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섭외 뒷얘기다. 힙합 레이블 ‘브랜뉴 뮤직’의 수장이자 안현모의 남편으로 유명해진 라이머가 섭외 당시 한 가지 요청을 해왔다. 소속사 가수와 함께 가고 싶다고. 출연자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는 터라 정중히 거절했는데, 세 번의 거절을 세 번 다 거절(?)한 라이머 대표의 집념에 결국 두 손 두 발 들었다. 다행히 라이머와 소속 래퍼 칸토는 맨손 낙지잡이로 맹활약했다. 라이머의 별명은 ‘라버지(라이머와 아버지의 합성어)’다. 이처럼 소속사 식구들을 끔찍이 챙겨서일 것이다.
업계의 특별한 부자(父子) 관계엔 개그맨 남희석과 조세호도 빠질 수 없다. 조세호는 신인 시절 양배추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그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아버지’ 남희석이다. 2001년 SBS 공채 코미디언 대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조세호는 한동안 무명 시절을 겪었다. 하지만 십수 년간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해준 아버지 덕에 이제는 이정재와 동반 CF도 찍는다. 조세호가 남희석에게 통 큰 보은(報恩)을 했다는 훈훈한 미담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들려온다.
필자도 사회에서 만난 아버지를 꼽으라면 생각나는 한 분이 ‘정글의 법칙’을 만든 이지원 선배다. PD 업무는 교과서라는 게 없어 ‘도제식 교육’으로 사수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선배는 감사하게도 자기 머리도 못 깎던 나를 3년간 양육(?)하고 프로그램까지 물려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스토리로 끝났다면 더없이 좋았으련만 문제는 작년부터였다. 선배가 CP(3~4개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책임 프로듀서)로 돌아오며 부딪히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현실 부자(父子)처럼 회의 때 선배가 코멘트를 하면 나는 왜 장성한 ‘아들’에게 훈수냐며 들이받았다. 방송국의 유연한 조직 문화가 아니었다면 ‘품위 유지 위반’ 및 ‘지시 불이행’으로 인사위원회에 몇 번은 회부되었을지 모른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방송계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나 혼자 잘나서 큰 사람은 없다. 칸토와 조세호는 수시로 살가운 감사 표현을 할는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법정 기념일을 핑계 삼아 최소한의 도리를 해본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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