간 부르주아 이해집단, 그리고 중농의 이해집단에 대해서는 결코 그럴 수 없다. 여기에서도 분명히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반성에 대한 욕구가 그들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걸고 넘어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닌 것이다.(선집6,412)
그런데 이유 설명 다음에는, 강령 자체에 새로이 포함된 보충이 나타난다. 그것들도 이유 설명과 마찬가지로 경솔한 편집을 드러내고 있다.(선집6,412)
지방자치체는 농기구를 조달하여 그것을 실비로 농민들에게 임대해야 한다는 조항은, 지방자치체는 첫째 이 목적을 위하여 국고 보조를 받고 둘째 기계를 소농들에게 무료로 사용케 해야 한다는 것으로 변경되고 있다. 이렇게 한층 더 양보하더라도, 그것은 그 농토와 경영 방식 자체 때문에 좁은 범위에서만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소농들에게는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선집6,412)
그 다음: “현재의 모든 직접세와 간접세를 3,000프랑 이상의 모든 소득에 대한 단일 누진세로 대체할 것.”(선집6,413)
유사한 요구가 최근 몇 년 사이의 거의 모든 사회민주주의적 강령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특히 소농의 이해 속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은 새로운 것이며 이 점은 그들이 그것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지 못한가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잉글랜드를 예로 들어 보자. 그곳은 국가예산이 9천만 파운드 스털링에 달한다. 그중 1,350만에서 1천4백만 파운드는 소득세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 7천6백만 파운드는 아주 적은 부분만이 영업세(우편, 전선, 인지)에 의한 것일 뿐 거의 대부분은 대중 소비품에 대한 과세, 즉 모든 주민 그러나 주로는 가난한 주민의 소득으로부터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소액이지만 합치면 수백만에 이르는 금액을 부단히 반복해서 빼낸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국가 지출을 메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영국에서 9천만 파운드 전액이 120파운드 스털링=3,000프랑의 소득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직접적 누진세를 통해서 징수한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연평균 축적, 즉 국부 전체의 연증가는 기펜에 따르면 1865~1875년에 2억 4천만 파운드 스털링에 달했다. 그것이 현재에는 매년 3억 파운드가 된다고 하자. 9천만 파운드의 세금 부담은 전체 축적액의 거의 3분의 1을 흡수하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회주의 정부 이외에는 어떠한 정부도 이러한 것을 기도할 수 없다. 사회주의자들이 지배권을 장악하고 있을 경우에는, 이러한 세제 개혁도 일시적이며 아주 보잘것없는 분할 지불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게 하는 일을 실행해야만 한다. 이 경우에 소농에게는 아주 새로운 전망이 열릴 것이다.(선집6,413)
그들은, 농민들이 이 세제개혁을 다소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분간은’(en attendent) 다음과 같은 것을 농민들에게 약속하고 있다: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모든 농민을 위한 토지세의 폐지와 저당잡혀 있는 모든 땅뙈기에 대한 이 세금의 경감.”(선집6,413)
이 요구의 후반부는, 가족만으로도 경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농민의 땅에만 해당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또다시 “날품팔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그러한 농민을 비호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선집6,414)
그리고 또: “들짐승과 물고기, 그리고 자라나고 있는 작물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것 이외의 어떤 다른 제한도 없는 사냥과 고기잡이의 자유.”(선집6,414)
이것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뒷문구가 앞 문구를 파기하고 있다. 대체 현재의 농촌의 들녘 전체에서 각 농가에게 얼마나 많은 토끼, 자고, 가물치, 잉어가 주어질 수 있는가? 기껏해야 농민 각각은 일년에 하루만 사냥하고 고기잡이를 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은가?(선집6,414)
“법적 이율과 관습상의 이율의 인하”−는, 따라서 새로운 폭리 단속법이며, 2천년 전부터 언제 어디에서나 실패를 거듭해 온 경찰 조치를 실행하려는 새로운 시도이다. 소농이 고리대금업자에게 가는 것이 보다 작은 불행이 되는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는, 고리대금업자는 폭리단속법에 저촉됨이 없이 소농의 고혈을 빨아먹는 수단을 언제나 발견한다. 이 조치는 기껏해야 소농을 달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소농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반대로 그것은, 소농이 대부를 아주 필요로 할 때 그가 그 대부를 얻는 것을 방해한다.(선집6,414)
