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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주역의 팔괘에서 巽에 해당한다. 손의 방위는 남동쪽으로 여명이 시작되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1천5백년경부터 양계를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우리나라 문헌상에서 닭은 신라의 金閼智 시조설화와 관련되어 처음으로 등장한다. 중국의 후한서(後漢書) 위지동이전에 의하면, 마한의 장미계(長尾鷄)는 꼬리가 다섯 자라 하였고, 중국의 의학서인 <草本類>와 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은 한결같이 약용으로는 우리나라의 닭을 써야 한다고 적고 있다.
닭은 동틀 때 횃대에 올라가 새날이 옴을 예고하고, 밤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닭 울음소리와 함께 새벽이 오고 어둠이 끝나며, 밤을 지배하던 마귀나 유령도 물러간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동서를 막론하고 새벽을 알리고 벽사의 기능이 있는 영물로서의 닭에 관한 수많은 상징적 의미가 생겨났다.
꼭두닭 / 시대미상/ (左):산청 산골박물관 / (右):애보박물관
상여 꼭대기에 설치한 닭 모양의 나무 조각이다. 예로부터 닭은 죽은이를
극락왕생으로 이끄는 인도자로, 또한 망자가 외롭지 않게 지켜주는 존재로 여겨왔다.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초하룻날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나기를 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악귀를 쫓는 기능에 따라, 장례 행진 때에는 흰 수탉을 관 위에 놓는다. 또 정월 대보름날 새벽 첫닭의 울음소리가 열번이 넘으면 풍년이 든다고 했고, 닭이 제때에 울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긴다. 신라인들은 알을 소생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생각하여 달걀을 부장품으로 삼아 경주의 천마총에서는 수십개의 달걀이 담긴 단지가 발굴되기도 했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 년이 넘은 달걀 - 경주국립박물관
1973년 천마총 발굴 당시의 사진
천마총 발굴 당시 수십 개의 알(꿩알도 포함)들이 발굴되었는데 대부분이 파괴된 상태였으나
쇠솥에 넣은 장군형 토기에서 발굴된 달걀은 그대로 부존되어 있었다. 바로 물 때문이었다.
이 토기 안에 50% 가량의 물이 차 있어서, 물이 공기와 차단막을 형성하여
달걀이 부패되는 것을 막아주었다고 한다.
닭은 길상(吉祥)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새해 첫 음식인 설날 떡국에 닭고기를 넣었고 혼례 초례상에 닭을 청홍보에 싸서 놓았으며 폐백에도 닭을 사용했다. 닭의 머리에 있는 볏이 冠과 비슷하다고 하여 닭은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의 그림을 걸었다.
그런가하면 닭을 오덕(五德)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머리에 冠을 쓰고 다니니 文, 발로 내치기를 잘 하니 武, 敵이 앞에 있으면 용감하게 싸우니 勇, 먹이를 보면 서로 부르니 仁, 밤을 지켜 때를 놓치지 않으니 信이 있어 오덕(五德)을 갖춘 것으로 본 것이다.
혼례 초례상에 청색 홍색천을 두른 닭 두마리가 놓여있다
중국에서는 닭의 피에 영묘한 힘이 있다고 믿어 마을에 돌림병이 돌 때에는 닭의 피를 대문이나 벽에 바르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민간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북유럽 신화에서 수탉은 보초병의 상징으로 생명의 수호자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자부심의 상징으로 수탉의 문양이 화폐에 새겨질 정도로 국가의 표상이다. 아프리카 콩고의 통과 제의에서는 입문자가 제의를 통과하면 목에 닭을 걸어준다. 즉 그 입문자는 닭의 인도에 의해 죽은 영혼과 소통하며 새로운 탄생을 보장받는다고 한다.
포르투갈에서 닭은 정의와 행운의 상징이다
포르투갈에 전해오는 ‘바르셀루스의 닭’이라는 얘기가 있다. 바르셀루스라는 청년이 성지순례를 떠났다가
도둑 누명을 쓰게 되었다. 결백을 주장하는 청년에게 재판관은 접시에 놓인 구운 닭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닭을 울게하면 너의 결백을 믿어 주겠다." 그러자 닭이 울었다. 청년은 누명을 벗었다.
이후로 닭은 정의와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에 가면
온갖 생활용품부터 액세서리까지 온통 닭으로 치장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랑스 주화-(1793년도 주화의 뒷면에 수탉이 새겨졌다)
프랑스 주화-(2014년도 10유로 주화 뒷면의 수탉 문양)
프링스에서는 자부심의 상징으로 수탉의 문양이 화폐에 새겨질 정도로 국가의 표상이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유니폼에 수탉의 문양이 있으며 수탉을 들고 응원하기도 한다.
기독교에서도 닭은 독수리나 어린 양과 함께 그리스도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메시아처럼 밤에 뒤이은 아침의 도래를 알리기 때문에 은총과 부활의 상징이다. 교회나 성당의 첨탑에 닭의 모양이 그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또 깨침의 상징으로 학생들의 교과서 표지에 닭을 그리기도 했다. 이슬람교에서도 "흰 수탉은 나의 친구이니 그는 신의 적이니라"라는 예언자의 말이 전해 온다.
우리나라에도 닭과 관계된 전설과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중 하나가 서산대사의 오도(悟道)의 기연(機緣)이다. 서산대사(1520~1604)가 지리산 암자를 전전하며 정진하던 중, 어느 날 인근마을에 내려갔다가 낮닭 울음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오도송(悟道頌)을 남긴 이야기다.
서산대사의 悟道頌
髮白非心白 古人曾漏洩
今聽一聲雞 丈夫能事畢
머리는 희었으되 마음은 늙지 않았다고
고인은 일찍이 말하였거니
이제 닭 우는 소리 한 번 들으매
장부의 할 일을 다했네
忽得自家底 頭頭只此爾
萬千金寶藏 元是一空紙
홀연히 나를 알고 보니
모든 일이 다만 이렇거니
만천금의 보장이
본래가 하나의 빈 종이일세
우리 나라 토종 장닭
첫댓글 이민혜선생님, 무척이나 유익한 자료를 자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자주 뵙기를 청합니다. 행사에 자주 오세요. ㅎㅎ
서울에 머무는 동안에는 행사에 빠지지 않으려 합니다. 안타깝게도 신년하례식에는 목감기로 어렵고...
감사합니다.