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江의 성산별곡을 따라 담양으로
엇던 디날 손이 星山의 머믈며셔 棲霞堂 息影亭 主人아 내 말 듯소
人生 世間의 됴흔 일 하건마ᄂᆞᆫ 엇디ᄒᆞᆫ 江山을 가디록 나이 너겨
寂寞 山中의 들고 아니 나시ᄂᆞᆫ고
松根을 다시 쓸고 竹床의 자리 보아 져근덧 올라안자 덧던고 다시 보니
天邊의 ᄯᅵᆺᄂᆞᆫ 구름 瑞石을 집을 사마 나ᄂᆞᆫ ᄃᆞᆺ 드ᄂᆞᆫ 양이 主人과 엇더ᄒᆞᆫ고
滄溪 흰 물결이 亭子 알ᄑᆡ 둘러시니.. - (성산별곡 앞머리 발췌)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은 종로에서 출생하여 한양 정치무대에서 활약(?)하다 강화도에서 병사했는데, 고향이 전라도 담양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는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닌 듯합니다. 정철의 아버지와 형들은 을사사화 등 정변으로 유배되었다가 명종의 원자 탄생을 계기로 해배되어, 그가 14세 때 조부의 묘가 있는 담양으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은거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김윤제(金允悌, 1501~1572)의 문하로 들어가 사사하지요. 당시 동문수학한 이가 식영정(息亭影)을 세운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1525∼1597)입니다. 훗날 송강이 이곳에서 유유자적하는 김성원의 四季를 읊은 가사가 ’성산별곡’이고, 정쟁으로 밀려나 담양(송강정 부근)으로 내려와 임금을 원망하며 쓴 게 ‘사미인곡‘이구요.
성산별곡의 주 무대인 식영정 지근에는 김윤제의 환벽당(環碧堂)과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원림 소쇄원(瀟灑園)이 있습니다.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은 후 낙담하여 일찌감치 낙향(전남 장성)한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는 멀리에서도 소쇄원에 자주 들러 사다시피 했다지요. 그리고 가사문학의 선배 송순(宋純, 1493~1582)의 면앙정(俛仰亭)도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김성원이 식영정을 지은 뒤 송순은 ’식영정과 환벽당은 형제 정자이고.. 식영정과 환벽당 그리고 소쇄원을 일러 한 동리 3곳의 명승(一洞之三勝)이라‘ 하였답니다.
사대부 어른들의 놀이터, 담양 성산 자락
무등산 발치인 성산 자락은 근방의 문인 면앙정(俛仰亭) 송순을 비롯하여 환벽당(環碧堂) 김윤제, 서하당(棲霞堂) 김성원과 그의 장인 임억령(林億齡, 1496~1568), 소쇄원(瀟灑園) 양산보 등 낙향한 어른들의 놀이터(?)였지요. 여기에는 호남의 대학자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장성), 退溪와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으로 유명한 기대승(奇大升, 1527-1572, 나주), 문신이며 임진왜란 중 의병장이었던 고경명(髙敬命, 1533~1592, 장흥) 등도 함께 어울립니다(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 등 식영정을 중심으로 활동한 문인들을 ’식영정4선(息影亭四仙)‘이라고 불렀으며, 여기에 송순, 양산보, 김인후, 기대승을 더하여 ’성산가단(星山歌團)‘이라 부르기도 함).
또한 황진이와 염문으로 주가(?)를 올렸던 소세양(蘇世讓, 1486~1562, 익산), 三唐시인 중 한 사람인 백광훈(白光勳, 1537~1582, 기산), 대학자이며 정철의 절친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7~1584, 파주) 등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식영정(息影亭)
그림자(影)도 쉬어(息) 간다는 정자(亭)이니 조선 최고의 글쟁이라는 松江이 어찌 아니 쉬어가리오. 정철은 노송 숲속에 묻힌 식영정의 정취와 주변의 경관을 즐기면서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지었고 식영정잡영(息影亭雜詠)도 남깁니다. 주변에는 정철이 김성원과 함께 노닐던 자미탄(紫薇灘), 방초주(芳草洲), 조대(釣臺), 노자암(鸕鹚巖) 등의 명승이 있었다 하나 아쉽게도 지금은 광주호 물속에 잠겼읍니다.
식영정(息影亭)은 명종 때(1560년)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이 그의 장인이며 스승인 석천 임억령(石川 林億齡)을 위해 지은 아담한 팔작지붕 정자입니다. 담양 지곡리 동산에 자리잡은 식영정은 무등산과 광주호 등 절경 속에 정자 주변의 고송과 송림, 배롱나무 등과 조화를 이룬 명승지라 할 수 있습니다. 정자 안에는 독특한 서체의 '息影亭' 편액을 중심으로 정철의 '息影亭雜詠', 임억령의 '息影亭記'와 '息影亭題詠', 김성원의 '息影亭十八影', 고경명의 '息影亭二十影', 용계(龍溪) 민덕봉(閔德鳳, 1519∼1573)의 한시 '차(次)' 등이 걸려 있습니다.