“무료 치료와 의약의 실비 공급”−은, 아무튼 특별히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아니다. 독일의 강령은 더 나아가 무료 의약도 요구하고 있다.(선집6,414)
“징집된 예비병 가족에 대한 복무 기간 동안의 보상”−^은, 아주 불충분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특별히 농민을 위한 요구가 아니다.(선집6,414-415)
“비료, 농기계 및 생산물의 운임률 인하”−는, 독일에서는 기본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것이며 게다가 이것은 주로−대토지 소유자의−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다.(선집6,415)
“토지 개량과 농업생산의 제고를 위한 공공사업 계획의 준비 작업에 즉시 착수할 것”−이것은 모두 막연함과 아름다운 약속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대토지 소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다.(선집6,415)
요컨대, 이유 설명의 놀랄 만한 모든 이론적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농업 강령의 실천적 제안들은, 프랑스 노동자당이 그들 자신이 말한 대로 걷잡을 수 없는 몰락의 운명에 처해 있는 소농들의 분할지 소유를 어떻게 확실하게 보호해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결론도 올바르게 내려주지 못하고 있다.(선집6,415)
II
한 가지 점에서는 우리는 프랑스 동지들이 무조건 옳다: 프랑스에서는 소농에 적대적이어서는 어떠한 영속적 변혁도 가능하지 않다. 다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농민들을 획득하기 위하여 지렛대를 정확한 지점에 대지 못한 것 같다.(선집6,416)
그들은, 단시간 내에 가능하면 다음 총선거를 위하여 소농을 획득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들은 극히 모험적이고 일반적인 확약을 통해서만 그것에 이를 수 있는바, 그 확약을 변호하기 위하여 훨씬 더 모험적인 이론적 고려를 내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좀더 자세히 고찰해 보면, 그 일반적 확약은 자기 모순에 빠져 있으며(걷잡을 수 없는 몰락의 운명에 처해 있다고 그들 자신이 설명하고 있는 상태를 보호하겠다는 약속) 몇몇 조치들은 전혀 쓸모 없는 것이거나(폭리 단속법) 혹은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요구이거나 대토지 소유에도 유리한 것이거나 소농의 이익에는 그다지 의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강령에서 직접적으로 실천적인 부분은, 잘못된 최초의 주장을 스스로 시정하고 있으며 이유 설명 부분의 일견 위험해 보이는 호언장담을 실로 무해할 정도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선집6,416)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보자: 경제적인 처지 전체, 교육, 고립된 생활방식에서 기원하며 부르주아 언론과 대토지 소유자에 의해 길러진 편견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어떤 것을 소농 대중들에게 약속하는 경우에만 우리는 그들을 단시간 내에 획득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들을 엄습하는 모든 경제 세력들로부터 그들의 소유를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이미 현재 그들이 받고 있는 부담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차지농을 자유로운 소유자로 전환시켜 주고, 저당에 시달리고 있는 소유자의 채무를 변제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새롭게 현재의 상태를 필연적으로 낳게 될 상태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농민을 해방시키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사형 집행을 유예해 주게 되는 것이다.(선집6,417)
그러나 단시간 내에 농민을 획득하였다가 우리가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됨으로써 농민이 그 다음에 우리를 다시 떠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이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자신의 분할지 소유를 영구화해 줄 것을 기대하는 농민을 우리는 당원으로 필요치 않는바, 이는 장인으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영구화하려는 수공업 장인을 필요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반유태인주의자들의 편에 속한다. 이들은 반유태인주의자들에게로 가서 그들로부터 자신들의 소경영에 대한 구원을 약속받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 현란한 문구들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그리고 반유태인주의적 천국으로부터 어떠한 바이올린 멜로디가 연주되고 있는지를 경험하게 되면, 그들은 약속은 더 적게 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에서 구원을 찾고 있는 우리야말로 더욱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갈수록 깨닫게 될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반유태인주의자들의 소란스러운 데마고기를 경험하였다면, 낭트에서의 과오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선집6,417)
