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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데살로니가후서 1:5~11)
2024년 9월 22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데살로니가후서 1:5~11)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예수 믿는 가장 궁극적인 문제는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간결하게 얘기하면, 이제 우리는 예수 믿는 목적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천국에 가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준비를 해야 되는데, 과연 우리가 천국 가기 위해 제대로 된 준비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항상 던져서 우리를 깨워야 됩니다.
많은 세월 동안에 그냥 바쁘게 지나오고 또 새로운 상황에 계속 부딪치다 보면 사실상 어떤 것보다도 더욱더 중요한 문제를 그냥 간과하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문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는 천국 갈 것이 준비돼 있지 않거나 그러한 마음의 다짐이 없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좁은 길이고, 대단히 어려운 길일 수 있습니다. 사실은 대단히 쉬운 것인데, 쉬운 것은 사람이 안 하려고 하다 보니 어려운 것입니다. 천국 가는 것도 ‘그냥 자동으로 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부단한 우리 나름대로의 결단과 엄청난 투지로 임해야 될 일입니다. 구원이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은혜를 참으로 아는 심령, 정말 단순한 심령이 필요한 것뿐인데, 그게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쉬운 것에도 순응하지 않으려는 대단한 저항성이 있습니다. 그런 저항성은 누구에게도 있어서 예수 믿는 데 있어서 항상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얻는다.’ 그랬습니다[1]. ‘심령’을 아시죠? 우리 마음입니다. 쉽게 좌지우지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을 지휘하는, 마음속의 중심, 모든 생각의 본부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 없으면 난 아무것도 못해. 하나님, 나 능력도 없고 가증스러운 것밖에 없어서 하나님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내 길은 한 발짝도 가질 못해요. 나 너무 미련하고 너무 부족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하나님, 이끌어 주세요. 하나님이 다 해주세요. 나 하나님 의지하고 갑니다. 난 무식해도 견딜 수 있습니다. 또 능력이 없어도 주님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인데,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안 하려고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에 갑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의’입니다. 우리는 어떤 능력을, 위대한 것을 의라고 보는데 하나님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베푸신 그의 희생하신 사랑과 같은, 그런 품위와 같은 유형의 베푸심을 의라 합니다.
이 세상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여기 젊은 성도들이 많이 있는데, 이 세상을 지날 때 뭔가 기대를 하고 들어가게 되는데, 결국에는 ‘내가 생각하던 것이 아닌데…’ 하고 인생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면서 가게 될 것입니다. 가다가 나중에는 ‘엇 이 사람은 누구야?’ 하고 거울 속의 늙고 세월의 흔적이 있는 자기 얼굴을 보면서 당황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과 또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굳건히 가려면 세상의 삶은 괴롭고 또 많이 손해를 볼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맞춰서 가면 천국에는 가기 어렵습니다. 이 세상 쪽으로 자기의 마음을 투자하면 하나님 나라를 돌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너무너무 어렵더라도 천국 향한 일념으로 가는 그 사람은 일단 행복한 여정이 보내게 될 것입니다. 무지무지 힘들더라도, 매일 죽어서 천국에 간다면 그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즐거운 고통일 것입니다. “세상도 잘 가고 하늘나라도 잘 가게 해 줄게.” 하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십자가 지고 어려워도 가는 것이 천국 가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저 같이 중재하는 사람은 성도들의 감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냥 세상이고 뭐고 전부 다 버리고 하나님께 100% 쏟으시오.”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세상과 하늘, 이 두 가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세상에 대해 실망을 많이 할 것입니다. 갈수록 더 실망해서 나중에는 좀 과격해지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오는 정보들이, 제가 세상의 정보에는 어둡습니다만, 들으면 너무 놀래서 그런 세상을 적응할 수 없고, 그런 세상에 담겨져 있는 자신을 감당치 못해서 365일 집안에만 묻혀 있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하는데, 세상은 그렇습니다. 하늘과는 기준이 다릅니다.
