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게와 멍부
일꾼은 특성에 따라 똑게, 똑부, 멍게, 멍부의 4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똑게’는 똑똑하고 게으른 자, ‘똑부’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자, ‘멍게’는 멍청하면서 게으른 자, ‘멍부’는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자를 뜻한다.
어떤 유형이 가장 좋은 일꾼일까? 그것은 주어진 일과 맡겨진 역할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볼 때 큰일을 해야 하는 일꾼일수록 일단은 똑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멍게’나 ‘멍부’에게 리더 역할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멍청한 자에게 그의 능력보다 큰 일을 맡기면 사소하게는 낭비가 많아지고, 크게는 목적 달성에 실패할 수 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므로 불안한 마음에 회의를 자주 하기는 하지만 의사결정의 방법을 모르고 팀원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나눠줄 줄 모르므로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비해 별 실속이 없다. 자신도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기 때문에 초조한 마음에 갈수록 더 자주 모이고 본질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떠들어댐으로써 불안감을 이기려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것은 외부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 효과와 주어진 예산을 남김없이 탕진함으로써 제 주머니 속의 점심, 저녁 값은 굳힐 수 있다는 개인적 이득 때문에 더욱 조장되기도 한다. 마감 시간이 되면 결과물이 없진 않겠으나 그것이 그리 신통할 리 없다. 따라서 멍청한 사람은 그 내용과 방법이 명확하게 정해진, 그저 시키는 일에나 적격인 것이다.
그렇다면 ‘똑게’와 ‘똑부’ 중에서는 누가 리더로서 더 적합할까? 그것도 한 마디로 답하기는 어렵다. 조직의 규모나 성숙도, 팀원들의 능력 수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아랫사람을 두지 못한 똑똑한 리더는 본인이 사소한 일까지 다 챙겨야 하므로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그에게도, 아랫사람에게도 힘들고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똑똑한 리더라면 유능한 사람들로 팀을 구성하는 일을 가장 먼저 착수할 것이며, 그 이후로는 자신은 대세를 판단하면서 방향키만 잡고 실무는 아랫사람들에게 맡김으로써 곧 ‘똑게’형 리더도 변신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똑게’ 형 리더 하에서만이 리더가 해야 할 일과 팀원이 해야 할 일이 제대로 분담됨으로써 모두가 마음 편하고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올 4월에 지역 대표인 국회위원 선거가, 내년 말에는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 선거가 있다. 새로 뽑힐 리더들이 최소한 ‘멍부’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멍부’의 리드에 따르는 국민들은 방향감각 없는 지도자의 뒤를 좇아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 황무지에서 굶어죽게 되기 때문이다. 혹시 불행하게도 우리의 탑 리더가 똑똑하지 못하다면 ‘멍부’보다는 ‘멍게’ 쪽이 낫다. ‘멍게’는 그저 월급이나 축내는 정도일 뿐 적극적으로 판을 망치지는 않지만, 멍청하면서 부지런하기까지 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리더들은 당선 초기에는 ‘똑부’이다가 점차 ‘똑게’형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다른 말로는 ‘똑부’는 ‘지시적 리더’(telling leader), ‘똑게’는 ‘위양적 리더’(delegating leader)라 할 것이다. 똑게는 조직원들에게 소임을 적절하게 분배함으로써 자신이 힘들게 만기친람 (萬機親覽)하지 않아도 조직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이끈다. 본인 편하고, 조직도 잘 되고, 이것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나?
나는 어떤 유형이냐고? 나의 성격은 굳이 따지자면 계선(line)보다는 참모(staff) 조직 쪽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조직에 속하기보다 혼자 지내기를 선호하는 이방인(outsider)적 성향이므로 일꾼과는 아예 상관이 없다. 이런 내가 왜 당찮게 지도자론을 펴는가?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똑게 리더는 나 같은 아웃사이더도 조직에 빌붙어 살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지만, 멍부 리더는 밥버러지 취급을 하면서 눈엣가시로 여겨 뽑아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부디 똑게가 승리하기를!
(2016. 1.14.)
(경남대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