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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길 울트라길을 침바르다
문득 아주 먼 옛날
백두대간단독종주를 많이 하던 시절
닭목재 - 삽단령 구간에서 유단히
길을 잃고 헤매고 엄청 고생했던 생각이 .....
산죽 속에서 길을 찾지못해 헤매고
밤새도록 길을 헤맨
15년 전의 빛바련 아련한 추억의 백두대간종주산행기를 찾아보고
재미삼아 한 번 올려봅니다.
12일간 한계령부터 태백산까지 헤맨 기록입니다.
장 수가 좀 많습니다.
재미로 한 번 보시기를........
제가 보기에는 전혀 재미가 없습니다만....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구간 종주등반 계획서
A. 등반계획서
1.등반목적 :
가. 강인한 정신과 체력 형성
나. 등산기술 연마 및 독도법 능력향상
다. 백두대간의 아름다움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과 모험심을 충족
2.등반일시 : 1999년 8월 22일 - 1999년 9월 2일(11박 12일)
3.등반인원 : 단독등반 (등반자 : 박 광 인)
4.코스 :
한계령(1003.6) - 1157.6 - 망대암산(1236) - 점봉산 (1424.2) - 단목령 - 북암령 - 1136 - 943 - 조침령 - 956 - 968 - 갈전곡봉(1204) - 1121 - 구룡령 - 약수산(1306.5) - 1280 - 1261 - 1126.6 - 응복산 (1359.6) - 만월봉(1280.0) - 1210.1 - 신배령 - 1121 - 1234 - 두로봉(1421.9) - 1383 - 1234 - 1261.8 - 1296 - 1421 - 동대산(1433.5) - 진고개 - 노인봉 (1338.1) - 소황병산(1328) - 1172 - 매봉(1173.1) - 1142 - 1114 - 곤신봉(1127) - 선자령(1157.1) - 새봉 - 대관령 - 능경봉(1123.1) - 횡계령 - 고루포기산 (1238.3) - 955.6 - 닭목재 - 화란봉(1069.1) - 1006 - 989.7 - 960 - 석두봉(982) - 978.7 - 들미재 - 대화실 산 - 삽단령 - 866.4 - 두리봉(1033) - 석병산(1055.3)- 908 - 900.2 - 931 - 922 - 829 - 생계령 - 796 - 869 - 백봉령 - 832 - 987.2 - 1022 - 원방재 - 상월 산(970.3) - 이기령 - 898 - 1142.8 - 갈미봉 - 고적대 (1353.9) - 망군대 - 연칠성령 - 청옥산(1403.7) - 박달 령 - 두타산(1352.7) - 1243 - 목통령 - 1021 - 1028 - 934 - 댓재 - 황장산(1059) - 1105 - 1059 - 1062 - 큰재 - 1058.6 - 1036 - 1079 - 덕항산(1070.7) - 새 목이 - 구부시령(1107) - 1055 - 1017 - 997.4 - 1161.6 - 951 - 푯대봉(1009.9) - 902 - 건의령 - 960.2 - 새목이 - 944.9 - 961 - 피재(삼수령) - 1145 - 매봉 산(천의봉, 1303.1) - 비단봉(1279) - 쑤아밭령 - 1233.1 - 1256 - 금대봉(1418.1) - 싸리재(두문동재) - 은대봉 (1142.3) -중함백(1505) - 함백산(1572.9) - 만항재 - 1238 - 수리봉(1214) - 화방재(950) - 1174 - 태백산 (1566) - 천제단(1560.6) - 망경사 - 당골
5. 운행일정계획
1일차(일) : 한계령 - 북암령
2일차(월) : 북암령 - 갈전곡봉
3일차(화) : 갈전곡봉 - 신배령
4일차(수) : 신배령 - 진고개
5일차(목) : 진고개 - 대관령
6일차(금) : 대관령 - 삽단령
7일차(토) : 삽단령 - 백봉령
8일차(일) : 백봉령 - 청옥산
9일차(월) : 청옥산 - 덕항산
10일차(화) : 덕항산 - 싸리재
11일차(수) : 싸리재 - 태백산
12일차(목) : 예비일 및 하산일
6. 준비물
가. 장비 : 텐트 1동(2인용), 배낭(100리터)1개, 가스버너 1 개, 코펠소형 1세트, 지도(5만분의 1) 1세트, 등산가이드북 1권, 헤드랜턴1개, 은박지매트리스 1
개, 침낭피 2개, 등산화 1개, 개스2통, 칼1 개, 콤파스 1개, 물통 4개, 비니루 2미터.
나. 개인용품 : 등산복, 모자, 예비용의류, 등산화, 등산양 말, 손수건, 세면도구, 필기도구
다. 식량계획 :
(1) 식량운행 원칙
(가) 식량은 대관령과 댓재에서 보급
(나) 아침은 불고기 햄, 점심은 라면, 저녁은 밥으로 식단을 짜서 무게를 최소화함.
(다) 간식은 하루에 4회 섭취
(라) 고개(령)에서 간이매점을 만날때마다 매식을 하여 영양보충을 통한 체력 비축
(2) 준비물 :
(가) 주식 : 쌀, 라면, 고추장, 김치, 창란젓, 오징 어, 멸치, 김, 마른 반찬. 불고기햄, 스프
(나) 간식 : 빵, 영양갱, 매치바, 사탕, 껌.
7. 운행 및 실천수칙 :
(1) 반드시 야영.
(2) 철저한 단독등반 실시.
(3) 실전등반을 통한 독도법 강화
8. 비상연락처 : 철도청 * * * ☎ (02) 3780 - 52**
**일보 * * * ☎ (02) 7819 - 25**
B.구간별 운행기록
1일차(8월 22일) : 한계령 - 1157 - 갈림길 - 망대암산 - 단 목령 - 북암령 - 조침령
한계령 - 1157 1 : 30
1157 - 갈림길 42
갈림길 - 망대암산 58
망대암산 - 점봉산 42
점봉산 - 오색갈림길 55
갈림길 - 단목령 1 : 35
단목령 - 북암령 1 : 40
북암령 - 조침령 3 : 00
조침령 - 양양서면 상수원폭포 1 : 00 계 13시간 5분
2일차(8월 23일) : 폭포 - 조침령 - 야영지 - 1061 - 야영지
폭포 - 조침령 : 55
조침령 - 야영지 2 : 25
야영지 - 1061 3 : 20
1061 - 야영지 1 : 25 계 8시간 5분
3일차(8월 24일) : 양영장 - 갈전곡봉 - 구룡령 - 약수산 - 응 복산
야영장 - 갈전곡봉 2 : 15
야영장 - 구룡령 2 : 05
구룡령 - 약수산 3 : 45
약수산 - 응복산 3 : 45 계 8시간 55분
4일차(8월 25일) : 응복산 - 두로봉 - 동대산 - 진고개
응복산 - 두로봉 4 : 45
두로봉 - 동대산 3 : 45
동대산 - 진고개 1 : 00 계 9시 30분
5일차(8월 26일) : 진고개 - 노인봉 - 소황병산 - 매봉 - 동해 전망대 -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선자령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 - 삼양 연수원 - 횡계
진고개 - 노인봉 1 : 25
진고개 - 소황병산 1 : 15
소황병산 - 매봉 1 : 50
매봉 - 동해전망대 : 50
동해전망대 - 삼양연수원 2 : 50 계 8시간 10분
6일차( 운행을 중지하고 횡계에서 하루 휴식 )
7일차(8월 28일) : 대관령 - 능경봉 - 닭목재 - 화란봉 - 석두 봉 - 삽당령 임도
대관령 - 능경봉 1 : 00
능경봉 - 고루포기산 2 : 22
고루포기산 - 닭목재 2 : 02
닭목재 - 화란봉 1 : 25
화란봉 - 석두봉 2 : 07
석두봉 - 삽당령임도 4 : 43 계 13시간 39분
8일차(8월 29일) : 삽당령임도 - 삽당령 - 석병산 - 생계령 - 백봉령
삽당령임도 - 삽당령 : 37
삽당령 - 석병산 3 : 23
석병산 - 생계령 4 : 13
생계령 - 백봉령 2 : 10 계10시간 23분
9일차(8월 30일) : 백봉령 - 원방재 - 상월산 - 이기령 - 고적 대 - 청옥산 - 두타산 - 댓재
백봉령 - 원방재 4 : 20
원방재 - 상월산 1 : 00
상월산 - 이기령 : 50
이기령 - 고적대 4 : 35
고적대 - 청옥산 1 : 13
청옥산 - 두타산 1 : 57
두타산 - 댓재 2 : 45 계 16시간 40분
10일차(8월 31일) : 댓재 - 큰재 - 구부시령고개전
댓재 - 큰재 2 : 45
큰재 - 구부시령고개전 : 3 : 45 계 6시간 40분
11일차(9월 1일) : 구부시령전 - 구부시령 - 한의령 - 피재 - 비단봉 - 금대봉 - 싸리재
구부시령전 - 구부시령 1 : 55
구부시령 - 한의령 3 : 40
한의령 - 피재 3 : 40
피재 - 비단봉 2 : 00
비단봉 - 금대봉 1 : 35
금대봉 - 싸리재 1 : 05 계 13시간 55분
12일차(9월 2일) : 싸리재 - 함백산 - 마항재 - 화방재 - 함백 산 - 황골
싸리재 - 함백산 2 : 20
함백산 - 마항재 : 50
마항재 - 화방재 1 : 20
화방재 - 태백산 2 : 25
태백산 - 황골 1 : 20 계 8시간 15분
총등반시간 117시간 17분
◇ 등반시간 산출기준◇
1. 순수한 등반시간만 고려(점심시간 및 휴식시간은 제외) 2. 15 - 20kg정도의 짐을 지고 운행한 시간임.
3. 일반 등산객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소요된 운행시간임.
C. 등반기
8월 22일
코스 : 한계령 - 1157.6 - 망대암산 - 점봉산 - 단목령 - 북 암령 - 조침령
출 발(出發)
새벽 3시 30분에 심야우등고속버스로 속초에 도착했다. 인제에 사는 산악회 후배녀석이 한계령까지 차량서포트를 해주기로 했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서 약간 낭패감을 느꼈지만 이른 새벽에 이렇다할 특별한 대중교통편이 없는 관계로 거금 택시비 4만원을 들여서 한계령을 향했다. 교통비를 소주로 환산하니까 공연히 속이 더 쓰리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택시 운전사가 완전 아마추어라 속초공항을 질러가는 지름길이랍시고 엉뚱한 길로 가다가 길을 잃고는 다시 나와서 양양 읍내로 우회하느라고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05:00에 한계령에 도착하여 등산로에 붙는다. 오래간만에 짐을 져서 그런지 등반배낭의 무게가 몸을 짓누르는 것이 영 거북하다. 날씨조차 안개가 끼고 음침한데다 분위기마저 을씨년스러운 것이 영 내키지 않는다.
억지로 운행을 한다. 1157까지의 몇 군데의 암릉지대를 간신히 넘어서 간신히 1157에 도착한다. 땀이 나면서 좀 몸이 풀리는 듯했으나 짐이 무거워서 그런지 운행이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망대암산을 거쳐 점봉산에 오르니, 이제야 겨우 날씨가 좋아져서 하늘은 새털구름으로 수를 놓고 서북주능의 설악산과 귀때기의 조망, 인제군 기린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점봉산에서 정상을 오르기 직전(망대암산쪽에서)에 캠프사이트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좌측으로 20미터정도 가면 아주 시원섭섭한 낙엽주가 공짜로 무진장 나오니 거기서 식수를 충당하면 된다.
