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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밧때리씨
이 홍사
밧때리!
영어라고 하지만 굳이 우리말로 기록하려면 배터리라고 해야 맞다. 한글 맞춤법에 그렇게 통일하자고 합의를 한 모양이다. 우리말의 축전지나 건전지 같은 말이 따로 있지만, 차량이나 오토바이에 들어가는 대형 축전지는 밧때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쓸 적에만 배터리라고 표기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너무나 황당해서 여기서는 밧때리하고 명명한다.
황당한 밧때리씨!
배터리와 밧때리는 다르다. 어감뿐만이 아니라 그 기능까지도 다르다는 게 내 선입견이다.
배터리는 넥타이를 맨 화이트칼라가 자동차 수리점에서, 멀찍이 서서 교체하라고 시키는 물건이고 밧때리는 연결선을 가지고 다니며 방전된 차량의 시동을 걸어주는, 기름때가 꼬질꼬질 묻은 축전지라는 기능을 지닌 물건이다. 누구라도 이 두 단어를 비교할 적에는 그런 뉘앙스가 짙게 떠오르지 싶다.
짜장면과 자장면의 맛이 분명 다르다고 하듯이 밧때리라고 해야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이 될 성싶다. 기름쟁이 세상에서는 밧때리는 있지만, 배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 어처구니없는 경우다.
자동차 밧때리를 평생 만지고 밧때리로 밥을 먹는 밧때리의 달인, 만경밧때리 권 사장, 고추가 빨갈 적부터 밧때리를 만지고 살았는데 이젠 수염이 허옇다는 만경밧때리 권 사장조차도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다.
나 역시 밧때리가 들어가는 중장비를 사십 년이 넘도록 만져서 밧때리를 수없이 교체하고 관리했지만 처음 당하는 경우다.
이런 일이 과연 있을 수가 있나?
정말 황당한 밧때리다.
그 황당한 밧때리 때문에 오토바이를 퓨즈가 다 나가고 배선을 망쳤으면 화가 나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너무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오는 지경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것도 우한 폐렴 때문에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원인을 분석해서 연결하자면 우한 폐렴의 후유증인 셈이다.
우한 폐렴 때문에 미얀마에서, 이놈의 정부에서는 뭘 잘못 처먹었는지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지 말고 코로나 19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중국몽을 꾼다는 이 정부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해 나는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길 고집한다.
모든 것이 우한 폐렴 때문이다.
우한 폐렴 때문에 거의 석 달을 오토바이를 현관에 세워두었으니 밧때리가 방전이 된 것이다.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씩만 타고 나가도 이런 일이 없었을 터이지만, 지난 석 달간 내가 미얀마에 발목이 잡혀 있었으니 오토바이 시동을 걸어줄 위인이 집에는 없는 것이었다. 아들 녀석이 있지만, 오토바이 원리도 모를뿐더러 오토바이를 만지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두고 위험한 물건이라고 한다.
특히나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상당히 조심해야 하는 물건이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이들 때문에 어떻게 오토바이를 집에 두느냐고, 몰래 끌고 나가지 않느냐고 하지만, 우리 집에서 그런 일은 없다. 아들 녀석은 오히려 오토바이가 위험하니 아버지는 타지 말고 팔아버리라고 종용하는 녀석이다.
하긴, 아들 녀석이 한창 오토바이에 관심이나 호기심을 가질 나이는 지났다. 아직 면허도 내지 않은 중고생들이나 호기심을 가지는 물건이지, 군에서 제대하고 제 차가 있는 녀석이니 오토바이에 관심이 없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오토바이를 집에 두어서 아이들이 끌고 나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시기는 지났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그렇다.
아무튼, 우한 폐렴 때문에 비행기가 끊어져서 미얀마에서 예정보다 한 달 반을 더 머무르고 돌아왔다. 예약되었던 비행기는 예고도 없이 어느 날 운항을 중단했다. 이거?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생각하며 매일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어, 어느 날 특별기가 뜬다는 것을 알았다.
