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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 각본/감독 : 안권태
프로듀서 : 정회석
1. 타이틀 씨이퀀스
무지에서 음악 흐르면 빛 바랜 흑백의 사진들이 보이고 만든 이들의 자막이 차례로 뜬다. 갈래 머리를 따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사진이 몇 장 보이고 카메라 흐르듯 이동하면 훤칠 하게 생긴 남자의 사진이 몇 장 보인다. 이어 하노이 130KM, 다낭 40KM 등의 표지판들이 놓여진 이정표 밑에서 담배를 꼰아 물고 M16을 든 남자의 모습. 다시 카메라 흐르듯 이동하면 초라한 결혼사진이 보이고 이어 아이를 들쳐 업은 여자가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면 병실에 누운 깡마른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이어 남산만한 배를 하고 아이를 업은 소복을 입은 여자가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면 남자의 영정 사진이 보인다. 그 사진에서 카메라 천천히 빠져 나오면 액자의 프레임이 보이고 다음 씬의 장소인 사진관 벽에 걸린 사진과 겹쳐진다.
2.INT.사진관-DAY
음악 이어지면 흐르는 음악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톤으로 바뀌고 위 사진과 자연스럽게 매치되는 벽면의 사진들. 카메라 벽면의 사진들을 훑으며 지나가다 데스크 쪽으로 이동하면 조그만 카세트 플레이어가 보이고 이어 구형 카메라에서 필름을 꺼내는 사진사의 손이 보인다.
사진사(O.S.): 어무이는 잘 계시나?
종현(O.S): 네.
종현의 측면 뒷모습 너머로 보이는 사진사. 아직 종현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종현은 맞은편 벽면에 걸린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사: 쪼매 기다리야 되는데 우짤래 종현아.
종현: 고개를 사진사 쪽으로 돌리며)
얼마 즈음 걸리는데요.
사진사
사진이야 기계가 뽑는 기고 실은 내가 볼일이 있어서·
종현
기다 릴께요. 일 보고 오이소.
사진사가 데스크에서 빠져 나오면 종현의 고개는 다시 원위치로 돌아 온다. 사이즈 넓어 지면 종현이 우두커니 서서 무언갈 바라보고 있다. 종현 앞 소파 뒤로 벽면에 빽빽하게 걸린 사진들이 보인다. 사진사가 완전히 빠져 나와 프레임 아웃 하면서
사진사
금방 갔다 오께~
하면 조금 포즈를 주고 종현이 말한다.
종현
이거· 아직도 있네요?
역시 조금 포즈를 주고 사진사가 대답한다.
사진사(O.S.)
아·그거·그냥·자꾸 손이 가네·
사진사 문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종현이 소파에 앉는다. 비로소 종현의 얼굴이 보이고 카메라 천천히 종현으로 다가간다. 훤칠한 게 한 눈에 봐도 잘 생겼다. 종현은 마치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이다. 다가간 카메라가 종현을 지나 벽면의 사진쪽으로 더 들어 가면 가족사진이 보인다.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 두 명이 담긴 사진이다. 카메라 사진으로 들어 가면서 사진 속의 형제와 어머니의 얼굴을 각각 잡으면 주연 배우 세 사람의 타이틀이 차례로 뜨고 천천히 사진 사라지면 액자 속에 타이틀이 뜬다.
우리 형·
페이드 아웃 되고 멀리 서 들려 오는 싸움소리.
3.EXT.두식이네 식당 DAY
화면 밝아 지면 40대 초반의 두 아주머니가 머리를 산발로 하고 한 바탕 싸움을 하고 있다. 식당 주인인 뻬쌱 마른 아주머니가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에게 밀리는 분위기다. 머리채를 잡은 조끼 입은 아주머니가 벽쪽으로 밀어 부치자 밀리는 마른 아주머니. 테이블 위의 소쿠리에 담긴 숟가락과 젓가락들이 와르르 바닥으로 쏟아진다. 바닥으로 쏟아지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클로즈업으로 잡히고 밀리던 마른 아주머니가 조끼 입은 아주머니의 가슴에 고개를 박고 밀어 부친다. 이내 서로의 머리채를 붙잡고 밀고 밀리는 두 사람. 그 너머로 동네 아주머니들이 웅성이며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서로의 머리채를 잡은 조끼 아주머니와 마른 아주머니가 가게 밖으로 나온다. 구경 하던 아주머니들이 두 사람을 말린다.