점봉산 정상에서 매트리스를 펴고 아예 취침준비를 한 채 간식을 먹으면서 낮잠을 즐긴다. 운행 중에 이렇게 군기 빠진 등반을 해도 되나 한심한 생각을 하면서도 ‘될 대로 되라 운행이고 뭐고 잠시 후에 생각하자’ 배낭을 집어던지고 1시간정도 낮잠을 즐기고나니 몸이 날아갈 듯하다. 날씨도 서늘한 것이 운행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다. 오색에서 오르는 갈림길을 지나서 점봉분지쪽으로 접어든다. 점봉분지는 해발 1,000여미터 위에 위치한 소택지이다. 옛날에는 점봉분지로 진입하였으나, 지금은 모산악회에서 점봉분지에 들어가지 않고 산 마루금을 타도록 코스를 억지로 두들겨서 제작한 길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 오래 전에 이곳을 등반했을 때, 도중에 나무를 잘라가면서 억지로 길을 내놓은 것을 보고 마음이 무척 언짢았던 일이 생각난다. 13:00에 단목령에 도착하여 라면을 끓이면서 휴식을 취한다.
이곳에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데 백두대간 코스로 5분 정도 더 가면 우측으로 큰 시내 물이 있고 물을 뜨러 내려가는 오솔길이 있다.
단목령에서 20분 정도 작은 능선을 오르면, 대간길이 우측으로 구부러지면서 완만한 능선과 여러 개의 작은 봉우리로 계속 연결이 된다. 15: 40경 북암령에 도착하였으나 물 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단목령에서는 북암령에서 물을 보충할 생각으로 한 통(2리터)을 가지고 왔는데 일에 차질이 생긴다. 벌써 반통은 먹어 치웠는데 조침령까지는 물 자리도 없고 난감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다시 북암령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가자!’ 계속 철쭉나무 등 작은 잡목을 뚫으면서 전진을 하다보니 큰 배낭이 자꾸 걸리고 작은 잡목들이 얼굴을 때리는 것이 여간 짜증이 나는 것이 아니다. 산아래 진동리에서는 양양 양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중장비의 기계 음이 계속 울리는데 이 아름다운 자연이 물 속에 잠긴다는 생각을 하니 심한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자연을 보존하는 것과 국가의 자원개발이라는 사이에서 상호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날씨가 점차 흐려지고, 안개가 끼면서 날씨가 점점 어두워진다. 지겨워질 정도로 작은 봉우리를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면서 18:40에 간신히 조침령에 도착한다. 여기서 야영을 하면 제격인데, 물이 문제다. 물론 길옆 아래에 조금 내려가면 물이 있기는 하나, 2년전에 한번 물을 퍼보니 지저분해서 물을 걸러야 겨우 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 맑은 물을 먹으려는 요량으로 양양 서면 쪽으로 차도를 따라 내려간다. 잠깐 내려가면 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내려갔는데 이 것이 큰 오산이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진다. 한 시간 가량 돌길을 내려가 양양 서면 상수원 폭포수에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야영준비를 한다. 저녁을 먹고 취침을 하다 보니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짐이 무겁다고 침낭과 스폰치 매트리스도 가져오지 않았고, 은박지 매트리스 한 장과 침낭피 2장(고아텍스와 나일론)으로 견디려고 했는데 은박지 매트리스는 5년이 넘어서 구멍이 난 것을 잘못 가져와 텐트바닥에 까니 한기가 올라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오버트라우저바지와 우의를 입어도 몸속으로 스며드는 한기는 마찬가지다. 아찔한 순간이다. 이런 상황이 등반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테니 말이다. 완벽하지 못한 등반준비의 실수를 절감하는 순간이다. 30분 정도 자다가 너무 추워서 잠이 깬다. 추워서 덜덜 떨다 일어나 버너를 켜서 겨우 몸을 녹인 후 다시 잠을 청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열흘이상을 견디어야 하는데 이거 정말 큰일이다. 장기 종주는 잠을 잘 자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같다. 시끄러운 폭포소리와 추위에 밤새도록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 몸을 뒤척이며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8월 23일
코스 : 서면상수도폭포 - 조침령 - 956 - 968
山의 단상(斷想)
07:10에 기상을 하니 비가 내리고 있다. 장비를 정리하여 짐을 싸고 식수를 채운 후 09:00에 출발한다. 운행계획에도 없는 내려오지 않아도 되는 길을 오르려니 맥이 탁 풀린다. 어제 1시간, 오늘 한시간 정상적으로 대간길을 운행했다면 상당한 진도를 나갔을 텐데. 조침령을 오르는 동안 계속하여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10:10경. 초침령의 고개 위의 비포장도로를 지나 다시 산길에 진입하여 지루할 정도로 많은 작은 고개와 몸싸움을 벌인다. 온몸은 비와 이슬로 푹젖어 물이 줄줄 흐른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천후가 계속 되어, 일단 능선 상에 올라 사무실 교신요원인 GO선수와 통화를 시도하였으나 통화도중에 끊어진다. 가랑비는 계속 내리고 온몸이 으스스한 것이 등반하기가 영 내키지 않는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하는 회의감을 느끼면서 12:35분경 1016전의 조침령과 구룡령구간사이의 첫 번째 야영지에서 짐을 풀고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식수도 보충하고 점심도 여기서 해결하기로 하고 서쪽 계곡으로 내려갔다. 조침령에서 구룡령 구간사이에서 식수를 구하려면 무조건 낮은 지역에서 서쪽으로 조금(약15분)만 내려가면 식수를 구할 수 있다. 라면을 끓이고 빵과 함께 주린 배를 채우고 다시 출발 한다. 이 구간은 주위의 전망도 별로고, 전형적인 작은 구릉지대인데다 엇비슷하게 수많은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굉장히 지루해서 마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같은 것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마치 인내력과 지구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장 같은 느낌이다.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오후가 들면서 개었다. 등반은 계속 1061헬기 장으로 968로 이어진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산을 찾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상념에 젖어본다.
우리가 山을 찾는 목적(目的)은 무엇일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느끼기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사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첫째는 순수(純粹)함이라고 생각한다. 등반자체에 어떤 목적을 개재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아침이슬과 같은 깨끗함과 계곡 속의 맑고 순수한 아름다움, 야생화의 수줍음을 한시에서 노래하듯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마음속에 이입시키는 것이며, 또한 있는 그대로의 산을 동양화처럼 감상하는 것이다.
둘째는 우정(友情)이라고 생각한다.
암벽에서나 리지등반에서 마음에 맞는 파트너와 단둘이서 자일을 묶고 정상의 목표를 향하는 멋진 등반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정상의 목표물을 향해 전진을 할 때 서로의 안전을 위해 자일을 확보하지만 그 속에 담긴 서로의 안전을 걱정하는 ‘마음의 자일’로 자기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나이들의 우정을 확인하는 방법이 아닐까. 정상에 올라 붉은 저녁놀을 바라보며 서로에 대한 우정과 신뢰를 느끼고 하산하는 행복감은 등반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느낄 수가 없는 멋일 것이다.
셋째는 위의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등반기술(登攀技術)과 체력(體力)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험난한 바위와 빙벽, 험준한 능선에서 오직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등반기술과 강인한 체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한 기술의 연마와 체력단련으로 자신을 단련시키는 것이 산행을 더욱 즐겁게 할 것이다.
잠시의 상념에서 깨어나 운행을 계속하여 드디어 968의 직하 캠프사이트에 도착하였다. 야영준비를 하면서, 어두컴컴해서 내려가기가 영 내키지 않는 계곡으로 내려가서 물을 보충하고, 어두워지는 주위를 보면서 어린아이처럼 약간은 겁먹은 기분으로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하루의 등반을 끝마친다.
8월 24일
코스 : 968 - 갈전곡봉 - 약수산 - 응복산
무당(巫堂)과 멧돼지
텐트에서 솟아나는 습기와 한기 때문에 밤 새 한잠도 못 자고 덜덜 떨다 기상을 했다. 08:55분에 출발하여 계속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 11:10경 갈전곡봉에 도착했다. 이곳은 등반의 갈림길이 있는 곳이다. 무척 신경을 써야하는 곳이다. 잘못하면 가칠봉으로 빠질 우려가 있는 곳이다. 또한 이곳에서 등반방향을 오른쪽으로 나아가면 가칠봉으로 해서 삼봉약수나 또는 방태산등으로 이어지는 등반로가 연결된다. 겨울에 하면 2박 3일의 적당한 코스가 될 것 같다. 갈전곡봉에서 출발하다 얼마안가 백두대간을 단독종주하는 친구를 만났다. 구룡령에서 진부령까지 2박 3일만에 뛰겠다고 하는데 조금 무리가 아닐까? 만약 가능하다면 엄청나게 빠르고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든다.
13:30분에 드디어 구룡령에 도착한다. 구룡령에서는 약간의 여유를 부리며 감자랑 국수등 이것저것 음식을 사먹으면서 체력을 보강한다. 이 곳 구룡령은 나의 백두대간과의 깊은 전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미신과는 담을 쌓고 사는 내가 무당의 노여움을 받아 생전 처음으로 마이너스 등반이라는 희한한 일을 경험한 곳이다. 90년도 초에 P관우, 산에서 만난, 항상 열기가 많다면서 윗통을 벗고 등산하는 수호지에 나오는 노지심같은 괴물 이렇게 셋이서 백두대간을 등반 중이었다. 오후 한시 정도에 구룡령에 도착할쯤해서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은 휴게소등 큰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당시만 해도 허허 벌판으로 상당히 넓은 공지가 있었는데 야영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공지 중간에는 공사용 합판으로 판을 짜서 그 안에 돌로 잔뜩 쌓아놓은 곳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촛농이 떨어져 있는 것이 마치 사이비종교 제단 같았다.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비를 피할 마땅한 장소도 없고 해서 그 안에 들어가서 누우니 비를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안에서 한 잠 늘어지게 자고 나니 날씨는 어느새 거짓말처럼 개어서 상쾌한 오후가 되었다. 비도 오고 해서 그 날 오후는 쉬기로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경기도 성남의 모 전문대 여자선수들과 같이 산에 대한 이야기와 소주 한잔을 곁들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밤이 깊어지고 날씨가 추워지자 주위의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놓고 주위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서 자고 있는데 한 패의 무당들이 와서는 제사를 지낼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비를 피한 장소가 바로 무당들이 제사지내는 제단이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남의 신성한 제단에서 밥을 해먹고 비를 피하고 잠을 자면 어떻게 하냐고 강력한 항의를 하였다. 나는 공연히 오기가 발동하여 모르는 체 끝까지 버텼다. 사태가 돌아가는 게 이상하고 불안한지 P관우와 노지심친구가 나를 들어서 옆으로 옮겼다. 그러자 무당들이 굿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이미 자정이 넘었다. 그들의 주문 속에는 동해바다의 용왕신부터 무슨 신, 무슨신 수십 가지 신이 등장했다. 누워서 듣다보니 은근히 겁도 나고 불안하여 잠자는 체 하면서 새벽 두시까지 계속되는 굿을 혹시나 내 욕이나 안 하나 끝까지 지켜봤다. 다행히도 내 욕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고는 그 다음날 터지고 말았다. 바로 신성한 제단을 욕보인 죗값인 것 같았다. 아침에 출발하여 중간의 식수공급처인 응복산밑 샘터를 찾지 못하고 그냥 응복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물도 없는 상태에서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었다. 입에서 시꺼먼 연기가 날 지경이 되었다. 더위 속에서 물도 없는 상태로 갈증에 시달리며 헤매다가 무조건 동해 쪽의 수풀 속으로 뛰어 내려 1시간 여를 헤매다 식수를 구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시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후가 되면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안개가 끼면서 방향착오를 일으켜서 마이너스 등반을 시작한 것이다. 보통 때라면 콤파스와 지도를 보면서 운행을 하여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구간인데 마치 무슨 귀신이 씌였는지 지도도 보지 않고 그냥 내달리다보니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말소리와 차소리가 들렸다. '지금 정상적인 운행방향이라면 오대산 두루봉정도일 텐데 말소리가 나면 안 되는데'하면서 혹시 옆으로 잘못 빠졌으면 주문진쪽이겠거니 하면서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는데, 안개사이를 내려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장소 같았다. 이상하여 아예 도로까지 내려가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구룡령이라고 한다. 아이고 망했다. 어이가 없다. 하루 종일 등반한 것이 결국 자기 자리로 되돌아오기 위한 등반이었으니 말이다. 이 무당의 저주는 등반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결국은 양양으로 후퇴하여 강릉에서 대관령으로 다시 백두대간에 붙었으나 삽단령 근처에서 아주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 그 해의 백두대간종주는 완전 실패라는 비극으로 끝났다. 아마 무당신의 노여움이 대단히 심했나보다.