그 비행기는 예약된 항공사가 아니라 미얀마항공인데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의료용품을 자국으로 수송하기 위해서 뜨는 특별기였다. 그런 정보를 얻어서 탑승한 승객은 고작 서른 명 정도였다. 미얀마는 우한 폐렴이 늦게 전파되어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시기라 빠르게 탈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마침 그 특별기의 정보를 알아내고 탑승하는 데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여행 비자로 들어갔으니 한 달이 만료인데 오버 스테이를 했으니 하루에 3불씩 쳐서 패널티를 내야 하는데 이민국 담당자가 계산하더니 95불을 요구했다. 나는 중간에 파타야를 한 번 나갔다가 왔기에 오버 스테이가 겨우 20일 정도, 60불쯤 예상했는데 95불을 내라니 좀 황당해서 따졌더니 자기의 계산이 맞노라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계산기를 두드려서 내밀었다.
무슨 말인지. 영어를 알지 싶은 녀석인데, 이 자식은 현지어로 떠들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입씨름하기 싫어서 그대로 주고 출국허가를 받아 검색대를 통과해서 생각하니, 이 자식이 상습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키니 예전에도 나흘을 더 머물다가 나오는데 27불을 요구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외국인에게 그렇게 바가지를 씌우는 모양인데 좀 괘씸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설렘에 그따위 금액이야 금세 잊을 수가 있었다.
한국에 도착하면 자가격리 때문에 그런지 탑승객 중에서 외국인은 두셋뿐이었고 거의 모두가 한국인이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거리 두기를 하느라고, 셋이 앉는 좌석에 한 명씩 앉아서 전부가 마스크를 끼고 돌아왔다. 여승무원은 아예 탑승도 하지 않았고 남자들뿐이었는데 승무원의 복장은 괴히 우주인의 복장이었다. 전부가 기내에서 방진복을 입고 있었다.
인천 공항에 돌아오니 공항은 예상대로 썰렁했다.
인천 공항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 버스는 이미 중단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권역별로 손님을 묶어서 한 차가 되면 태워 보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차를 무료로 이용하려면 하루 정도는 인천 공항 대기실에 머물러야 한다.
하여, 미얀마 공항에서 탑승하기 전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가지고 인천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라고 일러두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검역이 예상보다 복잡했고 입국 정차도 까다로웠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검역을 하고 입국장을 빠져나오니 아내와 아들 녀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녀석은 내가 미얀마에 머무는 사이에 차를 바꾸었다. 물론 카톡으로 내 허락을 받고 바꾼 차이지만 경기가 좋지 않은 시절에 제 형편에는 과한 차다. 차는 예뻤다. 실내 디자인도 그렇고, 비싼 만큼 내가 바라던 유지비가 적게 들어가는 차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아들 녀석이 운전대를 잡은 그 차를 이용하여 집까지 편하게 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잤다.
다음 날 아침에 보건소의 전화를 받고 보건소에 가서 다시, 검사를 확실하게 했다. 음성 판정을 받아서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의무적으로 보름을 자가격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는, 자가격리를 무시하고 논에 물꼬를 보러 갔다가 걸려서 입건 되고, 누구는 자기 아버지 병문안 갔다가 걸려서 구속되었다는 소식이 돌았다. 그런 소리를 들으니 집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또 나가더라도 반길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그 사이에, 정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변해있었다.
전화하면 모두가 입으로는 보고 싶다고 하면서 자가격리 기간이 끝이 나면 오라는 것이었다. 자가격리? 이거 창살 없는 감옥이 다름 아니었다. 그래도 아파트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가 주택이 이럴 때 참 편리하구나, 아파트에서 자가격리를 하자면 죽을 맛일 것이다.
삼 층, 집에서 자고 차려놓은 밥을 먹고, 사 층의 서재에서 오전에 책을 읽다가 이 층 사무실에 내려와서 전화로 업무를 보고 마당까지 내려갈 수가 있으니 아파트에 비교하면 덜 답답한 것이다.
마당에 내려가면 골목으로 지나가는 이웃 사람들과 인사할 수가 있고, 또 일 층 부품가게 신 사장과 멀찍이 떨어져서 대화할 수가 있는 일이다. 심심하면 혼자서 마당에 서 있는 차를 닦고, 오토바이도 꺼내서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더 심심하면 오토바이 시동을 걸어서 엔진 소리를 듣는 것도 위안이 된다.
오토바이는 두 대다.
