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안전기원제’에 대해
(2) ‘고사·안전기원제’ 절차
글·사진 대구유교문화연구소장 송은석(010-9417-8280) / 3169179@hanmail.net)
프롤로그
앞서 ‘고사·기원제란 무엇인가?’에 이어 이번에는 고사 절차에 대해 한 번 알아보자. 필자의 경우 소규모 고사·기원제에서는 별문제가 없는데, 규모가 큰 고사·기원제 경우 종종 담당자와 의견 충돌이 있을 때가 있다. 필자는 고사를 의뢰받은 입장이기 때문에 최대한 그들의 의견을 수용해 조율하는 편이다.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대부분 고사·기원제의 정확한 의미와 절차를 몰라서 발생한다. 고사를 의뢰한 담당자 입장에서는 ‘의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고사를 책임지고 진행해야 할 집례 입장에서는 고사의 ‘의미와 절차’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사·기원제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모든 제사는 ‘영신(迎神)→헌작(獻酌)→송신(送神)’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신과 사람이 만나는 모든 유형의 제사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영신·헌작·송신’이라는 제사 3대 요소다. 영신(迎神)은 ‘맞이할 영’, ‘귀신 신’으로 귀신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제사는 신과 사람 사이의 일이다. 그래서 신을 위한 제사상을 다 차린 후, 제일 먼저 하는 절차가 신을 제사상이 차려진 제단으로 모시는 절차다. 이게 바로 신을 맞이하는 ‘영신’이다.
헌작(獻酌·獻爵)은 ‘드릴 헌’, ‘술잔 작’으로 제단에 강신한 신에게 술잔을 올리는 절차다. 이때 올리는 술잔은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술잔’일 수도 있고, ‘신을 기리고 추모하는 술잔’일 수도 있다. 이는 제사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어쨌든 제상에 차려진 제수와 함께 향기로운 술을 올려 신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헌작이다.
송신(送神)은 ‘보낼 송’, ‘귀신 신’으로 의식을 마친 뒤, 제단에 강림한 신을 본래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는 절차다. 신에게 마지막 절을 올리는 ‘사신례(辭神禮)’, 신에게 올렸던 축문과 폐백 등을 불사르는 ‘망료례(望燎禮)’가 송신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그 어떠한 제사도 ‘영신·헌작·송신’이라는 제사 3대 원칙을 벗어나는 제사는 없다.
고사·기원제 절차
고사·기원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사전 협의
○ 집례와 안전기원제 담당자가 만나 의식 관련해 사전 조율하는 과정이다. 행사 시작 전 잠깐이면 된다.
○ 주요 내용은 ‘초헌관·아헌관·종헌관’을 정하는 것이다.
고사 시작
○ 집례가 촛대에 불을 밝히고 모든 참석자에게 고사 시작을 알린다.
○ 이때 집례는 당일 고사·기원제의 성격과 함께 어떤 콘셉트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한다.
○ ‘집례’는 고사·기원제를 진행하며 고사의 처음과 끝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요즘 말로 바꾸면 ‘제사 전문 사회자’라 할 수 있다.
○ 고사·기원제의 분위기와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집례’에게 달려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집례 90%, 축관 10% 정도쯤 된다.
강신례(降神禮)
○ 고사·기원제에서 제일 먼저 행하는 절차로 신(神)을 모시는 절차다.
○ 강신례는 고사·기원제의 제주이자 초헌관인 ‘1인’이 행한다. 안전기원제의 경우 통상 현장소장이 한다. 강신례를 비롯한 ‘초헌례·음복례·망료례’는 제 아무리 높은 인사가 참석했더라도 그날 고사·기원제 제주에 해당하는 인물이 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끔 안전기원제에서 현장소장이 강신례·초헌례는 물론 ‘종헌례’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예법에 맞지 않다. 100번 양보해도 초헌관이 종헌관까지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예법이다.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 먼저 향 3개를 불사르고, 술잔의 술을 조금씩 3번에 걸쳐 퇴주기(빈 그릇)에 나눠 부은 후, 절을 두 번 한다.
○ 향을 불사르는 이유는 하늘로 올라가는 향 연기에 의지해 허공에 있는 신을 모신다는 의미다.
○ 술을 퇴주기에 지우는 이유는 땅속으로 스며드는 술향기에 의지해 지하에 있는 신을 모신다는 의미다.
참신례(參神禮)
○ 제단에 강림한 신에게 참석자 전원이 인사를 올리는 절차다.
○ 집례의 구령에 맞춰 두 번 절을 한다.
○ 요즘 절 횟수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옛 예서에는 “산 사람에게는 한 번, 제사에는 두 번, 임금에게는 네 번”으로 절 횟수가 정해져 있다. 조선시대 들어 모든 예법이 유교식으로 개편되면서 자연신에 대한 절도 두 번으로 정리됐다. 그럼에도 고사에서는 굳이 절을 세 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하고 싶으면 세 번 해도 괜찮다. 하지만 3배는 근거 없는 절 횟수며, 시간도 배로 잡아 먹는다.
초헌례(初獻禮)
○ 신에게 첫 번째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절차다. ‘처음 초’, ‘드릴 헌’ 첫 술잔이란 의미다.
○ 초헌관이 행한다. 건설현장 안전기원제 경우 현장소장이 한다. 이때 의전 문제로 굳이 높은 사람이 하기를 원한다면 집례와 사전 조율할 필요가 있다.