次 / 閔德鳳 식영정 시에 차운하다 / 민덕봉
新交傾蓋舊*頻上習家亭*(신교경개구 빈상습가정)
溪壓親鷗鷺 松高近日星 (계압친구로 송고근일성)
淸心風北壑 醒酒月前庭 (청심풍북학 성주월전정)
瑞石雲相接 仙翁夜叩扃 (서석운상접 산옹야고경)
*傾蓋舊 : 수레를 타고 가다 잠깐 차양을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치 오랜 친구인 것 같음
*習家亭 : 중국 晉나라 때 유명한 정자이나 여기서는 식영정을 이름
새로 사귀였지만 오랜 친구 같아, 식영정 정자에 자주 올랐네.
시내는 낮아서 물새들과 친하고, 소나무는 높아 하늘에 가깝네.
마음을 맑게 하는 북쪽 골바람, 술을 깨게 하는 뜰앞의 달이라.
무등산은 구름과 서로 접해 있는데, 신령이 밤중에 빗장을 두드린다.
송강의 자취와 관련된 유적으로 식영정(息影亭)은 환벽당(環碧堂), 송강정(松江亭)과 더불어 정송강유적(鄭松江遺蹟)으로 불립니다. 식영정 바로 아래로 내려오면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연꽃이 아름다운 부용당(芙蓉塘)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식영정은 전라남도 기념물(제 1-1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식영정을 포함한 원림 일대가 명승(제 57호)으로 승격 지정됨으로써 기념물에서 해제됩니다.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塘/堂)
노을(霞)이 깃든(棲) 집(堂)이라는 서정적인 이름을 지닌 棲霞堂은 김성원(金成遠)이 짓고 글벗들과 교유했던 별채로 그의 당호(堂號)이기도 합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바로 위쪽 산등성이에 장인이며 스승인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식영정을 지어드린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서하당 바로 옆에는 연꽃이 가득한 부용당(芙蓉塘) 연못(塘)과 잇대어 부용당(芙蓉堂)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부용당은 1972년에 서하당은 1995년 복원되었기에 문화재적 가치는 별로 없다 하겠습니다.
환벽당(環碧堂)
푸르름(碧)이 고리(環)를 두르듯 아름다운 승경(勝景)이라는 環碧堂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반 정자와는 달리 방이 딸린 유실형(有室形) 정자입니다. 식영정 바로 건너편 언덕에 자리잡은 환벽당은 김윤제(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자연을 벗 삼아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세운 누정입니다. 정철이 14세 때 담양으로 내려가 16세부터 김윤제의 문하에서 27세에 관직에 나갈 때까지 10여 년간 유숙하며 공부하던 곳이 바로 환벽당이지요. 무등산 원효계곡 아래 증암천(甑巖川)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장관을 이뤄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으며, 특히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자주 드나들던 명승지랍니다. 息影亭과의 거리가 250미터 남짓인데, 환벽당 주인 김윤제와 식영정 주인 김성원이 가로놓인 개울에 무지개다리를 놓고 서로 왕래하였다고 하지요.
環碧堂이란 당호는 신잠(申潛, 1491~1554)이 지었고 현판은 후대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글씨랍니다. 정자 안에는 임억령의 시 ’環碧堂‘과 조자이(趙子以)가 지은 ’송강 선생의 옛 거처를 지나며 감회에 젖어..(過松江先生舊居有感志懷..)‘라는 긴 제목의 시도 걸려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반칸은 淸風이요, 반칸은 明月이라‘는 명구로 유명한 송순의 ’環碧堂’이란 시를 붙입니다.
維南多勝地 隨處有林亭 (유남다승지 수처유림정)
我臥村爲企 君居山是星 (아와촌위기 군거산시성)
親疏同世分 來往一家庭 (친소동세분 내왕일가정)
匹馬尋常到 松關愼勿扃 (필마심상도 송관신물상)
남도에 유난히 명승지가 많아, 가는 곳마다 숲속 정자라.
내 지내던 마을은 기촌인데, 그대 사는 산은 성산이라.
친함과 소원함은 세상의 인정, 오고 감은 집안과 마찬가지.
필마로 언제나 갈테니, 소나무 사립문 닫아두지 말게나.
정철의 현손 정수환이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였으며, 지금는 연일 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1972년 광주광역시의 기념물(제 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대한민국의 명승(제 107호) 광주 환벽당 일원으로 승격됩니다.
☞ 蛇足 : 8년전(2013년) 고교 동창들과 함께 이곳을 탐방할 때 광주에서 부터 함께 한 해설사가 생각납니다. 당시 우리보다 대여섯살 쯤 많아 보이는 여인이 '자기는 모과같은 여자라서 못생겼지만 갈수록 향기가 날거라' 고 하였지요. 실제로 식영정과 소쇄원 그리고 면앙정을 돌아볼 때, 해박한 지식과 맛깔나는 해설로 점점 짙어가는 그녀의 향기를 확인할 수 있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