현장에나 다니는 일상용과 라이딩을 나가는 고가의 오토바이인데, 현관에 세워둔 고가의 할리데이비슨은 밧때리가 방전이 되어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하나, 마당 귀퉁이에 세워둔 250CC짜리 국산, 현장용은 시동이 잘 걸린다. 엔진 소리를 감상하는 것으로 따지자면 할리데이비슨이 단연 으뜸인데 좀 아쉬웠다. 빨리 밧때리를 교체해서 살리고 싶었지만, 아직 자가격리 중이라 오토바이 센터로 끌고 갈 수도 없고 출장을 부르기도 뭣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랬지만 심리적으로 부담이었다. 빨리 고쳐야 하는데. 깔끔하게 일을 끝내는 게 천성인 나에게 분명히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교통공단으로부터 통지가 날아왔다. 오토바이 정기검사를 받으라는 통지서였다.
현장용으로 타는, 250CC로 불리는 국산 오토바이는 정기검사가 없다.
우리나라는 배기량이 250CC 이상이 되는 오토바이에 한해서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는데 국산, 현장용으로 타는 오토바이는 정확히 249CC로 생산되어 그 법의 망을 교묘히 피하고 있다. 그러나 현관 안에 세워둔 할리데이비슨은 정기검사를 받아야 한다. 통지서에 날아온 날짜를 보니 자가격리가 해지되면 바로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오토바이부터 살리는 일이 급하다.
할 일이 생겼다.
그게 오히려 즐거웠다.
할리데이비슨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후배, 장 실장에게 전화했더니 그 기간에 방전이 되었다면 아마도 밧때리를 교체하는 게 마땅하지 싶다고 했다. 밧때리의 수명이 다 되었다는 것이다. 혹시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밧때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중고를 찾지 말고 인터넷으로 할리데이비슨 전용을 주문하라고 언질을 주었다.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집까지 당연히 배달이 오니 무료한 시간에 마당에서 혼자 주물럭거리는 재미도 보통이 아닐 것이다. 밧때리를 바꾸면서 그 오토바이는 손볼 게 좀 있다. 뒤쪽 방향지시등 커버가 하나 깨졌다. 그게 눈에 엄청 거슬렸는데 그것도 교체해야 한다. 그 부품은 오토바이 천국이라 불리는 미얀마, 오토바이 백화점을 뒤져서 최고급 디자인으로 한 쌍을 사 왔다. 본래 있던 것을 쓰려면 미국으로 주문을 넣어야만 하고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몰라서 일삼아서 전혀 다른 모양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으로 한 쌍을 미리 준비해서 들고 들어온 것이다.
일단 밧때리부터 사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인터넷 쇼핑을 할 줄 모른다. 예전에 배워서 몇 번 해보았는데 그것마저도 자주 해보지 않으니 잊어버렸다. 핸드폰으로 인증번호를 받고, 주소까지 다 쳐넣고 카드를 등록하는 것이 까다롭고 귀찮아서 인터넷으로 물건만 확인을 하여 찜을 해놓고 저녁에 퇴근한 아들 녀석에게 부탁했더니, 제 인적사항의 정보는 이미 쇼핑몰에 등록이 되어 있었고, 하도 많이 사보아서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 자판을 쳐서 뚝딱 주문을 넣었다. 녀석은 제 카드에서 대금이 빠져나갔으니 제 통장으로 얼마를 넣으라고 하며 이틀 후에 물건이 도착한다고 했다.
참 편리한 시스템이구나.
저 맛에 인터넷 구매를 하고 충동구매를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자가격리라고는 하지만, 혹시나 해서 식구들과는 거리를 조금 두고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한 점이 없다. 불편한 점이라면 이발소에 가지 못하고 소주를 사러 마트에 갈 수가 없다는 정도다. 인천 공항에서 자원봉사자인 대학생이 핸드폰에 깔아준 자가격리 앱으로 매일 보건소에 몸의 이상징후만 판단해서 보고하면 그만이다.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번을 체크를 해서 날려주어야 한다.
혹여, 잊고 먼저 하지 않으면 보건소에서 어김없이 전화가 온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이 엄정하고 바쁜 시기에 공무원들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항상 일찌감치 앱으로 자가 진단하기를 체크를 해서 날린다. 그러면 바로 보건소 전산에 등록이 되는 첨단 시스템이다. 그것도 버릇이 되니 별로 귀찮은 줄 모르고 일수 장부에 도장을 찍는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마당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니 상당히 불편하지만 이제 며칠만 기다리면 끝이 난다. 끝나면 가장 먼저 이발소부터 찾아야겠다. 미얀마에서 싸구려 이발을 하고 왔으면 좋으련만 미얀마에서도 막바지엔 전 국민 출입을 통제했다. 내가 나오던 시점은 미얀마엔 늦게 퍼지기 시작한 우한 폐렴의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던 시기였다. 몇 명이 죽었다는 소문은 흉흉하게 돌았고 골목 입구마다 경찰이 서서 지키다가 아이들이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몽둥이로 대가리부터 때린다는 말이 있었다.
