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편지
박서정
빈센트 반 고흐는 10년 동안 900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 동생 테오 반 고흐에게 600여 장의 편지를 보냈다. 자신의 후견인이자 동반자인 동생에게 예술가의 고뇌와 진실한 내면의 세계를 진심을 다해 전했다. 연인 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친구 간에도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내는 게 쉽지 않기에 두 사람의 관계가 무척 신기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살아서는 한 편의 그림도 팔지 못한 거나 마찬가지였던 고흐는 화상(畵商)으로 활동하던 동생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당시 고흐의 경제적인 궁핍을 해소해 준 동생이 고마웠던 고흐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소소한 근황들을 동생에게 알리며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이끌어냈던 것으로 보인다. 편지 속에는 돈을 보내주어 유용하게 썼다는 내용들이 한번 씩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편지를 보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은 고흐는 단지 동생이 유일한 소통의 대상이자 온갖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만만한 상대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화상의 가정에서 자란 동생 테오는 장사수완이 좋아 여러 화가들의 그림을 중개하여 파는 일을 잘 감당해냈다. 고갱의 그림을 사고 싶어 하던 형에게 비싼 그림을 사 주기도 했고 서로를 소개시켜 주며 인연을 맺게도 했다. 고갱과 고흐가 90일 동안 동거할 수 있었던 것도 동생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흐와 고갱은 서로가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 아주 필요한 존재들이였음을 고백했다. 각자의 그림을 통해서 영감을 얻고 선의의 경쟁을 하며 그림에서 많은 발전을 했던 시기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동생은 늦은 결혼을 하여 살면서도 형에게 생활비를 계속 보내 주었다. 하지만 형이 창녀와 살면서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실망을 하여 잠깐 생활비를 주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녀에게는 이미 아이가 한 명 있었고 또 한 명은 곧 낳을 상황에 놓여 있었다. 불쌍한 그녀를 도우고 싶었던 휴먼니스트, 고흐는 부모의 반대 동생의 반대로 인해 많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그 여자가 자신을 많이 의지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버릴 용기가 없었다. 자신이 그 여자를 돌볼 처지는 아니었지만 불쌍한 영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는 내용에서 예술가의 진정성이 엿보이기도 했다. 잠시나마 정이 많은 사람 의리 있는 사람이라는 마음을 놓칠 수 없게 만들었다. 남자들이 버린 여자를 남자로서 자신이 대신 책임지고 싶다고 한 말은 예술가 이전에 한 사람의 너그러운 인격을 들여다보게 했다. 그래서 만약 경제적인 능력만 됐다면 그 여자를 끝까지 돌봤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게 남는다.
몇몇 화가들을 만나 인연을 맺는 중에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고흐는 그때 만난 화가들에 대한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화가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들뜬 기분을 표현한 고흐의 마음을 되짚어본다. 그리고 고갱과의 동거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알리는 부분을 접하며 참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정신병원에 있을 때 고갱을 몹시 보고 싶어 했다는 대목에서는 한 예술인의 인간적인 순수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도 했다.
자신의 그림이 한 점도 팔리지 않은데 대해 그림 솜씨를 탓하기도 하고 숱한 고뇌를 하기도 했다. 머리를 깎고 돈이 없어 그림으로 이발료를 대신하지 않았다면 그림은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은 것으로 역사에 남게 될 뻔했다. 어쩔 수 없이 그림으로 이발료를 받은 이발사는 현금으로 받지 못한 억울한 기분을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도 그 그림은 보존되어 있을까. 자손대대로 고이 보관하고 있었다면 지금에서야 그림의 가치는 빛을 발휘했을 텐데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자신의 자화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갱에게 압생트 잔을 던져 화를 낸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쩌면 자신보다 그림을 못 그리는 그 사람의 그림을 한때 고액으로 샀다는 억울함이 스며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행사의 참석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 생긴 두 사람의 불화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극적인 상황이 돼 버렸다. 그렇게 싸운 날 고갱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고흐는 자신의 귓불을 잘라 몸을 파는 어떤 여인에게 갖다 주는 기행을 저지른다. 자신이 직접 귀를 잘랐다는 말도 있고 고갱과 싸워 고갱이 했다는 말도 있다. 귀를 천으로 동여매고 긴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자화상을 볼 때마다 그날의 의문이 고개를 든다. 과연 자해인지 아닌지.
편지 속에 담긴 형의 마음을 읽을 때마다 동생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주고받는 편지 속에 둘은 더욱 친밀해졌을 것이다. 형이 죽고 얼마 있지 않아 동생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것을 보면 두 사람은 특별한 우애를 다지며 살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형을 위해 자신의 일에 더 많은 애정을 쏟으며 형의 근황을 누구보다 궁금히 여겼을 동생의 속내가 여러 추측을 통해 아름답게 읽힌다.
목사가 되려고 한때는 목회 공부를 했지만 설교를 너무 못해 자신은 목사 자질이 없다고 그 길에서 빠져나온 고흐. 그림이 팔리지 않아 동생에게 손을 벌릴 때마다 자신의 처지를 얼마나 비관하고 생을 포기하고 싶어 했을까. 혼신을 다해 그림을 그렸지만 인정해 주지 않는 세상에 대해 얼마나 원망이 컸을까. 하여튼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그분의 정신을 높이 사고 싶다. .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감자 먹는 사람들 등의 그림들은 종이에 그린 그림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들과 깊이 교감하고 있다. 사람은 갔으나 작품은 시들지 않고 작가의 정신을 담아 우리들 곁에 잔잔하게 숨 쉬고 있음을 곳곳에서 느낀다. 고흐의 작품이 그려진 컵을 들고 여러 모습의 자화상을 감상하는 시간이 즐겁고 기쁘다. 고흐를 생활 속에서 수시로 만나며 그의 발자취를 느껴본다. 허름한 옷을 걸치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화구를 들고 힘없이 산책하는 뒷모습이 아프게 어린다. 하지만 그림만 그리다 생을 마감한 그의 인생은 무엇보다 값지고 고귀하기에 그런 뒷모습마저 의미있는 별처럼 빛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