4.EXT.구멍가게-DAY
평상 앞에 서 있는 대머리 아저씨의 측면 뒷모습 너머로 길 건너 두식이네 식당 앞에 아주머니들이 몰려 있고 싸우는 소리가 들려 온다. 가게 쪽으로 시선이 향하며 혀를 찬다.
대머리
동네 꼬라지 잘~ 돌아간다!
하더니 시선이 한 곳에 머문다. 사각형 아이스 크림 통에 머리를 박고 있는 두 아이의 뒷모습. 한 아이는 멀쩡한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있는데 다른 아이는 빨간색 보자기를 두르고 뒤통수에 로버트 태권V 가면을 쓰고 있다. 손이 프레임 인 하더니 냉장고 문을 닫아 버린다. 이빨이 돌출되고 인중에 반창고를 붙인 아이와 저능아로 보이는 아이가 깜짝 놀라며 바라본다. 성현이와 두식이다. 빼꼼히 쳐다보는 아저씨의 입에서 툭 하고 나오는 말.
느그는 새끼야, 좀 떨어지 댕기라.
동네 땅값 떨어진다. 그래 뭘 그리 찾아 쌓노?
성현
빠,빠,빠,빠·
대머리
빠삐코?
성현
어,어,어,어,·
대머리
없냐고?
성현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두식이도 따라 고개를 끄덕거린다.
없긴 왜 없어? 나와봐라!
아저씨, 아이스 크림 통을 뒤적거리자 아이들이 물러나 바라본다. 한참 뒤적이 더니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느그·죠스바 묵은믄 않되나?
이때 아저씨와 아이들 너머로 다가오는 조끼 입은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그 뒤로 마른 아주머니가 바가지에 담긴 소금을 뿌리면서 침 뱉는 시늉을 한다. 마른 아주머니가 가게 쪽을 보며
두식아, 두식아, 빨리 온나!
아이들이 고개를 돌리면 다가 온 조끼 입은 아주머니가 성현이의 손을 잡곤 끌고 가 버린다.
5.EXT.신발가게 앞-DAY
진열 되어 있는 축구화를 바라보는 아이의 뒷모습. 한 아이는 체육복을 입고 있고 다른 아이는 진열대 가까이에 쪼그려 앉아 있다.
아이(O.S.)
진짜 라니까·저기 홍명보 선수가 신는 기라니까·
내가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저거 하고 똑 같더라.
카메라 뒤집어 지면 앉아 있는 아이 너머로 축구화를 바라보고 있는 똘똘한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가지고 싶은 표정을 한동안 잡는다. 종현 이다.
6.EXT.집 마루-DAY
울상인 얼굴의 성현이 한 곳을 응시하면 들려 오는 목소리. 이후 성현은 형으로 표기.
어머니(O.S.)
돈 빌리 달라고 싹싹 빌 때는 언제고·똑 같이 서방 없이 산다고
청승 떨어가 불쌍해서 빌리 줏드만·
마루에 앉아 조그만 상을 펴 놓고 장부에 뭐라 적는 어머니. 그리곤 이내 돈을 세며
어머니
얼마나 내를 우습게 봤으면·어떤 돈인데·떼 물라고·망할 년이·
형
어,어,어,머니, 아,아,안가면·
어머니가 쓰으 하며 혀 소리를 내자 형이 고개를 푹 숙인다. 어머니 다시 돈을 처음부터 세는데 이때 종현이 들어 와 마루에 걸터앉는다. 어머니 시선을 두지 않고
어머니
실컷 놀다가 기 들어 오는 기 집이제?
종현,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더니 세고 있는 돈을 바라보며
종현
엄마·
어머니
와?
종현
저·내 있다 아이가·이번에·시시신발·
형
어,어,어,어,머니·아,아,아,안가면·
종현이 형을 보더니 인상을 팍 하고 그리자 형이 또 고개를 푹 숙인다.
종현
축구·거·.저·홍·명보·그·
어머니 숫자를 세며 넘기 던 만원 권을 지갑에 집어 넣곤
어머니
홍 명보가 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니도 같이 가자!
