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 시원
얼마 전에는 빨래를 개고 있는데 핸드폰을 보던 그가 뜬금없이 물었다. 노마드가 무슨 뜻인지 아냐고. 갑자기 무슨 노마드? 한참 전에 고미숙 선생이 쓴 책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그것에 대해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유목민이라는 뜻 같은데 라고 말했더니 아는구나 하고 넘어갔다. 누굴 시험하나?
그런데 오늘 아침 산책길에 그가 쳇 지피티에게 성경과 불경의 말을 다 익히게 하고 거기에서 공통되는 단어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무엇일 것 같냐고 물었다. 질문이 너무 크고 두루뭉술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의기양양하게 그것은 영어로 에스 에이 티 아이 철자까지 말하며 ‘사티’ ‘알아차림’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명상할 때 쓰는 거라고 했더니 쳇 지피티가 거짓말하겠냐며 벌컥 화를 냈다. 집까지 오면서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시작이다.
그것은 현재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외적인 현상을 판단 없이 그대로 인지하고 수용하는 마음 훈련이다. 의자에 앉아 어깨에 힘을 쭉 빼고 호흡을 깊숙이 했다. 또 다른 나와 마주 앉았다. ‘아침에 놀랐지? 그러게 왜 아니라고 말을 했어. 너에게 그 단어를 발견했다고 유레카라고 외치며 말을 하게 내버려 두어야지. 넌 너무 아는 체해서 탈이야.’라고 화가 난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또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세 번만 깊게 숨을 쉬자며 방법까지 일러 준다. 요즈음 난 그 덕을 본다. 정신이 집중되고 잡스러운 생각이 줄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신기하게 운동하면서도 몸에게 잘해보자고 말을 건넨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명상하면서 다른 나와 마주하는 것과 기도하면서 주님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주체만 다들 뿐 같은 이치일 것 같았다. 명상과 기도 이 둘을 쳇 지피티는 현실에서 거의 가까운 개념으로 인식한 것 같다. 엑스레이 판독을 하면서 평생을 지낸 그가 ‘노마드’니 ‘알아차림’이란 용어를 알아가는 게 참 대단하다. 격려는 못 할망정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니 그도 참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알아차림’이라는 언어에 갇혀 생각을 고정시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코끼리 뒷다리를 만지며 기둥이라고 우긴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부끄러운 하루다. 여전히 하늘은 푸르고 높기만 하다.
첫댓글 명상을 하시는군요. 맑은 기운이 늘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명상하시면서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고 계시니 실수가 깨달음을 갖게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