골목마다 소독한다고 횟가루를 뽀얗게 뿌려놓고, 그렇게 쏘다니고 분탕을 죽이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들어갔는지 골목에는 이따금 어슬렁거리는 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발소가 문을 닫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결국, 싸구려 이발을 하지 못하고 들어왔다.
자가격리를 당하는 자의 비애라면 이발소에 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머리가 조금만 길면 나는 견디지 못한다.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고 출장 이발사를 집으로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나라에 출장 이발사가 있던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배터리가 어제 도착했다.
배터리인 줄 알았는데 뜯어보니 밧때리였다.
포장을 뜯어서 밧때리를 보고 낭패감을 느껴야 했다. 요즘은 증류수가 들어가는 밧때리가 보기 드물다. 전부가 무보수 밀폐형 배터리가 대세인데 도착한 건 증류수가 따로 들어가는 구형 싸구려 밧때리였다. 사진으로 본 것과는 달랐다.
속았다는 기분이 들며 엄청 비싸게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인터넷 쇼핑인가? 인터넷에 실렸던 할리데이비슨 전용이라는 말은 최소한 엉터리였다. 상표는 국산 어느 메이커라고 조잡스럽게 붙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중국제 싸구려가 분명했다. 중국제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니 머릿속 회로가 갑자기 엉키고 정신이 순식간에 방전되는 기분이었다.
뭐가 이래?
이럴 줄 알았다면, 배달료를 주더라도 차라리 떼어낸 배터리를 퀵 서비스를 통해서 거래하는 대성오토바이센터 김 사장에게 보내서, 모양과 크기, 용량이 같은 것으로 하나를 가져오라고 시키는 방법이 훨씬 싸게 먹힐 것이었는데, 눈이 멀었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대성오토바이는 전화만 해주면 외상이라도 가능할 것인데.
인터넷 쇼핑이 편리하다는 관념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자고로 물건은 눈으로 보고 사야 하는데 이런 낭패가 없다.
밧때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오토바이를 마당으로 꺼내서 방향 지시등을 바꾸어 놓고 밧때리를 떼어낸 다음이었다. 방향지시등은 나사만 풀어서 선을 연결하고 간단히 교체하는 것이 아니다. 그걸 풀어내기 위해서 오토바이 뒷부분을 다 뜯어내야 한다. 시트와 새들백, 짐받이까지 다 뜯어내야 그 나사를 풀 수가 있다. 다 뜯어내서 방향지시등을 교체하고 역순으로 조립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그게 한나절이 걸렸다.
이제 도착하는 배터리만 연결하면 된다고 손을 털고 기다리던 참이었는데 그런 배터리가 아닌 밧때리가 도착한 것이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떼어낸 밧때리와 크기 모양을 비교했다. 떼어낸 밧때리는 무보수 밀폐형으로 미국제라고 선명하게 찍혀있었는데 이런 밧때리를 단다는 한 이십 년은 후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은 상했지만 그래도 방법이 없다.
밧때리에 같이 배달되어 온 증류수를 붓고 밧때리를 부착했다. 조금 쓰다가 방전이 되면 바꾸지. 그런 마음이었다. 증류수가 들어가는 밧때리는 수명이 짧다. 무보수 밀폐형은 수명이 긴데, 반해 증류수가 들어가는 밧때리는 과충전이 되어도 증류수가 증발하고, 그때그때 증류수를 보충하지 않으면 밧때리가 금세 방전되는 것이다. 오토바이 구조로 보아 증류수를 수시로 확인한다는 불가능하다. 안장을 뜯어내고 밧때리를 떼어내서 함에서 빼내야만 확인이 가능한 구조다. 밧때리를 관리한다고 수시로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
일단 오토바이부터 살리고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밧때리를 부착했는데 오토바이에 이상징후가 발생했다. 분명히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구별해서 제대로 달았는데 먼저 방향지시등 네 개에 불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키를 넣지도 않았는데 불이 들어와?. 그리고 키를 넣으니 계기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뭐가 이래?