종현
우데?
종현의 시선이 형에게로 향하면 형이 울상인 얼굴로 종현을 바라본다.
7.INT.병원-DAY
카터기에 누워져 수술실로 향하는 형. 울상이다. 어머니가 형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어머니
안 무섭제? 이번 수술만 잘 받으면 엄마가 니 사달라는
거 다 사주께. 우리새끼, 뭐 사주꼬? 수술만 잘 받아라이.
종현이 형이 부러운지 눈을 흘기며 바라본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 의자에 앉는 어머니. 종현이 슬그머니 옆에 앉는다. 어머니가 눈을 감고 무어라 속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듯하다.
종현
버버리 때문에 우리집 망하겠다.씨~
어머니(눈을 뜨곤)
니 방금 뭐라켔노? 뭐 버버리?
종현
그라문 버버리를 버버리라 카지 뭐라 카노? 맨날 말도
버벅거리고 공부도 못하고 거기다 같은 4학년 아이가?
어머니
그거는 느그 형이 수술 한다고 그란기고.
종현
수술은 맨날하나?
어머니
이기 어디서 꼬박꼬박 말 대꾸고·(때리려다 말곤)니 집에 가서 보자.
다시 눈을 감는 어머니. 눈치를 보던 종현이 다시 말한다.
종현
엄마, 저·뭐 하나 물어 봐도 되나?
어머니(눈 감은 채)
뭐를?
종현(입술을 뒤집으며)
대신 내가 수술 받으께 축구화 사주면 안되나?
어머니 눈을 감은 채 손이 자동으로 종현의 머리로 날아 간다.
어머니
불쌍한 중생. 이를 우야꼬? 기도하자. 눈 감아라.(종현이 눈을 감으면)
따라라해라. 주여·어린 양 한 마리가 길을 잃었나 이다. 구원해 주소서.
종현
주여 어린양 한 마리가 축구화가 필요 합니다. 사 주소서.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본다. 어머니의 주먹이 종현의 머리로 날아온다.
8.INT.안방-DAY
방바닥을 몇 번 내려치는 빗자루.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형과 종현 너머로 어머니가 화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형은 자꾸 손등에 난 사마귀를 뜯고 있다.
어머니
말해라. 누가 그랬노? 어서 말 안 하나? (형제 말이 없자)
종현이 니제? 니가 엄마 돈 훔쳤제?
종현
아니요. 안 그랬어요. 저는 학교 갔다 와서 민구 집에서 숙제 했어요·
어머니
진짜가?
종현
그·럼요. 민구한테 물어 보세요. 어머니, 제가 안 훔쳤어요. 저는 몰라요.
어머니
종현아, 진짜로 니가 안 훔쳤나?
종현(울먹거리며)
네. 어머니·저는, 진짜 민구 집에서 숙제 했어요.
어머니
성현아, 그라믄 니가 그랬나?
종현이 거의 울상이 다된 눈으로 형을 바라본다. 형제의 눈이 순간 마주친다.
형
자,자,잘·못 했습니다. 어,어,어머니·
어머니
종현아 니는 나가라. (종현 머뭇거리자) 어서!
9.EXT.마루-DAY
종현이 방문을 열고 나오면 문틈으로 어머니가 형을 잡더니 사정없이 때리는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O.S.)
내가 뭐라 카드노? 니는 남하고 다르이까 공부도 잘해야 되고
뭘 하든가 다 잘해야 한다 안 카드나? 그란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기 도둑질을 해? 싹수가 노란 자슥은 필요 없다.
문을 닫는 종현이 벽 구석에 기대어 선다. 방안의 소리가 들려 온다. 형의 입에서 계속 잘못 했다는 말만 나오고 어머니가 형을 두들겨 패는 소리가 종현의 귀에 고스란히 들려 온다. 이때 방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형의 손을 끌고 나온다. 옷이 벗겨진 채 울며 매달리는 형을 끌고 현관을 나가는 어머니. 카메라 천천히 종현의 얼굴로 다가간다. 멀리 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형이 문을 두드리며 잘못했다는 소리도 들려 온다. 현관문을 들어 온 어머니가 안 방으로 들어가려다 벽에 기댄 종현을 보며
거짓말 하는 자슥은 내 자슥이 아이다!
