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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예수와 함께 달린 죄수 가운데 한 죄수도 그를 모독하며 말하기를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런 다음에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42. "예수님, 예수님께서 그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4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눅23:39-43)
39 One of the criminals hanging there hurled insults at him: “Aren't you the Messiah? Save yourself and us!”
40 The other one, however, rebuked him, saying, “Don't you fear God? You received the same sentence he did. 41 Ours, however, is only right, because we are getting what we deserve for what we did; but he has done no wrong.” 42 And he said to Jesus, “Remember me, Jesus, when you come as King!”
43 Jesus said to him, “I promise you that today you will be in Paradise with me.”
39. 예수와 함께 달린 죄수 가운데 한 죄수도 그를 모독하며 말하기를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하였다.
39 One of the criminals hanging there hurled insults at him: “Aren't you the Messiah? Save yourself and us!”
*세 사람
오늘 본문은 한 장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단 세 사람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사람들 눈에 이 세 사람이 똑같은 처지였습니다.
그들의 팔목과 발목에 못이 박혀있었습니다.
살이 찢어지고 있었습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고통의 비명을 지를 현실이었습니다.
그 육체적인 고통뿐 아닙니다.
더 큰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했습니다.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후 그들은 미지의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은 그 죽음 후를 전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 십자가에 달려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세 사람의 말소리만 들렸습니다.
*십자가형
로마는 정치범에게 십자가형을 집행했습니다.
그것은 식민지 통치를 위해 그들이 발명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최악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일본놈들에게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이 죽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도 죽어가고 계셨습니다.
*모독
그 끔찍한 육신의 고통으로 거기에는 신음 소리만 들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은 죽음을 앞둔 가장 엄숙한 시간이었습니다.
깊은 침묵만 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세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사람은 옆 사람을 신경질적으로 모독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집착은 아편보다 강했습니다.
그의 분노는 죽음의 고통도 잊게 했습니다.
어찌 보면 모든 사람이 이 세 사람의 처지입니다.
내가 70이 될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나도 이렇게 한두 시간 흐르면 내 생이 다 가고 말 것입니다.
모조리 엉뚱한 집착으로 죽음의 고통을 잊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 같은 숙제가 있습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주신 숙제입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답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요3:16)
그 답을 두고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숙제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현실에서 영생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한두 시간입니다.
다시 이르지만 주님은 오직 이 영생의 문제만을 다루실 것입니다.
13.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 형에게 명해서, 유업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
14.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눅12:13,14)
어떤 사람이 제 유산을 갈라달라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당시 유산을 나누어주는 것은 랍비들의 역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도 그 랍비들과 같은 줄 알았습니다.
그 문제를 다루어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랬는데 예수님은 대뜸 소리치셨습니다.
그들에게 딴 데로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오직 우리의 영생만을 다루어주실 것입니다.
교회가 부동산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헷갈리게.......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40 The other one, however, rebuked him, saying, “Don't you fear God? You received the same sentence he did.
*분별
둘째 죄수는 첫 번째 죄수가 예수님을 모독하자 단박에 그를 꾸중했습니다.
잘못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구원을 얻기 원한다면 둘째 죄수와 같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초한 이런 주체적 비판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빤쓰 이야기를 강대상에서 해도 두 손을 치켜들고 두 눈감고 아멘해 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 교회가 이 모양이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명확한 분별로 No 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란 법정에 서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중형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엉겁결에 그 일에 가담했다가 법정에 선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질질 끌려 가다가......
아니면 더러운 흑심을 가지고 있다가.......
바른 비판력으로 그 자리에서 No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죽고 사는 일입니다.
분별력이 아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분별력을 가지고 촉각을 세워서 목회자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 목자가 엉뚱한 소리를 하면 잽싸게 그 목자를 피해야 합니다.
5. 양들은 절대로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그런 사람을 보면 도리어 달아난다. 양들은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10:5)
추한 남녀 늙은이들이 그리스도를 흉내를 내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이상합니다.
1.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요 강도다.(요10:1)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는 여러분이 도둑과 강도짓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미친 종교 집단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화가 납니다.