세상은 하늘과 가치관이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대단히 가치있게 여깁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갖는 가치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너무 미련한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선 가치가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에선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거기에 마음이 홀려서 모든 것을 그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물질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서로 더 많은 물질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의 것이고, 모든 것이 거기에 연결돼 있습니다. 모든 것이 돈에 연결돼 있어서 심지어 교회 안에도 뚫고 들어와서 굉장히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 세상에 생각이 있으면 마음이 타락됩니다. 마음이 타락하면 영적으로도 굉장히 메마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이 타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합당하다’는 말씀이 두 번 나오는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서 너를 보고, 도우시고, 인도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또 우리 자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 것으로 우리 기준을 맞추고 준비해 가야 됩니다. 우리가 고난 받는 것도 결국 천국에 갈 수 있냐 없냐를, 우리의 모든 것, 수고하는 것도 천국 가기 합당히 여김 받기 위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 보면, 또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2]’ 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나 구원받았는데, 뭐? 이제 천국 가는데, 뭐?” 하는 사람은 천국의 문턱에도 못 갈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이 무서운 것입니다.
“나 구원받았어. 천국 가는 거야.” 하고서 아무 일 안 하는 무리와,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는 무리가 있다고 합시다. 앞에 “나 구원받았으니 아무것도 안 해도 돼.” 하는 말은 사실 과거 유대교회가 ‘아브라함의 자손은 무조건 천국 간다!’ 하는 주장을 깨기 위한, 그들의 오랜 마음 없는 그 율법, 쓰여진 율법으로 천국 가려호가 하는 그 허튼 노력에 대한 기독교의 투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으로 구원받으면 다 끝난 거다.’ 하는 말은 믿음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지, 모든 기독교의 삶을 뒤덮는 말씀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신학적으로 그 부분은 그 부분만 따로 따져야 되고,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천국에 합당히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합당한 자가 가는 것입니다. 우리 기준에 합당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합당하게 여겨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으면 다 구원받는데?! 천국 가는데!?” 하는 말에는 중간에 많은 전제와 조건들이 생략된 말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이제 “주님, 나 주님께 다 바치고 그 나라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나는 더이상 내 삶을 돕는 일을 하지 않고,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고 주님 나라를 위해 일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하고 나아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자기를 잘 간수합니다, 준비합니다. 디모데후서의 말씀에도 나옵니다[3]. 하나님은 그런 자를 보시고 ‘자기를 잘 준비하는 자구나.’ 하실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로서 자기를 잘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아, 예수 믿었는데 준비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천국에 가는데?” 그렇게 주장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난 현재의 나와 천국 사이에는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합당히 여기심을 받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래야 너 천국 간다! 도장 찍어!” 하는 식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합당히 여김받음은 우리 마음의 법이 정하는 것이고, 하나님 향한 우리의 사랑이, 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함께 역사하는 것이지, “목사님! 감독님!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주일에 뭐를 몇 번을 어떻게 해야 되나요?” 하고 수치로는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물자가 제한된 이 세상에서 갖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천국에 당연히 들어가게 되고, 참으로 은혜에 감동받은 자는 그렇게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어코 그를 도와주시고 이끌어갈 것입니다.
문제는 타락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과 우리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에 맞춰가도 안 되고, 자포자기해도 안 될 것입니다. 원래 그런 것입니다. 세상과 우리가 기준이 맞질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습니까? ‘가진 게 있어, 없어?’ 하는데, 결국에는 다 돈을 봅니다. 사람이 타락하면 사람이 저질스럽게 변질됩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목사고 장로고간에 돈에 타락하면 이미 굉장한 약점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마음이 타락하면 진리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진리가 흡수가 안 되는 것입니다. 가증스럽고, 전부 가짜가 됩니다. 교회가 은혜를 베푼 사람이 많이 있는데, 끝까지 그 은혜에 배반한 자들이 있습니다. 또 그런 자들끼리 모여서 아직도 교회를 어렵게 하려고 합니다. 겉으로는 목사고 장로일 수 있어도, 마음이 타락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굉장히 또 다른 시간을 내서 말씀드려야 될 부분인데, 인생 살다가 마음이 고장 나면 그때부터는 이제 그것이 타락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음이 고장나면 하늘의 의를 다룰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 때부터 그런 것이 훈련이 돼야 합니다.