14:45분에 구룡령을 출발하여 약수산을 향한다. 약수산을 오르는 도중에 포항제철 직장산악회 구간종주팀을 만났다. 여러 명이 함께 하는 등반도 재미있겠구나 생각하면서 느릿느릿 약수산을 향해 오른다. 15:57분 경에 1280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응복산을 향한다. 응복산 직하에 아주 유명한 샘터가 있다. 등반로 도중에 한 동의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프사이트가 있는데 그 우측으로 날 소길로 5분 정도 가면 정말 시원하고 맛있는 물이 넘치는 샘터가 있다. 맑은 샘물을 실컷 먹고 2통(4리터 정도)의 물을 담고서 다시 용기를 내어 응복산의 정상을 향한다.
갑자기 응복산을 오르기전 전위봉에서 등반로상의 7-8미터 전방에 엄청나게 큰 멧돼지와 조우한다. 무지막지하게 큰 멧돼지다. 난생처음 산에서 돼지를 조우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무섭기보다는 입에서 침이 살살 도는 것이 구미를 당긴다. 잘 됐다. 이 놈을 잡아먹자. 산 속에서 항상 짐무게 때문에 식량을 단순화시키다 보니 단백질이 부족한데 이게 웬떡이냐하는 생각으로 한속에는 돌멩이 한 손에는 칼을 들고서 잡아먹자고 대들려는 마음이 생긴다. 그때 떠오르는 생각! 이런 절대 오지에서 산 짐승을 만났을 때에는 당황하지 말고 대처하여야 하며 이들을 절대로 자극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철칙이다. 이 멧돼지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36계줄행랑, 재빠르게 옆에 있는 나무에 오른 방법등 여러 가지 대처 법이 있을 것이고, 또한 정공법으로 돌격 앞으로 하던지 아니면 돌로 급소를 맞추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 놈이 워낙 커서 정공법은 통하지도 않고 삼가는 것이 장수하는데 지장이 없겠다. 멧돼지라는 놈은 저돌(猪突)이라는 말로 대비되는 거칠고 돌격형 야수이다. 조용히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이 놈이 전방 12시 방향에서 다시 3시 방향으로 방향을 틀며 앞의 적과 긴장되는 대치를 계속한다. 틈을 봐서 이 놈의 멧돼지가 돌격 앞으로 하기 전에 내가 자리를 피해주자 하는 마음에서 등을 보이면서 위로 향해 오르자 이 놈도 아래로 내리 달린다. 저 놈도 은근히 피해갈 생각이었나 보다. 땅이 쿵쿵 울리는 것이 마치 탱크가 지나간 것처럼 흔들린다. 3분 정도 오르다보니 또 다른 한 마리가 나타난다. 이 놈은 날 보자말자 바로 아래쪽으로 내려 달린다. 이미 아까 그 놈한테서 아래에서 나뿐 놈이 올라간다는 연락을 받았나보다. 아이고 이젠 살았구나 휴!!! 하고 가슴을 쓸면서 다시 응복산 정상을 향한다. 그러나 이 야수들에게 정말로 미안해 할 사람은 나일 것이다. 야수의 세계에 불법으로 침입하여 그들을 몹시 놀라게 하고, 보금자리를 엉망으로 만들고, 그들의 질서 즉, 동물들 세계의 법칙(밀림의 법칙)을 깨뜨린 불법 침입자인 인간이니 말이다. 인간에게 산짐승들은 두렵고 무서운 존재인 것처럼 야수들에게 낯설고 탐욕스러운 인간은 가장 무서운 천적일 것이다. “미안하다 돼지 가족아! 다음부터는 서로 만나지 말자.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자연의 순리대로 너희들이 살수 있도록 도우는 것이 서로를 위하는 길일 테니 말이다. 알았지! 이 맛있는 토종 산도야지들아 !”
날은 점점 어두워지면서 오늘 저녁의 잠자리가 걱정이 된다. 응복산 정상에서 조금 못 미치는 지점에서 뜻밖에 등산객 2명을 만났다. 남녀 한팀 같은데 옷차림이 가벼운 것이 당일 산행을 하는 팀같다. 텐트도 없고 작은 배낭에 가벼운 산행차림인데 너무 깊은 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 팀 중의 남자가 소금강을 가자면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역시 내 예감대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등반 객이었다. 여기는 응복산 정상이고 정 반대로 왔다고 하자 상당히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슬그머니 심술 보가 동하여 여기서는 두로봉으로 되돌아가려고 해도 네다섯 시간이 걸리고 구룡령으로 가도 역시 같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면서 요 아래에는 집채만한 산돼지가 있다고 잔뜩 겁을 주었다. 같이 동행한 여자친구는 몹시 당황하면서 겁먹은 표정으로 공연히 짜증을 부린다. 왜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올라와서 오도가도 못하게 만들었냐고... 상황이 딱하게 된 것 같다.
겁을 주며 둘이 싸우는 광경을 구경하다보니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도 과거에 똑같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아마추어 산꾼이 아니었던가. 같은 산악인으로서 어려움에 처하면 자진해서 도와야지 겁이나 주고 심술을 부리는 것은 진정한 산사람이 아니다. 나는 여자선수를 달래기 시작한다. 나한테 식수도 있고 텐트도 있으니, 오늘 여기서 야영을 하고 내일 다시 돌아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도 여자선수는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이고 저녁을 준비하면서, 주위의 죽은 나무를 모아서 종이 한 장으로 불을 피우자 굉장히 신기해하며 완전히 원시인 취급을 한다.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고 서로 인사를 하고 보니 두 친구는 서울 소재 동사무소의 공무원으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선수들이다. 이후 우리는 동료애를 느끼며 점점 편한 친구가 된다. 나중에 알았지만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로서 여름 휴가차 오대산 상원사에서 두로봉, 동대산으로 해서 노인봉과 소금강으로 가는 일정인데 두로봉에서 이정표와 표시기를 잘못보고 이리로 흘러 내려왔다고 한다. 그래도 혼자 고독한 야수가 되어서 이 산 속을 헤매는 나보다는 더불어 동행할 사람이 있으니 그 둘은 훨씬 품위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종주등반은 혼자 하는 것이 더 좋으니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응복산의 야경은 정말 멋있다. 멀리 동해안의 오징어배 불빛이 아른거리고 주문진의 야경이 어우러지고 골짜기사이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등은 정말 멋있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아! 술이 있다면 더 멋있는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었을 텐데. 아깝다 아까워. 구룡령에서는 파는 것같았는데. 염치 불구하고 혹시 술이 있냐고 물어보니 역시 없다고 한다. 자꾸 알코올 도수도 없고 재고도 부족한 죄없는 낙엽주만 축을 낸다. 어느덧 분위기에 취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는데 이미 열시가 지나가고 있다. 자 내일의 등반을 위해서는 잠을 자야하는데 잠자리가 문제다. 동방예의지국에서 한 텐트에서 남녀가 같이 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밖에서 의협심을 발휘해서 비박을 할 수도 없고 고육지책을 짜낸다. 2-3인용 텐트가 3사람이 자기는 몹시 좁았으나 모두 같이 취침하기로 하고 순서를 정하여 남자(본인) - 남자 - 여자순으로 어색한 취침순서를 정한다. 속세에서야 이상한 취침이지만 산 속에서야 생사의 문제가 걸렸는데 그 무엇이 이상하리. 밤은 점점 깊어간다. 이런 나의 선행 때문인지 이날은 이상스럽게도 땅속에서 습기가 올라오지 않아서 기분 좋은 잠을 잔다. 역시 산신령님도 착한 일을 하는 것을 아나보다.
8월 25일
구간 : 응복산 - 만월봉 - 신배령 -두로봉 - 동대산-진고개
고독(孤獨)
아침에 부족한 식수로 간신히 라면을 끓여 먹고 07:30분에 응복산을 출발한다. 그러나 식수가 떨어져서 중간에서 보충하기로 하고 응복산에서 만월봉에 이르는 능선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을 선정하여 동해쪽으로 약 20분 정도 내려가서 식수를 보충하고 전진을 계속한다. 보통 식수는 서쪽에서 구하는 게 보통인데 이곳만은 조금 특이하게도 반대쪽으로 내려가야 구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구간은 완만한 능선으로 연결되어 정말 아기자기한 코스로 등반하기는 무척 편한 느낌을 준다. 공무원으로서 어려운 일이나 고민등을 함께 이야기하며 아주 즐거운 등반을 이어 나간다. 이 선수들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승진, 업무상 문제등 여러 가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며칠을 혼자서 등반을 하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같이 등반하는 것이 덜 외롭고 즐거운 기분이 든다.
10시가 훨씬 넘어서 신배령에 도착한다. 여기서 아침겸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고 여자선수의 충실한 조수가 되어서 이것저것 열심히 잔심부름을 한다. 정말 오래간만에 맛있는 식사를 위해서는 이 정도의 수고는 각오해야 한다. 서쪽으로 조금 내려가서 엄청나게 수량이 풍부한 샘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쌀을 씻고 세수를 하며 오래간만에 기본적인 품위를 유지한다. 꽁치통조림찌개를 끓여서 풋고추에 김치를 곁들인 진수성찬에 배가 터져라 하고 퍼 넣는다. 앞으로 이 능선 상에서는 이런 행복한 식사는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도 함께 씹으면서. 이 선수들이 어제 밤의 작은 편의에 대해 엄청난 영양보충이라는 선물을 준다. 식사 후에 커피까지 한 잔하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양 더 바랄 것이 없는 행복감과 포만감에 빠진다. 잔뜩 먹고나서 다시 등반을 시작하니 온 몸에 힘이 넘친다.