그렇다면 소농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리고 국가권력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선집6,417)
첫째로, 프랑스 강령의 다음과 같은 명제는 무조건적으로 옳다: 우리는 소농의 불가피한 몰락을 예견하고 있으나, 우리의 개입을 통해서 그 몰^락을 가속시키는 사명은 결코 갖고 있지 않다(선집6,417-418)
그리고 둘째로, 우리가 국가권력을 소유하고 있을 때 소농을 폭력적으로 착취하고(보상을 하든 보상을 하지 않든 간에) 대토지 소유자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는 것도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소농에 대한 우리의 과제의 요체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적 경영과 사적 소유를 협동조합적 경영과 소유로 이끄는 데 있는바, 그것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례와 이러한 목적을 위한 사회적 원조의 제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금도 소농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하겠지만, 그때 가면 당연히 우리는 그것이 소농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을 충분히 갖게 될 것이다.(선집6,417-418)
자신의 나라에 단 하나의 도시−코펜하겐−만을 갖고 있어서 그 도시 이외에서는 거의 농민을 대상으로 한 선전에만 의지하였던 덴마크 사회주의자들은, 약 20년 전에 이미 이와 같은 계획을 내놓았다. 촌락 혹은 교구의 농민들−덴마크에는 큰 개인 농가들이 많다−은 자신들의 토지를 하나의 큰 농장으로 만들어, 공동의 계정하에 경작하고 합쳐진 땅덩이, 현금 출자액, 노동 급부에 따라 수확을 분배하게 된다. 덴마크에서는 소토지 소유가 부차적인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이념을 분할지 지역에 적용하면, 분할지를 합해서 그 전체 면적을 대규모로 경작하는 경우에는 지금까지의 취업 노동력 중의 일부가 남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정확히 이러한 노동절약 속에 대규모 경작의 주요한 이점이 놓여 있다. 이 노동력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일에 쓰일 수 있다. 인접한 대농장으로부터 더 많은 구역을 농민협동조합이 쓰도록 하든가, 아니면 비록 주로 자가소비를 위한 것이라도, 공업 분야에서의 부업을 위한 수단과 기회를 그 노동력에 마련해 주든가 하는 것이다.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경우에나 농민들은 경제적으로 보다 나은 처지에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사회적-일반적 지도가 필요한 영향력을 획득함으로써, 점차적으로 농민협동조합을 보다 높은 형태로 이행시키고 그리하여 협동조합 전체와 그 개별 회원들의 권리와 의무를 대공동체 사회의 여타 부분이 갖는 권리와 의무와 균등하게 할 것이다. 각각의 특별한 경우에 그것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 경우들의 상황과 공권력을 우리가 장악하게 될 때의 상황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마도 이러한 협동조합들에 더 많은 이점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자를 대폭 인하하여 그들의 저당채무 전액을 국립은행이 떠맡게 될 것이며, 대규모 경영을 조직할 수 있도록 공공 자산을 선대하게 될 것이고(이 선대는 특별히 화폐로 국한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필요한 생산물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기계, 인조비료 등등), 그 밖의 다른 이점도 있을 것이다.(선집6,418-4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는 협동조합적 소유와 경영으로의 전환을 통해서만 농민들의 가옥 소유와 경작지 소유를 구원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농민들을 몰락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바로 개인소유에 의해 조건지워진 개인경제이다. 개인경영을 고집한다면, 그들은 가옥에서 쫓겨날 것이고 그들의 낡은 생산방식은 자본주의적 대경영에 의해 구축될 것이다. 사태는 바로 이러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대경영조차도 자본가의 계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농민 자신들의 공동의 계정을 위해서 실시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농민들에게 보여 준다. 이것은 그들 자신의 이익이 된다는 것, 이것은 그들에게 유일한 구원 수단이라는 것을 농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하지 않겠는가?(선집6,419)
