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루는 사람들
202012034 최준혁
남궁인, 「만약은 없다」, 문학동네, 2016.7
남궁인 작가의 ‘만약은 없다’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응급실에서 있던 일들을 쓴 일기이다. 남궁인 작가는 응급의학자 의사이기 때문에, 응급실에서 마치 전쟁을 하는 듯한 응급의학과 의사의 생생한 현실을 이야기 하나 하나에 넣었다. 책을 읽기 전엔 ‘응급의학과’라는 단어나 제목에 이끌려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됐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점차 진지한 태도를 갖게 되었다.
‘만약은 없다’에서는 죽음과 삶 사이에 놓은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이들 중에는 살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고, 죽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철로 위의 두 다리’에서, 70대 노인은 죽기 위해서 열차로 뛰어든다. 하지만 노인의 자살을 위한 시도는 실패하였고, 그대로 산 채로 응급실로 실려 왔다. 그리고 노인은 두 다리를 잃었다. 응급실에서 노인은 의사에게 내게 죽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절규한다. 결국 그 노인은 하반신이 없는 채로 또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당연히 살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다. ‘붉은 지옥’에서, 눈에 대못이 박힌 인부가 등장한다. 작가는 이 상황을 ‘내가 보고 있는 사실이 당연하나 믿기 어려울 때, 어떤 광경을 보고 있으나 그 존재가 가늠되지 않을 때’라고 이야기한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부쳐’는 한 때 유행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대한 작가의 견해가 담겨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의 고통을 함께 느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루게릭병은 모든 운동신경이 파괴되어 가면서도, 정신만은 온전한 병이다. 즉 루게릭병에 걸리게 된 사람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몸에 갇히게 된다. 텔레비전에서는 얼음물을 뒤집어쓴 사람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깔깔대며 웃었고, 약 올리는 듯이 다음 참가자들을 지목했다. 작가는 그곳에는 슬픔이란 존재하지 않고, 저 멀리 어딘가 이름 모를 사람들이 겪는 일처럼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이를 담당하는 의사들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의사라는 직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들의 모습이 너무나 힘들어 보였다. 응급실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를 겪었든 고의이든 간에, 의사들은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들을 살려내야 한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이 삶의 경계로 끄집어 올려졌을 때, 그 사람에게 ‘왜 나를 살렸나, 죽는 방법을 알려 달라’라는 말을 듣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을 현장에서 들은 의사들의 마음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자신의 손에서 사람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모습을 매일 실감한다. 그들이 가진 무게감은 그들이 아니라면 감히 누가 상상조차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릴 적 응급의학과 의사부터 흉부외과 의사를 꿈꿔왔기에, 이 책을 정말 진지하게 읽어 나갔다. 개인적으로, 대우가 열악하고 일이 힘든 흉부외과 의사들은 점점 적어지고, 위험 부담이 적은 분야로 몰리는 현상이 굉장히 안타까웠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힘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감당도 안 될 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더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또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부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알 것이다. 아마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만한 이야기이다. 나는 작가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의 모금을 위한 챌린지이고, 좋은 목적이 맞다. 하지만 찬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깔깔대며 웃어 대는 것이 과연 루게릭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함인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가 한 말처럼, 정말 그들의 고통은 본인들과는 동떨어져 있는 곳에 존재하듯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것이 나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요즘은 최선을 다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이 많고,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에서는 딱히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항상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최선을 다 해봤자 좋은 결과는 없다고 말하지만, 비록 결과가 뻔히 보이더라도 그들은 항상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 “결과가 뻔히 보여” 등의 이유로 의사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은 상상도 하기 힘들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분들께 감사하며, 나도 어영부영한 마음가짐이 아닌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을 취할 것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