한참 오르다 보니 혼자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젊은 친구를 만난다. 어제 본 멧돼지 애기를 하였더니 자기는 다섯 마리를 봤다고 하면서 회초리로 모두 쫓아 보냈다고 무용담을 풀어 놓는 바람에 괜히 먼저 말했다고 후회하면서 숫자상 2마리 대 5마리의 열세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마침내 13시 경에 두루봉에 도착을 한다. 사방이 확트여 전망이 좋은 곳으로 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동대산이 한 눈에 보인다. 이 두선수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아래 동네와 교신을 한다. 두로봉에서 GO(고영욱씨)선수와 통화를 한다. 마침 GO선수가 대학원 졸업식 날이라는 것을 알고 오대산 정상에서 졸업식을 축하해주는 행운을 누린다. 함께 등반한 이 두 선수와는 하루도 안 되는 잠깐동안이지만 만나서 정이 들어 막상 헤어지려니까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함께 대화를 하면서 등반을 하다가 다시 혼자하려하니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예 처음부터 누구와 함께 등반을 하면 되지 이제 와서 혼자 이런 푸념을 하는지 나도 정말 모르겠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면서 1261봉을 거쳐 동대산에 17:20경에 도착한다. 몇개정도의 봉우리가 완만한 것같으면서도 막상 봉우리를 올라칠때는 은근히 힘이 들고 지루하다. 이 구간사이에 엄청나게 큰 차돌바위(1261과 1296사이에 위치)가 있는 것이 신기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주위의 경치를 들러보며 여유를 찾는다.
18:20에 진고개 휴게소에 도착하여 육계장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진고개 산장에 들어가자 산장아저씨가 반갑게 맞는다. 공직을 퇴직하고 이 산장에서만 12년을 지내신 분이다. 십년이상을 옆에서 지켜보며 점점 늙어 가시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캔맥주를 시켜 놓고 산사람이 살아가는 이런 저런 얘기, 산나물, 멧돼지, 백두대간에 대한 등반이야기와 직업에 대한 이야기등 아저씨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느라고 피곤함도 잊고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8월 26일
구간:진고개 - 노인봉 - 소황병산- 매봉 - 곤신봉 - 전망대- 삼양연수원 - 횡계
귀문(鬼門)
아침에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니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 등반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스프를 끓여서 어제 산장에 든 대학생 2명과 나누어 먹고 그 친구들의 식은 밥한 덩이와 찌개를 얻어 아침을 해결한다. 08:20에 산장을 출발할 때쯤에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진다. 컨디션도 좋지 않고 몹시 피곤하다. 억지로 운행을 하여 노인봉까지 1시간 35분에 도착한다.
성량수형(산장주인)이 있는 노인봉산장에 내려 갈까하다 시간도 지체되고, 또 반갑다고 술한잔 하다보면 시간이 지체되어 오늘 등반에 많은 지장이 있을 것이다. 성량수 형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하였다. 노인봉산장에 있는 양수형은 정말 괴물이다. 최초로 태백산맥(진부령-부산금정산)을 최초로 동계단독종주(*81년도 당시만 해도 백두대간의 개념이 알려지기 전임), 소백산맥동계단독종주, 해안선일주종주, 국도자전거종주, 5대강카누종주등 엉뚱한 일에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다. 산장안에서 고성방가를 하거나 꽃을 꺽고 취사를 하면 박격포 불발탄을 가지고 날려보내겠다고 위협을 하다 물의를 야기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을 사랑하는 진짜 산꾼을 만나면 밤새도록 산장에서 파는 술을 다 내다 먹으면서 산 이야기로 날밤을 지새우는 아주 인간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작년 설악산 산악마라톤도 함께 뛰고, 백두대간을 뛰다 들르면 항상 가지 못하게 잡아 놓고 산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절친한 산 선배이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한없는 정을 아낌없이 주는 좋은 형이다. “형 미안하오. 이번에는 그냥 갑니다. 나중에 만나서 찐하게 한잔합시다.”
계속 이슬로 목욕을 하면서 11:00경에 소황병산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대관령의 목초단지이다. 이곳부터 선자령까지 서쪽지역 전체가 목장지대이다. 소황병산에서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서 등반이 계속 이어진다. 이곳은 지형이 완만하여 등산보다는 고원지대를 산책하는 기분이 드는 곳이다. 매봉 직전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난 길로 연습 삼아 들어갔다가 이상해 지도를 보았더니 강릉수청동으로 가는 소금강 길이었다. 5분 정도 지체하다 다시 원상 복귀하여 목초 지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운행을 한다. 매봉 근처에서 소떼를 만났는데 이 놈들이 자꾸 쫓아온다. 내가 좋은가 보다. 뒤에서 자꾸 따라오니 정말 당황스럽다. 이 놈들은 2일전에 본 멧돼지처럼 식욕이 나지 않는다. 아마 자연산이 아니어서 그런가. 매봉에서 점심을 먹는데 또 이 녀석들이 쫓아온다. 라면이 먹고 싶나. 정말 웃기는 녀석들이다.
동해 전망대에 도착한 시간이 14:10분이다. 그 동안은 가랑비가 내리기는 하나 간간이 오대산 일대 전망이 보였으나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하여 모든 것이 안개 속으로 묻혀 버린다. 별 신경 쓰지 않고 전진을 계속한다. 목초지 속으로 진입하여 목초지의 길을 따라 전진을 하다 갈림길을 만나면서 당황한다. 아래로 난 길을 내려가 보니 아닌 것같아서 목초지 가운데로 난 길을 가보니 중간에서 길이 끊어진다(*나중에 알았지만 여기서 그대로 전진하면 선자령으로 등반로가 진행됨). 목초지 가운데서 지도를 펴놓고 독도를 하였으나 지금의 위치도 불확실하고 지도 정치를 하여 보아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런 줄 알았으면 선자령의 방향만이라도 알아둘 것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는데. 문득 91년인가 92년에 진부령에서 대관령까지의 구간 종주에서도 여기 이 자리에서 실패를 했는데 그때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해서 역으로 오면 아주 쉬워지는데 내려갈 때는 여기가 헷갈린다. 물론 안개만 없으면 선자령이 선명하게 보이니까 문제가 안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내 잘못으로 독도력 부족과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안개 속에 사면초가라 탈출로조차 확신이 안 선다.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삼양목장을 거쳐 횡계로 내려가야 하는데. 우선 선자령을 찾기 위해서는 앞으로 전진을 해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다.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다. 무조건 나침반을 선자령 방향으로 고정시키고 직선으로 운행한다. 한참 전진하다 보니 목초구릉지대 아래로 내려간다. 내려가면 안 되는데 다시 방향을 좌측으로 틀어 계속 전진을 하니 큰 길이 나와 가보니 삼양목장축사가 나온다. 다시 후퇴를 하여 올라가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다보니 목장 길의 소로가 얽히면서 진로가 아주 엉망이 되어 버린다. 이러다가는 조난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해진다. 만약 등산로를 찾지 못하면 아무 데나 텐트만 치면 되지 하는 평상시의 생각이 으스스한 날씨와 주능을 잃어 버렸다는 패배감에 서서히 등반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을 사라지게 한다. ‘그래 주능을 포기하고 후퇴하여 횡계에 가서 여관을 잡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대관령에서 시작하자. 이 구간을 그냥 지나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작년에 백두대간의 등반으로 대관령쪽에서 시작하여 즐거운 산행을 한 곳이 아닌가.’ 드디어 탈출을 시작한다. 물을 따라내려 오다가 길이 나오기에 계속 따라 내려간다. 다섯 시경에 삼양목장연수원까지 내려왔다.
심한 무력감과 좌절감에다 무리를 해서 그런지 발목이 아프기 시작한다. 또한 발가락에 물집이 생겨서 곪은 것이 자꾸 쑤시기 시작하는 것이 몸에 긴장감이 풀렸기 때문인 것 같다. 삼양연수원의 수위실에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을 하고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저씨가 작년 겨울에 조난사 일보직전의 초주검상태로 여기에온 조난객 3명을 구조했는데, 특히 그들중 여자 한 명은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여서 밤새도록 정성어린 간호를 하여 살려 보냈건만 아직도 고맙다는 전화 한 통 없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다.
설악산의 산증인인 수렴동대피소의 이경수씨의 말에 의하면 내설악에서 수백 명의 조난사한 시체와 조난객을 업어 내렸지만(산 사람은 그냥 업고 죽은 사람은 하늘을 한 번 더 보라고 하늘이 보이게 업는다고함) 찾아오는 사람이나, 연락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문뜩 뇌리를 스친다. 인간의 기본도리를 강조하는 아저씨의 말씀에 “아마 쑥스러워서 그러겠지요. 전화번호도 모르고요. 그것이 세상의 인심이 아닐까요” 말하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택시를 타고 나와서 횡계에 있는 여관에 짐을 풀고 몸 상태를 점검하니 엉망이다. 새끼발가락은 물집이 불어 터져서 진물과 고름이 나오고 발목은 몹시 아픈데다 발등이 부었고 옆구리도 땀띠가 생겼는지 시뻘개진 것이 마치 전쟁을 치른 사람 같다. 앞으로 운행이나 계속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이 상태로는 안되겠다. 작전을 바꾸어 내일 하루 휴식을 취하고 모레 다시 대관령에서 다시 시작을 하자. 게다가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고향이 아닌가. 큰어머니도 찾아 뵙고 인사도 드리고 사촌도 만나 오랜 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충분한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하여 다시 도전하자.
8월 27일
구간 : 횡계 - 진부
휴 식 (休息)
그냥 하루를 푹 쉬었다. 아주 행복하고 즐겁게 말이다.
8월 28일
구간 : 대관령 - 능경봉 - 고루포기산 - 닭목재 - 화란봉 - 석두봉 - 삽단령
길을 잃고 헤매면서
새벽 다섯 시에 기상을 하여 미련한 짓만 골라하는 조카를 걱정하는 큰어머니에게 절대 걱정하지 마시라고 안심을 시켜드리면서, 제가 열흘이 넘게 산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집에는 절대 연락하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드리면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찍는다. (* 나중에 비밀이 누설되어 집에서는 난리가 나고 다시는 바보짓안한다는 다짐을 하고 풀려났음. 앞으로는 등반 중에는 절대 큰어머니 댁에 내려가지 않을 것임).
고향 이모아들인 조카의 영업용 택시를 타고 대관령에 도착하여 06:05분에 출발을 하였으나 식량과 연료 등을 보충한 배낭의 무게가 무척 무거운 것이 정말 발을 띠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고달프다. 이틀 전에 무리한 탓인지 발목이 무척 아픈 것이 걸을 때마다 은근히 부담이 되고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대관령에서 10분 정도 운행을 하면 잘 만들어 놓은 샘터가 있다. 여기서 물을 보충하고 능경봉을 향해 출발하여 07:05분에 능경봉에 헉헉거리면서 간신히 도착한다. 안개가 걷히면서 강릉시내 동해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인다. 오래간만에 속까지 후련하다. 26일날 날씨가 이렇게 좋았다면 선자령에서 길을 잃고 삼천포로 빠지는 우(愚)는 범하지 않았을 텐데. 잠시 휴식 후에 고루포기산을 향한다. 여기서부터 고루포기산까지는 완만한 경사로서 크고 작은 아담한 등산코스가 이어진다. 횡계인지 강릉에 있는 산악회인지는 모르나 대관령에서 능경봉과 고루포기산을 이어지는 가족산행코스의 안내판이 설치하고 등반로 주변에 잔가지도 쳐서 등반로를 정비한 흔적이 보인다. 횡계령을 거쳐 고루포기산에 09:27분에 도착했다. 자꾸 발목이 아픈 것이 컨디션이 아주 나쁘다. 자꾸 걱정과 근심만 쌓인다. 이 몸상태로 과연 태백산까지 완주할 수가 있을까. 20여분의 휴식을 취하면서 아래 동네와 교신을 하고 간식도 먹으면서 컨디션을 회복하려고 노력을 하나 몸이 좋지 않으니까 자꾸 짜증만 난다. 이 고루포기산 위에는 송전탑을 건설하느라고 산악도로를 건설하여 등반로도 이상해 졌고 산림이 많이 파괴되었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아래쪽의 송전탑을 타고 내려가면 맹덕목장에 이른다(11:25). 많이 지체했는지 시간이 무척 걸렸다. 목장에서도 울타리를 따라 우회하는 길도 있으나 목장안으로 들어가서 정문으로 나온다. 목장에는 아무도 없고 맛있는 한우들만이 한가하게 풀을 뜯으며 몹시도 미련한 나를 쳐다보며 꼬리를 휘둘러 쇠파리를 쫓는다.
