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여긴 말레이시아입니다. 제가 국제정신치료학회 참석 중에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J의 통화 답변에 난 화들짝 놀랐다. 의사 단체장 선거에 그의 도움을 청하려 전화했던 난 서둘러 끊었다.
2000년 봄으로 기억한다. 당시 J에 대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P 의과대학 후배이며 매사에 조리 정연하며 언행과 품성이 조신하고 신림동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개원하고 있다는 정도였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 J를 조우하게 된 것은 그가 나의 클리닉과 가까운 송파구 아파트단지 입구로 이전 개원할 때였다.
“불교 수행으로 터득한 보편적 지혜를 정신 질환 치료에 접목 응용해보려 합니다. 정신과 영역에서는 처음이지요.” 개원의사로서 어떻게 미얀마 수행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나의 의구심이 풀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년간 송파 지역 재경 동문 대여섯 개원의가 점심식사 모임을 매주 하며 각자의 진료 정보를 토로하곤 했는데, 그가 “저는 이번 주말부터 일 년 동안 폐업하고 사마타(선정)와 위빠사나(통찰) 수행차 미얀마로 갑니다. 일 년 후에 보겠습니다.” 하며 훌쩍 떠나 버린 것이다. 2009년 3월 꽃피는 봄이었다. 대학교수가 선진 의료 연수차 떠나듯 개원의사가 수행하러 병원문을 닫아걸고 오지인 미얀마로 떠난 일탈, 우리 모두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일 년간 수행을 마친 후 그동안 경험한 것을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마음치료 이야기》란 책으로 저술하고 다시 진료실로 복귀하였다.
그 뒤 2013년 늦가을, 그는 거의 2년에 걸쳐 위빠사나 수행을 하러 다시 떠났다. 일반 개원의 관례로는 상상하기 힘든 결행이었다. 그의 집중 수행은 몸과 마음의 작동원리를 탐구하여 불교 심리치료를 정신의학에 적용하여 정신과 환자의 상담 치료를 한다고 했다. 그의 탐구와 수행은 이제 생활화된 듯 항상 명상을 하며 정신과 진료를 하는 그만의 특별한 일상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실제 구룡사와 불광사에서 ‘명상과 자기치유 8주 프로그램’을 18개월 동안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그는 그동안의 통찰을 바탕으로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출발하며 어떻게 사용하는지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생각 사용 설명서》에 기술하고 《정신과 의사의 체험으로 보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불교정신치료 강의》를 연속으로 저술하는 집념을 보였다. 그의 저서 《정신과 의사의 체험으로 보는 사마타와 위빠사나》에 공감한 미국 유명 출판사가 영문판으로 번역 출간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불교텔레비전에서는 그의 고정 칼럼으로 〈J 박사의 마음테라피〉를 방영하며, 학회 초청 강연을 다니기도 한다.
그는 집에서 진료실까지 명상하며 걷는다고 한다. 코에 집중하며 들숨 날숨 호흡을 들여다보는 그만의 명상 기법을 전수해 주어 나름 몇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세속의 리듬 속에 빠진 난 지속할 수 없었다. 식사 메뉴로도 그는 채식이다. 우리와 점심을 먹을 때도 돼지고기 뺀 김치찌개가 일관된 그의 주문이다.
J의 미얀마 파욱 전통의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은 ‘파욱 사야도’ 스승을 위시한 제자 세 분 스님의 가르침이라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그것은 붓다에 이르는 선정을 체험하는 집중 수행이고 좌선 명상의 길이다. 선정을 바탕으로 물질, 정신, 연기, 위빠사나를 경험한 그는 요즈음도 한 달에 일주일씩 시간을 내어 조용한 수행처에서 수행을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들려주곤 한다.
연기수행으로 전생과 미래를 보게 된다. 존재가 일어나므로 태어남이 일어난다. 태어남이 일어나므로 늙음과 죽음이 일어난다는 연기 속 윤회로 보면 미물이라도 쉬이 살생하는 인간 중심의 삶(업보)에서 벗어난다. 절제된 생활 패턴과 정신과 환자 진료, 수행과 저술, 강연을 하는 J와 중년 인생을 같이하며, 불교의 순수 교리와 순환 윤회론을 어렴풋이(?) 느낀다.
선정수행은 마음을 훈련하는 길인데, 그 하나는 내려놓는 훈련이고 이어 집중하는 훈련이다. 대상의 본질을 통찰하는 레이저 빔 같은 집중은 마음이나 정신에 강력한 힘이 난다. 물질수행은 궁극물질로 이루어진 몸에 18가지 구체물질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으로 그 자체의 흐름을 알면 자기 생각으로 보는 것은 없어지고 실존으로 보므로 자아에서 벗어나게 된다. 정신 수행의 극한점은 법열(法悅)인가. 파욱 사야도에게서 아나빠나사띠를 지도받아 그 초선정의 순간에너지를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경험은 너무 강렬해서 늘 생생하게 남아 있지만 생활하는 조건에 따라 희미해지기에 허락하는 범위에서 수행을 계속하리라 한다. 그는 믿음이 모든 행위의 뿌리라며 붓다에 대한 믿음, 파욱 수행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출발했고 또 선정을 경험했지만, 아직 체험하지 못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지혜 부족을 실토하기도 한다.
“선배님, 저의 아들 결혼 주례를 부탁드립니다.” 이태 전 화창한 5월 목련이 피기 시작할 무렵 J는 일상으로 돌아오며 청첩장을 내밀었다. 그가 수행의 길에 전념하는 동안 부인이 애써 온 작품이었다. 불교 신도로 인도에서 사업을 하는 부모 아래 자란 딸과 붓다에 심취한 J 아들과의 혼례, 그 내밀한 관계는 마치 그들 전생의 인연으로 맺어진 듯 시공을 초월한 만남과 화합 같았다. 청춘의 꿈이 가득한 신랑 신부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고 했다. 실제 그들은 한라산이 보이는 제주도 기슭에 그들 부부가 같이 전공한 디자인 솜씨로 집을 짓더니, 멋진 분위기의 렌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바람과 돌과 대화하며 산다.
고요한 법당에 합장하며 큰절을 올리시던 나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생전에 교통사고로 막내 내외와 어린 손자를 일거에 잃고 난 후, 모든 보상금을 내온정사에 공양하고 그들 영령의 극락왕생을 불공하던 어머니. 내가 살던 북한강 변 수종사 초파일 봉축행사에 운길산 중턱까지 숨을 몰아쉬며 오르시더니, 서툰 한글로 또박또박 적은 당신 자손들 명단을 따뜻한 햇살과 봄바람에 취한 대웅전 앞 제일 큰 연등에 걸고는 하염없이 절을 올리시던 어머니. 험한 인생 여정에 쌓였던 근심 걱정을 부처의 자비로운 미소에 의지하시던 나약한 여인의 묵도를 봐 왔던 나는, 그런 중생의 바람과 기도가 순전히 불교의 가치로만 알고 있었다.
의사로서 나의 삶은 과학으로 일관되었지만, J의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과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의 흔적을 가슴에 품고 명상과 참선의 본질에 접근해 보면 어떨까. 버려라, 놓아라, 무아의 삶을 막연히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