종교 집단이 사회 문제를 일으킬 경우 정부는 엄한 벌을 내려야 합니다.
그들이 사회 문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정부가 생명을 해할 경우 정부를 대항해서 교회가 일어나듯이 정부 역시 그들이 야기한 사회 문제에 대해 엄한 벌을 내려야 합니다.
그것은 종교를 탄압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회 문제에 대한 정부의 할 일입니다.
*똑같은 처형
두 번째 죄수는 첫 번 죄수를 지적하면서 너도 예수님의 받으신 그 십자가의 판정을 (You received the same sentence he(Jesus) did.) 똑같이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죽음의 심각한 현실에 같이 놓여있다고 지적했을 것입니다.
딴소리 하지 말라고 그 말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것입니다.
물론 사람 눈에 똑같아 보여도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가장 낮은 곳에 오셨습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 영광은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의 영광이며, 그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1:14)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죄인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죽기를 위해 오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물론 십자가를 감당하는 일은 예수님께도 어려움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 반대이셨습니다.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42.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십시오."(눅22:42)
거친 숨소리가 서로에게 드리는 장소에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를 지셨다면 여러분의 주위를 살펴보세요.
거기에 틀림없이 우리와 전혀 다른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처지에서 한 사람은 구원을 얻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 두 사람은 모두 확신을 가지고 자기 길을 선택해서 갔던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을 가른 결정적 문제는 그리스도론입니다.
막상 예수님을 모독했던 그 죄수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료하며 귀신을 몰아내는 것을 다 알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로써 예수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예수님에 대한 기대는 그의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고통으로 신음을 하면서 바로 이 말로 예수님을 모독했던 것입니다.
39.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39 Save yourself and us!”
그의 그리스도론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그 탁월하신 능력으로 로마인을 그 십자가에 못 박아야 옳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수가 눈을 떠보니 그 그리스도도 자신 같이 실패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못 박힌 자리에 예수님도 못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그리스도론이 못 박혀버렸습니다.
그는 그 분노를 참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 죄수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백성들도 이 죄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으며 바로 그 말을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35. 백성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고, 지도자들도 비웃으며 말하기를 "그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그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고, 택하심을 받은 자이거든, 자기나 구원하라지" 하였다.(눅23:35)
*다른 시각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두고 영광을 받으셨다고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24.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요12:23,24)
주님께서는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으려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두고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영광이란 죽지 않는 일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광은 그의 십자가에 죽으심에 있ㅅ브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계셨습니다.
그 죽으심은 필연적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죽음을 위해서 오히려 노력하셨습니다.
사람들과 이 죄수는 그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신앙은 알아야 하는 지적 사건입니다.
두 눈 감도 몸을 흔들어 대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심
그들의 그리스도론은 자기중심적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합니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요1:29)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할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을 잡아서 문설주에 그 피를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양이 피 흘려서 죽었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이 애급 땅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죽으심이 그 백성들을 살린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양이 되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 이타적인 죽음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패배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 세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수용하시자 난리가 나버린 것입니다.
모든 죄인의 구속이 벗어져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의 빚을 십자가에서 다 갚아버리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이 죽으심으로 마귀들을 승리하셨던 것입니다.
이 죄수는 제가 알고 있는 세상 논리를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죄수는 예수님께서 자신과 전혀 다른 죽임을 당하고 계심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기적 기초 위에서 이타적인 예수님을 판단했던 것입니다.
*죽음
41.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런 다음에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41 Ours, however, is only right, because we are getting what we deserve for what we did; but he has done no wrong.”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설명하라고 하면 기적들을 줄줄이 나열합니다.
부흥사들의 18번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죄수는 탁월하게 그리스도를 예수님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죽으심을 통해서입니다.
그리스도가 세상의 신들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 분의 죽으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죽으심을 흔적으로 자신을 입증하셨습니다.
27. 그런 다음에,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치고 믿음을 가져라" 하고 말씀하셨다.
28. 도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고 대답하니,(요20:27,28)
예수님께서 도마 앞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병을 팍 고치고
드러누워서 낄낄거리고.......
주님의 일관된 입장이셨습니다.