닭목재 조금 못 미쳐서 대구개인택시팀 2명을 만난다. 백두대간 구간종주를 하는데 천왕봉에서 여기까지 2년에 걸쳐 올라 오는 중이라며 도시락과 빵을 나누어주며 식사를 하고 가라고 한다. 라면을 끓이고 정성이 듬뿍 담긴 식은 밥 한 덩이를 라면에 말아서 게눈 감추듯이 해치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였나. 입에 들어가면 모든게 산해진미다. 12:50분에 닭목재에 도착하여 민가에 들려 보신탕감으로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똥개들의 열화 같은 환영을 받으면서 식수를 보충하고 13:30분에 화란봉을 향한다.
여기까지 오면서 힘이 다빠졌는지 속도는 점점 느려지면서 자꾸 등반의욕이 사라진다. 자꾸 배낭을 집어던지고 주저 앉아버린다. 갈증만 자꾸 난다. 화란봉의 7부능선상에서 흐르는 시냇물로 다시 식수를 교체하고 어기적어기적 기다시피 하여 14:30에 화란봉에 도착했다. 점점 힘만 들어가며 운행이 지지부진해진다. 화란봉에서는 일단 등반코스가 아래로 향해 내려간다. 정신을 집중하고 아무 생각 없이 운행을 하니까 발목이 아픈 것도 신경이 덜 쓰이고 능선을 오를 때도 힘이 드는 줄 모르고 쉽게 운행이 되는 것이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화란봉에서 석두봉구간이 백두대간의 등반로중에서 독도가 가장 어려운 구간이다. 수많은 대간 주자들을 헤매게 하는데가 이곳이다. 나도 이 구간을 4-5회 등반을 했으나 한 번도 제대로 주파한 적이 없다. 왕산면 쪽의 임업도로로 빠지고 엉뚱한 수풀 속에 들어가서 헤매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등산객이 다녀서 그런지 고속도로가 되어 버렸다. 거의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많은 산 죽을 헤치며 16:37분에 석두봉에 도착했다.
여기의 지형은 그 곳이 그곳이어서 잘 구분이 안 된다. 혼자 가다가 잠시라도 졸면 방향 감각이 없어져서 다시 나침판를 보고 방향을 잡는 경우도 있다. 석두봉에서 우측으로 틀어서 들미재를 향한다. 들미재는 요즘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길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들미재 아래 습지에 헬리콥터 장이 있는데 거기에 안내간판에 석두봉이라는 표시판을 설치하였다. 석두봉까지 안내판을 지고 가기가 무거워서 그런지 아니면 무언가 착각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가 절대 석두봉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말이다.
대화실산을 좌측에 두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 잠깐 오르다 보신용으로 적당한 살무사 한 마리를 만난다. 나는 뱀은 먹지 않으니까 녀석에는 흥미가 없고, 비키라고 사인을 보내서 도망치게 한다. 만약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 날이 이 녀석의 제사 날이다. 다음에 이곳을 지나가는 등반 객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보지만 사실은 이 숲에 침입하는 야만인의 폭력일 따름이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파괴하는 행위며, 또한 환경과 자연을 파괴하는 만행일 것이다.
계속 전진을 하다 이상하게 길을 잃고 헤맨다. 산 죽이 우거진데서 길이 연결되지 않는다. 왔다 갔다 하면서 간신히 길을 찾아서 방화선에 이른다. 산림청에서 산불예방을 위하여 능선 상에 나무와 풀을 베고 길을 만든 곳이다. 여기서 과거 삽당령에서 올라오면서 이곳 방화선상에 꺾어지는 지점의 큰 소나무 두그루를 중요한 지형지물로 익혀 두었는데 그 나무는 이미 없어 졌고 표시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 꺾어지는 지점을 찾을 수가 없다. 지도로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그 지점을 찾아야 하는데 정말 난감해진다. 방화선을 왔다 갔다 하며 찾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앞쪽으로 20여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찾아보았으나 내 재주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시간은 자꾸 가고 날씨가 서서히 어두워지자 마음이 급해진다. 식수도 없고 텐트를 칠만한 적당한 장소도 없다. 무조건 찾아서 내려가야 한다. 찾기만 하면 단숨에 내려갈 수가 있고 왕산에서 이어지는 임업도로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진도가 쉬워진다. 이 지점을 놓치면 이 종주자체가 조금 이상해진다. 계속 시행착오로 혜매다보니 벌써 시간은 19:00을 가르치고 있다. 숲에 들어가서 다시 찾아보아도 도저히 못 찾겠다. 숲전체가 서서히 어둠에 싸인다. 이제는 등반을 포기하고 탈출을 하여야 하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다. 어떻게 시간을 내서 온 등반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여기서 무너져야 하는가. “야! 산적아 이제 그만 포기를 하고 탈출하라 조금만 내려가면 민가가 나온다. 거기서 하룻밤 쉬고 내려가서 편히 휴가를 보내라. 그게 너자신을 위한 길이다.” 드디어 눈물을 머금고 결단을 내린다. 어둠 속에서 삽단령의 반대쪽에 거의 흔적이 없는 정도로 흐릿한 산길을 보고 그곳을 향해 내닫는다. 순식간에 경운기가 다니는 도로까지 내려갔다.
길옆에 흐르는 샘물을 들이키고 주저앉아서 다시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다시 시작하자! 주능을 포기하고 우회하여 삽단령으로 가자. 내일 아침이면 다시 삽단령부터는 주능을 등반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시 어두워진 산길을 헤드랜턴을 켜고 다시 오른다. 다시 방화선을 올라 방화선을 따라 끝까지 전진을 하여 대기리의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면 삽단령일 것이라는 동물적 감각 하나만 믿고 다시 달려든다.
방화선까지 오르는 길은 가슴을 넘는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길 아닌 길이다. 방화선에 올랐을 때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밤이 되었다. 헤드랜턴을 키고 방화선을 따라 등반하는 것이 기분이 내키는 일은 아니다. 방화선을 따라서 오르락내리락 거리면서 계속 반복하여 전진을 계속한다. 이 놈의 길은 왜 그리 긴지 가도가도 끝이 없다. 얼마를 왔는지 모르겠지지만 시설물이 새로 설치된 것이 보인다. 잠시 후 방화선은 끝나고 갈림길이 나오고 표시기도 하나 보인다. 과거에 독도를 실패하여 이 구간으로 빠져서 대기리로 내려간 경험이 그나마 길을 연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확신이 서는 것은 아니다. 이 길로 내려간다고 해서 꼭 삽단령이라는 보장도 없다. 무조건 내려가는 것이다. 지금은 다른 아무런 대안이 없다.
드디어 차가 다닐 수 있는 산길을 만난다. 길옆에 흐르는 샘물을 배가 터져라 하고 마신다. 금방 샘물이 다 말라버린다(?). 그리고는 길바닥에 큰 대자로 퍼져 누워버린다. 이게 무슨 고생일지 모르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니 어떠랴.
다시 길을 따라 내려간다. 고랭지 채소를 하는 밭이 보이고 그 옆에는 동네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휴식처가 있는데 이곳에다 야영준비를 한다. 옆에는 소나무도 있고 물이 흐르고 아늑한 것이 야영하기는 아주 이상적인 곳이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벌써 시간은 22시가 넘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텐트아래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한기와의 전쟁으로 잠을 설치면서 고군분투를 한다. 30분을 채 눈을 붙이지 못하고 깨서 개스버너를 피우고 빈 배낭을 밑에 깔고 다시 잠을 청하기를 얼마나 반복하였던지.
8월 29일
코스 : 삽단령 - 석병산 - 생계령 - 자병산 - 백봉령
이상한 공식(公式)
07:50분에 야영지를 출발한다. 신기하게도 어제까지 아프던 발목이 하루밤을 자고 나니 가뿐하다. 어제 밤에 광적으로 설친탓인가보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정말 날아갈 것같은 기분이다. 또 다시 이번 등반에 대한 의욕과 용기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참을 내려가서야 민가가 나왔다. 밭에서 일하는 아저씨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까 삽단령이라고 한다. 오기는 제대로 왔다.
08:27분에 삽단령고개에 도착했다. 71세나 되는 할머니가 주막(酒幕)을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음료수와 감자전을 시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주막집 포장에 이상한 문구와 수학공식 비슷한 것이 써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누가 썼냐고 물으니까 자기 아들이 썼단다. 이 기상천외한 공식을 소개하면 “사랑+사람=연애,사랑×사랑=열애, 사랑÷사랑=임신, 사랑-사랑=이혼”라고. 주간지에나 나올 법한 말이지만 정말 묘한 공식이다. 이 말이 이 주막의 영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정말 궁금했다.
09:00에 삽단령을 출발하여 삽단령의 이정표 옆으로 진입하여 산림도로를 횡단하고, 또 가파른 사면을 올라서 두리봉을 거쳐서 계속 전진을 한다. 이때 포항에서 왔다는 젊은 사람을 만난다. 네시간만에 이곳까지 왔다고 하면서 날아간다. 짐도 가볍고 몸도 날렵한 것이 무척 빠른 운행을 한다. 석병산 직전의 갈림길에서 등반 객 3명을 만나서 서로 반가와 하면서 함께 석병산을 오른다(12:23도착). 석병산은 정상에 올라갔다가 일단 후퇴하여 갈림길에서 다시 우측 방향으로 길을 다시 잡아야 한다. 삽단령부터 석병산까지는 무척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바지는 무릅쪽이 다 떨어진데다 어제 밤에 헤맬 때 긁혀서 온통 상처투성이다. 반 팔로 다닌 팔뚝도 마찬가지다. 몹시 쓰라리는 것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발목이 나으니까 이제는 엉뚱한 부위가 또 말썽을 부린다. 일단 급한 데로 안내서를 집었던 집게로 바지를 집어서 응급처치를 한다.
계속 활엽수와 잡목의 밀림 속을 나가면서, 작은 봉우리를 계속 넘어서 922에 15:26분에 도착하였다. 자꾸 덤불 속을 헤쳐 나가려니까 긁힌 다리와 팔이 쓰라렸다. 14:27분에 829에 도착하여 라면을 끓여서 영양보충(?)을 하면서 30여분간 휴식을 취했다.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서 17:10경에 생계령에 도착한다.
전진 중에 몇 개의 노송이 어우러진 경치가 근사한 것이 상당히 분위기가 좋은 곳이 있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을 먹다 뒤에서 멧돼지가 씩씩거리는 소리에 기겁을 하고 잽싸게 짐을 싸서 줄행랑을 친다. 항상 이 멧돼지가 말썽을 피운다.
796을 지나 마지막 산길을 넘어서 철탑으로 오르다가 옆으로 질러가는 것이 나을 것같아 횡단을 하다가 또 다시 길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빠진다. 엄청나게 많이 우회를 하여 다시 자병산 한라시멘트 숙소 뒤에 도착하여 다시 본래의 길을 찾는다. 숙소의 정문 쪽에서 42번 철탑 쪽의 작은 봉우리를 포기하고 백봉령으로 탈출한다. 이번에는 마지막 부분이 또 엉망이 되버렸다.