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경배하는 걸 잘 배워야 됩니다. 어린아이를 성장시킬 때도 어린아이를 어른들 기준으로, 그 다음에 성질을 내서 어린아이를 파괴하고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의를 담을 수 있는 그 안의 컨테이너, 아름다운 바구니, 아름다운 광주리 같은 것을 어린아이의 마음에 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인 선배들 중에는 잘못된 사고를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마음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지식으로 하늘에 올리우겠다는 자들도 있습니다. ‘지식이 전부다.’라고 여기니,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질 않습니다. 잘 모이질 않습니다. 지식이 있으면 충분한데, 그러면 비디오로 봐도 되고, 지식이면 뭘 알아내면 다 되는 거니까 천국은 알아내는 데에 비밀이 있는 것이니 교회에 모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이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모이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사귀는 것입니다. 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평생 사람들이 ‘뭘 그까짓 것 하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나는 계속 하나님을 섬겨드렸던 것입니다. 과거에 주님께 향유를 깨서 주님을 섬겼던 여인과, 또 갈릴리에서 와서 주님을 섬겼던 그런 여인들과 또 주님의 제자들이 끝까지 주님을 섬기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타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은 ‘그냥 가겠지.’라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 가기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맞는 자, 그 나라의 성질과 맞는 자, 그 나라를 이해하는 자, 그 나라의 법을 자기 안에 장착하고, 익히고, 실행하는 자,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소중히 여기는 자, 진짜 승리자들은 그런 자들입니다. 세상에서는 “당신이 뭐 할 것이 뭐 있어?” 하고 하대 받은 자들이 천국에서는 주님과 한 식탁에서 같이 먹을 것입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영원히 주님의 곁에서 사랑받고 칭찬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누가 잘나고 못나고 하는 것은 영적으로는 반대로 생각하면 비교적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천국은 이 세상의 가치하고는 완전히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정말 많은 걸 내려놓고 영원히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겠다. 그 나라를 위해 투자하겠다.’ 하고 가야 되는데, 마음이 타락하면 그것마저도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타락하지 말아야 되는데, 난 마음이 타락한 사람을 너무 많이 봤고, 이런 면에 대해서 분명한 증거들을 많이 봤습니다.
저랑 같이 일하는 분들 중에는 주의 교회를 향하는 사랑으로 자기를 희생하고 참고 견디는 사람이 있고, 또 아직 젊지만 그래도 주님께 자기가 드리는 사랑을 주님이 받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자기를 헌신한 자들도 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심령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이지, ‘지식이 있으니 다 된 것이다.’ 그러고서는 교만하게 이제 더 선을 넘어서 교회를 공격하는 것은 전혀 본받을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남을 가르치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지식을 집어넣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속이 터지는 자들이 있습니다. 가르치고 으시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또 그 외의 다른 부류들은 아부하고 아첨해서 뭘 얻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 마음이 타락해서 그런 것입니다. 마음이 타락하지 않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갈망하는 그런 가난함으로 천국을 준비하는 우리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또 에베소서 4장 1절에 보면[4], 부르심을 입은 것에 합당하게 행하라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해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나, 예수 믿고 있습니다. 그를 시인하고 있습니다. 보세요. 나 시인하죠? 난 하나님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는 나의 구원의 주인이십니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릴 불러 주신 것은 우리 인생에서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각 개인에 대해 하나님은 “알아서 해봐, 내가 잘하는 사람은 뽑아 줄게. 하늘에 들어갈 주민으로 뽑아 줄게.” 이렇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일이 그가 부르십니다. 각각에게 주신 운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보고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우리가 전혀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우리의 이미 타락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미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먼 자를 알고 계십니다. 이미 하나님을 그 심령에 모실 수 없는 사람들, 하나님이 곁에 있어도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들,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운명을 주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또 기억하시는 대로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임무가 있습니다. 그가 부른 자가 있습니다. 부른 자들은 죄다 그 부르심에 응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결과적으로 우리가 뒤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더듬어 보는 회상의 시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내가 왜 이렇게 했을까? 왜 저렇게 했을까?’ 하나님이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부르셔서 그 사람에게 행하도록 주신 임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았고, 다 끝났다!’ 이러고서는 평생 죄만 범하다가 “엇? 나 구원받았어요?” 교회라는 곳에 왔더니 “나 구원 받았대. 나 구원 받았댄다. 아하하하! 이제 자유하대. 엥? 나 이미 자유한데 뭘 더 자유해?” 하는 이런 태도 말고요.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게 돼 있습니다. 