중얼거리며 시동 스위치를 넣으니 칙, 소리를 내며 메인 퓨즈가 나가는 것이었다. 메인 뮤즈가 나가면 방향지시등에도 당연히 불이 나가야 하는데 그 불은 또 그대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상하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퓨즈 대신에 공구함에 있던 전선을 잘라서 연결해서 다시 해보았다. 역시 마찬가지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고 시동 스위치를 넣으니 고무가 타는 냄새가 났다. 열에 못 견디어 어디에서 전선이 녹는 모양이다. 얼른 퓨즈 대신에 꽂았던 선을 빼고 한참을 생각했다.
도무지 모르겠다.
할리데이비슨을 전문으로 하는 장 실장에게 전화해야만 했다. 그 후배는 지금 오토바이 엔진을 조립하느라고 바쁘다고 했다. 이러이러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더니, 바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잠깐 와 보겠다고 했다. 장 실장의 작업장에는 심심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노닥거리면서 커피를 마시는 곳인데 거의 석 달이 넘도록 보지 못했다.
장 실장이라는 녀석은 퓨즈를 하나 들고 와서 사태를 보고하는 말이, 내 그럴 줄 알았어! 하며 방향지시등을 왜 바꾸었냐고 호통부터 쳤다. 할리데이비슨 전용을 써야 하는데, 문제는 거기에 전압이 맞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오전 내도록 죽도록 했는데, 그게 화근인 모양이다. 일단 방향지시등으로 들어가는 선을 다 잘랐다, 아! 상당히 비싸게 주고 샀는데.
그런데 방향지시등 선을 잘라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앞쪽의 방향지시등에 불이 들어오는 것이다.
어? 이게 왜 이래?
전문가인 장 실장도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하며 가지고 온 퓨즈를 꽂고 시동 스위치를 넣었다. 칙, 소리를 내며 또 퓨즈가 나갔다. 퓨즈가 싼 게 아니다. 일반 차량에 들어가는 작은 게 아니고 큼직한 특수 퓨즈라 하나에 상당히 비싼 미제였고 구하려면 미국에 주문해야 한다. 장 실장은 그 퓨즈가 너무 비싸서 헌 퓨즈를 분해해서 납땜으로 재생을 해서 쓰고 있다.
희한하네, 중얼거리며 밧때리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제대로 연결되었는지 확인하고 가지고 온 테스트기로 여기저기 전압을 체크를 했다. 나는 도울 게 없었다. 그저 보고만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일 층 부품가게 신 사장도 나와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신 사장도 중장비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도울 게 없었다. 원인은 좀체 파악되지 않았다. 여기저기 다 찍어보고 다시 퓨즈 대신에 전선을 꽂아서 테스트하니 또 고무가 타는 냄새가 났다.
“이거 잘못하다간 정말 전체 배선을 다시 깔아야 하는데? 밧때리에 전압이 제대로 나오나?”
얼른 전선을 빼고 장 실장은 밧때리의 전압을 의심했다. 그리고는 밧때리를 떼어냈다. 이상이 있을 곳이 없다. 의심이 가는 것은 밧때리의 전압이었다. 새 밧때리인데 이상이 있겠어? 그사이에 시내에서 타이어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돌아서서 안부 전화를 받고 격리가 해지되면 한잔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고 나니 장 실장이 말했다.
“형님! 이거 황당한 밧때리구먼요.”
“뭔데?”
“이거 보세요.”
장 실장이 전압 테스트기로 마이너스단자를 찍으니 12V가 정확하게 나왔다. 플러스단자를 찍으니 제로였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형님!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구만요. 인터넷으로 샀죠? 바로 반품조치 하세요.”
플러스단자와 마이너스단자가 바뀐 밧때리였다. 정말 황당한 빳때리다. 밧때리를 이렇게 생산할 수가 있나? 옆에서 보고 있던 신 사장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이거 정말 배터리가 아니라 밧때리네.”
장 실장은 밤새워 엔진을 다 조립해야 한다고 했으니 급했던 모양이다. 끊어진 퓨즈 두 개를 재생한다며 챙기고 제가 가져온 공구를 챙겨서, 배송비까지, 퓨즈값까지 다 보상받으라고 말을 뱉고는 갔다. 이미 해는 빠져서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샀는데 어디로 연락을 하지?