백봉령에 이르자 등반 객 2명이 후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서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까 댓재에서 백봉령까지 14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친구가 내 행색을 보더니 내일 이기령까지 가면 많이 가겠다면서 슬쩍 자존심을 긁어 댄다. 속으로는 기분이 몹시 상했으나 내색은 않고 백봉령 간이휴게소에서 가서 감자부침과 캔 맥주를 시키고 주린 배를 위로한다. 조금전 두 명의 등반 객과 댓재에다 최근에 집을 지어놓고 민박을 하는 노식이라는 사나이와 같이 자리를 한다. 이 노식이라는 사람은 내일 꼭 댓재까지 와서 민박을 하고 가라는 친절한 조언을 하면서 다시 감자전과 맥주를 시키면서 자기네 민박을 많이 소개해 달라고 하고, 내일 보자면서 댓재로 차를 몰고 가버린다.
좋다! 내일 무리가 가더라도 댓재까지 한 번 가보자. 오래간만에 휴게소 옆에 자갈 위에 텐트를 치고 한기가 오르지 않는 푹신한 야영을 한다.
8월 30일
코스 : 백봉령 - 원방재 - 상월산 - 이기령 - 고적대 - 청옥 산 - 두타산 - 댓재.
승부(勝負)
04:45분에 기상을 하여 수프와 불고기 햄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06:10에 출발하여 987을 거쳐 1022까지는 중간의 봉우리 정상에서 하루살이에게 조금 시달리기는 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원방재에 도착한다. 백두대간 중에서 이 원방재가 상당히 재미있고 특이한 장소이다. 여기서는 해수욕을 할 수가 있고 깨끗한 식수도 충분히 보충할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산림도로가 개설되어 비상탈출도 가능하며, 상당히 교통이 편리한 장소이다. 가히 교통의 요지이며 백두대간상의 휴양지이다.
원방재에서 상월산에 이르는 곳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이루고 전위봉까지 있어서 사람 진을 다빼는 곳이다. 산의 동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10:55분 원방재를 출발하여 상월산까지 거의 한시간이 소요되었다. 상월산아래 이기령까지는 소나무와 낙엽송등으로 이루어져 등반로가 아기자기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마치 자연휴양림의 산책로 같다.
12:45분에 이기령에 도착한다. 이기령에도 역시 산림도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아늑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몇 해전에 댓재에서 쳐 올라올 때에 여기서 하루 밤을 지낸 적이 있다. 그때는 가스가 꽉 차서 그런지 이곳은 발견하지도 못하고 길에다 텐트를 치고 으스스한 분위기에 잔뜩 겁먹은 채 저녁밥만 해먹고 잽싸게 텐트속에서 지냈던 적이 있다. 이기령에서 행동 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출발하여 갈미봉과 고적대 쪽의 능선 향해 방향을 잡는다. 이곳의 초입도 낙엽송과 소나무가 어우러지는 아주 편안한 길로 이어지고 있다.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면서 힘이 들어간다. 조금 올라가면 등산의 좌측으로 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여기서도 물 보충이 가능하다. 이때부터 가랑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능선에 거의 붙을 즈음에는 누가 목장을 만들라고 했는지 나무와 풀을 모두 베고 목초지를 만들어 놓은 곳이 나온다. 이곳의 좌측 가장자리로 올라가 맨 윗부분에서 우측으로 횡단을 하다 보니 약간 우측으로 빠진 것같아 다시 좌측으로 배를 갈라 올라 치니 원래의 등반로가 나오고 바위 밑에서 나오는 석간수 샘물이 나온다. 여기가 사원터같은데 확실한 지점은 모르겠다(16:45).
물을 보충하고 다시 출발하는데 가랑비가 제법 굵은 빗줄기로 변하여 쏟아진다. 여기서부터는 지형이 상당히 험악해지고 많은 바위덩어리가 있어 위험한 지역인데 빗속에서는 더더욱 부담이 가는 구간이다. 여기서 야영을 하고 내일 출발했으면 좋겠지만 백봉령에서 산 친구의 말을 보란 듯이 묵살내주어야하고, 빗속에서 칙칙한 야영을 하기보다는 댓재의 따뜻한 온돌방에서 안락한 잠을 잘 욕심이 눈앞을 가려서 그런지 마음속에서는 자꾸 전진하라고 재촉을 한다. 에라 모르겠다. 밤새도록 가더라도 끝까지 가자. 빗속에서 갈미봉과 고적대 구간의 등반은 몹시 조심스러웠다. 짐도 있고 바위에 물을 먹은 상태에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구간이다.
고적대에 17:53분에 도착하여 잠시 비가 그친 사이에 삼척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한다.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친구의 목소리가 무척 반갑다. 당장 내려가서 회나 시켜놓고 소주나 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으나 부여받은 임무가 워낙 막중하여(?) 그러지도 못하고, 당장 내려오라는 친구에게 못 간다고 하자 그래 할 짓이 없어 곰같은 짓을 하냐며 정말 미친 놈이라고 하며 혀를 끌끌 찬다. 정말 내가 미친지도 모르겠다. 댓재에서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다시 출발을 한다. 구간이 험하니까 몹시 조심스러운 운행을 한다. 이런 구역에서는 단독등반을 할 때에는 몹시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 번의 실수도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킬 수 있다. 어려운 구간은 특히 겨울 같은 경우에 단독등반시는 두세 번은 배낭을 벗어 놓고 예행연습을 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지금이야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상당히 신중을 기할 필요는 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옷은 모두 다 젖어서 한기로 온몸이 으스스하다.
안개 속에서 계속 운행을 계속하여 17:53분에 고적대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사방이 온통 안개 속이라서 경치가 좋은 청옥두타산아래의 기암적벽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나 혼자만이 이 절해 고도 속에 떨어진 나그네일 뿐이구나! 연칠성령에서 출발하여 청옥산에는 금방 도착할 것 같은데 시간이 꽤 걸린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로 속상해하면서 18:30분에 간신히 청옥산에 도착한다. 안개가 꽉 찬 정상에는 반기는 사람하나 없이 외로움과 고독만이 이 나그네를 맞는다. 이제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다시 야영할 생각을 했으나, 두타산쪽으로 방향을 튼다. 야영의 유혹보다는 댓재 민박집의 유혹이 더 강해서 그런지 온 몸이 힘이 빠져서 갈 의욕이 전혀 없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여진다.
날은 어느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이제 부터는 야간등반이 시작된다. 몇 시에 도착할건지 알 수도 없고 과연 지금부터 댓재까지 끝까지 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발은 계속 움직인다. 박달령에 도착하자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서 헤드랜턴을 준비한다. 이 곳의 물먹은 돌덩어리를 조심조심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에 신중을 기한다. 한참 가다가 보니 방향감각이 이상해진다. 지금 진행되는 방향이 맞는지가 의구심이 생긴다. 마이너스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지금 지도를 꺼내 나침반을 이용한 지도독도를 하기는 싫고, 내려 갈 때는 좌측이 절벽이고 우측이 완만한 것이 백두대간의 등반공식인데 어두운 지금은 모든 것이 불가능하므로 무조건 운행한다. 서서히 날씨가 개면서 동해의 오징어 배의 불빛이 어슴푸레 비친다. 좌측에 있는 것으로 보아 정상적인 운행을 하는 것같은데 가도가도 두타산의 정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힘은 빠지고 점점 진도는 쳐지고, 바람과 밤추위가 등반의욕을 죽이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등반로가 위로 향하는 것을 보니까 두타산 정상이 가까워졌나보다. 그러나 등반로가 오르기 시작하고는 열 걸음가다 한 번 쉴 정도로 지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 같다. 가다가 그냥 배낭을 맨 채로 누워버린다. 벌써 14시간을 등반하고 있는데도 두타산 정상도 이르지 못했으니 여기서 이대로 누워서 자고 싶을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일단은 정상까지는 올라가서 등반의 계속여부를 결정하자. 일어서야 한다. 다시 느릿느릿 굼벵이처럼 올라간다. 갑자기 나무들이 작은 잡목으로 변하면서 정상이 나타난다.
결국 1차 목표는 탈환하였는데 정상은 굉장히 춥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여기서 야영은 끔찍한 말이다. 더 생각해 볼 사이도 없이 댓재로 향해 내리달린다. 조금 내려가니 바람이 잠잠해진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저녁도 굶고 설치고 있는 것이다. 저녁이라야 빵이지만 그래도 살아야지. 빵 2개에다 생수를 곁들인 간단한 식사를 한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저녁을 먹고나니 힘이 난다. 이곳에서 댓재까지는 올라는 와 봤지만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시간을 가름할 수가 없다. 올라올 때 보통 3시간이 걸렸으니까 2시간 정도면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내려 달렸으나 시간은 거의 세시간이 소요되었다. 가도가도 끝이없는 지루한 운행을 하여 23:15분에 댓재에 감격적인 도착을 한다.
거의 17시간정도나 등반을 계속한 셈이다. 너무 무리를 했다. 장기등반은 일정한 시간을 정하여 규칙적으로 하여야 하는데 이렇게 무리를 하다보면 체력이 떨어져 제대로 등반을 하기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백봉령에서 만났던 친구의 오만함을 깨뜨리기 위하여서도 아니,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보기 위하여라도 끝까지 견뎠다. (*백봉령에서 만났던 이 친구는 그 후 10월중에 설악에서 2번 만났음. 공룡능선에서 한 번, 두 번째는 설악산 탑골을 가야동으로 잘못 알고 등산객을 안내하는 것을 코스를 바로 잡아준 적이 있음. 그때 그 친구가 가이드라는 것을 알았음). 댓재의 마지막 부분은 산신각이 있는 산으로 올라서 시작되는 코스인데 이곳이 백두대간의 정코스이고 또 그냥 계곡의 산림도로로 내려오는 길도 있다. 나는 야간에 또 막가서 주능을 벗어나서 산림도로로 빠졌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댓재에 도착하였으니 말이다.
산신각을 확인하고 민박집을 찾아가서 아주 튼튼하고 먹음직스러운 개의 환영을 받으며 민박집을 문을 자랑스럽게 두드린다. 민박주인인 노식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러나 몸골이 거지중에 상거지가 되어서 몸에서 악취가 나고 도저히 인간의 몰골이 아니다. 비와 땀에 젖어서 옷이고 몸이고 모든게 엉망이다. 밖에 있는 상수도 물로 대략 몸을 씻고 드디어 호텔보다도 더 아늑한 민박집에 입성을 한다. 여기서 이 등반기간중에 최고의 V. I. P.대우를 받는다. 목욕탕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예비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옷을 갈아입고 폼을 잡는다. 그리고 산장주인이 라면을 끓이고 소주까지 곁들인 진수성찬을 준비한다. 소주 ,그것도 두병씩이나! 이 산에서 이 정도면 최고지 뭘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라면에 맛있는 고랭지 김치(김치 중에서는 특상 품이라는 민박집 주인의 설명을 첨언함)에다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이번 등반 중에 가장 행복한 꿈을 꾸면서 그대로 퍼져 버린다. 정말 힘든 하루였지만 고생 끝에 낙이라는 말이 절실히 느껴진다. 왕후장상이 따로 없지. 이번 만하고 다시는 안 하려고 했는데 이 민박집의 따뜻함이 나를 다시 산으로 불러들일 것 같다.
8월 31일
코스 : 댓재 - 큰재 - 구부시령 조금 못미쳐까지.