하곤 방안으로 들어 가 버린다. 대문 밖 벽에 기대 훌쩍이고 있는 형/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어머니/ 벽에 기댄 종현의 얼굴이 각각 연이어 보여진다.
10.INT.방-NIGHT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형. 울음이 턱까지 차올라 계속 헉헉거린다.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 종현. 왼쪽 손이 슬그머니 책상 아래로 가면 축구화가 보인다. 고개를 돌려 형을 바라보면 형이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종현이 머뭇거리며
종현
빙신, 누가·니 보고 상관 하라 카드나.
CUT TO
종현은 모로 누워 잠이 들어 있고 그 옆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 다 보는 어머니. 카메라 뒤집어 지면 형. 어머니가 형의 이마를 한번 쓰다듬자 형이 눈을 뜬다.
형
어,어,어머니·
일어나 어머니를 바라본다. 어머니, 옆에 놓여진 그릇에서 마늘 하나를 골라 씹는다. 클로즈업 되는 형의 손등. 빨간 피딱지가 붙어있다. 손등에 올려지는 마늘. 반창고를 붙여주며
어머니
미련 하기는·며칠 밤 자고 나면 없어 질끼다.
형(인중을 손으로 가르키며)
어,어,어머니. 여,여,여기에도 부,부,부,붙이면 없어져요.
어머니 형을 보더니 씁스레 웃는다. 그리곤 형을 꼭 껴안아 주며
어머니
아니 그거는 안 없어 진다. 웬줄아나? 그거는 하느님이 달아준
천사 징표거든. 그래서 안 없어 진다.
뒤 돌아 누운 종현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눈을 뜨고 있다. 그 얼굴 위로.
성현아, 니는 공부 잘해야 된다. 남들이 무시 못 하구로 공부 잘해야 된다.
11.INT.사진관-DAY
어머니와 그 앞에 나란히 앉은 형과 종현. 사진사가 포즈를 주문한다. 사진사는 1번 씬에서 나왔던 그 사진사다. 종현은 배를 내밀고 당당히 카메라를 바라보는데 형은 자꾸 고개를 돌린다. 형의 인중엔 반창고가 떼어져 있다. 상처도 이전 보단 조금 나아졌다.
사진사
와 성혀이는 미남 됐네. 동생 맨치로 똑바로 봐야지.
어머니가 형의 턱을 손으로 돌린다. 형이 억지로 다시 카메라를 바라본다.
그래. 그래. 좋습니다. 하나, 둘, 셋.
형의 고개가 다시 옆으로 돌아가고 펑 하고 소리 나며 그대로 프리즈 프레임.
종현(나레이션)
형은 두 번의 수술을 더 받게 되었다. 그 사이 우리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어머니의 바람대로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사진이 흑백으로 천천히 탈색 되어지면 초등학교 시절이 끝 난다. 서서히 페이드아웃.
12.EXT.학교 창고 뒤 소각로-DAY
화면 천천히 밝아지면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교복을 입은 껄렁해 보이는 아이들 몇 명이 삐리한 투로 어딘가를 응시한다. 그 중 한 녀석 습관적으로 침을 찍찍 내 뱉는데 쫄바지를 입은 인상 더러운 놈이다. 카메라 뒤집어 지면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두 명이 싸움을 하고 있다. 런닝을 입은 녀석이 덩치 좋은 녀석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다. 쫄바지를 입은 무리 맞은편엔 눈이 짝 째진 녀석 하나가 연신 손과 발을 움직이며 싸우는 모습을 따라 한다. 런닝 입은 녀석이 덩치 좋은 녀석을 완전히 때려 눕히곤 아이들을 한번 바라본다. 훤칠 하고 잘 생긴 종현이다. 입에 고인 피를 뱉곤 쫄바지를 입은 녀석의 무리들을 바라보며
종현(깡다구 있게)
이 씹새끼들아, 내 졸라 피곤 하거든. 다음에는 때로 덤비라 씨발 놈들아!
눈이 째진 녀석이 종현에게 웃옷을 걸쳐주며
단추구멍
들었제? 다음에는 때로 덤비라 씨발·
쫄바지가 인상을 팍하고 그리자 목을 수그리며
·놈들아·같이가자, 종현아!