◎ 독축(讀祝)
○ 신에게 축문(기원문)을 읽는 절차다. 축문 내용은 ‘6하 원칙’을 따르는데, 이 자리에 왜 사람들이 모여 고사를 지내는지 그 사연을 신에게 알리는 내용을 담는다.
○ 독축은 축관(祝官)이 행한다. 한자 ‘축(祝)’은 ‘남자 무당 축’을 의미한다. 사실 축관의 역할은 집례만큼 중요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축관은 무당의 역할이다. 고사는 신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신과 사람을 연결하는 무당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축관이다. 독축을 분위기에 맞게 좋은 음성으로 잘 읽으면 고사 분위기의 50%는 먹고 갈 수 있다. 그런 만큼 축관은 아무나 할 일이 아니다. 자신 없으면 집례에게 부탁하는 것이 상책이다.
아헌례(亞獻禮)
○ 신에게 두 번째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절차다.
○ 아헌관이 행한다. ‘아(亞)’는 ‘버금 아’로 서열에서 두 번째란 의미다. 아헌례에서는 ‘여러 사람’ 혹은 ‘팀’ 별로 술을 올리고 절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의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 경험에 의하면 대체로 ‘발주처, 감리단, 본사 간부, 협력업체, 현장 직원’ 순서가 무난하다. 현장 직원 순서를 뒤에 둔 것은 손님을 먼저 우대한다는 의미다. 통상 아헌례를 행할 인원과 순서는 기원제 시작 전 현장에서 집례와 사전 조율할 필요가 있다.
종헌례(終獻禮)
○ 신에게 마지막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절차다.
○ 종헌관이 행한다. ‘종(終)’은 ‘마칠 종‘으로 이 술잔을 끝으로 술잔 올리는 예를 마친다는 의미다. 안전기원제 경우 종헌관은 주로 안전관리 책임자가 한다. 혹 의전 문제가 있으면 초헌관 다음 가는 이를 종헌관으로 하되, 집례가 반드시 종헌관에 대한 소개 멘트를 해 오해 소지를 사전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
음복례(飮福禮)
○ 신이 내려주시는 복주(福酒)를 초헌관이 대표로 마시는 절차다.
○ 음복례는 신이 흠향하고 절을 받은 대가로 고사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복을 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이때도 마찬가지다. 제사 원칙으로 보면 초헌관이 음복례를 하는 것이 맞지만 혹, 의전 문제가 있으면 사전에 집례와 상의해 조율할 필요가 있다.
사신례(辭神禮)
○ 고사·기원제 참석자 전원이 신에게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시라는 의미로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절차다.
○ 집례 구령에 따라 두 번 절한다.
망료례(望燎禮)
○ 신에게 올렸던 축문·폐백 등을 불사르는 절차다. 초헌관이 행한다.
○ 사실 망료례는 단순히 축문을 불사르는 절차가 아니고, 고사 참석자 전원이 축문이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절차다. 그래서 ’바라볼 망’, ‘불태울 료’ 망료례라고 하는 것이다.
○ 아주 가끔 이때도 의전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사전에 집례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
예필(禮畢)
○ 모든 예를 마친다.
기타
회사 측 사회자와 집례의 업무 분담
○ 가끔 현장에서 회사 측 사회자와 집례가 고사·기원제를 같이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사회자가 사전 준비된 시나리오를 읽고 집례가 의식을 돕는 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회사 측에서 집례를 요청할 때는 전문가에게 고사·기원제 를 맡기기 위함 아닌가. 괜히 복잡하고 힘들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면 된다.
►고사·기원제에 앞서 회사에서 준비한 의식행사가 있으면 회사 측 사회자가 먼저 의식을 진행한다.
►이어 고사·기원제 순서가 되면 사회자는 “지금부터 집례관이 주관해 안전기원제 지내겠습니다”라고 멘트 하고 집례관에게 마이크를 넘겨준다.
►이후 고사·기원제는 집례가 알아서 진행하고 고사가 끝나면 집례는 마이크를 다시 회사 측 사회자에게 돌려준다.
►안전구호, 마무리 멘트 등은 회사 측 사회자가 한다.
축관과 집사
○ 통상 건설현장 안전기원제 경우 집례를 요청할 때는 축관까지 더불어 부탁하게 된다. 필자 경우 한지에 직접 축문을 작성해 축관까지 수행한다.
○ 집사는 의례를 돕는 사람이다. 흔히 ‘좌집사·우집사’ 하는 것으로 주로 술을 따르는 역할이다. 집사는 제사상을 준비한 업체 쪽에서 해 줄 때도 있고, 아니면 현장 직원이 맡기도 한다. 1-2명이 담당한다.
에필로그
고사와 안전기원제는 누군가에게는 ‘미신’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종교적 믿음’일 수도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이걸 두고 ‘갑론을박’하며 싸울 사람은 없다. 그저 자기 편한 대로 임하면 된다. 절도 마찬가지다. 남 눈치 볼 필요 전혀 없다. 종교적 이유로 절이 불편하면 안 해도 괜찮다. 경건한 자세 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끝으로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고사와 기제사는 다르다. 기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고 추모하는 엄숙한 의식’이다. 하지만 고사는 그렇지 않다. 고사는 ‘신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우리가 소망하는 바를 얻어내고자 하는 의식’이다. 다시 말해 고사는 신과 사람이 함께 즐겁게 어울리는 일종의 축제다. 따라서 고사·안전기원제 등은 엄숙하고 딱딱한 자리가 아닌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즐겁고 자유로운 자리가 되어야 한다. 물론 최종 결정권자가 엄숙한 자리를 원할 때는 당연히 엄숙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그날 ‘집례’의 능력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