물과의 전쟁(戰爭)
오래간만에 8시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T. V.까지 시청하는 문명의 호사를 누리면서, 민박집 주인과 라면을 나누어 먹고 여유를 부린다. 밖에는 억수같이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다. 문명의 안락함과 집밖의 쏟아지는 비를 보니 출발할 의욕이 없어져서 자꾸만 민기적민기적거리는데 민박 주인이 비도 오고하니 하루 더 쉬었다가 날이 좋아지는 내일 가라고 자꾸 나의 옷깃을 잡는다. 그러나 하루를 쉬면 태백산까지의 운행은 물 건너간다. 밖의 날씨에만 신경쓸수 없다. 결국은 용기를 내어 출발의 결단을 내린다. 그러나 출발할 결심은 하지만 어떻게 그 차갑고 냄새나는 그 옷을 다시 입는단 말인가. 그 옷을 입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끔찍하다. 입고 있다가 체온으로 말린 옷은 냄새는 나지만 그런 대로 견딜만하지만, 새로 입을 때는 차가워진 옷이 감각을 마비시킨다. 옷을 입는데 30분이 더 걸린다. 다시 마지막으로 젖은 양말과 신발을 신고 빗속을 나가는 신세는 김삿갓보다도 더 처량하다. 물까지 먹어서 잔뜩 무거워진 짐을 지고 빗속을 뛰어든다(11:25).
다시 비속의 황장산을 향해 처량하게 기어오른다. 꼭 태백산까지 가야 하나 갈 때까지 가다 때되면 그만두면 되지. 아니지 이것은 나와의 약속이니까 꼭 완주해야해. 일단 황장산을 오르고 나서부터는 등반코스가 완만해지면서 아주 순해진 느낌을 준다.
그러나 또 다른 강적이 기다린다. 비로 나무에 생긴 이슬이 사람을 때린다. 특히 싸리나무의 이슬은 내키만한 높이에서 온 몸을 다 젖게하여 나를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만들어버린다. 댓재까지 얕은 구릉지대의 덤불과 작은 잡목과 가슴을 넘는 잡풀들이 나를 목욕시키겠다고 잔뜩 물을 머금은 채 샤워 꼭지를 틀어댄다. 가만히 있으면 더 으스스하고 추워지기 때문에 쉴새없이 그냥 내달리는 것만이 견뎌내는 방법이다. 계속 물과의 전쟁이 계속된다. 항상 백두대간종주시에 물이 부족하여 곤욕을 치르는데 이번에는 물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그래도 먹을라 고치면 부족하겠지.
14:05에야 큰재에 도착하고서야 물로부터 간신히 탈출한다. 비도 그친다. 댓재에서 조금 차도를 따라 가면 광동땜수몰지역에서 이주한 농민들이 개간한 고랭지채소단지가 나온다. 항시 이곳을 지날 때마다 농사가 잘돼서 이분들에게 많은 기쁨을 주기를 산신령에게 기원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운행을 하는데 예의 그 안개가 또 습격을 한다. 이곳에서는 채소단지를 가로질러 가야하기 때문에 독도도 잘 안되고 그냥 오직 수작업으로 건너편을 보고 코스를 진입하여야 한는데 안개가 끼면 진입지점을 잡는데 상당한 애를 먹는다. 안개로 온통 주위가 모두 잠겨서 주위가 하나도 안 보인다. 이거 또 다시 대관령의 망령이 또 나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고랭지채소단지의 길에서 벌써 헤매기 시작한다. 무조건 앞으로 전진하여 보이는 산으로 진입하였더니 미리 앞질러 잘못 진입하여 헤매기 시작을 한다. 다시 밭으로 탈출하여 밭길을 따라 가다 다시 진입하고서야 제 코스로 겨우 진입한다.
잠시 후에 쉬면서 간식을 먹던 중에 정말 반가운 친구를 만난다. 나보다도 더 미친 진짜 오리지널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전남에 있는 모대학에 다니는 학생을 만난것이다. 서로 반가워서 인사를 하고 서로의 행색을 보고는 낄낄거린다. 누가 더 거지냐고 그러면서. 내 옷도 두릅에 큰 구멍이 두 개나 나서 너덜 너덜거리는데, 이 친구는 그래도 바늘로 꼬매서 좀 낫기는 하나 백결선생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오는 이 용자(勇者)를 위해서 나의 마지막 남은 최후의 간식인 초콜릿을 건넨다. 잠시 후에는 분명 후회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주지 않고는 못배길것을 알기 때문에 주저 없이 건넨다. 이 친구도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는 모양을 보니 꽤 배가 고팠나보다. 서로의 안전과 완주를 기원하면서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남북으로 갈라진다.
계속 전진을 하여 헬리콥터장의 야생화를 감상하면서 오래 간만에 여유를 찾는다. 대덕산 정상이 있는 곳에는 삼척시에서 등반로를 정비하여 대덕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곳은 가지 말라고 옆으로 등반로를 유도하였으나 고집을 부리고 정상으로 올라간다. 이곳의 정상은 한참 헷갈린다. 산불감시소가 있는 곳인지 아니면 이곳이 정상인지. 내가 판단하기에는, 옛날에는 산불감시소가 있는 곳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지금은 이곳이 정상이 맞는 것 같다. 이유는 단순하다. 왜냐하면 제일 높으니까. 대덕산 정상 주위는 동쪽을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경사가 심해서 아찔하다. 그러나 서쪽을 보면 차소리도 나고 사람이 사는 것같은 것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서서히 전진을 하면서 구부시령까지를 목표로 하여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곳에 가면 물도 있고 맛있는 식사(?)로 굶주린 배를 채울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또 사고를 친다. 한참 신나게 내려가다 보니 길이 좀 이상한 것 같다. 표시기가 어느 교회표시기이고 감이 안 좋다. 무덤이 나오고 길이 아래도 뻗어 있다. 길이 이상하여 우선 무덤 쪽으로 진입하여 길을 찾으려 하였으나 수풀이 우거져서 숲속은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한 것이 방금 지나온 무덤에서 소복한 여자라도 히히거리며 나올 것 같다. 고집으로 계속 전진하였더니 숲이 점점 더 깊어진다. 드디어는 가시덤불이 나타나서 볼품없는 찟어진 바지 속의 무릎을 강타하기 시작한다. 입에서 저절로 비명이 나온다. 안되겠다. 작전상 후퇴다. 다시 무덤이 있는 곳까지 물러나서 호흡을 고르고 다시 운기조식을 하여 다시 운행하는 고집을 부려본다. 이번에는 내려가 보자 다시 올라가면 진짜 후퇴니까. 다시 내려가 본다. 그런데 점점 뭔가 이상해진다. 아래는 교회 종소리가 들리고 개가 짖어 대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이 완전히 잘못짚었다. 이 번에는 옆으로 나가본다. 산길이 나오는데 따라 가봤더니 엉뚱한 곳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날이 어두워져서 더 갈 수도 없고 야영을 할 장소가 걱정이 된다. 오늘은 완전히 손해보는 장사를 했다. 몸은 완전히 물에 젖어서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이다. 길 옆 아무 데나 편편한 곳에 텐트를 치고 들어간다. 그 많던 물은 다 없어지고 모자라는 한 통의 물로 저녁을 짓고, 한기가 올라오는 텐트 속에서 밤을 지내면서 한 마리의 야수가 된다. 어딘지도 모르는 산 속에서 웅크리고 괴로운 밤을 한기 때문에 자다 깨다하면서 몸으로 때운다. 아마 20번은 족히 깨어났을 것이다.
9월 1일
코스 : 구부시령 - 푯대봉 - 한의령 - 944.9 - 피재 - 비단봉 - 금대봉 - 싸리재
야간 행군(夜間行軍)
괴로운 밤을 지내고 06:05에 다시 출발한다. 우선 잃어버린 길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 어제 내려온 코스를 더듬어 올라가다 옆으로 난 길이 있기에 다시 옆으로 가본다. 아주 흐릿한 길이 그럭저럭 연결된 것이 주능으로 붙을 것같길래 따라 올라간다.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능선까지 올라왔으나 주능에서 벗어난 장소였다. 이제는 정말 다시 찾아야 하는데 내가 있는 위치도 모르고 독도도 안되고 에라 모르겠다 어릴 때 하는 수법을 사용하기로 한다. 어릴 때에는 침을 튀겨서 많이 튀겨나가는 곳을 목표로 했으나 지금은 산꾼답게 배낭을 세워놓고 넘어가는 방향으로 가기로 하고 정성을 들여서 배낭을 세우고 쓰러뜨려 쓰러진 방향으로 10여분에 걸쳐서 올라가 본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올라왔다. 배낭도사가 잘못 가르쳐 주었다. 씩씩대면서 다시 내려간다. 이번에는 반대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대안이 없는 선택이다. 잔뜩 긴장을 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라간다. 드디어 주능이 나타난다. 마침내 찾았다. 흥분한 기분에 앞뒤도 재지 않고 그냥 내달린다. 한참 가다보니 또 좀 이상하다. 어디서 많이 본 장소가 나타난다. 이거 진짜 마이너스로 가는 것이 아닌지. 다시 지도를 펴놓고 독도를 한다. 에고 정말 반대 방향인 댓재로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반대 방향을 잡아서 가다가 보니 세갈래길이 나온다. 여기서 내가 어제 빠진 이유와 원인이 규명된다. 세 갈래 길이 나온데서 좌측으로 가야 될 것을 우측으로 내리달린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길을 잃지는 않았을 텐데 항상 덜렁대는 성격이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그 후에 07:50분에 덕항산 감시초소와 푯대봉을 거쳐서 11:40에 한의령에 도착한다. 산판한 나무를 적재한 곳에서 짐을 풀고 오래간만에 젖은 텐트등 장비를 말리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여유를 갖고 이제는 정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한다. 시간상으로 충분히 여유가 있다. 하루 반나절 정도면 등반이 완료될 것 같다. 12:35분에 다시 출발한다. 960.2를 걸쳐서 큰 어려움 없이 전진을 계속한다.
등반도중에 어제 화방재에서 출발한 등반객을 만나다. 등반도중에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다고 하면서도 계속 등반을 하는 것을 보니 나와 같은 계열의 사람인가보다. 피재까지의 길을 물으니까 친절하게도 산 잡지인‘사람과 산’에서 나온 백두대간의 지도를 보여 주면서 시간까지 곁들어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무척 좋은 사람이다 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또 문제가 생겼다. 비가 오다 날씨가 개어서 그런지 모기들이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에 한 30마리씩 달라붙어서 피를 포식하자고 대든다. 그러치 않아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헌혈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내피를 먹겠다는 흡혈귀는 좀처럼 공격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 액운을 면하려면 다시 1000미터 이상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피재까지는 1000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없다. 걸음아 나 살려라 정신없이 내달려서 16:15분에 피재에 도착해서 간이 매점 주인에게 구조를 요청하였더니 요 위에 매봉산만 올라가면 괜찮으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 친절에 용기를 얻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실과 바늘이 있냐고 부탁을 드렸더니 집에 있다는 황당한 대답이다.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간식도 많이 구입하고 매봉산으로 향해 올라간다. 매봉산을 그냥 놔두고 고랭지채소단지에 이르는 길로 바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아스팔트길이 몹시 힘이 든다. 한참 올라가다 보니 이게 또 무슨 망령인가. 또 안개가 장막을 가리기 시작한다. 또 대관령, 큰재의 고랭지채소단지와 같이 안개를 만나는 악순환을 겪는다. 또 채소밭 가운데에서 헤매기 시작한다. 비단봉을 오르는 진입로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독도를 해도 이 배추밭에서 잘 안 된다. 또 헤매기 시작한다. 안개하고 무슨 악연이 있는지 대관령, 큰재와 여기서까지 안개를 만나 인사불성이 되다니 자꾸 한심한 생각이 든다. 완전히 추수한 배추밭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비단봉의 진입지점은 고사하고 비단봉의 방향도 제대로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완전히 광동댐의 재판이 된다. 위로가 되는 것은 현재상태는 빠지지는 않았다는 것과 길의 위치와 방향에 대한 기본 감각은 가지고 중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또 가끔 사람들이 지나가면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아주머니한테 비단봉을 물어보니 대략적인 방향을 가르쳐 준다. 다시 배추밭을 가로질러 위쪽으로 올라간다. 한참 가니 서서히 안개가 걷힌다. 방향을 바로잡고 비단봉으로 바로 방향을 잡아 잠깐만에 정상에 이른다.