새로 사 와서 단 방향지시등에는 문제가 없는 물건이다. 그런데 선을 다 잘랐으니 또 한나절 일을 만든 것이다.
밧때리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바뀌어 생산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커버에 표기를 거꾸로 한 것이다. 참 황당한 밧때리다.
저녁에 들어온 아들 녀석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어느 쇼핑에서 구매했느냐고 담당자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인터넷 쇼핑으로 사더라도 그게 연락은 되는 모양이었다. 이들 녀석이 인터넷을 찾아내 담당자와 먼저 카톡으로 연락이 되고 통화가 되었다. 녀석은 자세히 설명하라며 판매 담당자를 바꾸어주었다. 그래서 책임담당자라는 인간과 통화를 했다.
이런 경우가 발생했으니 반품과 교환은 물론이고, 나머지 퓨즈와 배선을 배상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더니 자기는 판매 담당이라 기술적인 부분은 설명해도 이해를 못 하고 자기 사장에게 연락해서 통화가 되도록 해주겠노라고 했다. 사장이라는 작자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금세 연락이 갈 거라고 기다리고 했다.
이건 정말 신문에 날 사건이다.
황당한 밧때리.
일단 저녁을 먹고 만경밧때리의 권 사장에게 전화했다. 중장비와 대형차 전장품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다. 이런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고 하니, 그런 경우는 있을 수가 없노라고 했다. 내가 바로 오늘 당한 일이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자기도 밧때리를 만진 지 사십 년이 넘지만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고 했고 자가격리의 불편함에 대해서 한참 통화를 했다.
금세 전화가 올 거라던 인터넷 쇼핑 사장에게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대성오토바이센터 김 사장에게 전화했다.
김 사장은 오랜만이라며 연락이 없기에 외국에서 발이 묶인 줄 알았다고 했다. 용케도 들어와서 자가격리 중이라며 오늘 일어난 일이라며 황당한 빳때리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그 양반은 펄쩍 뛰었다. 세상에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노라고 했다. 오늘 당한 일이고 지금 마당에 오토바이를 뜯어놓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는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가게에서 막걸리를 한잔하는 중이라며 밧때리를 하나 들고 당장 오겠노라고 했다. 그 양반 성격도 나랑 비슷하다. 이런 일이 있으면 눈으로 확인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다.
온다는 말을 듣고 마당의 불을 밝히고 창고 앞에서 불을 밝히고 기다렸다. 금세 도착을 했는데 막걸리를 마셔서 그런지 운전을 부인에게 시켜서 내외가 함께 왔다. 타고 온 화물차에는 작은 오토바이가 네 대나 실려있었다. 배달용으로 어느 가게에 빌려줄 물건이라고 했다.
김 사장은 새 배터리 하나와 선이 연결된 시동을 걸어주는 스페어 밧때리를 들고 온 것이다. 스페어 밧때리를 연결하니 계기판이 정상적으로 들어왔다. 퓨즈 대신에 전선을 꽂고 시동을 걸라고 했다. 시동은 정상적으로 걸렸다. 전체 배선이 완전히 녹아서 붙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떼어낸 밧때리를 테스트했다.
“이 밧때리 완전히 대한민국이구먼,”
“그게 무슨 소리요?”
“좌우가 바뀌었다는 말이지.”
그런가?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인터넷 쇼핑은 교환하는 절차가 상당히 복잡하니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바꾸어 물려서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선이 짧다. 선을 좀 길게 연결해서 바꾸어 넣어도 배터리 함에 충분히 들어갈 것 같다면서 버리기 아까우니 그렇게 연결해서 사용하면서 나만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고 하면서 희한한 경험을 했노라고 하고는 돌아갔다.
마당에 불을 끄고 올라와 가만히 생각하니 교환을 하거나 반품처리를 하면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다. 내일 아침,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바로 그렇게 개조하고 싶지만, 연결선을 선을 사러 나갈 수도 없는 문제이고 무엇보다 퓨즈가 문제였다. 장 실장이 바쁘다고 했으니 퓨즈를 재생시키는 따위의 시간이 없을 것이다. 이 친구는 다 마음에 드는데 뭘 시키면 항상 굼뜨다는 점이다. 그렇게 빨리 살아서 뭣해요? 채근하면 장 실장이 늘 하는 말이다. 밤새워 오토바이 엔진을 조립한다면 다음 날 오후쯤 되어야 통화가 가능할 것이다. 기다려도 인터넷 홈쇼핑 사장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밤 아홉 시가 넘었으니 이제는 전화를 기대한다는 건 무리수다.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상 이롭다.