이 땅에 왔을 때에 하늘나라에 관여하여 내게 주신 부르심이 있습니다. 어떨까요? 너무 소중하지 않습니까? 나에게는 전무후무한, 전 우주적, 영원적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골치 아프지 않길 원합니다. 나는 진리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이렇게 공개하고 오늘도 또 감동하시고, 제도적으로도 우리를 계속 재촉하시고 촉구하시는 것을 볼 때에 ‘나는 이제부터 정말 주님 사랑하겠다.’ 해야 합니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선 일하지만,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내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겠다.’ 하고 결단을 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나의 부르심이 뭔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아무개! Come to me!” 주님이 부르셨다는 사실. “네? 불러요?” “임금님이 널 부르셨대.” “에?! 임금님이 나를요?!” 그런 것입니다. “왜 부르셨대요?!” “뭔진 모르겠어. 뭐 원하시는가 봐.” 그를 기쁘시게 하는 우리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각각을 대하십니다. 우리가 너무 세상의 일에 오염이 되어서 그러는데, 하나님은 각자에 대하실 때 자기 아들을 사랑하신 것 같은 사랑이 깃들어 있고, 향하여 있습니다. 나의 가치는 무언가? 나를 사랑해 주셨던 그 은혜가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나의 형편과 오늘의 내 우주적인 그 역사 속에서 오늘의 나를 준비시켜 놓은 것입니다. ‘너의 가치는 뭐냐?’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 아들의 사랑이다. 하나님 아들도 한 분이고 나도 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보혈로 나타난 모든 그의 하나님의 정성이 내게 다 뿜어져 있다.’ 자기를 그렇게 여기고, 자기에게 있는 일생을 아무렇게나 하지 말고 천국을 위해 준비하는 우리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합당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운운하고 진리를 다룰 때, 이건 하나님의 심정에 맞고, 하늘나라의 사정에 맞게 그 연계성을 주면서 하늘에 맞도록 그렇게 주장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꾸도록. 자꾸 오염 받고 오는 우리를 정화시키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자꾸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선 우릴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영원히 그 나라에 가서 영원히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짧게 지나가지만은, 하나님은 우리만 꼭 위해서 감시하는 분이 아니라, 온 우주의 망가진 것을, 분열된 것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청소하고 다시 세우시는 엄청난 영적 작업이 우리 주변에서 그가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나라에 기여하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우리는 자기 영적 인생에 대해서 보는 시각을 좀 고치고, 또 자기 형편을 하나님 나라에 맞게 바꿔야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 합당한 자, ‘이제부터 하나님이 나를 잘 봐 주시길 바랍니다.’ 하고서 마음으로 사랑하고, 또 행실로 주께 기쁨이 되게 하고, 진실하고, 억울해도 참고, 또 악한 생각이 들어도 참고 주의 나라를 이롭게 하고, 그렇게 하는 우리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뒤를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5]. 예수 믿는 자는 ‘내 인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돌아보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날 우리 인생은 ‘팍’ 깨져서 완전히 그날 설계가 다시 됐어야 합니다. 좀 과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옛날에 ‘터미네이터’라는 영화에 보면, 터미네이터가 사람이나 기계든지 보면 그에 대한 데이터가 쭉 나와서, ‘아, 여기에 맞춰서 하자.’ 합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새롭게 맞춰 행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자기 십자가를 지라 그랬습니다[6]. 그가 기대하시기에 우리가 져야 되는 그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합당해야 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천국을 위한 합당한 준비가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오늘 우리를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인도받는 것은 그냥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자기의 목적대로 인생을 성취해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들, 딸들로서 주께 쓰여지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시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주님 나라를 위하여 훌륭하게 쓰여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 나라에 합당하게 되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무쪼록 우리에게 마음의 타락이 없고, 신앙을 왜곡되게 만들 수 있는 타락성이 우리에게서 근접을 못하도록 하나님 도와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주님을 잘 섬겨서 천국을 준비하도록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들은 우리 성도들 다 도와주시고, 저들 심령을 그저 홀로 두지 마시고 감동하여 주시고, 위로하여 주시고, 또 용기를 주시고, 우리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우리 주의 부르신 그리스인들로서 또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천국을 잘 준비하는 그런 합당한 우리의 앞날들을 다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이 타락하지 않도록, 심령이 하나님의 의를 담을 수 없는 그러한 망가진 심령이 되지 않도록 주께서 도와 주시옵시고, 참 복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의를 충만히 담을 수 있는 그러한 천국을 준비하는 광주리 같은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살전 2:12)
[3]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
[4]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2)
[6]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8)
[출처] 20240922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데살로니가후서 1:5~11)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