쫄바지 녀석이 종현의 뒷모습을 보며 실 웃더니 침을 찍 하곤 내 뱉는다.
13.EXT.등나무 넝쿨 아래-DAY
등나무 넝쿨이 아름드리 펼쳐져 있다. 넝쿨 사이로 투과된 빛들이 벤치 곳곳에 떨어지는데 그늘과 빛이 묘하게 공존하는 공간이다. 약간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있고 형이 앉아서 책을 보고 있다. 인중의 상처가 형 임을 알 수 있다. 상처가 많이 나아졌다. 주변에선 아이들이 말 타기를 하며 놀고 있다. 호각소리가 들리고 고개를 들어 바라 보는 형. 뒤뚱 거리며 뛰어 오는 두식이의 모습이 보인다. 큰 키에 체형이 비만이다.두식이가 말 타는 아이들에게 달려 가더니 점프 하자 아이들이 와르르 무너진다. 짜증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수위가 호각을 불며 뛰어 오자 두식이 퉤퉤퉤 하고 침 뱉는 시늉을 하더니 도망을 간다. 뒤를 쫒아 가는 수위. 형의 시선이 두식에게 머문다. 빙그레 웃는다. 이때 들려 오는 목소리.
단추구멍
두식이 새끼 또 왔네. 와 사노? 와 살어? 인생이 불쌍하다.
종현과 단추 구멍이 걸어 오는 모습이 보인다. 종현이 형을 지나쳐 가며
종현
퍼뜩 하믄 거기 앉아가 문 청승이고?
형의 시선이 종현에게 머문다.
14.INT.교실-DAY
한 무리의 학생들이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 오더니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 가면 어수선한 분위기. 한 녀석이 칠판에 2학년 문예부 선발 이라고 쓰자 대표로 보이는 녀석이
선배1(교탁을 두드리며)
조용. 조용. 야! 야! (잠잠해 지자) 우리 문예부는 전통을 자랑한다.
남자 고등학교 중에 가장 왕성한 여고와의 단체교류를 보장한다.
특별히 이번에 딱 두 명만 더 뽑는다. 우떴노? 안 들어 올래?
맨 뒷자리의 한 녀석이 손을 든다. 단추 구멍이다. 옆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 종현.
단추구멍
선배님, 제가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시선이 일제히 단추 구멍에게 가고 말없이 바라보는 선배의 입에서 툭 하고 나오는 말.
선배1
새끼 진짜 억울하게 생깄네. 니 고등학생 맞나? 니는 안 된다!
단추구멍
와요?
선배1
삯았다 아이가 새끼야. 거울 좀 봐라. 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아이들 까르르 웃는데 선배가 종현 쪽으로 시선을 주며
야, 거기 도시락·훤칠하네. 이름이 뭐꼬?
종현(혼잣말로)
좃 까고 있네·
단추구멍
김 종현 인데에· 와요?
선배1
니 한테 물어 봤나, 새끼야. 어이 니가 들어온나. 확실하게 밀어주께.
아이들 우와~ 하며 바라보자 종현이 관심 없다는 듯이 밥을 먹는다.
단추구멍
이아, 글 못 쓰는데에·
선배1
잘 생겼다 아이가?
선배2(선배 1에게)
새끼야, 장난하지 말고..(무리를 보며) 여기 김 성현이가 누고?
앞 자리에 앉은 형이 손을 든다.
니가 김 성현이가?
이번에 백일장 장원 먹은 김 성현이 맞나? 니가 들어온나!
형이 약간 더듬거리며 말한다. 형은 당황하면 말을 더듬고 눈을 껌벅거리는 버릇이 있다.
형
저,저,저는·이미 들었는데요.
선배2
어데?
종현
아이씨바, 뭐가 이리 시끄럽노?
종현이 짜증난다는 얼굴로 고함을 치자 조용한 교실.
선배1
저 새끼가·
선배2가 선배1의 귀에 대고 뭐라 속삭이자 선배1이 가만히 있는다.
15.INT.사진부 교실-DAY
형이 교실에 앉아있다. 참고서를 펴 놓고 공부를 하고 있다. 칠판에 특활활동 사진부 라고 써진 글자가 보인다. 선생이 지우개로 지우더니 큼지막하게 필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라고 쓴 뒤 돌아선다. 인상 좋은 얼굴이다. 이 선생의 말투는 느리고 잠이 오는 스타일이다.
