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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다리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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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야기 「바깥의 사유」 블랑쇼-자아•언어•의미의 불가능성. 불가능성의 근원이 바깥, 익명적 '그', 중성.그 불가능성에서 글쓰기는 시작됨
시냇물 추천 0 조회 230 22.09.15 08:35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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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2.09.15 12:38

    첫댓글 나의 바깥/윤인미

    달려오는 진눈깨비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는 함박눈도
    내리는 눈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다

    바라보는 방향이 같은 것들의 눈은
    이파리보다 꽃을

    바닥에 던져 놓은 가방 모서리
    뾰족한 포크가 찌르는 곳
    조급하게 앉은 자리에서
    꽃만 본 적 있다

    머무르고 부수어도
    파괴된 적 없는 그 기억은
    있는 듯 없는 것
    여태 기억나지 않는다

    눈발에 무너지는 풍경처럼
    풍경이 꾸는 헛꿈처럼
    물러날 수 없는 작별로
    홀로 마주하는 무덤이다

  • 작성자 22.09.15 12:39

    바깥 / 김소연

    얼굴은 어째서 사람의 바깥이 되어버렸을까

    창문에 낀 성에 같은 표정을 짓고
    당신은 당신의 얼굴에게 안부를 물었다

    안에 있어도
    바깥에 있는 것 같아 바깥으로 나와버릴 때마다
    안쪽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집에 가자며 누군가 손을 내밀 때
    거긴 숙소야, 나는 집이 없어
    당신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비바람에 우산들은 뒤집히고
    상인들은 내다 걸은 물건들에 비닐을 덮어주고
    행인들은 뛰거나 차양 아래에 멈춰 섰다

    처마랄 것도 없는 처마 아래에서
    잠자리 두 마리가 교미를 하고 있었다
    꼬리를 바르르 떨었지만 고요함을 잃지 않았다

    꼬리는 어째서 그들의 바깥이 될 수 있었을까

    사나운 꿈은 어째서 이마를 열어젖히는가
    낯선 짐승들이 한 마리씩 튀어나와 베개를 짓밟아서
    꿈 바깥으로 당신은 자꾸 밀려났다

    당신은 다시 잠이 들었다
    얼굴을 벗어
    창문 바깥에 어른대던 저 나뭇가지에다
    걸어둔 채로

    당신의 바깥은 이제 당신의 얼굴을 쓰고 있다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당신의 방을 밤새
    부수고 있다

  • 작성자 22.09.15 12:41

    바깥의 사과/강혜빈

    꿈이 나를 갉아먹을 때 엄마, 엄마를 부르지만
    나와 나의 커다란
    괘종시계만이 살아있는 이곳

    시계추는 거실을 서성이며 살타는 냄새를 풍기고

    발들이 반복되는 계단을 번복하는 소리
    저녁의 목구멍이 팽팽하게 잠겨오는 소리
    흑흑, 흑흑, 눈에 박힌 태엽이 잘 감기지 않는 소리

    태연히 몸속을 건너가는 엄마, 엄마를 부르지만
    나와 나의 투명한
    팔다리가 상상한 모습이 아니어서 그랬니

    문이 혼자서 열린다면 안녕, 너도 내가 보이니

    물을 뚝뚝 흘리면서 널려 있는 이웃들
    발바닥을 내놓고 말라가는 바지들
    머리카락을 한 올 두 올 뜯어먹으며 커지는 개미들

    아냐, 한눈에 알아보는 건 가짜 가족
    우리는 늘 액자 속에서만 창백하고 검었는데
    이불의 겉과 속은 덮는 사람이 정하는 것
    썩은 껍질들처럼

    자다가 울면 잠꼬대처럼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런 얼굴로 나를 기다리면 못써
    누구라도 목소리를 따라할 수 있으니까

    아냐, 우리는 아직 아무도 입지 않은 옷
    밀려난 얼굴 위로 똑같은 얼굴이 겹쳐진다면
    어젯밤 누군가 성냥 한 개비를 던졌기 때문에
    잠 속에서 몸집이 커다래진 시간은 깨어나지 않아

    그렇다고 아주 살아있는 것도 아닌
    문고리는 곧 살금살금 돌아갈 테지만

  • 작성자 22.09.15 12:41

    우리 바깥의 우리 / 김소연

    우리는 서로의 뒤쪽에 있으려 한다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은 아니고
    다만 등을 보고 있으려고

    표정은 숨기며
    곁에는 있고 싶어서

    옆자리는 비어 있고
    뒤에 서서 동그랗고 까만 팔꿈치를 쳐다보면서
    그림자 속에 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등 뒤에서 험담이 들려올 때
    꼭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제대로 듣지 못하면서

    ⸺말하는 것 좀 봐
    ⸺말하지 못하는 것 좀 봐

    단 하나의 사건에서
    모두의 죄들이 한꺼번에 발각되는 순간이 온다

    ⸺이제 전부가 죄인이 되었는데 앞으로 벌은 누구에게 받나
    추위 때문에 소름이 돋는 건지
    소름이 돋기 때문에 춥다고 느끼는 건지

    (내가 알던 나에 대한 (내가 알던 나에 대한 (내가 알던 너에 대한) 내가 알던 나에 대한) 내가 알던 나에 대한)