우리는 분할지 농민들에게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세로부터 개인소유와 개인경영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단지, 그들의 의지를 거슬러 가면서 폭력적으로 그들의 소유관계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을 약속할 수 있을 뿐이다. 더욱이 우리는, 소농에 대한 자본가와 대토지 소유자의 투쟁이 오늘날에도 가능한 한 부당하지 않은 수단으로 진행되도록 하고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직접적인 약탈과 사기를 가능한 막아 주겠다는 것만을 보증할 수 있다. 이것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다. 발전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서는 그 누구도 어디에서 공정함이 끝나고 어디에서 사기가 시작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공권력이 사기꾼의 편에 서 있는지 사기당하는 자의 편에 서 있는지는 언제나 중대한 차이를 낳는다. 우리는 단연코 소농의 편에 서 있다. 그가 자신의 운명을 더욱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가 결심을^ 했다면 그가 협동조합으로의 이행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심지어 그가 아직 결심을 할 수 없는 경우에도 자신의 분할지에 대해서 좀더 오랜 기간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소농은 우리에게 가담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만이 아니라 당의 직접적인 이익을 위해서이다. 프롤레타리아로 현실적으로 전락하는 것을 우리가 모면케 해 주었고 아직 농민인 채로 우리의 편이 될 수 있는 농민들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적 변혁은 더욱더 빨라지고 쉬워질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도처에서 그 최후의 결말에 이르도록 발전할 때까지, 마지막 남은 소수공업자와 소농이 자본주의적 대경영에 희생될 때까지 우리가 이러한 변혁을 기다려야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농민의 이익을 위하여 공공 자산에서 이러한 의미로 바쳐야 할 물질적 희생은, 자본주의적 경제의 관점에서는 단지 버려진 돈쯤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훌륭한 투자가 된다. 왜냐하면, 그 희생으로 사회 일반의 재조직에 필요한 비용이 열 배 정도는 절약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러한 의미에서는 농민을 훨씬 자유롭게 대할 수 있다. 세세히 파고들어 가서 이러한 방향으로 특정한 제안을 내놓기에 여기는 적당하지 않다. 여기에서는 단지 일반적인 개요들만을 논할 수 있을 뿐이다.(선집6,419-420)
요컨대, 우리가 분할지 소유의 지속적인 보호를 기도하고 있다는 가상을 조금이라도 일으킬 수 있는 약속을 한다면, 당뿐만 아니라 소농들 자신에게 그것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농민들이 자신들의 해방으로 가는 길을 직접 막는 것이며 당을 소란스러운 반유태인주의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한 농민들의 처지는 결코 구원될 수 없다는 것, 분할지 소유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기차가 손수레를 밀치고 나갔듯이 자본주의적 대규모 생산은 무력한 낡은 소경영을 밀치고 나갈 것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는 것을 농민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우리 당의 의무이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불가피한^ 경제적 발전이라는 확신 속에서 행동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경제적 발전은 우리의 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소농의 머리를 일깨울 것이다.(선집6,420-421)
그런데 나는, 낭트 강령의 작성자들도 본질적으로는 나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는 확신을 표명하지 않고서는 이 문제에서 떠날 수 없다. 그들은, 지금 분할지 소유가 나타나고 있는 지역은 공동소유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 자신도 분할지 소유가 소멸할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낭트대회(주212)의 전국 위원회에 라파르그가 작성하여 제출한 보고도 이러한 견해를 충분히 확인하고 있다. 그것은 금년 10월 18일자로 베를린의 사회민주주의자에 독일어로 발표되었다. 낭트강령에 나타나는 모순 투성이의 표현방식을 통해서, 그 작성자들이 실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말하려고 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미 사실로서 나타난 바와 같이, 자신들이 이해받지 못하고 자신들의 언명이 오용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당연히 그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들의 강령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며, 다음에 있을 프랑스대회는 그것을 근본적으로 교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선집6,421)
주212) 1894년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낭트에서는 제12회 프랑스 노동자당 대회가 열렸다. 대회의 가장 중요한 결의는, 농업 강령에 이론적 근거를 부여하는 것을 승인하고 강령을 보충하는 것이었다.(선집6,614)