오명세 선생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아이들은 잠잠 하다.
아무도 모르나?
공부를 하던 형이 올려 다 본다.
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나도 모른다. 일단 폼으로 쓴기다.
느그들 내 밸맹이 뭔 줄 아나?
학생
수업이 지루해 가꼬 인간 수면제 아입니까?
아이들이 와 하고 웃는다.
오명세 선생
새끼·대담하네. 아이다. 너무 수업이 좋아 가꼬 들으믄 잠이
온다 해서 인간 수면제다. 각설 하고 사진 이 포토 라는기 말이다·
(한 호흡쉬고) 와 이리 졸리노·
CUT TO
아이들 대부분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카메라 침을 질질 흘리며 책상에 엎드려 잠이든 아이들을 잡으며 이동한다. 교탁 옆 의자에 앉은 오명세 선생은 책을 읽고 있다. 어디 선가 코고는 소리가 들려 온다. 읽고 있던 책을 덮곤 아이들을 바라보며
완저히 전멸이네.
그리곤 시선이 형에게로 간다. 형은 공부를 하고 있다. 오 선생 형에게 다가가더니
니는 안 졸리나? 이런 시간에라도 자야지?
형
그냥·
오선생 씩 하고 웃더니 참고서를 덮어주며
오명세 선생
디비 자라. 잠이 보약이다.
16.EXT.슈퍼 앞-NIGHT
슈퍼 주인 아주머니가 머리를 산발로 하고 기가차다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는데 벌써 한바탕 했는지 바닥에 물건들이 흐트러져 있다. 어머니가 종이 박스에 물건들을 담으며
어머니
실컷 욕해도 상관없다. 내는 이자 만큼 물건 챙기 갈라니까
억울하믄 돈 주면 될 끼고·잘난 서방 나 뒀다 뭐하노? 돈이나 벌어오지·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모여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곤 지독 하다며 한마디씩 한다.
나온나 여편네 들아.
어머니 아주머니들을 밀치며 걸어 가는데 건너편 두식이네 식당 앞에 두식이 엄마가 김치를 담그고 있다. 두식이는 입을 호호 불며 김치를 먹고 있다. 어머니 모른 체 하고 지나간다.
17.EXT.버스 정류장-NIGHT
정류장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형. 그 옆에 앉는 종현과 단추구멍. 종현이 책을 낚아채며
종현
뭐꼬? 토,토,에,에이씨(TOEIC)? (대충 보곤) 지랄하네·
형이 씩 웃곤 책을 돌려 받는데 표지에 TOEIC 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니 또 일등했데? (따분한 투로) 엄마 또 동네방네 자랑할 거리
생깄다고 좋아하겠다. 하기는 니가 공부라도 잘해야지. 니는 공부를
잘하고 내는 싸움을 잘하고 씨바 형제는 용감했다가 따로 없네.
형이 미소 지으며 바라보자
와? 뭘 보노? 떫나?
형
조,종현아, 버,버스·
버스가 다가 와 멈춘다.
종현
먼저 가라.
형
어머니 기,기,기 다릴 낀데·
종현
먼저 가라 안 하나!
단추 구멍(종현의 눈치를 보곤)
먼저 가라. 성현아.
형이 버스에 오른다. 멀리 뛰어 오는 학생들이 보인다. 형의 뒷모습으로 시선이 가는 종현.