장 실장에게 전화했다. 아직 저녁도 먹지 않고 한창 엔진 조립 중이라고 했다. 바쁜데 미안하지만, 퓨즈를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좀 날리라고 했다. 어디 다른 데서 구해봐야겠다는 요량이었다. 카톡은 금세 날아왔다. 크기를 식별하기 좋게 담배 한 개비를 옆에 놓고 사진을 찍어서 날려주었다.
오토바이를 현관에 넣지 못하고 분해된 채로 마당에 두었으니 잠자리가 어수선한 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새벽에 일어나 생각했다. 연결선은 어떻게 구하면 되는데 퓨즈가 문제였다. 장 실장에게서 카톡으로 받은 퓨즈의 사진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만경밧때리 권 사장에게 날리곤 그 밑에 이설을 달았다.
세상에, 이런 퓨즈 봤어요?
만경밧때리 권 사장은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는 걸 안다. 겨울에 중장비를 나가는 시간에 혹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출장을 다녀야 하기에 그의 승용차에는 항상 충전된 밧때리와 연결선이 실려있고 새벽에 전화 한 통 받으면 어디로 출전할지 모르는 대기조라 일찍 일어난다. 그렇지만 새벽부터 전화하기가 뭣해서 카톡으로 사진을 날린 것이었다.
반응은 금세 왔다. 카톡이 아니라 전화가 온 것이었다. 권 사장은 그런 퓨즈를 보았다는 것이었다. 아주 귀한 퓨즈인데, 독일에서 나온 대형 덤프트럭 메인 스위치에 그 퓨즈가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혹시 재고가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있다고 했다. 의외였다. 그게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인가?
밖은 아직도 어두운 새벽이었다.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자가격리가 발목을 잡았다.
날이 밝거든, 그 퓨즈 두 개와 연결할 수 있는 담배 굵기의 전선을 퀵 서비스로 좀 보내달라고 했다. 기꺼이 그렇게 해주겠노라고 했다.
아침을 먹고 사무실에 내려와 있으니, 퀵 서비스가 배달을 왔다.
지체할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웃통을 벗어젖히고 바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황당한 밧때리씨! 수고 좀 해주어야겠어.”
선을 연결해서 밧때리박스에 충분히 닿도록 하고 밧때리를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반데 방향이 되도록 넣어서 연결했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오는 게 정상 작동이 되었다. 이건 배터리가 아니라 분명 밧때리다. 선을 연결하며 그 생각을 하고 지난 밤 대성오토바이 김 사장이 이야기했던 좌우가 바뀐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은 좌우가 극명하다. 지역별로 정말 플러스와 마이너스처럼 극명하게 갈려있다. 어느 쪽이 마이너스인지는 몰라도 영남과 호남이 그렇다. 두 지역을 단자에 물려 합선시키면 정말 스파크처럼 불꽃이 튈 것이다. 그러나 밧떼리는 어느 한쪽이 죽어서도 제 기능을 발휘할 할 수가 없다.
좌우의 공존과 대립.
이거 심도 있게 생각할 문제다.
플러스단자와 마이너스단자가 뒤바뀐 불량 밧때리지만 그걸 미리 인지하고 정확하게 찾아내 연결하자 오토바이는 시동이 걸렸다. 다가닥, 다가닥, 말발굽 소리, 할리데이비슨의 특유의 소리를 내며 엔진은 돌아가고 있었다.
장 실장이 어제 마구 잘라버린 뒤쪽 방향 지시등의 선을 연결하자면 또 짐받이부터 오토바이 뒷부분을 다 뜯어내야만 한다. 족히 한나절은 걸릴 것이다. 배터리가 아닌 이 밧때리를 얼마나 쓸 수가 있을는지.
그런데, 그런데 나의 생은 얼마나 방전이 되었을까?
과연 인생은 충전이 가능한 물건인가?
혹시 나는 플러스단자와 마이너스의 그것이 바뀌지 않았을까?
단자를 조이던 드라이버를 들고 고개를 갸웃하며 한참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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