22.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 하고 말씀하셨다.(눅9:22)
이 사실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공관복음은 세 번에 걸쳐서 이 동일한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그리스도로 당하실 고난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주님의 이 증거를 결정적으로 거부한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22.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꼭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면서, 예수께 항의하였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셨다.(마16:22,23)
상식적인 그리스도론이 베드로로 하여금 사탄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로 궁극적 예수님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하도 딴소리를 하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기적들이란 사람 헷갈리게 하는 증거 방식입니다.
누구 벌떡 일어나고 방언하고 예언하고.......
9. 그 불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작용을 따른 것인데, 그는 온갖 능력과 표징과 거짓 이적을 행하고,
10. 또한 모든 불의한 속임수로 멸망 받을 자들을 속일 것입니다. 그것은, 멸망 받을 자들이 자기를 구원하여 줄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살후2:9,10)
42. "예수님, 예수님께서 그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42 And he said to Jesus, “Remember me, Jesus, when you come as King!”
*그 나라
그에게 이제 허락된 시간은 단 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전혀 다른 나라와 맞닥뜨릴 것입니다.
그는 바로 그 나라를 염려했습니다.
첫째 죄수에게는 당장 이 나라뿐이었습니다.
죽음 한 시간 전의 나라!
십자가 위의 물리적인 패배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의 죄수는 앞으로 죽음 너머 그 나라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중심으로 그들이 십자가 달린 이 나라가 평가 되는 것입니다.
이 죄수에게 그 엄청난 육신의 고통도 그 나라의 소망에 비하면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끙끙 신음 소리를 내면서 그 나라를 언급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전쟁이라는 것들이 모조리 이 나라 땅따먹기를 위한 것입니다.
죽음 전의 나라 그에 대한 집착입니다.
그 나라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졌다면 그런 짓거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잡아 죽이는 일을 계몽으로 여기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다른 길을 택하셨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기억한다면 이 세상의 전쟁은 종식될 것입니다.
탱크 포신으로 호미를 만들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두 번째의 이 죄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습니다.
생살이 찢어지고 있는 장소에서 자신의 영혼 문제에 성실을 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 죽음의 너머 미래가 보이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그 나라가 보이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기억
그의 탁월함은 구원의 답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 자비를 구하는 것이 바로 그 생명의 길임을 깨닫고 있었던 데에 있습니다.
한 사람은 주어진 마지막의 한 시간을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일에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성실하게 자신의 영생을 예비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사람의 탁월함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무 위에 생선처럼 걸려있었습니다.
숨쉬기 버거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축 늘어져서 성실하게 자신의 과제를 풀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옆 사람에 동조하지 않은 판단력이 있었다는 것이 탁월합니다.
그가 No 하고 명확히 그의 입장을 밝혔다는 데에 놀랍습니다.
그는 그 나라를 소망하고 있음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예수님께 자비를 구함으로 얻은 것입니다.
그의 영혼에 대한 진지함이 놀랍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제 영혼을 구했습니다.
4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43 Jesus said to him, “I promise you that today you will be in Paradise with me.”
*낙원
예수님 역시 똑같은 죽음의 현장이셨습니다.
주님 역시 살이 찢어지고 있었습니다.
축쳐진 몸이 뜨거운 햇볕에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분의 뺨을 때려도 얼굴에 침을 뱉어도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43.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43 “I promise you that today you will be in Paradise with me.”
예수님께서 그 성실하심으로 그 죄수를 구원으로 초청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영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구했던 그 죄수가 십자가의 못에서 손목과 발목이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죽음을 신음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그에게 들려주신 주님의 말소리가 들렸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숨이 떨어지기 한 시간 전에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 말씀으로 인해 그 현실을 넘어서는 기쁨에 넘쳐있습니다.
그렇게 그에게 죽음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말씀으로 죽음을 극복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그의 영생의 과제를 풀었던 것입니다.
그 영생의 과제는 주어진 한 시간만에 풀 수 있는 과제물이었습니다.
손발을 움직일 수 없는 십자가 상황에서 풀 수 있는 과제물이었습니다.
그 단순한 응답에 대해 하나님은 그에게 영생을 주셨던 것입니다.
말씀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