18.INT.버스 안-NIGHT
버스에 오른 형. 버스 안은 복잡하다. 형이 비집고 들어 가더니 종현이 내다 보이는 창 앞에 선다. 형 앞에 교복을 입은 여 학생이 앉아 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창 밖을 바라보는 형. 종현이 힐깃 하고 형을 바라 본다. 카메라 밖으로 나와 창 밖을 바라보는 형의 모습을 잡는다. 이때 형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의 얼굴이 처음으로 보인다. 종현의 시선이 형에게 잠시 머물다 아래로 향한다. 미령이다. 한눈에 봐도 예쁘다. 미령이 종현의 시선을 느끼곤 누굴 보는가 싶어 옆에 서 있는 사람을 힐끔 하고 올려 다 본다. 형의 시선이 미령과 마주친다. 멈칫하다 재 빨리 고개를 돌리는 형. 버스 출발하고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는 미령. 멀어져 가는 종현. 그리고 종현의 시점으로 버스 안의 형과 미령의 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19.EXT.버스 정류장-NIGHT
벤치에 앉아 있던 단추 구멍이 일어나 멍한 표정으로 넋 나간 듯이
단추 구멍
와 심장이 멎었다. 봤제? 봤제? 항도 여상 퀸카 조 미령이·
그림에 떡 아이가·(앉으며 종현을 보곤) 저아, 오빠가
영춘이 행님 이라고 억수로 유명한 깡패거든. 찍쩝거리다
걸리믄 빼도 몬추린다.
버스 진행 방향으로 시선이 가 있는 종현의 표정에서 관심이 가는 느낌이 든다.
니 내가 와 문예부 들아 갈라고 했는 줄 아나?
종현
와? 저 가시나도 문예부가? 어울리네·
단추구멍
어울리기는·니, 저아 밸맹이 뭔줄 아나?
종현
뭔데?
단추 구멍
못 믿겠지만 벌통 아이가, 벌통. 보기에는 청순해 보이도 아가
조금 맹하거든. 살살 굴리믄 즈그 오빠 몰래 한 그릇 할 수도
있다 아이가?
종현
진짜가?
단추구멍
그래. 소문 못 들었나? 특기가 아다 따 묵는 기란다.
종현
아다?
단추구멍
그래, 아다!
종현이 단추 구멍의 멱살을 잡으며
종현
우리는 내일부터 문예부다.
단추 구멍
문예부???
20.INT.옷 가게-DAY
중간 크기 정도 되는 옷 가게다. 거울을 바라보며 잠바를 입는 형. 거울 옆 진열장 위에 잠바가 다섯 벌 정도 올려져 있다. 여자 직원이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 보는데 어머니가 형에게 갈색 잠바를 입혀 주더니
어머니
이기 어울리네. 보기 좋다. 이 걸로 하자. 이거 얼만교?
어머니가 카운터로 향하면 형이 탈의실 옆에 세워진 거울을 바라보며 매무세를 가다듬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옆 진열장에 올려진 흰색 잠바를 앞에 대어 본다. 이때 탈의실 문이 열리며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 원피스를 입고 나온다. 형과 마주치는 시선. 미령이다. 얼은 듯 멈춰 서있는 형. 미령이 물끄러미 형을 바라보자 그제서야 자신이 거울을 가로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얼른 자리를 비켜 준다. 미령이 거울 앞에 서더니 매무세를 가다듬어 본다. 거울에 반사되어 바라 보는 형의 얼굴이 보인다. 둘 사이의 시선이 교차 되면 형이 흠칫 놀라더니 옆에 올려 진 곤색 잠바를 집어 들고 대보는 척 한다. 미령이 옷이 마음에 드는지 밝은 표정으로 뒤 돌아 선다. 형을 비켜 카운터로 향하면 형의 고개가 스르르 미령에게로 향한다. 형이 멍한 표정으로 미령을 바라보는데 어머니가 그런 형 옆에 다가 서더니
어머니
뭘 그렇게 보노?
형이 마치 들킨 듯 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본다. 어머니 형이 손에 든 곤색 잠바를 보곤
와 그기 마음에 드나?
형이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21.INT.방-DAY
형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데 연습장에 영어 단어를 쓰다 갑자기 뭘 생각 하는 듯 피식 거린다. 거울을 보며 무스를 바르던 종현이 그 모습을 바라본다. 또 피식 거리며 웃는 형.
종현 (물끄러미 보더니)
야, 니 뽕 맞았나? 그만 좀 피식대고 버버리, 니 버버리 잠바
좀 가지고 와 봐라.
거울을 보며 가슴팍을 두드리는 종현. 엄마가 형에게 사준 그 잠바다.
형
그거 가짜다. 버버리는 B로 시작하는데 이거는 V로·
종현
안다. 니 하고 내하고 차이가 뭔 줄 아나? 진짜도 니가 입으면 가짜
같고 가짜도 내가 입으면 진짜 갔다는 기다. 알란가 모르겠네.