이제 규모가 보다 큰 농민으로 넘어가 보자. 여기에는 주로 상속재산의 분할의 결과로 그리고 또한 부채와 토지의 강제판매의 결과로, 분할지농민으로부터 이전의 자신의 경지를 고스란히 혹은 더 나아가 그 이상으로 소유하고 있는 대농에 이르기까지, 여러 범례의 중간 단계들이 온전히 나타나고 있다. 중농이 분할지농민들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 중농은 그 이해와 견해에 있어서 분할지농민들과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중농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이미 소농으로 전락해 있는가를 당연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농과 대농이 우세하게 나타나고 있고 영농에 일반적으로 하인과 하녀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는, 사정이 아주 다르다. 노동자당이 무엇보다도 먼저 임금노동자, 따라서 하녀와 날품팔이 노동자의 편을 들어야만 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노동자당은 당연하게 노동자의 임금노예제의 존속을 포함하는 그 어떤 약속도 농민에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농과 중농이 그대로 존^속하는 한, 그런 한 그들은 임금노동자 없이는 해 나갈 수 없다. 따라서 분할지농민들에게 분할지 농민으로서의 자신들의 지속적인 존재를 약속해 주는 일이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라면, 우리가 대농과 중농에게 똑같은 약속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곧바로 배신행위와 같은 것이다.(선집6,421-422)
여기에서 우리는 도시 수공업자들과의 유사점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이미 농민들보다 더 심하게 멸망하고 있지만, 도제와 함께 직인을 고용하거나 도제에게 직인의 일을 시키는 수공업자들도 있다. 이러한 수공업 장인들 중에서 자신의 지위를 영구화하려는 장인들은, 반유태인주의자들에게로 가서 거기에서조차도 자신들이 구원받을 수 없음을 납득할 때까지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신들의 생산방식의 몰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 밖의 장인들은 우리에게 오고 있다. 그러나 다른 모든 노동자들이 겪게 될 미래의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대농과 중농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당연히 우리는 그들보다는 그들에게 예속된 자 즉 하녀와 날품팔이 노동자에 관심을 갖는다. 이 농민들이 자신들의 지속적인 경영에 대한 보장을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절대로 그것을 제시할 수 없다. 그것을 원한다면, 그들이 가야할 곳은 반유태인주의자들, 농민 동맹원들, 온갖 것을 약속하고도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것에 기꺼이 만족하는 그러한 당파들의 곁이다. 이러한 농민들의 늘어가는 부채와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멸망이 이 농민들에게 증명하고 있듯이, 우리는 대농과 중농도 자본주의적 경영과 값싼 해외 곡물 생산의 경쟁 앞에 반드시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경제적 확신을 갖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농장을 협동조합적 경영으로 통합할 것을 권고하는 것 이외에는 이러한 멸망에 대하여 어떠한 것도 행할 수 없는데, 이 협동조합적 경영에서는 임금노동에 대한 착취가 점차로 제거될 것이며, 이 협동조합적 경영은 평등한 권리와 평등한 의무를 갖는 전국적인 대규모 생산협동조합의 여러 부문들로 점차로 전화되어 갈 것이다. 만일 이 농민들이 자신들의 현재의 생산방식이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리하여 그로부터 나오는 필연적인 귀결을 이끌어낸다면, 그들은 우리에게로 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변^화된 생산방식으로의 이행에서 힘이 닿는 대로 그들의 짐을 가볍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직무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들을 그들의 운명에 맡겨 두고, 우리가 일찍부터 공감을 느기고 있는 그들의 임금노동자에게로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발전이 한층 더 완고한 이들에게도 분별력을 갖도록 만들리라는 것을 우리는 기대할 수 있다.(선집6,422-423)
대토지 소유의 경우에는 사정이 아주 단순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적 경영을 공공연하게 보게 되며, 따라서 어떠한 주저도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농촌 프롤레타리아를 목격하게 되는바, 우리의 과제는 명백하다. 우리 당이 국가권력을 갖게 되자마자, 당은 공업에서의 공장주와 꼭 마찬가지로 대토지 소유자를 수탈해야 한다. 이 수탈에 대해 보상이 따르느냐 여부는, 대부분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권력을 갖게 될 당시의 상황과 특히 대토지 소유자 신사분들 자신들의 태도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보상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허용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무리로부터 모두 사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가장 값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 셈일 것이라는 의견을 맑스는 나에게−그것도 여러번!−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사회 전체에 환원된 대농장들을, 그것들을 현재 경작하고 있고 또한 협동조합으로 조직되게 될 농촌 노동자들에게 사회 전체의 통제 하에 이용할 수 있도록 넘겨 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어떠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 어떤 것도 확정할 수 없다. 어쨌든 자본주의적 경영의 사회적 경영으로의 전환은 여기에서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 셈이며, 크룹씨와 슈툼씨의 공장이 보여 주는 바로 그 경우처럼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농업협동조합의 예를 통해서 아직까지도 저항하고 있는 최후의 분할지농민들도 그리고 다수의 대농들도 협동조합적 대규모 경영의 이점들을 납득하게 될 것이다.(선집6,423)