그러나 시간이 어두워지고 있다. 벌써 시간이 18:40이다. 이제부터는 야간행군을 준비해야 한다. 이곳은 안개도 채가시지 않은 것이 분위기가 스산하다. 헤드랜턴을 준비하고 간식을 들고 완전히 야간전투에 진입한다. 헤드랜턴으로 등반로만을 고정시키고 머리를 잔뜩 웅크리고 겁먹은 자세로 전진을 한다. 잘 보아야지 등반로상에서 잠깐만 빠져도 곤란해진다. 과거에 한번 운행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대략적인 길을 아는 것을 전제로 시도하는 것인데 솔직히 자신은 없다. 등반로는 양호하다. 그러나 주위가 안개가 낀 상태니까 무척 긴장이 된다. 쥐죽은듯이 고요한 정적 속에서 운행을 하니 은근히 불안하다.
갑자기 옆에서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멧돼지인지 노루인지는 모르지만 뭔가가 도망가는 소리에 기겁을 한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그래도 나보다는 저 녀석이 더 놀랬을 거라고 위안을 삼고 금대봉을 향해 내달린다.
20:15분에 드디어 금대봉에 도착한다. 안개는 완전히 걷히고 산밑의 시내와 함백산의 중개 탑의 불빛은 멋진 야경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싸래재로 내려가는 진입로를 찾아야 한다. 깜깜한 밤중에 진입로를 찾는 것은 쉽지가 않다. 여기서는 신호기를 의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같아서 표시기를 찾았으나 한 밤중에 표시기를 찾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한 개의 표시기를 간신히 발견하고 약간은 미심쩍었으나 방향이 일치하니까 내리친다. 순식간에 산밑의 임도까지 도착한다.
이곳에는 철조망이 쳐있고 금대봉의 자연보호 안내입간판이 설치되어 있고 여기서부터 양쪽으로 길이 나있다. 방향이 아래쪽인 방향으로 내리쳤으나 한참 내려가 보니까 길은 없어지고 점점 가슴을 넘는 수풀과 마주치며 길이 끊긴다. 또 잘못 들어간 것이다. 다시 지친 몸을 이끌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다. 원위치를 하여 조금더 나가니 금대봉으로 진입하는 표시기가 잔뜩 달려 있다. 금대봉 위에서 조금 좌측으로 더 나아가서 방향을 잡았더라면 지금쯤에는 싸리재에 내려갔을 텐데. 잠깐 내리달리니 싸리재에 도착한다.
옛날 같으면 지금부터 즐거운 일들이 기다릴 시간인데 간이매점도 보이지 않고 시간도 늦고 해서 몹시 실망스럽다. 차소리에 잘 넘어가지도 않는 빵을 씹으며 예의 텐트 밑에서 올라오는 한기와 싸우며 괴로운 밤을 지낸다. 그러나 이 밤만 지나면 산행은 끝난다. 내일이면 인간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버티자.
9월 2일
코스 : 싸리재 - 은대봉 - 함백산 - 마항재 - 화방재 - 태백산 - 황골
완주(完走)
드디어 마지막 날이 왔다. 아침 6시에 운행을 개시한다. 이 함백산 구간의 등반은 완만한 능선으로 등반상의 어려움은 없다. 은대봉까지의 잠깐 힘을 쓰고 나면 그 다음은 그냥 가면 된다. 별생각도 없이 내달리니 어느새 함백산 정산으로 이르는 능선상의 차도에 이른다(08:25). 여기서 함백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하나 함백산정상을 포기하고 바로 차도를 따라 내려간다. 약간은 지루한 느낌이 있으나 건너편 태백산의 웅장한 자태를 보면서 편안한 기분으로 내려간다.
09:15에 마항재에 도착하여 버너를 피우고 수프를 끓이고 빵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마항재 휴게소에서 커피라도 한 잔하려고 갔더니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문을 닫아 물만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화방재로 향한다(9:55). 마항재에서 화방재에 이르는 등반로도 한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무척 시간이 많이 걸리다. 11:15분에야 겨우 도착한다. 화방재에서는 식당에 들러 오래간만에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시켜놓고 포식을 한다. 배는 부르고 노곤해지는 것이 태백산을 올라갈 마음이 없어진다.
가만히 이번 등반을 생각하여보니 그래도 이 구간을 몇 번 등반한 경험이 있는 산꾼이 툭하면 길을 잃고 헤매기가 다반사고, 고집으로 원상회복은 고사하고 등반을 더욱 더 악화시키는 만행을 자행한다.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지면 산악재판에 회부되어 산악회의 명예를 실추하였다는 죄명과, 미련하다는 불명예와 함께 최소한도 3개월 이상의 산행출장정지 처분이 내릴 것이다.
좀 더 산행을 신중히 하고 독도법등 산행의 원칙을 철저히 이행하였다면 산행이 생기(生氣)가 넘치는 기분 좋은 산행이 되었을 텐데, 너무 형식(形式)적이고 무모하게 달려들어 마치 광인(狂人)(?)이 등반하는 것같이 등반을 엉망을 만들어 버렸다. 차분하게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성 있는 진행과 오직 정수(正手)만으로 운행을 한다면 종(終)내는 필(必)히 더 멋지고 완벽한 산행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시행착오와 많은 변수가 없다면 이 구간의 등반은 무미건조하고 나중에도 낭만이나 이야깃거리가 없는 재미없는 등반으로 나의 기억에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인생이란 것이 정석으로만 산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잡지를 사도 별책부록이 더 호화롭고 흥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시행착오의 재미가 없다면 내가 이렇게 또 이 구간에 매년 달려들었을까.
12:00에 화방재를 출발하여 이번 등반의 마지막구간인 태백산을 향해 오른다. 화방재에서 태백산을 바로 오르는 코스(주유소 뒤편)를 잡아서 오른다. 배가 부르고 졸리니 등반은 정말 싫다. 잠시 뱀의 꼬리를 밟아 해프닝이 있었으나 사태를 원만히 수습되고 운행은 계속된다(뱀은 사망. 본의 아니게 밟아버렸음).
자꾸 꾀가 나서 조금 오르다 쉬고 또 조금 오르다 하면서 쉬고 산신각을 지나 유일사로 가는 갈림길까지 올랐는데도 정상은 까마득한 그 같은 것이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유일사 입구에서 잠시 쉬다 드디어 같이 등반할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등산객은 아니고 전국의 명산이나 유명한 절을 찾아다니며 도를 닦고 불교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등산화를 신은 것도 아니고 구두에다 서류가방 1개를 달랑 들고 휘적휘적 올라가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 누구는 완전 무장하고 온 힘을 다 써가면서 해도 힘들어 죽겠는데 유유자적하니 말이다. 그래도 서로 말동무를 해가면서 오르니까 힘도 들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재미로 금방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의 정상에 오른다.
너무 감격스러워 멋진 말이라도 생각날 것같지만 막상 닥치니까 그저 담담하다. 무척 힘든 등반이었다. 짐의 무게를 줄이겠다는 욕심에 침낭은 아예 준비하지도 않고 매트리스준비의 부실 등 치명적인 실수는 수많은 밤을 추위와 고통 속에서 밤을 짐승같이 지새우게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등반은 잠을 잘자야하는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난관 속에서 몇 번씩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생각에 무척 기쁘다. 정상은 공군훈련기로 인해서 무척 시끄럽다. 그 동안 밑에서 걱정하여 주신 분들에게 간단한 안부전화를 드리고 망경사로 내려와서 당골로 향한다. 도중에 태백에 안전교육연수를 왔다는 젊은 친구를 만나서 함께 내려오면서 그 동안의 등반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즐거운 하산을 한다. 당골의 매표소 직전에 와서는 드디어 아래동네를 향한 하산준비를 본격적으로 한다. 당골 옆의 계곡에서 몸을 씻고 그 동안 그 비속에서 땀에 절고 오래된 산 냄새가 진동하는 옷을 벗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보관하였던 예비용 옷으로 갈아입고 드디어 짐승에서 인간으로 탈바꿈을 한다. 12일동안 배낭아래 깔아놓고 아끼고 아끼던 캔맥주 1 캔을 개봉하여 마차 한풀이 하듯 마신다. 안주삼아 캔껍질까지 씹어서 마셔버린다(?). 안주로는 정말 기가 막히는군. 기분이 그렇다는 이야기임.
파란만장한 사연을 간직한 채 완주라는 멋진 선물을 받고 즐거운 귀경을 한다. 올라갈 때는 그렇게 지겹던 등반도 끝났다는 생각에 버스를 타고는 벌써 다음에 오를 산을 그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설악산과 나의 고향산인 오대산과 우리 집 뒷산인 치악산의 즐거운 등반코스를 그리면서 잠속으로 빠져든다.
*등반후기....
등반이 끝난 지 벌써 4달이 다 되어 가고 있는 지금에도 이 백두대간구간종주등반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 구간은 86년도 태백산맥종주라는 백두대간의 개념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거의 매년 한 번씩 산행을 하면서 등반의 성공이나 완주보다는 도중에서 실패와 좌절로 얼룩진 나의 승부의 무대이기 때문일 겁니다.
막상 도전을 하고 나면 즐거움보다는 후회와 괴로움이 더 많은 산행이 되지만, 이 산행은 모험심과 강인한 정신력을 키
워 나를 더 강하게 단련시킵다. 설악이 나의 친구라면, 이 백두대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게 하는 영원한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관령 근방에서 발목이 아플 때는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꼈지만 삽단령 근처에서 정신없이 헤매다가 저절로 나아버린 행운과 건강하게 등반을 끝마치게 한 것은 만약에 산신령님이 계신다면 산신령이 도와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 위대한 자연 앞에서 항상 겸허한 자세를 가지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지금은 10월달에 설악등산 도중에 다친 어깨의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설악의 능선과 계곡에 하얀 눈이 쌓이기를 기다리며 멋진 산행의 꿈에 젖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구간의 동계단독완주를 꿈꾸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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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초당은자님의 대간 종주기를 대충 읽으면서 계획도 잘 세우고 고생도 엄청했다 생각되면서
백두대간 종주에 대한 꿈과 열정을 가지고 걷던 때가 그리워지네요. 완주를 못하고 척추수술로
마감했지만 척추와 무릎이 망가진 칠십넘은 이의 허망한 꿈을 가져봅니다 '언제 다시 할 수 있을까?'
초당은자님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람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한 산행 중에는 가장 긴 산행이었고 시행착오도 많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백두대간종주산행이었습니다. 빨리 건강회복하셔서 좋은 산행 많이 하시고 산에서 바라시는 꿈이 꼭 이루어지시길 기원드립니다. 멋진 댓글에 감사드리고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드뎌 존함을 알게 되는군요
다 읽지는 못했지만
사전 준비과정과 잘 세워진 계획표 도움 받습니다
즐점하시고 많은 고견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