형
어디 가는데·
종현이 대꾸도 않고 프레임 아웃 하고 형이 바라만 본다.
22.INT.교실-DAY
칠판에 붙여진 남녀 고교 연합 문학 서클 등대 라는 종이 플랜카드가 보인다. 책상을 서로 마주 보게 일자로 놓았는데 남자와 여자가 따로 무리를 지어 앉아 있다. 한 놈이 소개를 마쳤는지 아이들 박수를 치자 일어나 자기 소개를 하는 종현.
종현
반갑습니다. 동성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 종현 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화창한 일요일, 뜻 깊은 단체교류에 참가해서 영광입니다.
앞으로 좋은 추억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소개 하는 동안 남 학생들의 떨 떠름한 표정. 여학생들도 뭔가 하는 표정이다.
특히 앞줄(미령의 줄) 세 번째 여학생! 이름이 조.미.령·
미령이 픽 하고 웃더니 종현을 바라본다.
미령씨·잘 부탁 드립니다. 자 박수, 박수!
박수를 치지 않자 종현이 책상 아래 발로 단추 구멍의 발을 몇 번 찬다.
단추 구멍
박수! 박수!
똥씹은 표정으로 아이들이 박수를 친다.
CUT TO
음악 흐르고 촛불을 켜고 한 곳을 응시하는 아이들. 미령이 시를 낭송한다.
미령
아스피린, 조.미.령. 몸살이 나 씹었다네. 아스피린. 그 쌉쌀한
맛 속에 숨어 있는 진실 된 고백. 머리야 아프지 말아라. 머리야
아프지 말아라. 감기가 걸려 씹었다네.아스피린. 그 쌉쌀한 맛
속에 숨어 있는 진실 된 고백. 감기야 나아라.감기야 나아라.
생리통이 심해 씹었다네. 아스피린, 그 쌉쌀한 맛 속에 숨어있는·
낭송이 이어지는 동안 종현은 흐믓한 얼굴로 미령을 바라본다. 시를 낭송 하는 미령도 힐끔 종현에게 시선을 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몇 번 마주치고 종현의 얼굴이 환하게 웃는다.
23.INT.방-NIGHT
윗 씬에서의 흐믓한 얼굴 그대로 잠들어 있는 종현. 이불을 말아 가랑이에 넣고 몸을 부비는데 행복한 꿈을 꾸는지 끙끙거린다. 이때 부정확한 발음의 소리가 들려 온다.
형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형이 볼펜을 입에서 빼더니 녹음기 버튼을 누르고 또박또박 말을 해본다.
그,그,그리워 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아,아니 만나고·
종현(벌떡 몸을 일으키며)
아이씨바, 뭐가 이리 시끄럽노 맨날? 만날라 문 만나든가
아니면 말든가· 아사코, 아사코, 아사코가 니 쪼가리가?
바라 보는 형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에이 씨바 좋았는데·다시 꿔야 된다 아이가·
종현이 짜증을 내며 잠을 설치자 형이 미안한 표정으로 스탠드 등을 끈다.
24.INT.주방-DAY
도시락을 내미는 어머니. 종현이 도시락 두개를 가로 채더니 뚜껑을 열어 본다. 바라 보는 형. 두개의 도시락에 올려져 있는 계란 프라이.
어머니(눈치를 보며)
공평하제?
종현이 숟가락으로 형의 도시락 밥을 올려 보면 도시락 밑에 프라이가 하나 더 깔려 있다.
종현
봐라, 봐라, 봐라, 뭔데 이거? 누구는 입이고 내는 주둥이가?
어머니(기가 차다는 듯)
니는 내 자슥이지만 진짜 자갈밭에 내 놔도 살 놈이다.
25.EXT.대문 앞-DAY
똥 씹은 얼굴로 먼저 대문을 나서던 종현이 갑자기 인상을 쓰며 아래를 내려다 본다.
종현
에이 씨바, 재수 없구로·
참새 한 마리가 대문 앞에 죽어있다. 종현이 발로 툭툭 치며 문 옆으로 미는데 형이 화장지를 꺼내 참새를 곱게 싼다.
뭐하노 니 지금?
형
종현아, 먼저 갈래? 먼저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