그리하여 여기에서 우리는 농촌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공업 노동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빛나는 전망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엘베강 동부 프로이센 농촌 노동자를 획득하는 일은 우리에게는 시간 문^제,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문제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엘베강 동부 농촌 노동자들과 함께 한다면, 곧바로 독일 전체에 아주 다른 바람이 불게 될 것이다. 엘베강 동부 농촌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사실상의 반(半)농노제적 상태는, 프로이센 융커 지배의 주요한 기초이며 따라서 독일에 특유한 프로이센의 패권의 주요한 기초이다. 점점 더 부재와 빈곤 상태로 몰락하고 있고 국비와 사비로 기생생활을 하고 있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자신들의 지배권에 폭력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엘베강 동부의 융커는, 관료와 군대 장교단이라는 프로이센에 특유한 성격을 낳았고 또 유지하고 있다. 프로이센 국민의 독일제국−이것이 당시로서는 바람직한 민족적 통일의 유일한 형태로서 당분간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해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이 국내에서는 그토록 증오의 대상이 되고 국외에서는 그 빛나는 모든 승리들에도 불구하고 존경을 받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그들의 거만과 편협함과 불손 때문이었다. 이 융커 권력은, 그들이 구 프로이센의 7개 지역 전체에서−제국 영토 전체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지역에서−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수반하는 토지 소유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토지소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설탕공장과 양주공장을 매개로 그 지역의 주요 공업들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독일의 여타 지역의 대토지 소유자도, 대공업가들도 이와 같이 유리한 처지에 있지는 못하다. 전자도 후자도 제국 전체를 좌지우지하지는 못한다. 양자는 넓은 지역에 걸쳐 산재해 있으며, 상호간에 그리고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다른 사회적 요소들과 경제적, 정치적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이센 융커의 이와 같은 권세는 점점 더 그 경제적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부채와 빈곤화는 온갖 국가적 원조(그런데 프리드리히2세 이후로 이 원조는 정규적인 융커 예산에 포함되어 왔다)에도 불구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입법과 관습에 의해 승인되어 오고 있는 사실상의 반농노제적 상태와 이것을 통해 가능하게 된 농촌 노동자에 대한 무제한적 착취만이 몰락하고 있는 융커계층을 간신히 먹여 살리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씨앗을 이 노동자들 속에 뿌리고 그들을 고무시키고 결집시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케 한다면, 융커의 지배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유럽^ 전체에 대해서 러시아 차리즘이 그러했던 것처럼 독일에 대해서 똑같이 야만적이고 약탈적인 요소들을 대표하고 있는 이 대반동 권력은, 터진 거품처럼 한꺼번에 몰락할 것이다. 프로이센 군대의 ‘정예부대’는 사회민주주의적으로 될 것이며, 그와 동시에 그 태내에 완전한 변혁을 품고 있는 권력 이동이 일어날 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엘베강 동부 농촌 프롤레타리아를 획득하는 일은, 독일 서부의 소농이나 심지어는 독일 남부의 중농을 획득하는 일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 여기 엘베강 동부 프로이센에 우리의 결정적인 전장이 있는 셈이며, 따라서 정부와 융커계층은 우리가 여기에 다가가는 것을 전력을 다해 막을 것이다. 그리고−우리가 협박당하고 있듯이−우리 당의 확대를 막기 위하여 새로운 조치들이 취해진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엘베강 동부 농촌 프롤레타리아트를 우리의 선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우리는 농촌 프롤레타리아트를 획득할 것이다.(선집423-425)
1894년 11월 15~22일 집필. MEW 22, 483-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