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수익 (尹守翼)
생몰년 미상, 본관은 파평(坡平), 고조부는 항(杭)으로 서윤(庶尹)을 지냈고, 증조부는 익수(益修)이다. 조부는 현감(縣監)을 지낸 지언(之彦)이며, 부친은 승지(承旨)를 지낸 면형(勉衡)이다. 1783년(정조 7) 현릉 참봉(顯陵參奉)을 제수받아 벼슬길로 나아가 부솔(副率), 사옹원 주부(司饔院主簿), 감찰(監察)을 지낸 후 외직인 지평 현감(砥平縣監)을 지내고, 순창 군수(淳昌郡守), 한성주부(漢城主簿), 현륭원 영(顯隆園令), 홍산 현감(鴻山縣監)을 지냈다.
1793년(정조 17) 6월 6일 의성 현령(義城縣令)을 제수받아 간은 해 12월 27일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이배(移拜)되었다. 1795년(정조 19)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거쳐 1796년(정조 20) 사직 영(社稷令), 1797년(정조 21) 8월 29일 고성 군수(高城郡守)을 제수받아 12월 24일 시흥 현령(始興縣令)으로 삼았다. 1800년(순조 원년) 위솔(衛率)을 거쳐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내고, 1802년(순소 2) 장원서 별제(掌苑署別提), 1804년(순조 4)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제수받았고, 이어 장악 정(掌樂正)지내고, 1806년(순조 6) 2월 14일 청도 군수(淸道郡守)로 재임 중인 1808년(순조 8) 병세가 중하여 파출되었다,
정조실록
윤수익(尹守翼)은 승지를 지낸 윤면헌(尹勉憲)의 아들이다. 윤면헌은 찬독(贊讀)으로 재임하면서 당시 세손이던 정조를 성심성의껏 교육하였다. 정조는 그에 대해 “내가 학문을 좋아할 줄 알게 해 준 것은 윤 찬독의 노력 덕분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하였고, 후에 그 아들 윤수익을 관리로 발탁해 주었다. 아마도 정조와 윤면헌의 그러한 관계 때문에 정순왕후 김씨가 이렇게 명한 것으로 보인다. 《正祖實錄 16年 9月 11日》
일성록
순조 즉위년 경신(1800) 7월 24일(갑진) 00-07-24[06] 대왕대비전께서 나주목사(羅州牧使) 윤수익(尹守翼)을 가까운 지역의 목사와 서로 자리를 바꾸게 하라고 명하였다. |
◉ 만가보 윤면형, 사료에는 윤면헌으로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