    우리 바깥에는 우리가
    우리로부터 바깥으로 우리에게로
    우리 바깥의 우리를

    우리는 마주 보고 있지 않았다
    마주: 이것은 바라보는 걸 뜻하지 않았다 언제 단념하게 될지 지켜보는 걸 뜻했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말하는 자의
    두려움을 보고 있다

    분명히 맨 뒤에 서 있었는데
    자꾸 맨 앞에 서 있다

    우리는 등을 보이지 않으려다
    곧 얼굴을 다 잃어버리겠다

  • 작성자 22.09.15 12:55

    바깥에 갇히다/정용화

    우리 집 현관문에는 번호키가 달려있다 세 번,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면 가차 없이 문이 나를 거부한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지갑도 휴대폰도 없이 제대로 바깥에 갇히고 말았다

    안과 밖이 전도되는 순간
    열리지 않는 문은 그대로 벽이 된다

    계단에 앉아있는 30분 동안
    겨울이 왔다
    바람은 골목을 넓히려는 듯 세차게 불고
    추위를 모르는 비둘기는
    연신 모이를 쪼아댄다

    내 것이면서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이
    어디 문뿐이겠는가
    낡을 대로 낡아버린 현수막이
    바깥에 갇힌 나를 반성도 없이 흔든다

    걸터앉은 계단이
    제멋대로 흩어지는 길 위의 낙엽이
    새들이 자유롭게 풀어놓은 허공이
    나를 구속하고 있는 바깥이라니!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나는 지금 바깥이다

  • 작성자 22.09.15 12:57

    바깥에게/김근

    너와 헤어지고 나는 다시 안이다 아니다
    꽃도 피지 않고 죽은 나무나 무성한
    무서운 경계로 간다 정거장도 없다
    꽃다발처럼 다글다글 수십개 얼굴을 달고 거기
    개들이 어슬렁거린다 그 얼굴 하날 꺾어
    내 얼굴 반대편에 붙인다 안이 아니다
    내 몸에서 뒤통수가 사라진다 얼굴과 얼굴의
    앞과 앞의 무서운 경계가 내 몸에 그어진다
    너와 헤어지고 나는 무서워진다

    너를 죽이면 나는 네가 될 수 있는가
    모든 안은 다시 바깥이 될 수 있는가

  • 작성자 22.09.15 12:57

    보라의 바깥/이혜미

       눈 마주쳤을 때
       너는 거기 없었다

       물렁한 어둠을 헤집어 사라진 얼굴을 찾는 동안,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시선의 알갱이들이 쏟아진다 산산이 뿌려진 눈빛들이 나를 통과하여 사라져갔다

       나는 도망친다
       빛으로부터.

       눈을 감는 순간 빛은 갇히고 눈동자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그건 서로에게로 건너가려는 시간들. 오늘 죽인 나비를 태어나기 전부터 기다리는 일 새로운 명명법을 익힐 때마다 공기의 농도가 진해져갔다 점점 맑아지며 밖을 향해 솟아오르는 행성의 온도

       유리로 만든 베일을 쓰고 대기권을 바라본다 나는 이곳에 색(色)을 짊어지러 온 사람, 얼음조각 속에 우연히 들어간 공기방울처럼 스스로 찬란할 수 있을까 관여할 수 없고, 무엇과도 연관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을 만져보는 순간, 세계는 투명하고 위태롭게 빛난다

       이제야 나는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눈을 감고
       몸 안을 떠다니는 흐린 점들을 바라본다
       발밑으로 빛의 주검들이 흘러내렸다

  • 작성자 22.09.15 12:58

    나의 바깥 / 성은주

    해변을 통과하는 자갈처럼
    차가운 치아를 드러내며 견디는 소리

    내가 모르는 너와 네가 모르는 나 사이
    일방적으로 사라졌다 나타나는 아침을 닮았다

    우린 종종 실내화를 바꿔 신었고
    색깔 없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수일을 뒤척였다
    아주 낯설거나 혹은 아주 익숙하게

    말끝을 올려 나와 멀어지는 연습을 하다가
    모두 빠져나간 텅 빈 숙소에 앉아 울었다

    경기장 바닥에 깔린
    원(圓)을 따라 달리는 너와의 레이스

    날 잃어버릴수록 내가 더 선명해지는 이유
    떠밀린 속사람과 속사람에게서 나온 겉사람이
    문밖에 서 있기 때문이다

    문을 두드리는 건
    정든 화음을 잊지 않으려는 예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목을 돌려봤지만
    계절이 지워지는 속도가 달랐으니까

    새들이 숲을 빠져나가려 할 때
    나무 바깥의 기척을 이해하며 날아간다

    내가 싫어지면 어디로 도망가야 하지
    우리의 껍질이 이렇게 단단한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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