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하며 산다 / 곽주현
어느 날 아침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오려는데 허리가 몹시 아팠다. 몸을 똑바로 세울 수 없어 한 발 떼기도 어려웠다. 애들은 다 제 갈 길을 가고 둘만 사는데 하필 그날은 아내도 없었다. 급한 일이 생겨 어제 서울행 기차를 탔다. 네발로 기어서 겨우 응접실 소파에 앉았다. 어제는 농장에도 가지 않았고 오후에 가볍게 걷기만 해서 무리한 일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는 통증의 원인을 전혀 짐작하기 어려웠다.
예전에도 가끔 허리가 아팠다. 참을 만해서 그냥 평상시처럼 활동하면 좋아지곤 했다. 나이가 들면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 여겨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틈나는 대로 척추를 튼튼하게 하는 운동도 열심히 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심해서 화장실 가는 것조차도 무척 힘들었다. 아내의 빈자리가 크고 깊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목포에서 근무하고 있는 딸을 오라거나, 친구에게 도와 달라 청하기도 그랬다.
할 수 없이 온 힘을 다해 등산지팡이를 짚고 밖으로 나왔다. 정형외과를 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파란불이 켜지자 허리를 거의 90도로 숙이고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비치적거리며 가는데 3분의 2쯤 왔을 때 그만 빨간 불이 들어와 버렸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자동차들이 빵빵거리고 어떤 운전자는 욕하며 피해 갔다. 왕복 4차선 도로가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차가 뜸해지자 겨우 건너왔다. 허리가 완쾌되어 파란불에 그 건널목을 빠르게 걸어 봤다. 반대쪽으로 가서 되돌아와도 아직 파란 불이었다.
의사가 증상을 살피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이것만으로는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며 엠아르아이(MRI:자기 공명 영상)를 권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환자는 따를 수밖에 없다. 이리저리 사진을 살펴보더니 척추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 한다. 나이에 비해 이 정도면 양호한 거라며 근육통이라는 진단을 했다. 약을 처방하겠다고 했으나 거절했다. 의사가 참 모질다며 웃는다. 근육이 뭉쳐 그런다고 하니 얼마 지나면 좋아질 것으로 여겼다. 며칠간 물리 치료를 받아도 큰 차도가 없어 한의원을 찾았다. 침을 맞으며 치료했지만, 그래도 통증이 계속되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나도 모르게 ‘악’ 하는 소리가 나왔다. 진전이 없자 도수 치료를 권한다. 몸 여기저기를 주무르고 관절 부위를 꺾기도 했다. 손으로 하는 일종의 물리 치료인데 치료비가 높다. 그러고 나서 일어서 보라고 한다. 아직도 약간의 통증은 남아 있었지만, 허리가 곧게 펴졌다.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후에도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허리가 아팠다. 그러다 어느 날은 나와 아내가 똑같이 통증이 왔다. 무리한 일이 없는데 ‘왜 그럴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 우리가 너무 차가운 곳에 누워 있었던 게 아닐까요.”라고 말하며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아팠던 날들을 쭉 되짚어 보았다. 대부분 농막에 간 날이다. 일하다 덥고 피곤하면 방바닥이 시원해서 곧잘 누워 쉬었다. 그게 원인일 수도 있겠다 싶어 다음부터는 꼭 매트를 깔았다. 그런 덕분인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농장 일이나 먼 산행을 하고 나면 허리가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곧 회복되었다. 의술이 정교해져서 우리 몸 구석구석의 병을 잘 찾아내지만 가끔은 간단한 원인을 지나치기도 한다.
살아오면서 병치레를 많이 했다. 가장 건강해야 할 10대, 20대에도 늘 크고 작은 질병을 앓았다. 위가 약해서 소화제를 입에 달고 지냈고, 비염으로 수십 년 고생했다. 축농증, 충수염, 탈장, 치루 등으로 수술도 여러 번 받았다. 그밖에도 감기, 피부염 등 다 말하기 민망하게 많은 병을 끼고 살았다. 오죽하면 내가 총각이었을 때 ‘사람은 괜찮은데 중매(仲媒)하기가 무섭다.’라는 말도 들었다. 어느 날 이렇게 약에 의존하다가는 약물 부작용으로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40대부터는 음식을 먹고 소화 불량에 걸려도 웬만하면 약을 먹지 않고 속이 편해질 때까지 굶고 견디었다. 그러면서 약과 점점 멀어졌다.
평생을 늘 건강해지려고 노력했다. 지금껏 걷기, 체조 등 아침 운동을 꾸준히 한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했더니 50대가 지나자 건강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질병을 달고 살면서 내가 터득한 것은 ‘앓고 있는 병을 다스릴 수 있으면 그것은 이미 병이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만성 질병을 오래 앓다 보면 그것을 달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는 말이다. 같이 동무하며 가는 거다. 또 하나는 흔히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 체험에 따르면 그 반대다. 마음을 비우고 생활하면 육체의 건강은 자연히 따라온다.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가장 건강하게 살고 있다. 마음도 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